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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4장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하늘에 열린 문
하늘에 열린 문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요, 예수께서 오른 편 강도를 데리고 들어간 낙원의 문이시다.
하늘의 열린 문은 구원의 문이요, 축복의 문이요, 승리의 문이요, 응답의 문이요, 형통의 문이다.
하늘의 열린 문은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는 천국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하늘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는데 이 성의 문은 열두 문이다. 천국 문과 거룩한 성문은 다르기 때문에 이 문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방법도 다르다. 천국 문이 하나의 문인데 이 곳에 들어가는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오른 편에 있던 강도가 들어간 낙원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열두 문으로 되어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성령을 받은 자가 어린 양 혼인 잔치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구원도 천국 문으로 들어가는 곳과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는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기에, 두 개의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과 행위가 온전해야 한다. 믿음은 예수 믿음으로 하나의 문인 천국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행위는 성령 받아 성령으로 생활함으로 거룩하고 깨끗한 예복을 입고 열두 문으로 들어가는 혼인잔치 하는 문 즉 거룩한 성문이다.
계 21:12-13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는데 이 하늘은 영계의 하늘이요, 새 하늘이요, 셋째 하늘이다. 이 하늘에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가 베풀어져 있고, 그 보좌에 아버지 하나님이 앉아 계시다. 계시록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어린 양은 아들 예수이시다.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과 녹보석 같다고 하였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양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형상 있음을 증거해 준다.
홀로 유일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형상이 없는 분이시었다(약1:17). 그런데 하나님께서 형상을 입으심으로 형상을 갖고 계시다(창1:26). 형상을 입으심은 피조물과 함께 하시기 위함이다. 특별히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지어진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함이었다(마1:23).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창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이 영의 모양을 입으심은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의 수준으로 낮추신 모습이다. 이후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소부재하심을 포기하시고 영계 하늘에 보좌를 베푸시고, 그곳에 제한된 영역에서 계시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의 아심은 사람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아심의 방법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를 통해서 알게 되신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양이 보석과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 보석의 색깔은 하나님의 속성과 계획을 담고 있는 것으로 벽옥은 하나님의 파란색 은총인데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나타난다. 그리고 홍보석은 하나님의 붉은 색 은총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나타난다.
또 녹보석은 하나님의 푸른색 은총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성품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영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일하신다.
겔 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계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십사 장로
하나님의 보좌를 이십사 보좌들이 둘려 있는데, 이십사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다.
이십사 보좌는 이십사 장로들로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라고 히브리서 12장 23절에 말하고 있다.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계시록 21장 12절에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했고, 14절에는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여기서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열두 지파장과 신약의 예수의 열두 제자를 합쳐서 이십사 장로로 말하고 있다.
이들은 천년왕국에서는 예수와 함께 분봉 왕으로 다스리는 일을 이룰 것이고, 백 보좌 심판에서는 심판하는 권세로 심판을 하게 된다.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마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천년왕국에서 예수의 12제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린다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신약 때의 사람을 다스릴 것으로 본다.
백 보좌 심판에서 예수의 12제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한다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신약 때의 사람을 심판할 것으로 본다.
신약의 복음의 사람이 구약의 율법의 사람을 다스리고 심판하듯이 구약의 율법의 사람이 신약의 복음의 사람을 다스리고 심판한다.
계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하나님의 일곱 영
번개와 음성과 뇌성 등은 종종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상징하고 있다.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이다. 보좌 중앙에 계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보좌 우편에는 어린 양 예수이시고, 보좌 앞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이시다.
여기서 성령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켜져 있는 일곱 등불로 묘사된 것은 구약시대 당시의 성막과 성전 안의 광경을 연상시켜 준다. 왜냐하면 성전안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인 법궤가 놓여 있었으며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 왼쪽에는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등대가 놓여 있어 불을 밝혔기 때문이다(출25:1-40). 이처럼 등대는 항상 불을 밝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밝혀 주었듯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전면을 환히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곱 영이신 성령은 일곱 등불로, 일곱 영이요, 일곱 눈이다.
일곱 영이신 성령이 형체로서는 일곱 형체로 나타난다.
1. 불 같은 성령 (마3:11) (행2:3)
2. 바람 같은 성령 (행2:2)
3. 비둘기 같은 성령 (눅3:22) (마3:13)
4. 생수 같은 성령 (요7:38-39) (요4:14)
5. 기름 같은 성령 (행10:38) (요일2:27)
6. 도장 같은 성령 (엡4:30) (고후1:22)
7. 검 같은 성령 (엡6:17) (히4:12)
눅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일곱 영이신 성령이 사역으로서는 일곱 사역으로 나타난다
1. 세례의 성령 (막1:8) (눅3:16) (요1:33)
2. 인도의 성령 (갈5:18) (마4:1)
3. 위로의 성령 (행9:31) (고후1:3) (고후7:6) (살후2:16)
4. 은혜의 성령 (히10:29)
5. 능력의 성령 (롬15:13,18)
6. 약속의 성령 (엡1:13)
7. 진리의 성령 (요15:26) (요16:13) (요일5:7)
일곱 영이신 성령은 9가지 열매가 있는데, 그 열매가 성품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성령의 열매인 성품 변화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의 마음을 본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 성령의 내재(임재) (잎) (싹)
2) 성령의 충만(은사 나타남) (꽃) (이삭)
3) 성령의 소욕(인도, 지배) (열매) (곡식)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유리 바다
1)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 유리 바다는 물질계와 영계를 나누는 경계로서 물질계에서는 우주 끝의 물벽이고, 영계에서는 유리 바다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다는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리 바다 위에 천사들이 서 있는 상황을 말해 주고 있고, 물질계인 흑암에 갇힌 사단(마귀)을 영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놓는 방법으로 영원한 결박으로 결박한 것이다.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단 11:45 그가 장막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유리 바다가 하나님 보좌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은 부정한 것이 도무지 접근하지 못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의미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 한편 이와 같은 바다는 과거 구약시대에 솔로몬 성전 안에 놓여 있었던 놋 바다를 연상시켜 준다(왕상7:23-26). 그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을 성결케 하는 데 사용되는 물을 담아두던 용기이다.
