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국민학교 5
‘내 나이도 스물 일곱, 이제부터 사랑에 전념 할 거야’
육상부를 접어야 할 이유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정에 굶주리며 살아서 항상 집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러나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집 안 형편은 정과 따뜻함을 느낄 여유가 없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집안의 기둥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셔서 중심없이 흔들렸다.
내 어릴 적부터 딴 곳에 마음을 쓰셨던 아버지는 8년 간 밖에서 사시면서 얻은 아들, 진표를 데리고 들어오셨다.
밖에서 들어온 그 손자를 유독히 미워하셨던 할머니는 눈만 뜨시면 진표를 혼내는 게 일이고, 진표는 울면서 어버지 찾아 맨발로 도망가는 게 일과였다.
“할머니, 진표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세요 ?”
“저놈 에미가 우리 집안 다 망해놨어. 저놈만 보면 속에서 불이 나”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기 자식 잘못은 모른다고 하던가.
무슨 말도 할머니께는 소용이 없었다.
엄마나 나, 내 형제들은 진표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만, 진표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항상 큰 소리와 다툼 속에서 집안이 안정될 리가 없었다.
가세는 기울어져 빚은 어깨를 짓눌렀고, 마음은 암울함으로 채워졌다
천안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들은 교복을 남들에게 얻어 입어야 했고 아침마다 버스비를 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9km를 걸어가야 했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었다.
머리가 커지면서는 아버지와 반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었다.
아버지께서는 술과 담배를 안 하셔서 나는 고생고생하면서 억지로 배웠고, 밥 먹는 버릇도 아버지와 반대로 할 정도였다. 아버지를 멀리하려 노력했었다.
그런 내가 아버지께 사정을 했다.
“아버지, 이제는 지난 세월 다 잊으시고, 집안일에만 신경을 써주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들은 체도 안 하신다.
다 큰 아들이 사정을 해도, 애원을 해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내가 나가기로 작정했다.
그러려면 결혼을 해서 독립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내 가정을 이루고 모셔들이자’
그럴 때 내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처음 볼 때 ‘예쁘게 생겼네’ 정도였다.
나는 무슨 일에 미쳤을 때는 그 것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육상부에 미쳐있을 때 인지라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내 귀에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나. 매일 내 얘기만 하고.....
그제서, 관심을 갖고 보니 인형같이 예뻐 보인다. 얌전하고 똑똑하게 보인다..나를 대하는 그녀의 눈치도 다르게 보인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은 눈빛부터 달라진다는 것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마음 속에는 담아 두었다. 그러나 그 때는 거기까지 뿐
시합 날이 다가오면서 오로지 시합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시합이 끝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저 여자와 사랑을 하자. 결혼해서 집을 나가자’
철이 없어서 그것이 간단하고 쉬울 줄만 알았다.
어쨌든 사랑은 시작됐다. 내가 마음을 주니 그녀도 성큼 달려와 주었다.
한 번 두 번 만남이 거듭되며 정은 깊어갔고, 내 마음은 송두리째 그녀에게 가버렸다. 텅 빈 마음은 행복이 찾아와 채워줬다.
세상이 천국 같았다.
우리들의 사랑은 순탄할 줄만 알았다.
그렇게 불같은 사랑이 얼마간 지속되었을까 ?
언젠가부터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변함없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 간다. 어떤 때는 조금은 멀리하려함도 느껴진다.
‘뭔 일이 있구나’ 나도 걱정이 되었다.
“왜 그래 ? 무슨 일이 있어 ? 얘기 해 봐. 내가 이렇게 속이 타잖아”
한 동안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내 마음만 모두 주면 우리들 사랑은 한없이 뜨겁게 활활 타오를 수 있을텐데....”하며 고개를 떨군다. 가슴이 덜컹인다.
왜 그러냐고 아무리 물어도 그 다음의 대답은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