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의 사랑 아르벤 -120-

[샤이라]

나의 사랑 아르벤

Chapter.7
[Love? Zero Base Start]

그렇게 몸을 씻고, 약간의 돈을 받아 세렌의 집에서 나왔다. 오랜 여행의 끝에 기다린 것이 이런 결말이어서 그럴까, 몹시나 피곤하고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장모님이 바꿔버려 이제 허전한 뒷머리를 만지니 그동안의 일이 마치 꿈같다. 제느가 내려왔을때부터 이어진 꿈만 같은 기억. 그리고 이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반지 하나.

"하아…."

유일하게 아직도 왼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그 반지에서 금방이라도 제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감정이 느껴질 것 같은데…. 외치면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곁으로 와줄것만 같은데, 내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반지는 그냥 차가운 빛만을 내고 있을 뿐이다.

"으흑…."

그때, 그날 이후로 제느 없는 아침은 상상도 못해봤는데…. 강제로 당하던 키스가 아직도 어색하고 제느의 가녀린 몸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견딜 수 있을까? 내일 아침을, 나를 위해 활짝 웃어주던 그녀가 없는 시간을?

"에이 씨! 일주일 후면 온다는데 웬 궁상이람."

생각을 하다보니 진짜로 그렇다. 제느가 자기 입으로도 일주일이라고 했으니 일주일 후에 볼 걱정만 하면 될것을…. 내가 너무 심각한가? 아니다. 제느가 그렇게 어이없이 간게 너무 충격적이었어.

"후우. 뭐 어찌됐든 잘 풀리기만 해라."

지금은 이런 말 밖에 할게 없어. 그나마 제느의 일주일이란 기약도 없었다면, 장모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로 떠나가서 다시는 볼수 없는 거라면 난.

"우욱…."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목이 메어오며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한다. 입을 막고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다. 왜, 왜 제느는 이런 선택을 한거야?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돼잖아. 진작에 나에게 가르쳐주었다면, 그렇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이렇게 둘 다에게 상처 입힐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나 상처입고서 그 가는 몸 어디에 더 상처날 곳이 있다고, 이렇게 되는거지?

"크흐흑! 으윽…."

제느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나 아프게 가슴을 찔러온다. 이렇게나 허무하고 공허할 줄은 몰랐다. 그녀를 사랑했던만큼 그 아픔이 큰건지, 마음이, 생각이 갈갈이 찢길 것만 같았다.

"얘! 너 얼굴이 왜이러니? 울었어? 아유 눈이 아주 퉁퉁 부었네."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 없었지?"

2주동안 집 나간 아들 어디 갔었는지 신경도 안쓰는 거야 뭐야? 집으로 오는 내내 울어서 퉁퉁부은 얼굴을 한 나를 2주만에 처음보는 어머니는 그렇게 난리를 쳤다.

"하아. 피곤해요. 그냥 잘래요. 밥은 먹었으니까 됐어요."
"얘!"

죄송하지만, 불효막심하지만, 신경쇠약증이라도 걸릴것 같아 도저히 어머니의 말을 받아줄 수가 없다. 그리곤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제이로느."

불러도보고, 침대에 손가락으로 글씨도 썼다. 4달, 그녀와 같이 지낸지 4개월, 이제 100일을 조금 넘긴 우리…. 그 짧은 기간동안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이리도 완벽하게 앗아갈 수 있는 걸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확실히 제느는 예쁘지만…."

외모야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만 하지만 단지 외모에 반해서 이렇게 가슴이 들끓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런 것 가지고 이런 상실감을 느낀다면 그건 그냥 변태다.

"돈? 고운 마음씨? 여신이라는 것? 옛날의 인연? 결혼반지?"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따져봤지만 딱히 이거다랄 것도 없고 설명도 되지 않았다.

"제느, 제느, 제느, 제느…."

젠장. 제느가 죽던 모습이, 그 모습이 또 떠오른다. 다시는 보기 싫은 그 끔찍한 기억. 어디 제대로 상처날 곳도 없는 한줌도 안되는 몸이 찢기고 비수가 박히고…. 내다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제느의 빈자리 때문에 더 선명히 기억난다. 앞으로 일주일. 정말 견딜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일어나 걷지라도 않으면 그녀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거 아닐까?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랑이란 갈고리로 내 마음을 앗아 갈기갈기 찢어버린 그녀를?

