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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제 2 장 에 덴.
(대 지)
一. 제 칠 일 안식일(1-3)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三. 에덴 동산 창설(8-15)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五. 여자 장조(18-25)
(본문 강해)
一. 제 칠 일 안식일(1-3)
.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1장에서는 천지와 만물 창조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했고, 본 장에서는 그 창조의 내용을 다시 약술하며, 안식일과 에덴동산 창설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고, 그 날을 사람에게 안식일로 정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요,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이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신의 안식과 영적 안식을 주신 날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안식일에 육신의 모든 일을 쉬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날에 세상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는 큰 죄가 된다.
십계명 중 제 사 계명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인데, 이 사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중심 계명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 복된 날이요, 또 하나님과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영적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날에 받은 은혜와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믿음으로 살아나가야 한다. 성도가 안식일에 영적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영의 양식 )을 받아먹는 것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공급받는 것과 같다. 구약 시대에 제 칠 일(토요일)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는 이레 중 첫 날(주일)로 바뀌었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고, 히브리서 4:7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다. 안식일을 주일날로 정한 이유는 이 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여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셨고, 성부께서 주일날에 계시의 말씀을 주셨고(계 1:10),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3),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이 주일을 지켰기 때문이다(행 20:7; 고전 16:2). 이사야 58:13-14에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젓과 해야 될 것을 말씀하셨다. ※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될 것은
① 자기 발을 금하고, 자기 길로 행치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일을 하거나 사사로운 일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②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한다.
③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 문제라도 신앙에 관계되는 것을 의논하는 것은 괜찮다.
※ 안식일에 해야 될 것은
① 안식일을 즐거워해야 된다. 즐거운 안식일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말씀에서 새 생명을 얻어 성도의 영이 소생하므로 참으로 즐거운 세계에서 살게 된다.
②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안식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고 여호와의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또, 하나님을 만나고 영의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날이다. 성도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고, 야곱의 업(業)으로 그 사람을 기른다고 하였다(사58:14).
二. 천지와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4-7)
. 2:4-6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천지 창조에 대하여 1장에서 상술(詳述)했으므로, 본 장에서는 그 창조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다시 한번 약술(略述)하며, 보충 설명을 하고 에덴동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흙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신은 흙으로 말미암았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전 3:20). 그러나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1:27)된 영적 존재이므로 영존한다. 사람이 죽으면 구속받은 성도는 그 영이 하늘 나라로 가고(전 3:21), 죄인들은 그 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서 영벌을 받는다(마 25:46).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이것은 사람의 영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불어넣어서 영적 생명을 살려 놓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20:22에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호흡이 성령이 아니고, 예수께서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 자신과 성도들을 연결시켜서 영적 생명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45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도 예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성도를 연결시켜 영을 살려 주어 산 영(중생)이 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여기 불어넣은 것이 영혼이라고 하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속에서 나온 것이 되므로 유출설(流出說)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속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여기 불어넣은 생기는 진리와 영감으로 해석해야 옳다.
생령의 히브리원어 (네페쉬카야)는 "생명 있는 자" 라는 뜻인데 이 말이 짐승과 육축에게도 사용되었다(1:24). 이 말을 영이라고 하면, 짐승들도 영이 있다고 해야 되고 짐승이 죽게 되면 영도 죽는다고 해야 된다. : 그러므로 이 생령은 단지 생명 있는 자로만 보아야 된다. 사람이 진리와 영감을 받았으므로 생명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짐승들은 육체의 생명이 있는 자라는 뜻이고, 사람에게는 영적 생명이 있는 자(생기를 불어넣었으므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의 생명(생령)이나 짐승의 생명(생령)이 히브리 원어로 볼 때 같은 말이므로( 네페쉬카야 ) 짐승의 생명이 죽을 때에 없어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 영도 역시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악독한 이단설이다. 짐승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육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영이 산 것을 말한다.
三. 에덴 동산 창설(8-15)
.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동산의 히브리원어 (깐)는 정원, 큰 과수원, 낙원을 가리킨다. 이 에덴 동산은 창조 당시의 낙원이요 죄와 사망이 없는 곳이었다. 그 에덴동산은 이 지구상에 있었는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동산을 상실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다만 성도들의 영적인 에덴 동산(낙원)이 있을 뿐이다. 영적 에덴 동산(낙원)이란 성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말씀이 이루어져 나가며,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그 세계가 에덴 동산이다.
