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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
도입
어떤 집사님이 직분을 받았으나 생활이 바쁘고 사업을 핑계로 주일도 범하면서 돈버는 데 정신에 팔려 살다가 몸이 이상하여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받고 병실에 누어있는데 병실 밖에서 가족들이 하는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몇 달밖에 살수 없는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내가... 왜 나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아 절규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시한부 인생인 것을 받아들이고 암병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인생이 허무하게 끝날 것을 이렇게 아둥 바둥 살아왔음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또는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내놓았고 남은 유산을 사회단체에 기증할 것을 유서로 써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수개월이 지나도 멀쩡한 것입니다. 이상해서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고 보니 암병은 오진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묻습니다. 그동안에 병원비며 그동안에 모아놓은 재산을 다 써 버린 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집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으로 살았던 몇 개월의 인생이 살았던 전체중에 가장 진지하고 보람 있게 살았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절망의 시간 시한부 인생이란 의식 속에서 저는 엄청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저의 잘못된 삶의 태도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 믿음을 회복하였고 사명의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고통과 아픔과 절망의 시간이 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무요 절망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절망,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실존적 절망을 말합니다. 이 절망은 죽음이나 자살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은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면서도 육체적 죽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병입니다.
구나 절망은 일회적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한번 이 병에 걸리면 영원히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실존적 삶의 허무와 절망이라는 병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자신을 구원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없은 세상에서 인생의 무엇인가를 찾을 려는 인간의 헛된 수고의 결과로 허무와 절망 슬픔을 예비하셨습니다.
<요한복음>(11:4)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오빠인 나사로가 실제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오히려 이 병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것이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의 죽음도 진정한 병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다시 깨울 때까지 잠시 잠든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 대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철저하게 허무를 경험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절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허무와 절망의 끝에서 절대자인 하나님을 요청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한 것을 깨닫는 자는 복음을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부서져야 합니다. 자아가 부서져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욕망의 배가 산산이 조각나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절망은 바로 희망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무능(無能)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의 모든 삶과 죽음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 우리는 드디어 이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름을 입을 것임이요”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다는 것은 가장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희망찬 일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로 25회째 전도서의 전도자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해 아래 인간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래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경험적인 답을 찾아 궁구하고 지식을 쌓고 모든 것을 누려보고 전도자로 우리 앞에 나선 것입니다. 경험처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해 아래서 인생이 무엇인가?
해 아래서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해 아래서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솔로몬은 이것을 연구하고 경험하여 인생의 전도자로 우리 앞에 진리의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바울을 통해서 마태를 통해서 말씀하신 성령께서 솔로몬을 감동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입술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들처럼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12:9-10)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10)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솔로몬의 전도자로서의 결론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1.세상에 대하여 철저하게 허무감을 느껴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 솔로몬은 세상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서론은 한마디로 "허무" "절망" "무의미" "무가치" "수고" "슬픔" "구름을 잡는 것" "허망"이라는 단어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경험적인 세상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처음에 대하는 느낌은 이세상의 인생의 삶이 모든 것이 허무한 것임으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이 경험적으로 세상의 것을 추구해 보았으나 모두가 헛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해아래 모든 수고가 의미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하나님을 떠난 일, 수고는 근심과 슬픔분이요 유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살아온 세상은 다 헛된 시간의 방비요 허비된 인생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피하여 다시스로 가려다 선창가(욥바)에서 서성거리는 시간 선가로 지불된 물질 불 신앙의 삶의 바다에서 만나 당한 모든 수고와 고통은 무슨 유익이 있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지금 하시는 일에 의미가 있습니까:?
2)안목의 정욕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전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육신의 정욕을 쫓아 모든 것을 다 취하여 가져보아도 진정한 만족은 없습니다. 귀는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 주님 없는 세상에 욕망의 닻을 내려도 베드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 없는 세상의 우물을 마셔도 만족은 없었습니다.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아야 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열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참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십니까? 무슨 소리에 기뻐하십니까?
3)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번뇌와 근심을 더하는 것입니다.
(전1:17-18)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세상에서 많은 지식의 욕구를 채워보지만 그것으로 행복하지도 만족하지도 않습니다. 오리려 더욱 무지함을 발견하고 번뇌하고 근심을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김으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분토와 같이 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면 가치가 인생이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4)세상의 쾌락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무익한 것입니다.
