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 그 생명권의 존재에 대한 나의 시적 推移性
남 진 원
내 나이가 71세, 태어난 햇수로는 72세이다. 돌아보니 어찌 이리도 많이 걸어왔는지, 스스로 놀라울 뿐이다.
1976년 돌팔이 병원에서 위장 수술을 하고 난 뒤에는 곧 죽을 것 같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을 갖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죽음에 임박해서 나는 세종대왕을 생각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했다. 위대하다고 하던 그 분들도 모두 돌아간 것을 재차 확인하였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죽는 들 무엇이 슬프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였고 마음이 차분해졌던 것이다.
그 후로 몸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매번 조심스럽게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창 나이인 30대엔 뛰어다니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40대 초 대학원을 다닐 때엔 관동대학교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에 얼마나 숨이 벅찼는가.
생명권의 존재성에 대한 글을 쓰려니 문득 그때 그 일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20대, 23세 때인 1976년 3월 경에 쓴 시조 한 편이 그 해 12월 「샘터시조상」에 뽑혔다. ‘늦겨울 아침’이었다.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독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나도 모르게 쓴 내용이지만 그 속에 내 사상의 핵이 담겨 있었나 보다. 눈 내린 겨울의 상황 속이다.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신나는 행진! 20대 초, 내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마냥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눈이 하얗게 깔린 벌판이니 말이다. 그러나 늦겨울 중에도 아침의 신선한 햇빛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건 기쁜 일임에 틀림 없다. 여기에 더하여 양지쪽 흙담 밑에서는 봄이 움트고 생명의 옴을 볼 수 있는 희망의 삶을 보았고 노래하였던 것.
이러한 희망의 싹은,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내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쓴 작품이 「그날이 오면」이었다.
그날이 오면
죽음은
옷을 벗는 일이다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내 목숨의 빈 잔 거두어갈 때
당신의 손에 끌려가지 않고
당신의 손에 따라가지 않고
다만 내 스스로
걸어가도록 준비하게 해 주소서
나는 당신의 나라를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찾아오는 줄은 압니다
질병과 무서움, 사고와 괴로움의 병정을
거느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남루한 옷을 벗기기 위한
당신의 예법이기에
정녕, 내가 나의 임을 사랑하듯이
그날이 오면
나는 나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렇게 당신을 맞이하여
옷을 벗으리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이런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보면서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나비가 꽃망울이 가득한 꽃밭에 날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꽃이 피길 기다리는 나비의 기다림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후유중아 심한 어느 날 관사 옆의 꽃밭을 거닐었다. 그때 그곳에 날아온 나비를 보며 이미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쓴 작품이 『 새교실 』지에서 추천 완료 된 작품이었다. 9월달에 쓴 작품을 10월 초에 보냈는데 12월호에 추천 완료가 된 것이다. 내 작품은 모더니즘의 시인으로 알려진, 문덕수 시인이 추천하였다. 문덕수 시인은 당시 대학 교수로 근무하면서, 시 전문지인 『시문학』발행인이였다.
나 비
꽃망울 가득한
꽃밭에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재
깍
재
깍
돌아가는
숨소리 들어보고
아직
멀었나
살그머니
오늘도
돌아갑니다.
』
(『새교실』, 시 추천완료 작품. 1976년 12월. )
눈 덮인 겨울을 박차고 달려오는 햇빛. 그 햇빛이 양지쪽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통해 생명의 기운을 피워내는 것.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이런 기다림은 다시 ‘봄빛’을 맞으며 희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1982년에 생각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봄빛’으로 이미지화하였다. 그 작품들은 1983년 초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봄빛’으로 당선하였고 계몽사에서 실시한 ;어린이문학상에 ‘봄빛 3장’이란 당선작품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봄 빛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옆에
산의 손 시린 물소리
마을로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 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강원일보」신춘문예 당선 시, 1983. 1. 1)
미래시 3집, 1983. 5.
봄빛 3장
손 시린 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희디흰 아지랑이에
뿌리 젖는 나무들
마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 오르는 한낮
따뜻한 것에 닿아
살 섞이는 풀과 흙
어머닌 몇 광주리
바람이고 나섰다
보릿대궁 입에 물고
하늘 동동 나는 새떼
꽃잎 파란 숨결도
햇빛 속에 날려가고
아이들 눈썹까지 말간
풀피리도 뜨고 있다
( 제2회 어린이문학상 당선작. 계몽사, 1983. 5. )
생명의 날갯짓이 구체적인 희망적인 이미지로 분화 파생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된 작품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30대 초반부터 70대 초까지 40여 년 동안의 작품 활동은 다양하였다.
60대 후반부터 70대 초에 이르러 시의 내용은 희망과 꿈, 이상의 표출이 아니었다. 작은 것에 만족해하는 그저 조그마한 삶이었다.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리라. 그것으로 시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일인지를 알 것 같았다.
이 지상에, 몸으로 나와 살아가는 기쁨의 절정 같은 것은 날마다 행복이다. 시를 씀으로써 고요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음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다.
조그마하게 살기
내 꿈은 그저,
조그마하게 사는 것
시 쓰다가 이따금
바보처럼
웃으며 지내는 거
아내 떠나고 난 뒤 힘들었지만
반찬 만드는 기쁨에
들뜨기도 하고
귀;한 꽃 보면
벗을 부를 생각에
설레는 그런 생각
내 꿈은 이렇게
조그마하게 사는 것이지.
어느 날 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 삶에 파고들던 즐거움과 괴로움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도 알았다.
삶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내것이었지만
내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니, 살고 죽음이 또한 어디 있으랴
時空이 비로자나요
處處가 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이제 내 나이, 70대로 접어든 [人生七十古來稀]의 시간이다. 생활도 삶도 새롭게 시작하는 푸른 불꽃의 시간들이다. 하루를 한 달 같이 참되게 보내고, 한달을 1년 같고 즐겁게 보내고, 1년을 10년 같이 소중하게 보내는, 모두 귀중한 시간들이 아닌가. 병드는 것도 즐거움이요, 편히 사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큰 욕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려놓고 살아가는 법은 날마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앞으로의 나의 시적 推移性은 나도 모르지만 그저 감사하고 고맙고 기적같은 날들을 향한 방향성을 짐작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