.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는 세 가지 나무가 있었는데
첫째,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주어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먹을 수 있게 하셨다. 그 나무는 영적 생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무였다. 그것은 일반 은총(자연은총)의 상징으로서 실제 있었던 과수(果樹)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것이라고 해도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먹을 것 풍성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섭취하면 잘못된다. 모든 것을 분수에 맞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자연 은총을 많이 주셨으나 그것들을 욕심으로 지나치게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한 분량만큼 적당하게 취하고 믿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생명나무가 있었다. 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실지로 있었던 나무였다. 그런데, 아담이 이 생명나무 따먹기 전에 범죄 하였으므로 에덴 동산에서 축출 당하고 말았다(3:23).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영원한 생명이시다(요일 1: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받는다(요 11:28).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는다(요 6:54, 55). 그러므로 믿는 자는 생명나무에 접붙인 자들이다. 성도들 그 생명나무의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어야 된다.
셋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고 금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 하나님의 금단(禁斷)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내신 목적은 ① 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② 이 동산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사는 동산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③ 다른 나무들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고, ④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늘 기억시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상 네 가지가 선악과를 내신 목적인 동시에 십일조의 근원이 된다(14:20 참조). 그러므로 선악과는 사람에게 복 주려고 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 명령을 거역하면 죽는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취하지 말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성도들은 잘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사람이 하면 범죄하는 것이니 그 때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게 되고 영적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삼가 조심하여 계명을 잘 지켜야 된다. 그리고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하고 발견하여, 그 생명에 참여하여 영이 날마다 창성해 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 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강의 근원은 에덴 동산이며, 강물이 흘러 에덴 동산을 다 적시고, 동산 밖 사방으로 흘러가서 온 땅을 소성(蘇醒)시켰다. 강 생명의 역사의 상징으로 실제 있었던 강이다. 신령한 뜻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이 생명강은 에덴에서부터 발원(發源)하여 네 강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나갔는데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에덴 동산) 곳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흘러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을 가리킨다. 이 강물은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을 한다.
.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이다. 비손은 "창일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심령에 낙원(에덴)을 소유한 성도는 그 생명의 역사가 창일하게(넘치게) 흘러 나갈 것을 가리킨다. 그 생명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강을 막으면 넘치고, 또 막으면 또 넘쳐서 생명의 역사가 힘있게 계속 흘러 나간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으려 했으나 결국 막지 못하였고, 그밖에 여러 세상 나라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 나간다. 이 생명의 역사는 전진하고 또 전진하며, 이기고 또 이기게 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여야 생명의 역사가 항상 있고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 나가 많은 사람을 살려 나갈 수가 있다. "하윌라"는 "모래 땅", "모래언덕"이란 뜻이 있다.
. 2: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의 뜻은 "진주"이다. 호마노는 보석의 일종이다. 비손강이 흘러 나가는 곳은 금도 있고 진주도 있고 보석(호마노)도 있다. 영적 낙원(에덴)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신령한 복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 학개 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했다. 성도 속에서 생명의 강이 창일하게 흘러 내려가면 금은과 보석같이 귀한 것을 하나님이 다 주신다.
.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다. 기혼은 "유출(流出)", 즉 "흘러나간다"는 뜻이다. 성도의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밖으로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요 7:38, 4:14).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드시 흘러 나가게 되어 있다. 흐르고 흘러서 먼데까지 퍼져 나가게 되어 있다.
.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다. 힛데겔은 "급류(急流)"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는 급히 흘러나간다. 그 생명수가 계속해서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급히 흘러나가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이다. 유브라데는 "감미(甘味)"라는 뜻이다. 성도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는 단맛이 있으며 꿀과 꿀 송이보다 더 달다(시 19:10). 사람들이 이 생명 강수의 맛을 보면 너무 달고 너무 좋아서 생명 강을 떠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히 나눠주려고 한다. 낙원에서 흐르는 생명의 역사는 달고 급하고 창일하게 흘러 나가서 만민을 소성케 한다. 이 물이 적시는 곳은 모두 에덴 동산이 되어 낙원이 점점 확장되어 나간다.
