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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게임-2부 백악기 탈출기
탈취
외계인의 비행장은 비행선이 수직이착륙할 수 있어서 위에서 보면 문이 있는 격자 모양같았다. 아마도 좁은 공간에 많은 수의 비행선을 배치하느라 이런 구조가 된 듯싶었다. 이안과 저항군이 외계병력과 교전을 하는 틈을 타 철준과 일행은 비행선을 탈취하기 위해 외계의 비행장에 숨어들었다. 철준 가족과 같은 팀이 된 최영훈 병장 이하 부대원들은 박솔이 정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이 어떻게 될지 몰라 가슴 졸였던 철준과 혜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진땀을 흘렸다.
“가족끼리 떨어질 수 없어 함께 지원했지만 잘못한 일인 것 같아.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는데···.”
철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저희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외계인들도 이곳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 전투가 벌어진다면 저희가 나설거예요. 한사람이라도 필요한 시국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겁니다.”
영훈이 철준가족을 달래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비행장 이곳저곳을 아이들이 누비고 다니며 정찰하고, 어른들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어른들이 즉각 로봇을 끌어들여 제거한다. 몇몇은 발각되어 외계 로봇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몸이 작고 날랜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보다는 행동이 재빨랐다. 어느새 어른들이 로봇을 제압하고 속속 비행선을 차지한다.
“아빠! 저쪽에 로봇이 한 대 더 있어요”
솔은 숨이 턱에까지 올라찼지만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외계로봇을 처리할 수 있다니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잘했다. 녀석.”
철준이 안도하며 솔을 보고 말한다.
“그럼 저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최영훈 병장이 말했다.
“조심하시오”
코너에서 돌을 던지자 외계 로봇이 반응하여 움직이고, 최영훈 병장 이하 그의 부대원들은 K2소총을 들고 코너로 돌아서는 외계 로봇을 개머리판으로 세게 내려친다.
"퍽"
부딪치는 소리가 가슴을 내려앉게 만든다. 꽤 소리가 큰 모양인데 다른 로봇이 달려들까 봐 걱정되었다.
[들키면 안 되는데···.]
"다행이다."
전전긍긍했던 다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외계 로봇을 모두 다 처리하자 한쪽에서 신호가 내려지고 두 대의 비행선을 제외한 나머지에 어른들이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선들이 폭발하지만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나머지 인원들은 도로 철수하고 철준 가족과 최영훈 병장, 그리고 그의 부대원들은 남아 비행선에 올라탄다. 다른 쪽 비행선에도 그만한 인원이 탑승했다. 어느 정도가 비행에 필요한 인원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비행선당 일곱 명 정도를 배치했다. 물론 로봇이 돕는다면야 혼자서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다만 외계인의 말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비행선을 조사했던 김수진 씨가 양쪽에 의사를 전하고 있어 완전히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듯싶었다.
“병장님, 병력이 이제 퇴각한답니다. 외계 로봇들이 곧장 이곳으로 몰려들 텐데, 어떻게 합니까?”
까까머리 정호가 말했다. 그는 갓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으로, 전형적인 미남이었다.
“우리도 수류탄 던져 넣고 도망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체구가 크고 먹성이 좋은 현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는 일병으로 세 명 다 휴가를 받아 집으로 향하던 중, 외계인의 침공을 받았다. 그래서 부대원 중 세명만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안돼! 그러면 더는 인류에게 기회란 없어, 빨리 알아낸 대로 눌러봐. 죽기 뿐이 더하겠어.”
저항군의 총소리가 멀어지고 외계 로봇들이 다가온다.
“이거 아닐까? 수진씨가 이야기 한게. 계기판 가까이 있을 거야.”
다급한 철준이 운전석 가까이 붙어있는 버튼을 하나 눌러본다. 그러자 비행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빠, 이거 자동인 거 같아요, 수진 누나가 어떻게 움직이라고 말 안 해줬어요?”
솔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움직인다면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바라보던 최영훈 병장이 다른 버튼을 누르기를 만류한다.
“솔이 아빠! 그냥 놔둬요.”
혜정도 다급히 소리친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죠? 아빠?”
다희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 말과 동시에 비행선은 이륙하고 갑자기 공중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비행선은 설정된 좌표로 이동했다. 탑승한 사람들의 눈에 지구의 둥근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차 처음 보는 대륙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에서 보던 것과는 상이한 형태의 숲과 지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 밀림이라도 들어왔나 봐.”
처음 보는 생태에 솔이 혀를 내두른다.
“저건 뭐죠, 뭔가 큰 게 움직이는데요.”
다희가 가장 먼저 움직이는 형태를 짚어낸다.
“어! 저건 티타노사우르스인데, 여긴 어디지?”
공룡에 박식한 솔이 무심결에 공룡 이름을 말했다.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솔의 말대로 거대한 공룡이 눈에 보였다. 비행선은 점점 숲의 가장자리로 내려앉았다.
“조심해 부딪히겠어!”
철준이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쾅!”
백악기속으로
숲의 가장자리라 나무가 별로 없는 곳에 내려앉았지만, 보다 작은 나무들이 있었고 나무 줄기가 부드럽지 않았다면 모두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큰 충격을 받았다. 시간 이동으로 날아온 때보다 더한 충격이 있었다. 나무는 부러졌고 그 위로 비스듬하게 비행선이 걸쳐져 있었다. 비행선이 수직 이착륙을 하는 바람에 차라리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철준이 잘못 누른 키 때문에 원래의 장소와는 조금 어긋난 곳에 떨어진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설정된 지역이 평탄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거슬러온 것 치고는 체감상 짧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뭐야, 여긴 어디야?”
뚱뚱한 현준이 바닥을 뒹굴다가 일어나 소리쳤다.
“우리 쥐라기 시대에 온 것 아니야?”
영훈이 끔찍하다는 둣 몸을 떨고 말하자.
“쥐라기가 아니라 백악기라고요. 티타노사우르스는 백악기 말에 살았던 공룡이예요.”
솔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자신에 차서 말한다.
“그럼 영화 쥬라기 공원은?”
말끔한 까까머리 귀공자 스타일의 정호가 그럴 리 없다고 말한다.
“거짓말이죠, 백악기 때가 공룡이 더 많았다고요.”
“어쨌거나 큰일이다. 이젠 어떻게 한다냐.”
철준은 근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처음 계획은 아군의 비행장에 착륙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함께 미래로 향할 계획이었다.
“다시 돌아가야죠.”
영훈은 좀 전에 누른 버튼을 다시 누르기를 바랬다.
“여기서 할 일은 없잖아요.”
현준도 조심스레 말을 던진다.
“그래도 여기에 외계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철준이 외계인이 이곳에 남았다면 처리하고 가야 변수가 없어질 거라며 망설였다.
“저희가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모르죠.”
언제나 가족 걱정이던 혜정이 불안하다는 듯 말한다.
“그래 돌아가자. 비행선을 잘 살펴보도록 해. 설명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철준이 이미 무리의 선장이 된 듯 보였다.
“밖에 나가 좀만 보고 오면 안 될까요?”
호기심이 많은 솔이 공룡을 보자마자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아쉬운듯 말한다.
“안돼!”
솔의 요구에 혜정이 단호히 거절한다.
모두 비행선 안을 두리번거리며 운행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거나 직접 돌아다니며 조종석을 제외한 모든 버튼을 찾아서 눌러본다. 비행 좌석 옆 손잡이 부분에 틈이 있음을 발견하고 눌러보니 '딸깍' 열리며 그 안에 외계어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설명서와 여러 잡동사니 물건들이 보였다. 설명서를 꺼내어 들고 그 안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한 장, 한 장 살펴본다.
“아빠! 이건 무슨 창고 버튼 같은데요? 한번 눌러볼까요.”
눈썰미가 좋은 다희가 먼저 그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심사숙고하다가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출입구 옆의 문이 활짝 열리며 그 안에서 외계인의 무기가 나타났다. 무기는 벽에 끼워 고정하는 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저희 횡재했는데요. 이러면 무기는 충분할 것 같아요, 문제는 여기서 빨리 탈출하는 겁니다.”
