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식 때
엄마는 아파 누워있고 아버지는
일터에 계셔야해서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아 쓸쓸했다.
꽃다발과 졸업장을 들고
가족들과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화교학교까지 연결되는 긴 담을
따라 혼자 걸으며 서러움에
복받쳐 꺼이꺼이 울면서
집에 까지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16살 아이가 가여워서 꼭 안아 주고 싶다.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외식은 아닐지라도 중국집에서 단골 외식이었던 짜장면은
서민들에게 뿌듯한 외식이었다.
학창시절 어쩌다 먹었데 짜장면,
장날 시장에서 먹었던 짜장면은
배부름 이상의 음식이었다.
음식이자 '추억'을 먹은 듯 하다.
거리를 걷다가 짜장면집 간판을 보면 어린 시절 짜장면집에 들어가는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하던 때가 생각나서 혼자 빙그레 웃는다.
이젠 돈이 없어 짜장면을 못 먹는 형편은 아니다ㆍ
얼마든지 실컷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밀가루 음식이라고 오히려 덜 먹고 있다.
1882년 일본이 만든 신식 군대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았던 구식 군대가 분노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청나라는 임오군란을 해결해 준다는 핑계를 대며 허락도 없이 자기네 군대를 파견했다.
제물포에 우리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조계지를 만들고,자기네 사람들을 데려왔다.
제물포에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 중에는 산둥지방 출신이 많았다.
당시 산둥은 가뭄과 홍수가 계속되면서 농사 짓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일자리와 돈을 찾아 바다건너 제물포에 온 이들은 고향에서 즐겨먹던 '지지앙미엔'을
만들어 먹었다.
한자로 '작장면'이라고 하는데,장을 기름에 튀긴 국수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와 1954년 6.25에 참전한 중국과 외교를 끊기 전까지 지지앙미엔은 화교들만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국교 단절 후 살 길이 막막해진 화교들은 중국 음식점을 내고 자지앙미엔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름이 줄줄 흘러 느끼하고 짠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아 외면 당했다.
화교 왕송산은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옥수수와 사탕수수로 캐러멜을 만들어 총장에 섞었다. 짜고 들큼했던 총장 맛은 약해지고 단맛이 확 돌았다.
그리고 화교 주방장들은 한국인은 국수에 국물이 있어야 좋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총장에 옥수수 전분을 풀어 달짝지근 하고 걸쭉한 국물이 있는 짜장면을 만들게 된 것이다.
달고 부드럽고 고소한 짜장면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자라 뿌리내린 음식이 짜장면이다.
강릉시 용강동 서부시장 버스정류장 앞(시내방향)을 걷다가 눈이 똥(?)그레지는 입간판을 발견했다.
'짜장면 3000원'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들어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단무지,양파,춘장과 수저와 물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셀프'라고 벽에 써 있었다.
3000원 짜리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따끈한 소스가 덮힌 짜장면을 비비니 신선한 식감의 감자,양파,호박과 돼지고기 살코기가
함께 버무려졌다.
3000원을 받아 뭐 남을 게 있다고 이렇게 만들어 파는 걸까? 궁금했다.
사장님은 종업원도 없이 혼자 음식을 만들고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
배달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씀이 별로 없고 조용한 분이라 궁금한 것은 많아도 묻지 못했다.
다만 주머니 얇은 학생이 와서 한그릇 포장해 달라고 하자 포장비용은 받았지만
넉넉히 양을 더 담아 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 째 이곳을 찾았을 때도 짜장면을 주문했다.
맛은 첫번 째 먹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소스가 짜지도 달지도 않고 부드럽고 야채도 신선하고
돼지고기 비계보다 살코기를 넣으니 느끼하지 않아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다 먹은 다음 자연스럽게 물었다.
''밀가루는 강력분을 사용하나요?''
그러자 조용하던 분이 말문을 열었다.
''그럼요.좋은 강력분을 써야 탄력있고 쫄깃한 면발을 뽑을 수 있어요. 하루 전에 반죽해 하룻밤
숙성시켜 다음날 쫄깃한 면을 뽑아요.야채도 미리 썰어 놓으면 수분이 날아가서 맛이 없어요.
그래서 꼭 아침에 야채를 썰어요.''
''그런데,어떻게 3000원에 짜장면을 파실 생각을 하셨어요?''
''혼자 운영하고 인건비도 따로 나가지 않아 가능해요. 많이 팔면 되지요.그러나 무리하고 싶지는 않아요ㆍ그동안 남의 가게에서 일도 했고 목수 일도 했지요. 꼭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이 곳은 제 놀이터이고 일터입니다.
가격은 저렴해도 음식 재료는 좋은 것을 쓰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가게는 작은 데 깔끔해요. 언제 이곳에 개업했어요?''
''작년 8월에 개업해 곧 1년이 되어 가네요. 혼자 분주하게 일하다 손이 부족해 그랬는지
6개월만에 이 가게에 불이 났어요. 가게 안이 다 타고 옆 가게까지 번졌죠.
안타깝고 실망감도 컸지만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었어요.
불에 탄 집기와 폐기물을 치우는데 700만원이 들었고
다시 천장까지 하얗게 페인트 칠하고 집기 사고 옆집까지 수리를 해 주느라 1000만원이 더 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목수 일을 한 경험을 살려 식당에 탁자나 선반을 손수 다 짰어요.''
''속설에 '불이 나면 살림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했으니 힘을 내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3000원짜리 짜장면에 감동받은 마음을 담은 '짜장면 그림' 한 장을 드렸다.
좋아하시는 모습보니 다음에는 더 큰 종이에 그려서 갖다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시장 주변 상인과 직장인, 지나가던 사람들이 찾는 이곳 짜장면집 상호는 '작은 성'이다.
이름은 작은 성이나 마음 만은 어느 곳보다 '큰 성'이었다.
다음엔 매콤한 짬뽕을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