.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이것은 성도가 영적 낙원 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잘 다스리며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에덴 동산이라도 다스리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고 마귀에게 빼앗긴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법은 ① 사람과 만물을 자기 위치에 있게 해야 한다. 제 위치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②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대로 실현되어 나가는 곳이다. ④ 자기직분과 자기의 책임을 감당해 나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각기 자기의 사명과 직책을 다해 나가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을 다스리는데 사람을 시켜서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만물에게 미치도록 해야 한다.
또 에덴 동산을 지키는 방법은 ① 성도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② 마음을 잘 지켜야 된다. 마음이 하나님의 인도만 받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야한다. 잠언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생명의 근원이 된다. 마음을 붙들어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이 에덴 동산을 지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방심 부주의 할 때 마귀가 미혹했다. ③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만 위하여야 한다. 하나님 이외(以外)에 다른 것이 주인이 되거나 다른 것을 위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리게 된다. ④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말씀에 위반되는. 세력이나 행동을 배격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도가 에덴 동산을 잘 다스리고 잘 지켜 나가야 낙원이 계속 유지되고 거기서 생명 강수가 사방으로 흘러 나가 만민과 만물을 소성 시켜 나가게 된다.
四. 각종 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
.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도록 허락하셨다. 이 실과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실과이다(9절). 이것은 자연 은총을 가리키는데 그것들을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각자의 분량대로 적당하게 먹어야 된다. 또 생명나무의 실과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케 하여 영생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기 전에 범죄하여 쫓겨났다.
.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지로 있었던 나무인데 그 당시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요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범하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하신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 즉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하신 명령을 범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기독 신자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면 생명의 역사가 죽어 흑암을 만나고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된다.
五. 여자 창조(18-25)
.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간의 교제도 즐거운 것이요 큰 위로가 된다. 시편16:3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다(빌2:1-3 참조). 그러므로 사람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물론 신앙적인 일을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빌2:22; 4:3; 몬1:13 참조).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돕는 위치를 지켜서 돕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마음 구조를 돕는 일 하기에 알맞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남자를 앞세우고 자기는 돕는 일을 하여야만 모든 일이 잘된다.
그러나 여자가 주장을 하면 거꾸로 되어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성경 말씀은 또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도와 나가야 자기도 잘 되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의미도 있다.
. 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신령한 지혜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지혜로써 각 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그 상태대로 적합하게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아담은 히브리 원어로 (아담)이며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담이나 사람이나 원어 상으로는 같은 말이다. 아담이 각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에는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지어 준 것이 아니고 각 생물들의 모양과 성격 상태를 따라 그것들에게 알맞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에 그 사람들의 모든 상태 곧 신앙·성품·인격을 따라서 시몬에게는 "베드로"라고 했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다. 신령한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신앙상태나 인격을 따라 거기에 합당하게 알아주시고 취급해 주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이요 또 성도가 사람들과 만물을 바로 알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이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깊이 잠들게 하시니 보통 잠이 아니고 깊은 잠을 가리키는데 수술할 때에 마취시킨 것과 비슷한 잠이었다.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① 여자를 남자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보필하게 하기 위함이요, ② 부부가 한 몸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요, ③ 부부를 동등으로 하기 위함이다. 만일 팔이나 다리뼈로 지었으면 동등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④ 여자를 벼 중의 뼈로, 살 중의 살로 여겨 사랑하라는 것이요(엡 5:25 참조), ⑤ 여자는 남자를 순종하며 경외하라는 것이다(엡 5:33), 여자라 칭하리라 여자의 히브리 원어 (잇샤)는 그 어원 이 남자에게서 나온 말인데 남자와 상대되는 여성을 가리킨다.
.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는 육신의 부모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어준 짝과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몸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마음도 하나가 되어야 된다.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빌립보서 2:5-8에 있다. 또 영의 일치가 되어야 한다. 영의 일치는 부부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같이 기도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상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야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일치가 되어야 한다.
.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고 하나님만 위해서 살며 다른 사람이나 자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충만히 임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운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이 참으로 에덴 동산 생활이요 복된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