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아래층에서 조그만 소포를 전해준다. 서둘러 풀어 보니 예쁜 상자 안에 귀고리 3쌍이 들어 있다. 그런데 보낸 사람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누군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누가 보냈을까 하고 기억 속을 헤집어 봐도 보낼만한 사람이 없는데 내 이름과 주소가 확실한 걸 보니 잘못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석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유독 귀걸이는 좋아했다. 이삼십 년 전에는 귀걸이하고 다니는 여인이 드물어서 좀 튀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딸애가 떠올랐다. 유난히 귀걸이를 좋아하는 나의 이상한 취미를 아는 사람은 딸아이밖에 없어서이다. “엄마는 보석은 안 좋아하면서 왜 귀걸이만 좋아하느냐.”라고 아이는 자주 물었었다.
그래서 서둘러 가족 홈페이지에다 크고 진한 글씨체로 느낌표를 팍팍 찍어서 장난 비슷하게 글을 올렸다. “도대체 누구야? 이런 나쁜 짓을 한 게.” 곧 딸의 답이 올라왔다. 독일인 남자 친구의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귀걸이를 사서, 귀국하는 유학생 편에 보낸 것이라 한다. 그 유학생이 한국에서 소포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써서 붙였으니 당연히 내가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이런저런 지난 일들을 퍼 올리다 보니 내 보석함 속에 귀걸이만 달랑 남게 된 10년 전 그날의 서늘한 사건이 떠올랐다. 동네의 친한 친구가 반지 계를 모집한다며 들어달라고 했다. 그때의 반지 계는 계주가 24명의 인원을 모아 한 달에 한 명씩 금 한냥을 태워주고 2년 동안의 수고비 조로 계주는 자신의 몫인 금 한 냥을 무상으로 받게 된다.
계주한테 돌아가는 무상의 금 한냥 값은 계원이 붇는 금액 중에 포함되어 비싼 금을 사게 되는 결과지만 매달 조각 돈을 모아 아이들 결혼 패물도 장만할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 그녀와 평소 친한 사이라 웬만해서는 들어달라는 대로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네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이럭저럭 모아놓은 것이 꽤 되었다. 금을 탈 때마다 아이들 결혼 예물용으로 다이아몬드로 바꾸어 하나둘씩 장만했다.
그날 출근 준비하면서 안 하던 짓이 하고 싶어졌다. 옷에 맞추어 반지를 끼어보고 있는데 마침 밖에서 급하게 벨 소리가 울렸다. 동네 친구라면 지금 붙들리면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집에 없는 척 숨소리를 죽였다.
사무실에 와서 보니 가방 안에 보석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밖에서 다급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당황하여 보석 주머니를 장롱 안에 넣지 못하고 가방에 넣었나 보다. 사무실 일을 대충 끝내고 가게로 갔다. 그날 물건이 두어 차 들어올 계획이라 가게를 정리해야 했다. 종일 바빠서 정신없다가 퇴근 무렵에야 가방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중요한 물건을 늘 두는 구석에 잘 놓아둔다고 두었는데, 이곳은 상습 치기배들이 우글대는 곳이라 가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을 맞기도 한다. 한참 후 누가 쓰레기통에서 빈 가방을 주워왔는데 빈 보석 주머니에 달랑 귀걸이 3쌍과 주민등록증만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귀걸이가 귀하던 때라 이미테이션인줄 알았나 보다.
전날 계를 탔기에 꽤 많은 현찰도 있었는데 패물과 함께 돈도 온데간데없었다. 내 생전 이렇게 큰 도둑은 처음 맞아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도둑맞았다고 웅성대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얼핏 내 얼굴에 퍼부어지는 시선이 느껴져서 그쪽을 바라보니 허름한 옷을 입은 키 작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가 얼굴에 비웃음을 달고 내 시선을 맞받았다.
그 눈빛에서 그가 범인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황당해하는지, 또는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즐기는 것 같았다. 그는 내 패물과 돈을 훔치고도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차가운 맹수와도 같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웃으며 우롱하는 쾌감까지 맛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선 그를 즐겁게 해선 안 된다는 팽팽한 미움으로 평온한 척 일만 계속했다.
그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후에도 몇 번 왔었다. 일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드니 구석에서 예의 그 소름이 끼치는 시선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이럴 수는 없다. 물건을 훔쳤으면 다시 오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대담했다.
한편 어쩌면 과거에 나도 모르는 새 그에게 뭔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전혀 그런 일이 없었기에 애써 생각을 지웠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 그는 의기양양하게 얼굴에 비웃음을 달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선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물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에 대한 터질 것 같은 적의로 머리가 아파져 왔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보석과 돈을 잃고 드러누운 것을 보며 쾌감을 느끼려고 다시 온 것이다. 혹시 그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아니었을까.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니는 매우 폭력적이고 비열한 인간을 의미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Phillippe Pinel)이 이러한 증상에 대해 최초로 글을 썼으며, 1920년대 독일의 의학자 쿠르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가 정신병의 하나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체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어 죄의식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폭력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경우가 많다.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할수록 차분해진다고 한다.
그날 칼바람이 후려치는 짱짱한 분노로 그와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았지만, 그의 냉혹한 눈빛이 갑자기 영화 <양들의 침묵>의 랙터 박사 눈과 너무나 닮아 몸이 떨려왔다. 그 후 오랫동안 그의 날카롭고 음흉한 시선이 내 옷에 묻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밤에는 가까운 슈퍼에도 혼자 못 나갔다.
귀걸이를 들여다보다가 그 남자의 오싹한 얼굴이 떠올라, 찌는 듯한 더위에 흠칫 한기가 몰려왔다. 지금쯤 서울의 뒷골목에 버려졌어야 할 그 기억,
연필 자국처럼 희미해지다가 흐르는 시간에 실려 지금쯤 내 삶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준다면, 오! 얼마나 좋을까.
(<<시에>> 2010년 가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