* * *

"…."

아침에 혼자 눈뜨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누운채로 옆을 팔로 쓸어봐도 아무도 없다. 역시 없구나. 혹시 눈뜨면 옆에 누워있지 않을까 싶어 맨날 기대했는데. 근데 왜 이렇게 허탈하지? 그 안가던 시간도 다 가고 이제 내일이면 다시 볼 텐데 그래도 너무 허탈하고 기가 막힌다.

"후우."

지난 일주일, 백년 같은 일주일 동안 매번 이렇게 왔다가는 식이다. 방학도 다 끝나가고…. 남의 집 대문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를 몇차례. 제느가 약속한 날짜는 내일로 돌아왔는데, 분명히 설레야할텐데 눈뜨자마자 혼자였던 것이 너무 싫고 막상 제느랑 만나서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건지 그것도 두럽다. 제느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화나서 봐주지도 않으면…. 만나면 그냥 무조건 무릎 꿇고 빌어야겠다.
그래도 오늘도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얼른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마냥 손놓고 앉아 제느가 오길 기다리느니 내가 먼저 가봐야지. 매도 먼저 맞는게 좋은거니까.

"흐음."

다녀오고 나서 느끼는 건데, 내 감각이 굉장히 넓은 영역으로 확장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을 걷고 있으면 발 밑으로 흐른 지하수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고 맑개 개인 하늘인데도 비가 오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단순히 지각능력이 높아졌다고 하기에는 설명 안 되는 점이 많았다. 예를들어,
짹짹!
짹짹거리는 새소리부터 개가 짖는 소리까지 주위에서 소리를 내는 동물들의 소리에서도 확실한 의사표현과 그것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나무와 풀이 뿜어내는 냄새만으로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몇 일 전에 내 뒤에서 말하던 것이 개라는 걸 깨닫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 거지만 지금도 들려온다. 가로수에게서, 이름모를 풀에게서, 가지 위에 앉은 새와 어둠 속에 숨은 고양이에게서 극도의 경의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의미는 너무나 뚜렷했다. 신이여, 신이여, 신이여.
그리고 최초로 생긴 놀라운 능력.
길거리에 내리쬐는 생생한 햇빛. 한여름의 햇살. 그건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인데, 이제는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 되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하늘에서 내리쬐는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여름의 햇살이 내 손이 가는 곳마다 아름답게 휘어지며 너울거렸다. 이건 마치 맑은 물 속에 손을 넣고 파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데, 하얀 햇살이 내 손에 따라 부서져 무지개처렴 색이 변하며 너울거리는 모습은 이 세상의 어떤 예술작품보다 신비로웠다.

"12년 동안 배운 물리법칙은 죄다 뻥이었네."

물론 뻥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손으로 빛을 휘게 하고 햇살을 부서트려 무지개빛으로 만드는 걸 보면 누구도 뻥이라고 하지 않을 사람 없을 거다.
손을 휘둘러 빛을 제자리로 돌리곤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알지도 못하는 능력보다는 제느를 보는게 우선이니까.
눈치도 없이 내 어깨에 와 앉으려는 참새들을 내쫓으며 걸어 전철역에 당도했다. 그리고 슬쩍 뒤를 곁눈질해보니 아까부터 계속 감각을 거슬리게하며 따라오던 검은색 중형차가 역광장에 멈추는 게 보였다. 도대체 뭐 때문에 따라다니는 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흘 전부터 나타나서 내가 집 밖에 나설 때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호위같은 거야 아닐테고, 혹시 미행? 납치라도 하려나? 물론 덮치려면 충분히 덮칠 기회도 많았는데 가만히 있는 걸로 봐선 나쁜데 목적이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따라다니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조심해서 나쁠건 또 없다.

"제느 때문인가?"