영훈이 그 와중에 기뻐하며 말한다. 모두 다가가 무기를 만져보며 신기해한다.
“여기 좀 봐봐요. 이게 에너지창 같은데요.”
다희와 혜정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다가 혜정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무기에 신경이 가 있던 사람들이 다시 설명서에 주목한다.
“에너지가 비었어. 저희 여기서 탈출하지 못하나 봐요.”
혜정이 울상을 짓는다.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다들 다른 곳도 좀 찾아봐.”
철준이 사람들을 다그친다. 서둘러 사람들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창고에서 음식 캡슐을 발견한다.
“이건 먹을 건가?”
먹성 좋은 현준이 먹거리를 찾았다고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현준이 캡슐을 들고 흔들거렸다. 그러나 뒷면에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어 깜짝 놀라 꺼냈던 곳에 다시 던져버렸다.
“이거 인육으로 만든 음료수야! 식수 이외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나 봐.”
다시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희가 설명서를 들고 우측 좌석 근처의 버튼을 누르자 비행선 홀 중앙의 틈이 벌어지며 연료인 에너지 막대(그들은 에너지원이라 부른다)가 꽂혀있는 공간이 나왔다. 그 막대가 연료인 것은 그들 모두 한눈에 알아보았다. 파란 게이지가 가장 낮은데 위치했다.
“다들 이렇게 생긴 것 좀 있나 찾아봐.”
“예, 병장님.”
그러나 다른 에너지원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길”
모두 영훈이 말한 것처럼 속으로 부르짖었다. 현재에 무언가 놔두고 온 것도 아닌데 돌아가지 못한다니 야단이났다.
“먹을 것도 없고 결국 밖으로 나가야 하나.”
철준이 나갈 것을 망설이자.
“밖에는 숨을 쉴 순 있나요?”
혜정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었다. 현대의 대기와 백악기의 대기가 다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있을지에 대한 확답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너무 적었다. 학창시절때 배윘던 기억을 끌어올렸지만 대륙이 이동했다는 것과 판게아에서 대륙이 분리되었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해 냈을 뿐이었다. 그 시절 대기가 어떠했는지 어떤 식물이 살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현생대를 나누는 기준이 어떠한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가능은 할 것 같아. 아빠. 백악기 산소농도가 지금보다 약간 적은 거로 알고 있어. 아니면 불이 잘 붙질 않는데요.”
“그래도 다른 유해 가스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다희가 솔이 못 미더운지 딴지를 걸었다.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 봐야지. 영훈 씨 문을 한번 열어보세요.”
철준이 용기를 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굶어 죽을 순 없었다.
“예”
곧 문이 열리고 더운 열기가 확 끼쳐 들어왔다. 숨쉬기가 약간 힘들어졌다. 고산지역에서 느낄 만한 산소 농도였다. 하지만 대기가 맑고 깨끗하여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괜찮네요.”
다희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약간 답답하다는 듯이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비행선이 기울어 있어서 밖으로 나갈 땐 약간 힘이 들었다.
“우선 먹을 걸 좀 찾아보자고.”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다희의 손을 잡아 밖으로 끌어내면서 영훈이 말했다.
“무기는 가지고 나왔나? 외계인 무기도 한번 사용해 봐야지.”
“예, 안 그래도 저희가 시험해 보려고 몇 정 들고 나왔습니다.”
정호가 무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큰 나무가 전방에 펼쳐져 있고, 주위는 작은 나무들로 이뤄져 있는데, 모두 연한 줄기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깊숙한 곳에 떨어졌다면 딱딱한 나무에 부딪쳐 비행선이 파손, 폭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행선에서 내려, 부대원들이 사주경계하며 앞장서 인솔했지만 솔이 백악기를 제일 잘 안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나무들을 잘 살펴보세요. 이 시대에는 겉씨식물이 살고 있었다니까, 찾다 보면 먹을 게 있을지도 몰라요.”
“겉씨식물이라면 은행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을 말하는 것이냐.”
식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철준이 다시 묻는다.
“저도 뭐가 있는지는 잘 몰라요, 그냥 백악기 식물에 관한 책에 써 있는 대로 말해본 거예요.”
“어이구. 참 똑똑하구나. 잘 알고서 얘길 해야지!”
혜정이 머리를 쥐어박을 것처럼 손을 들어 올리자 솔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엄살을 부리며 달아난다.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요.”
철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은행과 주목, 잣, 모과 등은 먹을 수 있으니 한번 찾아봅시다. 옛날에는 소나무 껍질도 먹었다고 하니깐.”
숲의 가장자리를 돌며 움직이다 바다를 발견한다. 그때 거대 익룡이 그들을 발견하고 시끄럽게 날아오른다.
“프테라노돈과 케찰코아툴루스예요.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데요.
솔이 호기심에 다가가자 익룡이 소리지르며 위협을 한다.
“위험해!”
철준은 다급히 솔의 손을 잡아끌고 뒤로 피한다. 영훈과 그의 부대원들은 솔과 철준을 덮치는 프테라노돈을 향해 소총과 외계인의 무기로 사격한다.
“탕, 탕, 탕”, “피슝, 피슝”
프테라노돈이 피를 뿌리며 걸레가 되어 바닥에 처박힌다. 다른 익룡들도 놀라 더 높이 솟구친다.
“이 녀석아! 조심해야지. 다친 데는 없어?”
혜정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을 잇는다. 다희가 그런 솔을 향해 너 땜에 일이 커진다며 나무라고 솔은 ‘자신이 알고서 한 일이냐며’ 투덜거린다.
“좀 정신 좀 차리고 다녀, 호기심에 나대지 말고.”
혜정이 그런 솔에게 한마디 한다.
피 냄새가 다른 육식공룡을 불러들일까 봐 그들은 흘린 피를 흙으로 덮고 익룡의 사체를 끌고 비행선 근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불을 피우며 다른 공룡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어떤 공룡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합니다. 저희는 이곳에 대해 잘 몰라요. 주의하셔야 합니다.”
영훈이 이렇게 말하곤.
“이거 구우면 맛있겠는데요. 오늘 솔이 덕분에 포식하겠어요.”
라고 말하며 솔을 바라보고 웃자
“쳇”
부끄러운지 솔이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린다. 파란만장한 오늘 일을 떠올리며 모두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뜯는다. 고깃기름이 손과 입에 묻었지만 마실 물도 부족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손으로 닦아 그저 흙에 문지를 뿐이었다. 이곳에선 모두다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불을 피우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라이터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철준은 그렇기에 금연한 것을 상당히 아쉬워했다. 꼭 필요할 땐 그 물건을 쓸 수 없었으니 괴로웠다.
마찰열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지. 모두 손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다시 불을 피우지 않기 위해 불씨를 남겨두어야 했다.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아껴야함을 깨달았다. 모두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된 곳이니 아껴쓰고 조심히 다뤄야만 했다.
정착
영훈은 천상 군인이었다. 아버지께서 직업군인이셔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봐온 것이 훈련과 체력단련뿐이었다. 옷가지와 물건을 각 잡는 것부터 시작해 생존 기술까지, 직접 자신이 한 것은 없지만 보아온 것도 많았기에 불 피우는 것과 물을 얻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물은 식물과 증류과정을 통해 만들기도 하였고, 바닷물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오래 버틸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냇물이나 강을 빠른 시일내에 찾아내야 했다. 낮은 지형에 물이 고일 가능성이 많았기에 영훈은 낮은 지형으로 대원들을 이끌고 탐색에 나섰다. 이틀간 사방으로 돌아다녔을 때 흐르는 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통에 물을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곳도 지구고 여전히 공전을 한다면 계절도 있을 것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을 것도 확보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살아갈 것인지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영훈은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만약 돌아가야 한다면 꼭 외계인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날마다 조금씩 정찰 구역을 넓혀가며 외계인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 먼 곳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시간대에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다만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며 어디서든 불시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행선 주변으로 항시 모닥불을 피워 놓았고, 대개 그 근처에서 아이들이 외계인의 무기로 사격연습을 하곤 하였다.
