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들이 즐겨들고 다니는 여행가방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소나이트’(Samsonite)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유대인 청년 제스 스웨이더(Jess Shwader)입니다. 이 사람은 14살 소년시절에 여행자들이 쉽게 찢어지고 망가지는 여행용가방 때문에 불편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여행용 가방을 만들어볼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노력 끝에 당시 가장 튼튼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게 됐습니다. 놀랍게도 이 제품이 대박이 났고, 소문이 퍼져서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이 가방을 사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이 소년은 가방의 이름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성경의 인물 가운데 삼손이 떠올랐습니다. 천하무적 삼손이라는 이름이 가장 튼튼한 가방의 이미지와 맞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삼소나이트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삼손처럼 강하고 튼튼한 가방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속의 인물 삼손은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천하무적이었습니다. 사자를 맨손으로 죽였습니다. 나귀턱뼈로 천명의 적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다곤 신전기둥을 쓰러뜨려 블레셋 사람 삼천 명을 죽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힘에 관한한 그 누구와 비교할 수없는 강한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삼손은 영적으로 볼 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겉사람은 천하무적일지 모르나 속사람은 연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삼손은 명색이 사사였습니다. 적인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일을 해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이라고는 이방여인인 블레셋 여인을 따라다니는 일입니다. 그리고 블레셋과의 전쟁도 자기 개인적 복수 때문에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사명을 위해 쓰지 않고, 사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에 써버렸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사였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란 듯이 어겼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블레셋 여인과 결혼했고, 나실인이면서 술을 즐겼고, 부정한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습니다. 한 마디로 사사였던 그는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렇게 영적으로 연약한 사사 이야기가 사사기 13장에서 16장까지 가장 길게 기록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강하고 위대한 사사들 이야기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길게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사사로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사사로서 자랑스러운 이야기들보다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한마디로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만 의지할 때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삼손이 자기 힘만 의지하고 싸울 때, 잠시 승리했지만 결국은 블레셋에 포로로 끌려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눈이 뽑힌 후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게 될 때,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만 의지하고 싸울 때와 비교할 수없는 큰 승리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손 이야기는 우리가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교훈해 줍니다.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
삼손이 영적으로 약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그가 살았던 환경입니다. 삿 13:2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라 땅에 단지파의 가족 중에.” 삼손이 단지파 사람이고, 태어나 살던 곳이 소라라는 마을이라는 말입니다. 우선 단지파가 차지한 땅은 이스라엘의 가장 남쪽 끝이었습니다. 이 땅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인 유다지파와 당시 이방의 중심인 블레셋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라마을은 쉐펠라(Shephelah) 지역에 있었습니다. 쉐펠라라는 지형은 산악지역과 평야 지대 사이에 있는 구릉지대를 말합니다. 마치 제주도의 중산간지역과 같은 곳을 말합니다. 당시 산악지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었고, 평야지역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삼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을과 블레셋 사람들의 마을 사이에서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서도 블레셋의 이방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이중적 삶을 살 환경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갈등과 방황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사면서도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사사의 사명도 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연약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배웁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배웁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성결한 삶을 살도록 훈련받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타락하고 음란한 풍조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자녀들이 삼손처럼 영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통계를 보면 종교가 기독교라고 밝힌 청소년이 20.3%나 됐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의 통계를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한 청소년이 3%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이 두 통계의 차이가 무려 17%나 됩니다. 바로 이 17%의 청소년들이 이중적 상황 속에서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청소년뿐이겠습니까? 성인들도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중적 삶을 살다가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이 바로 현대판 삼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삼손 이야기 속에서 삼손이 이렇게 경계를 넘나들며 저지른 영적인 문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삿 3:5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리고 1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삼손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아이를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실인으로서 세 가지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이고, 둘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고 셋은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 이야기 전체를 읽어보면, 결국 삼손은 이 세 가지를 다 어기고 말았습니다. 우선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서 삭도로 머리털이 잘리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포도주 생산지 딤나로 가서 잔치를 열며 포도주를 즐기게 됐습니다. 