표를 사고 역안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TV에도 나오고 했으니 이상한 녀석들이 따라 붙을 수도 었고, 18세 이전에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사라았으니 그 기간동안 알던 사람일수도 있는데다 가장 걱정이 되는 건 그녀가 악마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사랑의 여신님이 있어 함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저번에 제느에게 들러 붙어있던 악마의 경우도 그렇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거니까. 더구나 직접 사람인걸 확인한 것도 아니다.

"갔나?"

역 플랫폼으로 올라오니 더 이상 위험신호를 보내던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 기우였나? 계속 따라왔으면서 어째 오늘은 역에서 추적하질….

"허억!"

갑자기 예고도 없이 뭔가 엄청난 느낌이 몸을 엄습했다. 가슴이 아려오고,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끓어오른다. 뭐야? 무엇 때문에? 왜 이렇게 갑자기 가슴이 이리도 아픈 걸까?

"아, 아아아."

손가락에 낀 반지가 번뜩였다. 거기에 박혀있는 다섯개의 보석 안쪽에서 파란 빛이 환하게 새어나온다. 이것은 분명히 그 느낌. 무릎에 힘이 빠져 도저히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회한과 기쁨이 물밀듯 밀려오고 눈물과 웃음이 주체없이 솟았다.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바로 세렌의 집. 손을 앞으로 뻗으니 지금까지 몰랐던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내 앞에 빛으로 된 문 하나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영원한 신의 길."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이런 거짓말쟁이. 일주일 후에 온다고 해놓고서. 사람을 이렇게 애타게 하고, 마르게 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기다리게 하다니, 정말 나빴어. 안으로 들어가니 약간 시원한 감이 오고 다시 발을 내디딘 곳은 푸른 잔디가 깔린 세렌의 집 마당이었다. 마음속을 헤집는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온 마음속이 다 꽉 차는 듯한 이 느낌. 정말로 그녀를 느끼고 있는데도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몇차례나 눈을 부벼야 했다.

"으악! 그렇게 아무렇게나 길을 열면 어떡해요!!"
"으응…?"

마당에 서 있던 카렌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멱살을 쥐고 흔들어댔다. 그러더니 굼뜬 내 대답에 어이가 없어졌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뭐야?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냥 제느가 빨리 보고 싶어 왔을 뿐인데 멱살 잡다니 너무 심하잖아?

"으응이 아니라구요! 대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그 사람 많은 역에서 길을 열었으니 그 사람들이 다 어찌 되었겠어요?!"
"어찌되다니, 난 그저…."

그러니까 제느를 한시라도 빨리 보려고 한 것뿐인데? 내 말에 카렌이는 눈썹을 휘며 입속으로 뭐라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훅하는 소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곤 생견 보이지도 않던 레시아의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얼굴은 졸린 사람의 극치로 잔뜩 찌푸려져 있고 머리카락도 제멋대로 흐트러져 산발인데다 눈곱도 잔뜩 껴있다.

"이모부. 카렌이가 화낸건 이모부가 사람이 너무 많은데서 길을 열어서 그래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네요? 흐아암! 하여튼 길은 흡인력이 있어서 주위에 약한 영혼들이 있으면 빨아들여서 이 차원이나 차원 사이의 틈으로 날려보내요. 인간 같은 경우 워낙 약한 영혼이라 본체째 잔려가는게 보통이고 그럴경우 이 우주의 질량비가 틀어져서 뒤틀려 깨져버릴 수 있답니다. 뭐 우리한테는 잔소리 한번 들으면 끝날 일이지만 여기 생명들한테는 세상의 멸망이잖아요. 그래서 언니가 차원계면으로 간다음 헤매고 잇을 인간들을 구출해 올거예요. 물론 이세계로 뭔가 이상한게 넘어와도 안되겠죠? 그러니까 앞으론 그런거 함부로 열지 말아요. 정말 큰일나요."
"응? 으응?"
"으응이 아니라 이제 이모를 만나봐요. 흐아아! 졸려. 가서 자야겠다."