숲속에서 철준과 현준이 정찰을 하고 돌아왔다. 흠뻑 땀에 젖은 모습이다.
“오늘은 큰 바위까지 다녀왔네. 거기에서도 외계인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수고하셨어요, 내일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저희는 반대편으로 갔다올게요.”
영훈이 지친 철준에게 수통을 건네며 말했다. 이럴 땐 콜라나 맥주가 제격일 거라 생각하며 현준은 입맛을 다시었다.
“다들 조심하고요, 차라리 이곳에 정착하는 건 어떤가요?”
혜정은 이렇게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차라리 정착하는 것이 어떤 가를 철준에게 물었다. 혜정은 무엇보다 가족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외계인을 발견해 또다시 싸우게 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무슨 소리요, 우린 꼭 돌아가야만 해. 자식들 생각해서라도 인간 무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
현준은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았고 식구가 많은 편인지라 식탐이 강한 편이었다. 형제들이 먹기 시작하면 남아나는 게 없어서 그도 득달같이 달려들어야 했다. 식구들이 많은 곳에서 생활하였으니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한다 생각하지만 내심으로는 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편이었다. 차라리 여럿보다는 조용히 사는 것을 바라는 지도 몰랐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어 온 피해의식의 단면이었다. 여럿이 모였을 때는 활기차고 즐거웠지만 내심으로는 항상 외롭게 느껴졌다.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처지의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를 이해해달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를 많이 달라지게 했다. 이곳은 이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이들뿐이요, 자신이 돌봐줘야 하는 것도 이들뿐이었다. 그리고 처한 환경 또한 같았다. 백악기의 생활이 알게 모르게 그에게 많은 부분을 채워주었다. 백악기에 내몰린 그들은 이미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숲으로 들어간 영훈 일행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이 시간이 가장 긴장되었다. 못 돌아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그들이 돌아올 숲쪽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축내는 것이었다. 곧 숲 한쪽에서 영훈 일행이 나타났다. 솔이 뛰어나가 마중했다. 철준도 다가가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어휴, 힘드네요, 산너머 계곡에서 설치류를 발견해서 잡아왔어요. 이게 더 맛있겠죠.”
영훈의 손안에 쥐보다 큰 설치류가 잡혀있었다. 커다란 앞니가 인상적이었다. 한참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다가 축 늘어진 모양이었다.
“거기서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을 봤어요. 아마 이곳에도 포유류가 꽤 있나 봐요.”
까까머리 정호가 발자국 크기를 손짓으로 나타내며 말한다.
“토끼 같은 것은 없었어요?”
다희가 은행을 구워 먹으며 말한다. 입주변이 거뭇하다.
“제발 토끼가 있다면 한 마리 잡아오세요, 제가 한번 길러 보게요.”
“한 마리면 되나, 짝이 있어야 새끼를 불리지. 그래야 사냥하는 수고도 좀 덜고.”
정호는 혹시 철준에게 불손하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다.
***
백악기의 생활도 한참이 지났다. 정찰하고 돌아다닌 지 꽤 되었음에도 외계인의 자취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 넓은 대륙에서 외계인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겠는가? 다만 비행선이 저장해 놓은 워프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언젠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거리 외에 시간의 축도 생각해 본다면 외계인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라 할 수 있었다.
“이젠 집을 만들어야겠어, 무턱대고 이렇게 수색만 할 순 없으니.”
철준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언제까지 정찰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위험요소가 많았다. 사방이 자신들보다 큰 공룡들이요, 백악기 밤의 곤충들도 그들의 목숨을 노릴만큼 거대했다. 더구나 이곳의 계절은 알 수 없기에 더 불안했다.
“것 보라고요, 제가 그냥 이곳에 정착하자고 그랬잖아요.”
“그럴 수는 없었어, 저길 보라고.”
다희는 군인들과 어울려 떠들고 있지만, 솔의 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네요. 어쨌든 잠시라도 살 집이 필요해요. 안전하게 울타리도 치고. 항상 긴장하며 살 순 없잖아요. 화장실도 그렇고···.”
“그래. 이젠 집을 만들고 식량도 비축해 놓아야겠어. 영훈이 말하더라고. 겨울이 있을지도 모르고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고.”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저희끼리만 이곳에 왔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우리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지.”
“그래요.”
그날부터 그들은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무는 많았지만 도구가 없어서 힘들었다. 영훈은 돌을 이용해서 나무를 자르고 덩굴들을 이용하여 줄을 엮어서 튼튼하게 했다. 밧줄은 쓰임새가 많았다. 집을 만들 못 대용이었고 그물이나 통발, 해먹등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붕을 이는데도 바람에 날리지 않게 돌을 줄에 매달아 잎으로 감싼 지붕에 덮어두었다.
***
정호가 순찰 나갔다 돌아오며 검치호랑이 새끼 두 마리를 데려왔다.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서도 살았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공룡이 사라진 후에 더욱 번성했다고 알려진 종이었다. 아직 새끼인데도 그 크기가 커다랬다.
“이게 뭐예요.”
다희가 말한다.
“검치호랑인데 메갈로(메갈로사우르스)에게 그 어미가 당했어. 숨어서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가 새끼가
마음에 걸려 데려왔어. 네가 한번 잘 길러 보라고.”
“귀엽게 생겼네요, 그래도 너무 덩치가 커요. 무섭기도 하고요. 제가 기를 수 있을까요?”
“그럼 모두 같이 키워보자고. 그래도 되죠, 아저씨.”
“자네가 그만큼 사냥을 더 해온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철준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싹싹한 정호가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괜히 데려왔어요.”
정호가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딴에는 다희에게 소일거리라도 만들어 주려고 데려온 것인데 자신이 해야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곳은 정말 놀거리는 전무했다. 다희와 솔이 정말 심심해했다. 솔은 그나마 공룡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보는 공룡을 발견하면 이름을 붙이고 좋아라 했다.
“농담이야, 농담. 어쩌면 이놈들이 우리를 지켜줄지도 모르지. 함께 키워보자고.”
“설마요.”
새끼가 언제 커서 자신들을 도울 것인지 생각조차 되지 않았다.
“농장도 만들고 이곳에 식물도 좀 키울 생각이네. 어쩌면 그 동물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그렇군요. 개처럼 길들이고 싶으신 거로군요.”
정호가 웃으며 대답한다.
다희는 검치호랑이 새끼의 이름을 누리와 검이로 지었다. 그날 밤 철준은 백악기의 별이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
정호는 오늘 불침번 1호다. 귀공자 타입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독자로 자랐기에 대인관계가 상당히 어설펐다. 그는 그럴 때마다 따로 놀았다. 혼자인 게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미도 혼자 무언가를 만들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도 불침번을 서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군용 칼로 나무를 깎아 조각인형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여럿 만들곤 했는데 모두 다희에게 주었다. 좀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라며 영훈에게 한 소리 들었지만 차츰 목공예 실력이 좋아져서 생필품을 만들기에 이르자 영훈도 잔소리를 그만두었다.
나무그릇이나 젓가락, 숟가락 등의 식기류나 물길을 끌어올리는 물레방아 등 그 물품을 늘리기 시작했다. 가장 정호를 반기는 사람은 혜정이었다. 꼼꼼하게 만든 그의 물건들을 보자 칭찬하기에 바빴다. 자신도 이곳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었구나 깨닫고 나서는 말수도 많아지고 성격도 활달하게 변했다. 이 곳 생활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케라
외계 로봇이 한 동굴에서 자원을 캐고 있다.
“E-2025,35.129에서 연락은 왔나? 클클.”
“아니. 클클.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모두 죽었다고 하더군. 클클.”
“얼마나 멍청하게 행동했으면 당했을까, 클클. 그나저나 우리도 슬슬 이곳을 떠나야 할 텐데. 클클.”