그리고 딤나로 가는 도중 부정한 사자의 사체에 있던 꿀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실인의 명을 다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은 영적 지도자인 사사면서도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땅과 이방 땅을 넘나들며 살면서 영적으로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영적으로 연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참 많은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말씀을 몰라서 어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또 어떤 때는 말씀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교회와 세상을 넘나들며 사는 동안 영적으로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도들이 영적으로 연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삼손이 사사로서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성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삿 14:1을 보면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삿 14:3을 보면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삼손이 딤나의 블레셋 여인에게 반해서 나실인이면서도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삿 16:1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가니.” 그리고 삿 16:4을 보면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리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삼손이 이번에는 가사에 있는 기생과 어울리고, 그리고 소렉의 들릴라라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삼손이 성적유혹에 넘어져버린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인 사사 삼손이 성적유혹에 넘어져 이방여인을 사랑하고 그 여인들의 치마폭에 묻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연약한 하나님의 사람의 비참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미투’(#MeToo)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 할 수 있고, 너무 늦게 터진 것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사람들, 각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 성적유혹에 넘어져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넘어진 것일까요? 바로 연약해서 성적유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적유혹이 일어나도 힘이 없거나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서 성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공해서 힘을 가지게 됐습니다. 음란한 환경도 마련됐습니다. 그런 중에 성적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일들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힘 있는 사람들이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란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건하여 성적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모습
우리가 살피고 있는 이 삼손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명확하게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안을 열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내하시는 하나님
삼손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삼손의 잘못은 긴 세월 반복해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사사로 지내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잘못을 이어왔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죄질이 점점 더 나빠져 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제일 먼저 나실인의 약속을 어긴 것은 부정한 것을 먹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자의 사체에 꿀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고 먹었습니다. 분명히 사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것이고, 그것을 먹는 것은 더욱 부정한 것입니다. 처음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뒤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잘못을 자기 부모에게도 숨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범했음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딤나의 여인 집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친구하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나실인 서약 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포도나무 소산을 먹었고, 또 포도주도 마셨습니다. 나실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런데도 겉으로 볼 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 여인이 힘이 머리털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고 삼손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었습니다. 삼손이 깨어난 뒤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신 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인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삼손의 죄를 보고 계시면서도 참아주셨습니다. 행여나 깨닫고 돌아올세라 기다려주셨습니다. 마지막 세 가지 나실인의 서약을 다 어길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아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당장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죄가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르셔서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참아주고 계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큰 심판이 다가오기 전에 빨리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힘을 잃은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저들은 힘도 없는 삼손의 눈을 빼버렸습니다. 이제 삼손은 블레셋 여인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눈이 그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했지만, 이제 죄의 길로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게 철저하게 삼손을 변화시켜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셔서 힘을 잃어버린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한낱 노리갯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들은 옥에 갇힌 삼손을 끌어내서 재주를 부리게 하면서 그동안의 한풀이를 했습니다. 삼손은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삼손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삿 16:2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삼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까지 그가 발휘했던 힘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곤 신전이 무너뜨리게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삼손을 조롱하던 3천 명 가량의 블레셋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CCM곡 가운데 ‘약할 때 강함 되시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은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이라는 분이 자신의 신앙간증을 담아 만든 곡입니다. 원래 이분은 동성애에 빠져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던 분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까지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집회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다 회심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회개하고 참된 평안을 얻은 뒤,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동성애의 늪을 빠져나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이 곡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 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원 가사는 이렇습니다. “You are my strength when I am weak.”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나의 능력이십니다.” 이 가사는 고후 12:10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는 말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강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삼손처럼 강한척해 보지만 사실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삼손이 늦게라도 이점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했던 것처럼 연약함을 깨닫고 주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