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12월 15일 발표할 '손양원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 논문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손양원 기념비가 궁금했다. 2015년 중동고 크리스찬 동문들이 손양원 선배의 뜻을 기리며 세운 것이다.
마음의 거리가 먼 탓인지 기념비가 서 있는 경남 함안군 칠원읍에 위치해 있는 손 목사님 생가 및 기념관을 찾은지가 꽤 되었다. 기독 동문들이 십시일반 경비를 마련해서 세운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했다.
지금 함안의 손양원기념관은 손 목사님의 양아들 안재선 아들 안경선 목사가 관장 일을 보며 섬기고 있다. 그는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정성껏 안내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공부도 전문가 수준이다.
전화를 넣어 느닷없이 물었다.
"손양원 기념비 잘 있습니까?"
우문(愚問)에 현답(賢答)라고나 할까. 그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기념비가 어디 달아났을려구요!"
나는 기념관을 자주 찾지 않은 것을 미안해 했고, 안 목사는 도리어 나를 찾지 못한 것을 미안해 했다. 출판할 계획으로 최소 부수를 찍은 박사 논문을 기념관을 관리하는 그에게는 다행히 한 부를 보냈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한 가지 덧붙여 물어 보았다. 안 목사의 부친 안재선이 손양원 목사님 양아들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호적에도 올라갔는지 여부... . 지금까지 내가 파악하기로는 호적에는 올라가 있지 않았다.
안 관장의 얘기는 좀 길었다. 호적에 올리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버지는 성까자 손씨로 바꿔 손 목사님 양자로 호적에 올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안재선 부친)가 극구 반대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말 끝에 그는 내겐 금시초문인 얘기를 덧붙여 들려 주었다.
"이 목사님도 중동기독신우회 멤버시니까 이것 좀 알아봐 주세요. 아버지(안재선)가 중동고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소개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순 사건 이후일 테니 1949년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중동고 축구부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분명히 보았거든요. 아마 축구부에서 활동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사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안재선이 손 목사님의 양 아들이 되고 나서 부산에 소재하는 고려고등성경학원에 입학해 공부한 적이 있다. 안 목사는 그 전이 아니겠느냐면서 1949년 대 중동고 학적부를 들쳐본다면 혹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양아들 안재선(동인 동신을 죽이는 데 가담한 자)도 중동 동문이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동고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봐야겠다. 6.25 전쟁의 와중에 학적 관계 서류가 멸실(滅失)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혹시 모르지 않겠는가.
오늘(12월 9일) 함안 손양원기념관 안경선 관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의외의 정보를 입수한 셈이다. 연구자에겐 사소한 말도 한 인물 또는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좋은 논거가 될 수 있다. 안재선의 중동고 수학도 사실 여부를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그런 논거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