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 밥솥

[서잿골]

주전자 밥솥

진부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이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딸이 “엄마, 우리도 가족끼리 영화 한번 보러 가요” “그래, 그럼 한번 가 볼까” 권한 장사 밑지는 법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영화 ‘국제시장’ 이 지금 한창 뜨는 영화라고 했다. 이 영화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얘기다. 이 기회에 지난 세월을 다시 한 번 상기(想起)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찾아 가다 보니 극장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 영화는 이미 시작 되고 있었다. 만약에 남편과 단둘이 갔으면 관람은커녕 영화관도 제대로 찾지 못 했을 것이다. 옛날 극장가 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요즘의 영화관.

더듬더듬 제자리를 찾아 앉으려는 바로 그 순간 고막을 찢는 것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 왔다. 애타게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임을 말해 주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의 피난길은 그야말로 눈물과 절망과 몸부림으로 범벅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없이 흘러가버린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 마을 앞 갱변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 그들의 빨래를 도아주고 얻은 비누나 껌, 깡통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던가. 그런가 하면 세상 어느 곳이든 전쟁을 하는 나라는 구석구석 예상 못한 일이 생긴다. 복병처럼 나타나는 미군 때문에 밤에는 부녀자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고 장년들이 골목을 지켰다. 어떨 땐 낮에도 닥치는 바람에 재빠르게 숨어야 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 집에는 건너 방 방바닥 밑에 땅굴을 만들었다. 가끔 그곳에 숨고 입구를 막았다. 입구를 막는 일을 어린 내가 맡은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음력으로 칠월칠석날 이었다고 한다. 막 점심을 먹으려는데 빨리 피난을 가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기는 남쪽, 마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당장 큰 난리가 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차를 타기 위해서는 한시 바삐 집을 떠나야 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는 없는지 살핀다. 막상 떠나려하자 앞서 철이 든 언니가 울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찾아 온 불행에 어떤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일곱 살 밖에 안 된 나는 피난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오빠보다 먼저 가려고 달음박질을 했다.

집에서 기르던 소는 고삐를 풀어 어디든지 갈수 있도록 해 주었다. 허겁지겁 마치 캠핑을 떠나는 것 같은 간단한 짐만 챙겨 떠났다. 평소 큰 무쇠 솥으로만 밥을 해 먹던 우리 집은 작은 냄비 하나도 없었는지, 피난살이 내내 주전자에 밥을 해 먹었다. 문제는 솥보다 오히려 양식이 없었다. 오빠는 한 숟갈이라도 더 먹기 위해 밥을 꾹꾹 눌러 놓고 더 달라고 졸랐다. 엄마 젖을 뗀 세살박이동생은 제대로 먹을 것이 없어서 밤 낮 없이 울었다. 우리 작은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 언제까지나 흉을 보았다. 어디 갖다 버리고도 싶었다고 말이다. 그랬던 여동생은 몇 해 전에 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가슴에 묻은 동생, 형제중 제일 똑똑하고 재주도 많았다. 오늘따라 문득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진다. 어쨌든 주전자 밥솥은 지금까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내 몫의 약간의 양식과 방금 입을 옷 몇 가지를 아버지께서 내게 따로 챙겨 주었지만 사람들 속에서 내 보따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콩나물시루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가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했을 뿐이다. 보따리가 없어진 것도 차를 내린 한참 뒤에야 겨우 알았다.

피란민이 타고 가는 기차는 뚜껑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몸을 기댈 수 있는 차창도 없었다. 자갈을 실어 나르던 화물차였는데 자칫 잘못하면 차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의 상태였다. 그러니 어린 내가 등 뒤로 멘 보따리까지 생각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였다. 그 당시 엄마는 동생을 등에 업고도 또 짐을 든 임신 5개월의 몸이었다.

맨 처음 도착한 피난지는 경남 김해 한림정역 근처, 끝물이 다 된 어느 넓은 참외 밭이었다. 다행이 피난은 왔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러다 임시로 지은 피란민 수용소에서는 동네별로 가족끼리 맨땅에다 가마니만 깔고 그대로 잠을 잤다. 그것도 여름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는 혼자서 무엇 하러 나갔다가 길을 잃고 혼자 울고 있었을까. 마침 이웃 동네사람이 부모님께 데려다 주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때 잘못 되었다면, 나도 이산가족 찾기에 나가는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우리는 그리운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금고기’ 이야기에 나오는 할아버지 집처럼 그해 동네에서 최고라고 지었던 우리 집은 온데간데없고 고방에는 아직껏 연기가 나고 있는 곡식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적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일부러 온 동네 전체를 불사라 버렸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덕수’처럼 도회의 시장에서 온갖 수모를 겪거나 모진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돈을 벌기위해 파독광부, 간호원으로 지원 하지도 않았고 또 베트남으로 원정 취업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폐허가 되어 버린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부모님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또 졸라맸다. 막내 동생은 얼기설기 지은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벌써 ‘국제시장’ 이 관객 1200만을 돌파 했다고 한다. 20~30대도 결코 적지 않았다니 더욱 놀랍다. 요즘 젊은이들도 현실이 힘들다 보니 옛날을 탐닉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옛날 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묘하다. 어른들도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겪을 때는 힘들었지만 어떤 때는 좋았던 시절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너무 철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눈물 나게 서러운 것이 피난 생활이란 것도 잘 몰랐다. 비록 배가 고프고 집도 없었지만 곁에 엄마,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나도 어느 듯 칠십이라는 나이를 먹고 보니 마지막에 ‘덕수’가 말한 것처럼, 처음부터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그 일을 겪은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려움 없이 자란 지금의 세대보다는 우리들이 인내심도 강하고 불편함도 훨씬 잘 참아 내는 강단이 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그런 것이다. 나보다는 자식이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폐허의 그 땅에서도 부를 이룬 이 나라, 아무튼 우리 젊은이들도 끝까지 용기를 가지고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국제시장.hwp

[산나그네]

대단합니다
감동적인 글 잘읽었습니다
일취월장입니다

[다도해]

선생님 저는 국제시장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고
전쟁의 상흔도 겪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수필 한 편으로 암울했던 그 모진 피난시절을 가슴 뭉클하게 잘 쓰신 글을 읽으니 영화 보다 더 실감이 납니다
꾸준히 글을 쓰시는 선생님 대단 하십니다
오늘 저녁에는 막걸리 한 잔 하면서 ^^굳세어라 금순아^^한곡조 뽑고 싶습니다

[노을(정둘시)]

격동의 시절을 지내오시고
그럼에도 늘 따뜻한 가슴으로
글쓰기에 매진하는 선생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
실감나게 써 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마리-강천]

잊혀져가는 역사공부를 다시하는 듯합니다.
미군이 광려천에 주둔했다는이야기도 처음 듣습니다.
알수없는 시대의 이야기를 글로서 풀어내 주시는 선생님,
역시 수필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그 소재가 되는 모양입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임정임]

수필은 글재주도 글재주지만 경험의 문학이라는걸 다시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예자비]

우리의 어려운 시대를 담아낸 국제시장 다시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