외계인들이 거대 공룡을 사냥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일말의 거리낌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우선 자신의 별이 아니었고, 미래에는 멸망할 별이었고. 현대에는 공룡은 멸종하고 없는 종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외계인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다른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언제, 어디라도 갈 수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들은 아쉬울 것이 하나 없었다.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생명존중, 그런 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자신의 종족만이 중요시될 뿐이었다.
“난 오늘 20마리째야. 클클.”
“겨우 그 정도로 생색을 내나. 클클, 난 오늘 32마리 잡았다네. 클클.”
“클클. 그렇게 무기를 난사하다니 반칙이 아닌가. 클클.”
***
철준은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자식에게 전하려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철준이 손을 내밀지만 잡히지 않는다. 어머니가 앞자리 좌석에 오른다. 뒷자석은 어지럽다고 항상 말해 오셨다. 지고 이고 온 짐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버스가 출발하자 어머니가 쓰러지신다. 갑자기 심장이 멈춘 것이다. 운전사와 승객들이 이를 보고 놀라 어머니에게로 몰려들었다. 철준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기라도 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몽이었다.
“당신 괜찮아요.”
“그래.”
철준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모두 그들의 부모님이 계실 터였기에 그들마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아이들을 참 예뻐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외계인의 침입에 살아남으셨는지, 걱정스러워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주변의 모닥불이 꺼져가자 장작을 더 얹어 두었다. 불씨를 날리며 불꽃이 솟아오른다. 철준은 불꽃을 바라보며 침략이 있기 전의 지구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였다.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혼자 남겨진 어머니가 안스러웠다. 하지만 각자의 일이 있기에 안부만을 전하며 살아온 것인데 이렇게 외계인의 침공으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인구 밀집지역은 아니었으니 외계인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자신만의 꿈일 뿐이었다.
그래서 백악기의 정찰이 있을 때마다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외계인의 흔적을 살피었다.
날이 밝자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먹고 철준과 현준은 다시 탐색을 위해 임시 가옥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한참인가를 들어가자 이제 새로운 영역에 다달았다.
<여기에도 흔적은 없는가. 혹시 저 뼈만 남은 공룡은 외계인에게 죽임을 당한 건 아닐까?>
그러나 공룡 뼈에는 이빨 자국이 남겨져 있었고 육식공룡이 포식한 흔적도 보였다. 그러다 그 옆, 풀로 뒤덮인 곳에서 공룡의 알을 하나 발견했다.
<먹을 게 부족했는데 달걀이라. 이것도 가져가야겠군>
“아저씨, 여긴 더 볼 게 없는 거 같은데요. 웬지 육식공룡이라도 나올 것 같고.”
“그래도 좀만 더 살펴보자고.”
철준과 현준은 숲속으로 더 들어갔다. 그러자 숲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초식공룡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트리케라톱스 무리였다. 숲과 들판의 경계지역엔 이구아노돈이 나뭇잎과 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한쪽에선 프로토케라톱스 무리도 보였다. 부경고사우루스가 긴 목을 이용하여 커다란 나무의 잎사귀를 뜯고 있었고 스티라코사우루스도 초식공룡의 무리에 어울려 있었다. 같은 초식공룡끼리 뭉쳐 육식공룡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이상 찾아볼 것도 없을 거 같네. 이만 돌아가자고.”
“네.”
철준이 임시가옥에 도착하자, 솔은 철준이 가져온 알을 보고 자신이 키우겠다고 소란이다.
“이건 내가 키울 거야. 아빠! 누나도 누리와 검이 키우잖아. 나도 키울 거야.”
“그건 포유류고 이건 공룡이야. 길들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 안돼.”
“아냐! 내가 반드시 길들이고 말 거야.”
솔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집을 부린다.
마음이 약해진 철준이 솔의 머리를 쓰담으면서 말했다.
“그럼 좀 크면 무리로 돌려보낸다고 약속한다면 내 한번 생각해 보마.”
“앗싸!”
원래 공룡의 알은 누가 품거나 하지 않아도 온도만 맞다면 자연스레 부화하기 마련이었으나 솔은 빨리 부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품고 자기도 하고, 모닥불 근처에서 따듯하게 천으로 감싸주기도 했다. 밥 먹는 일도 뒷전이었다.
가옥은 어느정도 완성 단계였다. 목책을 두르고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안에는 나무와 풀로 이은 집이 보였다. 목책은 다른 공룡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나무를 잘라 끝을 뾰족하게 하여 30도 방향으로 눕혀 땅에 박아 넣었다.
***
“쿵, 쿵, 쿵,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다들 무슨 일인가 하고 숲 쪽을 바라보니 초식공룡의 대이동이 있었다. 육식공룡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무리가 이동중인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 것이리라. 이대로 이동한다면 새로 만든 가옥이 짓밟히게 생겼다. 철준이 이를 곧 파악하게 되었다.
“다들 무기를 챙겨서 이리로 모이게.”
철준이 총을 들더니 공중에 대고 위협사격을 가한다.
“쾅.”
영훈 이하 부대원들이 각자 총을 들고 나왔다. 외계인의 총기는 소리가 약한 편이라 각자 K2 소총을 들게 되었다. 위협을 하자면 소리가 요란한 편이 나았다. 꼭 들소무리를 쫓아내는 인디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쾅.”
여러 번의 위협사격과 조준사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초식공룡무리가 경로를 이탈했고 겨우 임시가옥은 위기를 벗어났다.
짓밟힌 농작물은 다시 손봐야 했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도 공룡들의 뿔과 몸, 발길에 모조리 붕괴되었고 말았을 것이다.
“휴. 다행이야.”
“초식공룡 무리가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종종 무리의 이동로를 바꿔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영훈이 미리 공룡무리의 이동경로를 바꾸자 말한다. 철준은 영훈이 젊은 사람이라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는게 좋겠네.”
***
솔이 공룡알을 끌고 돌아다니자 정호가 공룡알을 놓아둘 상자를 만들어 선물하였다. 못이 없이 끼워 맞춘 상자였는데 솔의 마음에 쏙 들었다.
“형, 고마워요.”
“공룡알 깨지겠다. 그렇게 가지고 다녀서는.”
“조심할게요.”
솔은 상자에 마른 풀을 넣어 알이 충격 받지 않도록 하고 그 안에 알을 넣어두었다. 그렇게 열성으로 알을 돌봐주었더니 어느덧 상자 안에 놓아둔 알이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솔은 그곳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생명체, 생명 탄생의 신비를, 그것도 아무나 볼 수 없는 공룡 탄생의 실체를 직접 목격하는 당사자가 되었다.
“야호! 부화 성공이다. 이건 트리케라톱스야.”
“넘 귀여운데.”
솔은 사람들에게 트리케라톱스 새끼를 자랑하였다. 다들 멋있게 생겼다며 수고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잘 키워보라고.”
“그게 언제 크려나.”
현준이 트리케라톱스의 덩치와 먹이를 생각하며 머리를 내젓는다. 자신이 먹는 양도 장난이 아닌데 공룡을 키우려면 먹이의 양이 상상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도 봐봐. 좀 보여줘.”
다희가 그 귀여운 외형에 반하여 솔에게 보여달라고 조른다. 그리고 그 트리케라톱스 새끼를 보고는 누리, 검이와 바꾸자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솔은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완전히 누나를 무시한 채,
“이름을 뭐로 짓나?”
다희는 심통을 부리며 말한다.
“공룡이니 사우루스라고 불러.”
다희가 심통을 부리며 이름을 이상하게 짓자.
“누나 왜 그래, 저리 가.”
“그럼 좀 보여주든가.”
“뭐라 부르지?”
“케라라고 부르면 되잖아.”
다희가 답답한 마음에 불쑥 이름을 말하였다.
“좋은데. 넌 이제부터 케라다. 나만의 케라. 잘 키운 케라 하나 열 검치호랑이 안 부럽다. 크흐.”
“욘석.”