레시아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찡긋 윙크하더니 옆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공중에 떠도는 이 하얀거 비듬 맞지? 세상에 얼마나 안 감았으면 여신의 머리에서 비듬이 다 떨어진다냐. 하긴 다시보니까 카렌이나 아렌이처럼 찰랑찰랑 거리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잔뜩 떡진 머리칼이긴 했다. 신이라고 해도 안 씻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그리고 그런 조카의 은빛 머리결 뒤로, 하얗게 빛나는 빛구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

제느잖아? 정말 믿기질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제느였다. 분명히 그녀가 맞았다. 다만 인간형이 아니고 해처럼 빛으로 된 구슬이었다.
가까이 가서 넋 놓고 보니,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녀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그 어디에도 그녀라는 특징은 하나도 없지만 온곳에 그녀가 보였다. 빛 구슬 그 어디에서도 손이 잡히고 입술이 닿을 듯 하다. 사람의 형체란 건 전혀 없지만 어줍잖게 표현하자면 그건 제느 그 자체였다.

"제느!"

내 음성이 들렸기 때문일까? 그 빛구슬이 은빛 눈동자가 되어 날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마져 느껴진다.

"아아!"

아니, 착각이 아니다. 정말 놀랍게도 날 바라보는 시선이다. 나를 알아보고 나를 살피는 그 눈길에 너무 감격스러워 아무런 생각도 안난다. 제느가 날 기억하고 있어….

"잠시만, 뒤로 와줄래요?"
"어엇!"

뒤에서 세렌의 목소리가 들리며 순식간에 제느와 나 사이가 몇걸음 쯤 멀어졌다. 어떻게 된거지? 뒤를 돌아보니 아이를 안고 있는 세렌이 손가락으로 제느 쪽을 가리켰다.

"조심. 신성이 흩어지면 굉장히 위험해요. 어떠한 접근도 불가하니까, 보고 싶더라도 조금만 참는 게 어때요? 안 그래도 친근한 아르벤이 제이로느를 만지게 되면 그대로 제이로느는 아르벤의 일부가 되어버려요."
"예?"

합쳐, 진다고? 그때 제느로부터 하얀 안개 같은 것이 주위로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저것은, 신성. 신으로서의 신격을 가지게하는 신성이다. 뭐라 설명들은 적은 없지만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신성, 이라고요? 신으로서의 신성?"

세렌은 내 질문에 제느로부터 흘러나와 주위에 퍼지는 안개를 가리켰다.

"자. 지금 제이로느는 당신을 보곤 잠이 깨고 있어요. 그건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건 아르벤의 개입이 있어서 그런거예요. 모든 것을 치유하는 극도의 평정상태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왔으니 당연한거죠. 저 안개는 제이로느의 신으로서의 신성. 그녀의 자아의 버팀목이자 근원이랍니다. 내가 이렇게 주의를 주는건, 자아에서 배제된 신성이란 것은 극도로 불안정해서 흩어질 경우 영영 사라지는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녀의 자아, 인격 그 자체가 깨어져 사라지는 위험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에요.
"자아가 깨진다는 건 제느가 정말로…."

말해놓고 차마 끝을 이을 수가 없다.

"그때는, 정말로, 제이로느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녀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이."
"그럼 이제 난 어떻게 해야돼죠?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이런 일이…."
"아니요. 아무것도 안해도 돼요. 아르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답니다. 제이로느의 꿈이 끝날때까지,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그저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고 지켜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꿈이요?"
"아, 신에게 있어 꿈이란, 이런 저차원의 우주에서는 실재하는 거랍니다. 인간의 꿈이 축적된 기억에 대한 정리와 심리상태를 나타낸다면, 신이 꾼다고 하는 꿈의 정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죠. 세계의 근본, 그 뿌리를 간단히 뒤흔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우리는 그 생각과 의지가 하나의 현실이랍니다. 더욱이 그것은 이세계와 연결될 수 있어요. 그냥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꿈이라고 부를 뿐이죠."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생각이 현실이고, 그것이 여기와 연결된다는 것? 단순히 그런 전제만 가지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 생각이 현실이라니, 무슨 공상구현화야? 그럼 결국 제느의 지금 상태는 뭐를 말하는 거지?