2)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 보좌를 말할 때 구체적으로 보좌 중앙과 우편과 앞을 말한다. 보좌 중앙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보좌 우편에 어린 양 예수가 계시고, 보좌 앞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이 계신 곳을 말한다. 그리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라는 말은 보좌 가까이에 네 생물이 둘러서 있는 상황을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본다.
3) 네 생물 - 초대교회 이래 근세기까지에는 네 생물을 4복음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근대 이후에는 네 생물을 살아있는 생명체 또는 존재로 보고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인정을 받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하여 하나님의 수종자인 네 생물이 있고 그 주위에 24장로들이 앉아 모두들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은 온 천하 만물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지극한 영광을 잘 묘사해 준다.
겔 10: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4)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 이 내용은 에스겔 1장 18절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다. 여기서 눈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네 생물이 예리한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보좌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계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계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네 생물
1) 위치 -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보좌 제일 가까이에 있다는 표현으로 본다.
2) 사역 - 1)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
2) 밤낮 쉬지 않고 일함-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함.
3)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림.
3) 모습 - 1) 사자 2) 송아지 3) 사람 4) 독수리
에스겔 1장10절에 나오는 그룹은 한 그룹 안에 사람, 사자, 송아지, 독수리가 네 얼굴을 다 지니고 있는데 반해서 본 절의 네 생물은 각각 단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편 여기서 사자는 짐승의 왕으로 왕권과 용맹을 나타내고 있고, 송아지는 온순한 동물(가축)의 대표로 희생과 힘을 나타낸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혜를, 독수리는 새들의 왕으로 높음과 빠름을 각각 상징한다.
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4) 소유 -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날개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함.
이사야 6장 2절에 나오는 그룹들도 각기 여섯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섯 날개 중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았다. 여기서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두려움과 겸손을 나타내며, 발을 가렸다는 것은 순종 또는 존귀를 나타낸다. 그리고 날았다는 것은 쉬지 않는 활동을 말하며, 날개에 눈이 가득했다는 것은 완전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5)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 네 생물의 존재 의미가 오직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집중해 있음을 나타내 주는 구절이다.
6)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한 것은 최상급의 찬미를 의미한다. 유대인의 사고에 의하면 두 번 반복하면 강조를, 세 번 반복하면 최상급을 뜻하였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거룩성을 찬미하는 것이다.
7) 전능하신 이 - 전능하신 이는 헬라어 ‘판토크라토르’로서 만물의 통치자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참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8) 영광과 존귀와 감사 - 영광과 존귀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편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영광되며 존귀한 분이시다. 또 천하 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앞에서 영광되고 존귀한 분이시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 피조물들을 섭리하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다.
계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십사 장로
1) 행위 - (1)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2)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짐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최고의 상급도 포기하고 돌려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행위이다.
2) 찬양 - (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2)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함.
3) 보좌에 앉으신 이 - 보좌는 아버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후 보좌에서 일어나시거나 떠나신 적이 없음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보좌 우편에서 일어서기도 하고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시기도 하셨지만 아버지는 보좌에 앉으신 이후 보좌를 떠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통치하신다.
행 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4) 엎드려 경배 - 다른 사람 앞에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최대의 복종과 존경심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5)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 이것은 고대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굴복당했을 때 완전한 항복과 복종의 표시로써 자신의 왕관을 벗어 승자의 발 앞에 던지던 관습을 배경삼고 있는 장면이다. 왕중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쓴 면류관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일지라도 초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찬양하며, 그를 경배하는 인간이 자신의 면류관을 그분 앞에 벗어 드리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6) 우리 주 하나님이여 - ‘주’란 소유권자를 의미한다. 이십사 장로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분을 찬미하고 있다. 오직 영원한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만유의 주인이 되시며 또한 자신들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7) 영광과 존귀와 능력 - 네 생물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고, 24장로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으로 찬양을 돌리고 있다. 24장로가 능력을 찬양함에는 하나님의 창조행위 자체가 그 분의 권능을 드러낸 것이므로 그 능력을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8) 만물을 지으신지라 -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계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지칭하며 그것들은 하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은 찬미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9) 주의 뜻대로 있었고 - 하나님의 뜻이 없었으면 만물이 창조될 리 없었으므로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뜻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게 창조되었으므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10)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 하나님은 창조의 능동자이시며 만물은 창조의 피동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그 피동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24장로의 찬양
1.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찬양(계 4:11)
2.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찬양(계 5:9)
3. 하나님의 심판사역을 찬양(계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