다희는 솔의 귀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러자 솔은 나중에 케라가 크면 누난 안 태워 준다며 놀리듯 말하자 다희는 자신도 태워 달라며 졸라대었다. 그러다 둘은 어느새 의기투합했는지 무엇을 먹여 키우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라는 누가 가르칠 것 없이 잘 자랐다. 그리고 솔과 다희를 잘 따랐다. 검치호랑이보다도 훨씬 말을 잘 들었다.
솔은 항상 케라를 데리고 다녔다. 사람 말귀를 알아들으려면 항시 붙어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케라는 사람들을 동료, 부모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들의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정말 누리, 검이와 바꾸고 싶은 걸.”
다희가 샘이 나는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안돼!”
솔이 케라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케라는 정말 솔의 차지가 되었다. 그 나이에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니 솔의 책임감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 나이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인데 일찍 일어나서 케라를 끌고 풀을 먹이는 모습은 어른들이 이래서 아이들에게 반려동물을 키우게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솔은 부쩍 어른이 된 것처럼 보였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아이가 될 것이었다. 솔이는 그렇게 백악기에서 케라와 함께 성장하는 중이었다.
장마
케라는 부쩍 자라나 솔이 덩치만 하게 자랐다. 누가 누구를 키웠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들은 잘 어울렸고 솔의 성격은 한층 밝아졌다. 자신이 장담한 것처럼 케라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강아지처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물론 비행선 근처의 안전한 곳으로만 움직였지만 그래도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는 백악기에서. 그러나 솔과는 달리 철준은 그리 반기지 않았다. 곧 헤어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케라가 더 크기 전에 무리에 보내야 하겠지만, 결국 자신들도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철준은 솔이 너무 백악기의 생활에 젖지 않기를 바라였다. 그리고 케라에게도 정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 너무 어린 것 아녜요.”
솔이 말했다.
“더 정이 들기 전에 돌려보내야 해.”
“그래도 너무 어려요, 육식 공룡들에게 금방 잡아 먹힐 거라고요.”
다희가 아빠의 손을 잡으며 만류한다.
“아마 트리케라톱스 무리에서 지켜주겠지.”
“이방인인 케라를 지켜줄까요?”
솔이 글썽이다가도 걱정스러워 묻는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보내야겠지.”
“예.”
솔이 말은 했지만 막상 케라를 보내 자니 걱정이 되었다. 자신만을 따르는 데 트리케라톱스 무리에서 잘 견뎌낼 수 있는지 먹이 다툼에 밀려나지 않을 지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날이 흐려졌다. 현재에도 장마철이 있듯 이곳에도 장마가 온 것이다. 모두 활동을 멈추고 임시가옥에 발이 묶여 있었다. 처음 가옥을 만들 당시 지붕을 만든 것이 퍽 다행이었다. 이런 비를 매일같이 맞아야 한다면 체온이 떨어져 모두 위기가 닥칠 것이었다. 다만 잎사귀로 지붕을 덮은 것이어서 위에서 물이 자꾸만 샜다. 철준과 영훈, 준현과 정호가 짝이 되어 물 떨어지는 곳을 임시로 손보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요.”
영훈이 밖의 하늘을 보며 금세 그칠 비가 아니라 하자.
“저희 예비 식량이 얼마나 남았나요.”
준현이 다시 혜정에게 묻는다.
“저희 일주일 분은 먹을 게 남아있어요. 아껴먹는다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이 빗속을 헤매지 않게 돼서.”
정호가 말하자 솔이 금세 침울해진다. 케라의 먹거리가 없는 것이다.
비가 조금씩 잦아들자 솔은 케라가 먹을 풀들을 베어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솔이 어른들에게 말하자 정호가 따라 나섰다. 비가 오더라도 밖은 육식공룡들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솔과 케라를 보호하기위해 총을 들고 일어섰다. 다른 사람들은 물을 채우거나 집을 손보거나 습한 곳에서 식량을 보존할 방법을 연구 중이거나 채집한 식물을 돌보거나 각자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지금 가 보자고. 너무 늦으면 풀들도 물에 물러버리더라고.”
“예, 잠시만요. 케라도 데려가고요. 풀을 싣고 오게요.”
솔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닥에 앉아있던 케라도 따라 일어난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속을 트리케라톱스 무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이 비에도 풀을 뜯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들의 삶도 쉽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솔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약한 빗줄기지만 서서히 몸에 젖어 들었다. 몸이 살짝 떨려왔다. 땅이 질퍽하게 밟혔다.
“완전 진흙탕인데.”
정호가 발이 축축 해지자 기분 나쁘다는 듯 신발을 턴다. 솔은 케라가 걱정이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 가시죠. 저쪽에 케라가 잘 먹는 풀이 있어요.”
“그래.”
정호는 왜 진작 자신이 우산을 만들지 않았는지 한숨이 나왔다.
가는 길에 빗줄기가 거세졌다. 이래서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솔이 길을 인도하자 정호는 그 발만 쫓아서 가는 길이다. 케라는 처음보는 비가 신기한지 들떠서 솔을 따라 움직이다 가도 자꾸 미끄러지는 발이 재밌는 모양인지 몇 발짝 뛰다가 멈추고, 몇 발짝 뛰다가 멈추고 진흙탕에 몸을 구르기도 하였다.
“너 가만 있으랬지, 옷 버린 단 말야.”
솔이 흙투성이 몸으로 자꾸만 달라붙는 케라에게 한마디 한다. 이를 알아듣는 다면 사람이라고 정호는 생각했다.
비가 더욱 거세졌다. 정호와 솔이 케라에게 줄 풀을 벤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시야가 보이지 않았고 세안하듯이 물이 얼굴로 흘러내린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풀들을 베는데 베어 논 풀들이 물에 의해 떠내려 간다. 이런 식으로 비가 계속된다면 임시가옥도 버티지 못할텐데라며 정호는 걱정했다. 정호가 집을 지을 때 되도록 튼튼하게 만드려고 요철부를 만들어 서로 맞물리게 하였지만 그래도 나무로 만든 집이라 비가 계속된다면 땅이 물러져서 무너지고 말 것이었다.
“젠장, 무슨 비가 이렇게 온데.”
“그래도 형 덕분에 이 비를 피하고 있는 걸요.”
“내가 뭘 했다고. 빨리 풀이나 베어 돌아가자.”
“예, 형.”
어느 정도 풀이 쌓이자 덩굴로 묶고 케라의 등에 싣고 돌아온다. 서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미끄러진다. 그렇게 숲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땅이 무너져 내렸다.
“어, 어어.”
“안돼!”
케라가 흘러내리는 토사에 실려 떠내려 간다. 다행히 흙에 파묻히지는 않았지만 무너진 곳을 오르기 힘들어 보였다. 아래로는 불어난 빗물이 급류가 되어 흐른다. 케라를 끌어 올려야 하는데 미끄러운 땅이 문제다. 케라가 자꾸만 버둥거린다.
“좀 끌어올려 주세요.”
솔이 아래로 내려가 케라의 뒤를 밀어본다. 솔이 힘주어 밀어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잠깐 기다려 봐. 정호가 풀을 묶다 남은 덩굴줄기로 케라를 묶는다. 그리고 비탈을 올라 나무에 걸고 잡아당긴다.
“내가 당길 테니 그때 한번 밀어봐.”
“예, 형.”
서로 박자를 맞춰 밀고 당겨보지만 한번 미끄러진 케라는 오르지 못한다. 서로 힘만 쓰다가 지쳐 헉헉대다가 솔이 먼저 울상을 짓는다. 빗속에 눈물이 떨어져 티가 나지않았다.
“형, 어떡하죠. 흑, 흑.”
“걱정하지마. 내가 사람들을 불러올 테니.”
그렇게 실랑이를 할 때, 너무 많은 비가 내린 터라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 나섰다. 솔을 발견하고 합심하여 케라를 구덩이속에서 끌어올린다. 끌어올리고 보니 이제껏 밟고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렸다.
“헉.”
“위험할 뻔했어.”
철준은 차라리 케라를 버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호와 솔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두워젔다. 더 이상 케라를 키우기에는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혜정이 솔을 걱정한다. 이 비에 몸이나 상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다시는 비가 올땐 밖으로 나가지 마.”