"그럼 제느의 꿈이란건 대체 뭐죠? 무엇 때문에 제느가 저러고 있는거예요?"
"흐음. 더이상은 비밀. 제이로느가 말해줄거예요. 그럼 난 선약이 있어 이만…."
"어어! 아직 안 끝났잖아요! 하나도 이해 못하겠는데!"
"아르벤이 제이로느하고 서로 죽고 못살 듯, 나도 카엘이랑 죽고 못 산다구요. 데이트 하러가야 되니까 제이로느 잘 지켜줘요."
"앗!"

끝끝내 붙잡는 나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세렌은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제느와 나만 남았다. 데이트? 어이가 없어서 정말. 하긴 생각해보니 나랑 제느가 연인이듯이 세렌이랑 카엘은 부부잖아. 이거 뭐라 말을 못하겠군.

"어휴."

정말 한숨만 나오네. 유일한 조력자는 데이트한다며 가버리고 다시만난 제느도 저 상태고…. 정말로, 눈 앞에 빤히 있는데도 다가가질 못하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가서 손이라도 잡고 싶은데 세렌의 경고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저런 모습을 한 제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마음대로 다가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진짜로 지켜보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아…."

문득 생각이 나 반지를 보았다. 한쌍으로 만들어져 제느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반지는 박혀있는 푸른색 보석에서 깊은 빛을 발하며 묵묵하게 끼워져 있었다. 마치 그녀와 나의 사이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아으. 한심해. 눈 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이런 반지나 만지작거리며 기대야하다니, 한심해 죽겠다 김현신!
시계를 보니 2분 지났다. 시간 정말 안가네. 이대로 언제까지 기다려야 제느가 깨어나는 거야? 설마 이상한 퍼포먼스라도 해서 제느를 웃겨야 하나?

"제이로느!"

맨날 애칭으로만 부르다가 이제는 잊어버릴 듯한 이름을 부르니 흐드러지게 안개가 흐르는 빛구슬에서 다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저 상태에서도 알아듣고 이렇게 반응한다는 거, 신기할 따름이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 지나가는지 모르겠고, 일단 만났다고, 눈앞에 있어서 안심해서인지 다급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지루지루, 안절부절. 으아. 빨리 손이라도 잡아봤으면 좋겠는데.

"하여튼 팔자 사나워서. 그렇지 않아? 나도 그렇고 제느도 그렇게, 그 네달동안 죽어라 생고생한 결과가 이거라니 적어도 몸 성히 무사히는 돌아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아직도 더 고생할 일이 남았으니…."

별로 대답은 없다.

"나 말이지. 정말 충격 많이 받았어. 아마 보통 사람이었으면 혀 깨물고 죽었을걸? 나니까 이렇게 눈물 빼면서도 버티고 있지. 솔직히 지금도 많이 아파. 이제 갓 생긴 깊은 상처처럼 아려오는 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빨리 제느가 깨어나서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싹 나을 것 같은데 너는 그러고만 있으니, 뭐라 말이라도 해줘. 보고 있으면."

듣는 사람이 저상태인데 무슨 소용이나마는….

"다른 이야기 할까? 솔직히 우리 고생한 이야기는 재미없지? 허구언날 다치기나 하고 쫓겨다니구, 더구나 그 추운 겨울에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녔다는 게 믿기질 않아. 자기는 그 엄동설한에 여름옷 입고 어떻게 돌아다닌거야? 하긴 뭐 춥지도 않은 것 같더라. 뭐, 그러니까…."

손가락을 꼽아보니 그곳에 있었던 시간을 더하면 5일 가까이, 이제 방학이 다 끝나가니 빼면 한달 지났다.

"하나, 둘 셋…. 그래, 우리 처음 만난 때 기억 나? 하긴 제느한테는 처음이 아니겠구나. 그래도 난 처음 만났을때니 그렇게 말할래. 하여튼 그때, 우리 학교로 찾아왔었잖아. 그땐 정말 시간이 멈춰버린줄 알았어. 세상에 그렇게 예쁜 사람이 정말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더구나 그애가 나에게 와 사르락 안겨들었을 때는 심장이 멈춰서 터져버리는 듯 했어. 그때 기억하고 있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와서 도저히 못참겠어. 나 좋다는 예쁜 여자애 하나 생겼다고 무슨 정신을 그렇게 놓았을까? 물론 미모가 너무 과하긴 했지.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릿속이 하얘질만큼.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랑 인연이 없었던 탓도 있고. 그래도 불가사의야. 여기까지 오다니."