오락/술/사업/부동산/물질/정욕/성적 쾌락/눈에 원하는 것/마음에 원하는 것은 다 행하여 보았습니다. 철저하게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즐기기 위하여 먹고 마시고 놀아보자하고 쾌락주의에 빠져 보았습니다. 웃음을 찾아 오락을 즐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친 짓이었습니다. 술도 고급술 다 마셔 보았습니다. 사업도 벌려 보았습니다.
농장도 별장도 지어보고 누려보았습니다. 물질도 성적인 유흥도 즐겨 보았습니다. 눈에 원하는 대로 마음에 원하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고 허깨비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5)물질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부귀영화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경험한 후 철저하게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절망하고 있습니다. 해아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무익하고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철저하게 세상의 물질과 명예로 절망한 것처럼 베드로가 주님 없는 세상에 그물을 내렸으나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 그물인 것처럼 철저하게 실패하여 망해야 합니다. 수가성 여인처럼 세상의 우물은 다 마셔보아도 갈증이 더 났던 것처럼 철저하게 세상에 대하여 절망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절대자를 만나게 됩니다.
2.절대적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명예를 통하여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물질을 통하여 진정한 만족을 찾지 못합니다. 쾌락을 통하여 진정한 낙을 얻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수고와 일은 허무한 것이요 슬픔과 고통뿐인 것을 깨닫습니다.
인생에게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여보고 철저하게 절망한 사람들이 깨닫는 은혜입니다.
(전2:24-25)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25)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1)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얻는 인생의 참 기쁨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선물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분 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전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전5:18)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 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 복이로다“
2)재물과 부요을 주사 누리게 하십니다.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 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과 부요은 근심과 함께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재물을 주십니다. 부요를 주십니다. 할 일을 주십니다. 손으로 하는 일에 복주십니다. 수고하여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기쁨으로 주신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3)때와 기한을 정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전7:13-14)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 냐(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손안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달려 있습니다.
4)영원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전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인생은 구원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땅에 것만 가지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새로운 예수 생명을 얻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5)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전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히9:7) 종말적인 심판을 하십니다.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 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람의 본분은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간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말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애정이라고 말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효도라고 말합니다. 신하가 임금을 사랑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생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단어를 경외함으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는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존경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말로 존경하면 그 앞에 몸을 바로 가눠 서지 못합니다
(전3:1-8)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7)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두 때를 두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전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4.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까요?
1)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5:1-2)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전12:11)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찌르는 채찍/면도날/수술용 메스/하나님의 말씀의 검/성령의 검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 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잘 박힌 못/못은 물체와 물체를 하나로 고정시킵니다. 내 생활을 흔들리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에 못을 박아 준다는 것입니다. 또 하는 벽에 박힌 못은 여러가지 물건을 거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에 우리의 고민도 근심도 슬픔도 아픔도 걸 수 있습니다.
2)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교제하는 것입니다.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 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 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4)하늘에 보화를 저축하며 살아야 한다.
(전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5)곤 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 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자동차가 본분 잘 했다고 상주고 축복해주는 것 봤습니까? 기차가 잘 달렸다고 상주고 칭찬하는 것 봤습니까? 본분은 마땅한 것입니다.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 사람의 본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분을 우리에게 펼치십니다. 축복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축복
(전2:24-26)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25)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5:18-20)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 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 복이로다(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 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20)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
결 론
지혜자 솔로몬은 인생의 여러 모습들을 전도서를 통해서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헛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헛된가? 높이 되는 것도, 고운 것도, 영광스러운 것도, 부자 되는 것도 얼마나 헛된가를 계속 조목조목 가르칩니다. 지식도 헛되고 소유도 헛되고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람의 본분이 무엇입니까? 아니, 본분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것이 본분입니다. 배는 물위를 떠다니는 것이 본분입니다. 자동차는 도로를 달리는 것이 본분입니다. 기차는 레일 위를 다니는 것이 본분입니다. 이 본분은 기차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분은 비행기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분은 만드신 분이 결정합니다. 그래서 설계합니다. 그 본분대로 살아야 됩니다.
사람의 본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곤 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는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살아야 합니다. 남은 생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해아래서의 허무와 절망을 넘어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창조하며 참 만족을 누리며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