“죄송합니다.”
정호가 혜정에게 머리 숙여 사죄했다. 그러자 혜정은 솔에게 더이상 뭐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정호의 잘못도 솔의 실수도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무랄수록 정호의 고개숙인 모습에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케라를 보는 가족의 눈은 냉정해졌다. 이렇게 케라를 끼고 돌 수는 없단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계속되던 비가 며칠 뒤에 그치기 시작했다. 다행이 집도 무사했고 가족들도 건사했다.
그날 이후 솔과 철준은 케라가 트리케라톱스 무리와 어울리도록 자주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어느 날 케라는 무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떠나지 않으려고 솔에게 매달리고 울기도 하였지만 어느덧 적응이 되자 무리에 잘 어울리게 되었다. 솔도 처음에는 정을 떼려고 찾아가지 않았지만 무리에 잘 어울려 노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 솔은 케라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케라는 솔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기도 했고, 스스로 솔과 다희에게 찾아와 모습을 보이며 커다란 덩치에 재롱을 부리기도 하였다.
***
어느덧 이곳에서의 생활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티타노사우르스 등 육식공룡과 이름도 알지 못하는 포유류의 공격을 받았지만,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그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고 오히려 인간의 주거지역은 안전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초식공룡의 무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면 그곳은 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한다고 해도 초토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미리 총소리로 무리의 이동로를 바꾸곤 하였다.
철준의 머리카락이 이곳에 올 때 보다 좀 더 하얗게 바랬다. 그들의 옷도 설치류 가죽으로 변하였고 솔과 다희도 많이 자랐다.
“케라를 불러와야 할 것 같아. 좀 멀리 정찰을 나가게”
“아예 저희와 살게 하시지. 자주 부르시면서.”
솔이 볼멘소리로 말했지만 처음 헤어질 때 보다 많이 나아졌다. 아마 케라가 많이 성장한 탓이리라.
“여기서 살면 먹이도 문제고 여하튼 너는 몰라도 되는 게 있다.”
“케라의 짝을 말하는 거라면 아직 멀었어요. 그리고 일을 시켰으면 보상도 줘야죠. 왜 먹이는 안 주려고 하는 거예요.”
“어휴, 그 식성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솔이 싱글거리며 철준을 바라다본다. 이젠 케라를 대상으로 농담도 할 줄 아는 솔이었다.
그런 솔을 바라보며 철준은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백악기의 극악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자라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엘라스모사우르스
장거리 정찰에서도 소득이 없자 철준은 낙심하였다.
“정말 외계인은 없나 봐, 3년간 수없이 찾아봤는데.”
“시간대가 어긋나 버린 거겠죠.”
까까머리 정호도 머리가 장발로 변했고 피부도 구릿빛으로 변하였다.
“이젠 이 시대의 별과도 가까워졌군.”
철준의 낙담에 가까운 한숨이 보태졌다.
“케라는 이제 무리로 돌려보내도 되겠죠.”
먹성 좋은 현준만이 변한 게 없는 듯, 육포를 뜯으며 케라를 끌고 트리케라톱스 무리 쪽으로 사라졌다.
***
이들이 백악기에서 필요로 한 물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필수적으로 물과 소금은 중요하였다. 소금이 부족하면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쉽게 피로하여 탈수증상까지 벌어지게 된다. 여차하면 목숨조차 잃게 될 것이었다.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바다가 최선이었다. 그러나 바다가 옆에 있었지만 익룡과 바닷속 공룡들이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혹 바닷가 괴물들을 어찌 상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무로 창을 만들어 익룡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투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창날쪽으로 하여 (뿌리 쪽이 뾰족한 부분이 되도록) 다듬었다. 정호가 덩굴로 그물과 통발도 만들었지만 물에 뜨기에 통발 안에는 돌을 넣어 사용해야 했다. 그물은 거의 사용할 방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부력 때문에 그물을 사용하려면 물속으로 들어가 바위에 걸어 놓고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철준은 최대한 바닷가와 먼 절벽위에서 통발을 던져 넣었고, 한번 바닷가로 나올 적마다 총과 창으로 무장하여야 했다. 절벽도 또한 해안가와 마찬가지로 익룡의 서식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소금을 좀 건져보자고.”
철준이 이야기하자 영훈 이하 부대원들이 그물을 바다에 던져 넣는다. 돌에 묶인 그물들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면 다시 그물을 걷어 올린다. 그물이 된 덩굴들을 찢어 섬유질마다 바닷물이 스며들기 쉽게 만들었었다. 바닷물에 담궜다가 건져서 바람에 말려 소금을 얻었다. 쓸모없는 그물의 사용처였다. 바닷물이 스며든 그물은 상당히 무거웠는데 잘못하다가는 바다에 빠져 몸도 성치 못할 것이었다. 처음 그들은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던져 넣었다가 바다속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던지기 전에 나무에 줄을 묶고 던져 넣었다.
소금을 얻기 위해 많은 수의 그물들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익숙해져서 이제는 서로 손발이 맞았다.
“통발도 좀 던져녛자고.”
“예, 형.”
영훈이 작업지시를 내리자 각자 들고 온 통발들에 돌을 채워 바닷속으로 던져 넣었다. 물론 미끼는 공룡들의 내장 조직이었다.
“이젠 그물을 다시 꺼내시죠.”
영훈이 말하자 함께 달려들어 그물을 끌어올렸다. 케라도 데리고 와 일을 돕게 했다. 케라는 이미 커다란 덩치로 자라서 충분이 그물을 끌수 있었고. 그 그물 모두를 싣고 돌아올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검이와 누리도 함께 데려와 익룡들의 공격에 대비케 했다. 소금을 얻기 위해 정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뭐가 걸렸는데요.”
준현이 갑자기 당기는 힘이 세지자 말을 건넸고,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엄청나게 큰 물고기였다. 크시팍티누스라는 백악기의 물고기로 3미터 정도의 크기였는데 완전히 자란 성체는 아닌 것 같았다.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해 수면으로 하강하는 익룡 등을 잡아먹는 거대 물고기였다. 녀석이 그물에 걸린 작은 물고기를 보고 달려들어 그물에 걸린 것이었다. 엄청난 힘으로 일행을 바닷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나무에 묶어 놓았는데도 엄청난 힘인데요.”
정호가 힘이 달리는지 당기다가 질질 끌려간다. 케라도 함께 끌려간다. 모두가 달려들어 당겼지만 그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철준은 줄이 끊어지던가 크시팍티누스가 지쳐 나가떨어지던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오늘에야 거대 물고기의 맛을 좀 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고기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그냥 놔 두고 다른 그물부터 끌어올리세.”
“예, 아저씨. 오늘 운이 좋은 것 같네요.”
“백악기 물고기는 어떤 맛일까요?”
준현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입이 함지박 하게 걸려있었다.
그때였다. 거대 물고기마저 한입에 삼킬 정도의 큰 바다공룡이 크시팍티누스를 한입에 잡아 물고 바다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물마저도 한 번에 끊어버릴 정도의 힘이었다. 모두 그 그물을 잡고 있었다면 바닷속으로 끌려갈 뻔하였다.
“헉. 저게 무슨 물고기래.”
“휴, 죽다 살아났네요.”
“저건 엘라스모사우르스라는 공룡인 것 같아요.”
솔이 기억을 더듬으며 백악기의 바다공룡을 떠올린다. 아마도 13미터는 넘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신 바다로 나오지 않을 테야.”
정호가 머리를 절래절래 휘저으며 말한다. 살이 떨렸다. 다들 그물 걷기를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랗고 깊은 물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이 안되었다. 3미터의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다니 그 크기가 상상이 안되었다. 멀어져가는 엘라스모사우르스가 멀리 수면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정말, 아슬아슬 했네 그려.”
철준도 뜯어진 그물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짓는다.