흐음. 이게 웬 궁상이람. 보나마나 제느는 듣지도 못할텐데. 아냐. 나 혼자 떠들어도 이렇게 이야기라도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매일 아침 혼자서 침대에서 죽을상을 하고 뒹굴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니 충분히 행복하잖아.
시계를 보니 10분 지났다. 무슨 말을 또 할까?

"사실, 너무 좋아서 마냥 헤롱거렸지만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냐. 자기는 날 찾아내는데 3만년이나 걸렸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뭐랄까…. 그래. 별똥별에 두 번밖에 못 빈 소원이 이루어졌달까? 뭐 그런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참 좋았어. 평소에 나도 여자친구 하나 있었으면 하고 했는데. 그래. 네 마음, 네 말투, 네 전부가 날 더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해줬지만, 그렇게 받기만 하다보니 불안해졌어."

이렇게 말하는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줄 수 없을 만큼, 깨지 못한 거야 제느야?

"자기는 나에 대해 잘 아는데 나는 제느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으니까. 더구나 일주일 전처럼 되어버릴까봐."

에이. 유치하다 유치해. 어떻게 내가 제느한테 하는 말인데 이리 닭살이 돋지?

"그래 그래! 처음에 나 제느 미모에 홀려서 아무것도 생각 못했었는데! 지금은 좀 두려워졌어. 내가 널 정말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미모에 홀린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지금 느끼는 이 감성도 거짓인 것만 같아. 반지를 빼버리면 사라져버리는, 그런 덧없는 것 같단 말이야. 네가 다쳤을때, 네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볼 때, 내가 느끼던 그것들, 혹시 반지 빼면 다 사라져버리는 거 아냐? 실제론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만들어진 느낌 같은 것 아냐?"

제발….

"어서 깨어나서…. 그렇지 않다고 말 좀 해줄래? 나 가슴이 너무 아프고 괴로워."

에이 씨. 결국엔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울게 될 것을, 혼자 괜히 열 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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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좀 늦었습니다. 요새 이것저건 만들고 일하고 하느라 글이 -0-;;;;

그래도 아직 비축 분량은 하아아아아아아아안참 남아서 앞으로 집중만 하면
연참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여튼 그건 됐고,

나의 사랑 아르벤을,

나우누리 대신 드림워커에 올려볼까 합니다.

라니안은 게시판이 날아가버렸고, 나우누리는 암담하군요.

더구나 돈도 없어요 -_-;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샤이라]

..........전개가 너무빠른 감이(후다닥=3=3=3)

[brack]

..........올라온 것 입니다.

[시체굽는아기]

..........올라온 것 이군요.

[까망나래]

흐아아아.. 오래 기둘렸..... (감사합니닷);;;

[까망나래]

흠..드림워커도 괜찮죠. 항상 가는 몇 군데...커그, 드림워커, 다세포, ... 아! 조아라..도 괜찮지 않나요? ujoa.com 여긴 2개 보던 게 없어져서.. 그 이후론 안 가고 있지만요. 훗훗....비축분...연참이라... 굳게 믿겠습니다.

[제이로느]

연참에 한표-_-.... 나우누리.. 요새 암담한건 사실이죠-_-.. 까망님 말처럼 커그나 조아라 같은곳도 괜찮은듯,

[까망나래]

움..^^;; 커그랑 다세포는 그냥 자주 가는 사이트 생각하다가 쓴 거구요. 커그 작가님들은 서로 친분이 있으신.. 연재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조금 그런 듯 하더라구요. 안그래두 1주 전 쯤인가 어떤 분이 물어보셨던 질문이기도 했는... ^^;; 드림워커, 조아라.... 가 좋을 듯 해요 ^^*

[BSK와 LOCO]

옷 형 대단하네요. 여름의 마지막 고비 더위 조심하세요!

[brack]

우리는 연참을 원한다.....

[시겔]

..........몇편더있다..후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