***
로봇들이 자원을 채굴 중이다. 여기서 채굴한 광물은 다시 미래로 보내지고 이 자원들을 가지고 다시 전쟁준비를 한다. 지구뿐만이 아니라 전초기지가 된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파견될 로봇들이 생산될 것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백악기의 자원을 탐색해 왔고 그 일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의 그 멍청한 녀석들이 아니었다면 좀더 쉽게 자원을 보냈을 텐데, 한국에서의 반격 이후 인간들의 공세가 심해져 현재에서는 거의 모든 병력을 잃고 패퇴하게 되었다. 이젠 다시 미래로 자원을 보내야 했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것이고 또 다시 현재로 병력을 보내 현재를 탈환해야 할 것이었다. 황폐한 미래의 도시는 자신들에게도 영 도움이 안 되었다. 이젠 얼추 생산량을 맞추었다고 생각되었다. 이정도 양이라면 다시 현재를 탈환해도 될 만큼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간다고 여겼다. 백악기에서 자원을 캐던 외계인들은 떠날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끼곤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자원채굴에 방해가 되는 공룡들을 무참히 살육하며 시간을 보내던 외계인은 이미 백악기의 멸망을 헤아려보곤 했다. 지구에 대해서는 조사가 다 끝난 시점인 것이다.
“클클.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클클.”
“채굴도 거의 끝나가고 있음. 클클.”
“근데, 로봇들이 너무 행동이 굼뜬 것 아닌가. 클클.”
“매일같이 바라보는데 속 터진다 말 일세. 클클.”
“클클, 너무 들여다보지말고 공룡사냥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지 그러나. 클클.”
“그래도 생산량은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클클”
“로봇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지 그러나. 클클.”
“클클, 알겠네.”
“클클. 그런데 웬 놈의 공룡들이 이렇게나 많아. 클클.”
“그러니 사냥도 하고, 수를 좀 줄이자고. 계속 방해만 되니, 클클.”
“클클. 인간은 박제도 하고 그러던데, 우리도 한 번 해봅시다. 클클.”
“박제로 만들기보단 사냥하는 것이 더 즐겁지 않겠나. 클클.”
"클클. 박제 그런 건 뭐하려고 하나. 다시 오면 그만인데. 클클."
“우리에게 다시 차례가 오겠나? 클클.”
그때였다. 트리케라톱스 무리가 이동중이었다. 외계인의 광산 쪽으로 내달려 다가오는 중이었다.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 것 같았다. 이쪽 지역은 외계인의 사냥 탓에 비옥해져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이 풀을 보고 트리케라톱스의 선두가 이곳으로 행로를 잡은 것이었다. 그들의 발굽아래로 외계의 무리가 짓밟히게 생겼다.
"인간들이 말하는 트리케라톱스 무리잖아. 클클. 저놈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해. 클클."
“모두 이쪽으로 모이라 하게. 클클”
"공격해서 저쪽으로 몰게. 클클."
"피슝, 피슝."
외계인의 광선총이 트리케라톱스 무리를 두들긴다.
"푸확, 푸확."
가죽 째로 터져 나가며 피가 확 터져 나온다. 다른 트리케라톱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트리케라톱스의 선두도 돌진하여 외계로봇을 들이받는다. 외계인들은 놀라며 광선을 선두에 집중시킨다. 충돌과 공격의 공방이 계속된다. 그러나 끝없이 쏟아지는 광선의 세례에 트리케라톱스의 무리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무리가 떨어져 나가자 추진력을 잃은 선두가 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그러자 외계인들은 로봇을 앞세워 추격하며 공격을 지휘한다.
"클클, 한 마리라도 더 보내주마. 클클."
"일이 좀 늦어지겠는데. 클클."
그때쯤 우주에서는 백악기를 멸망으로 이끈 혜성이 긴 꼬리를 휘날리며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공략
백악기의 생활은 그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한 끼 식사를 걱정하였고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식량을 마련하느라 바빴다. 철준과 일행은 저장할 식량을 위해 사냥에 나섰다. 초식공룡은 무리를 지어 있기에 사냥하려고 하면 대규모 무리가 함께 움직여 곤란하였다. 그래서 한 마리만 사냥하기 위해서는 무리에서 한 마리만 떼어내는 기술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초식공룡 또한 육식공룡만큼 사냥하기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케라를 키우게 된 이후로 초식공룡을 사냥하기 꺼려졌고, 이러한 이유로 육식공룡을 사냥하게 되었는데, 초식공룡을 노리는 육식공룡도 주변에서 제법 발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사냥하기 어렵겠어요. 벨로키랍토르가 카스모사우르스를 노리고 있는 거 같은데요.”
영훈이 벨로키랍토르가 빠르고 무리 지어 사냥하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지켜보지. 아마 다치는 녀석이 나올 거야.”
철준이 이렇게 말하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초식공룡들은 떼를 모여 풀을 뜯고 있었다. 꼬리 끝에 달린 곤봉을 휘두르는 안킬로사우르스라든가 나뭇잎이나 열매등을 먹었던 이구아노돈, 프로토케라톱스, 펜타케라톱스, 스티라코사우르스등의 초식공룡들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오늘은 케라가 머무르고 있는 트리케라톱스 무리는 안 보이네요.”
준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뚱뚱한 몸을 이끌고 자신들을 위협할 육식공룡은 없는지 살펴보며 말했다.
“사냥하고 끌고 가려면 케라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네요.”
정호와 솔이 두리번거리며 케라를 찾고 있다.
“어딜 간 거야. 걱정스럽게 말야.”
그때 벨로키랍토르가 혼자 초원의 가장자리에서 나뭇잎을 뜯던 어린 이구아노돈을 발견하고 사냥에 나섰다. 대여섯배나 되는 크기의 공룡을 무리 지어 사냥하는 벨로키랍토르의 빠른 움직임에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솔은 근처에 있는 정호에게 달라붙으며 말했다.
“저렇게 빠른 데 오늘 사냥이 가능할까요?”
“초식공룡이라도 만만히 여겨서는 안 돼.”
정호가 외계인이 사용하던 총을 겨누며 안전 거리를 확보한다. 벨로키랍토르가 아구아노돈의 발목을 노리며 달려든다. 이구아노돈이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며 기다란 발톱으로 벨로키랍토르를 찌르며 위협한다. 무릎으로 튀어 오르던 벨로키랍토르 한 마리가 발톱에 상처를 입으며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다시 이구아노돈은 다른 초식공룡 무리로 합류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다른 벨로키랍토르가 이구아노돈의 발목을 물고 늘어진다.
“잘하면 이구아노돈과 벨로키랍토르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겠어요.”
영훈이 철준에게 이야기하자 가져가는 게 골칫거리라는 듯 준현이 혀를 차며 말한다.
“저걸 다 어떻게 가져가요. 케라도 없는데,”
일행은 상처 입은 벨로키랍토르 한 마리를 총을 쏘아 쓰러트렸고 총소리에 놀란 다른 벨로키랍토르는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발목에 상처를 입어 쩔둑거리던 이구아노돈도 영훈의 사격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다른 육식 공룡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해체하자고. 가져가는 건 그 다음에 생각해야겠네. 정 안되면 누리와 검이도 불러와야지.”
철준이 이렇게 말하고는 정호와 함께 공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일행은 다른 육식공룡의 접근을 살피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트리케라톱스 무리가 초식공룡 무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트리케라톱스의 무리는 외계인에게 공격당하고 도망쳐 이곳에 이르렀다. 그 속에 섞여 있던 케라는 천신만고 끝에 솔에게 돌아왔다. 솔은 케라를 발견하고 소리쳤고 그러자 케라가 솔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케라는 피투성이였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누가라는 말에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던 철준의 고개가 돌아갔고, 다른 공룡과 싸우다 다친 줄 아는 사람들도 모두 케라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케라의 뿔은 잘려 나갔고 흉갑도 찢기고 살갗도 터져 나갔다. 사람 곁으로 돌아온 케라가 안심한 듯 솔 옆에 주저앉았다. 일행이 케라를 살펴본다.
“외계인의 무기에 당한 것 같은데. 절단된 곳이 매끄러워.”
철준이 뿔을 만져 보고 말한다.
“케라가 어느 쪽에서 왔지.”
영훈이 걱정스러워 안절부절 못하는 솔에게 묻는다.
“저쪽 방면인데요. 케라는 괜찮은 건가요.”
“응 겉에만 살짝 다쳤어. 용케 잘 도망쳐 온 거야.”
철준은 솔이 일러 준 방향을 쳐다보더니 말한다.
“저쪽은 바위산이 많아서 정찰이 뜸했었는데.”
“오늘은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세.”
철준이 일을 서두른다. 일행도 케라를 바라보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솔은 케라가 걱정스러워 상처를 가까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주변은 어두워지고 모닥불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말없이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 삶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다시 위험을 감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제나 돌아갈 생각이었던 철준은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말을 꺼냈다.
“그들을 공격해야 해.”
“여보. 우리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아요.”
“저도 그러는 게 나을 듯합니다.”
먹성이 좋아 뚱보가 된 현준이 말했다.
“그들이 이곳도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다희가 궁금한 듯 묻는다.
모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하고 의견을 물어본다. 4대 3으로 외계인을 무찌르자는 쪽이 우세했다. 철준, 영훈, 정호, 다희가 공격하자는 쪽이었는데 다희가 가장 의외였다. 그녀는 한시도 옛날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와 놀고,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게임하고, 책을 읽고, 산책하고, 머리하고, 학교 가고, 그 모든 일이 여전히 그녀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철준은 매일 바라보던 하늘인데 별빛조차 오늘은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 빛은 점차 덩치를 키우는 듯하였다.
다음날 철준과 영훈은 외계인들이 위치한 장소를 살펴보러 떠났다.
“저들이 무엇을 하는 모양입니다만.”
“무슨 자원을 캐내는 것 같은데, 차라리 잘 된 것 같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들이 금방 떠날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만큼 우주선에 방비가 적을 것 같으니 말이네.”
“어떻게 그들을 물리치려고 그러세요.”
“우리가 잘하는 일이 있지 않나.”
영훈은 철준이 말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철준은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애써 온 만큼 이미 어지간한 작전들을 생각해둔 모양이었다.
“이만 돌아가세.”
“녜.”
철준과 영훈이 외계인 무리의 규모와 우주선의 위치, 경계상태 등을 살펴보고 돌아왔고,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외계인의 거주지역을 살피고 돌아 온 뒤 철준은 며칠간 준비과정을 거친 뒤 다희와 혜정을 남겨둔 채 외계인을 공격하기 위해 임시 가옥을 떠났다. 케라의 등에 솔이 타고 누리와 검이도 따라나섰다.
“이쪽에 프로토케라톱스 무리가 있네.”
철준이 방향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쩌시려고요.”
영훈이 묻는다.
“무리를 위협해서 외계인 쪽으로 이동시킬 생각이네.”
“위험할 텐데요.”
“그들에게는 더 위험할 걸세. 무리가 달려들 테니.”
철준 일행은 무기로 위협을 해 공룡무리를 외계인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게 하고 누리와 검이는 공룡들이 한쪽으로 질주하도록 이쪽저쪽 누비고 다니게 하였다. 프로토케라톱스 등의 초식공룡이 달려들려고 하면 위협 사격을 가해 외계인이 거주하고 있는 쪽으로 내쫓았다. 이미 거주지를 보호하기 위해 많이 하였던 방식이고 공룡들도 많이 당하던 방식이었다.
한편 광산에서는 로봇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작업량을 확인하던 외계인에게 소동이 벌어졌다.
“땅이 진동한다. 클클.”
“초식공룡 무리의 질주다. 클클 모든 병력을 거점지역에 집결시켜야 해. 클클. 어떻게든 막아야 해. 클클.”
대규모의 초식공룡 무리가 떼를 지어 움직인다. 이미 쌓아 둔 광물 더미와 로봇들에게도 접근을 하였고, 외계인의 공격대형을 뚫고 초식공룡무리가 달려들었다.
“제길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클클.”
“저들을 막게 동료들을 더 부르라고. 클클.”
외계인 무리가 우주선이 있는 방면에서 로봇과 무기를 가지고 다가온다. 모든 외계병력이 공룡무리를 막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이제 우주선 쪽에는 병력이 거의 없었고 철준은 이를 이용해 빈틈을 노렸다. 공룡들에게 위험을 전가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공룡들이 외계인을 물리쳐주기를 바라기도 하였고, 커다란 타격을 입히기를 바랐다.
“저희에게도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제야 영훈이 철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른 일행도 한숨을 내쉬며 철준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철준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외계인이 공룡의 질주를 막으려고 집결한 동안 철준 일행은 비행선에 잠입, 에너지원을 훔쳐 달아났다. 물론 외계인이 탈 비행선 연료까지 꺼내어 케라에게 싣고 바닷가 절벽쪽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케라를 건드렸지! 녀석들아, 여기서 평생을 살아라."
"너희들은 이제 엿 됐어."
멀쑥한 정호가 험한 말을 내뱉었다. 바다에는 무서운 포식자. 에라스모사우르스가 산다. 에너지원을 찾지 못한다면 외계인들은 이곳에 영영 발이 묶일 것이다. 철준 일행은 자신들이 사용할 에너지원을 남겨둔 채, 바다로 모든 에너지원을 던져버리고 자신들이 타고 온 비행선으로 되돌아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하늘에서는 불길한 혜성이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들고 있었다.
"그들이 저희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저쪽에서 로봇들이 쫓아옵니다."
정호가 이야기하자 영훈이 말을 받는다.
"우리가 그들을 따돌려야겠어. 숲속으로 들어가면 가능할거야."
영훈이 주먹을 움켜쥐며 말하였다.
"철준 아저씨 그쪽을 부탁합니다. 현준아 부탁한다."
"네 맡겨만 주세요."
현준이 듬직하게 대답한다.
"꼭 살아 돌아와야 해. 형!"
"미안하네. 내가 가야 하는 건데."
"걱정말아요. 아저씨. 저희는 군인이예요."
"정호야, 가자."
영훈과 정호는 누리와 검이의 등에 옮겨 타고 숲으로 들어간다.
귀환
솔과 철준 그리고 현준은 에너지원을 비행선에 옮겨 싣고 사용한 에너지원과 새로운 에너지원을 교체한다. 마중나와 있던 다희와 혜정은 영훈과 정호가 없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들은 유인하려고 돌아갔어. 꼭 살아 돌아올 거라고. 걱정하지 마. 오면 바로 떠날거니까. 준비해두도록."
그들은 이러한 날이 올거라 예상하고 외계인의 비행설명서를 샅샅히 파악해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떨렸지만 그래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예"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없이 걱정속에서 모두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솔과 다희는 정들었던 백악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케라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잘 있어. 다치지 말고."
솔이 케라에게 팔을 두르며 말하였다."
"백악기의 멸망은 언제쯤일까? 케라는 괜찮겠지. 누나."
"그럴거야."
***
저 멀리 숲속에서 달려오는 무리가 보였고 그를 쫓는 무리도 보였다. 총 쏘는 소리와 외계인들이 쏘아대는 무기 소리로 장내는 무섭도록 시끄러웠다. 누리와 검이가 지쳐서 그러는 모양인지 저격당한 것인지 속도가 확 떨어졌다. 외계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공격을 한다. 모두 놀라 얼굴을 돌리며 눈을 감으려 할 때, 헤어짐을 예감한 케라가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외계인에게 돌진한다.
"안돼!"
"....."
***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이 모두 비행선에 올라타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케라 덕에 살았어."
한쪽에서 솔과 다희가 울고 있었다.
"녀석이 우릴 살린거야."
모두 케라의 명복을 빌었다. 솔이 죽을 운명이던 케라를 살렸듯이 케라는 그를 돌봐준 사람들을 살리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도 있듯이 외계인과의 공존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그들은 다시 현재로 돌아갈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먼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운명을 예감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