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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식물은 단연 용이다. 용은 법당 전면 기둥과 처마 밑을 비롯하여 법당 안의 닫집, 천장, 기둥, 벽, 그리고 계단 소맷돌 등에 주로 장식된다.
용의 외형을 보면 머리는 소, 뿔은 사슴, 배는 뱀,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으며 수염과 여의주, 발톱을 갖춘 신체적 특징이 있어 중국 전래의 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서 성격이나 상징 의미도 서로 같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 사찰의 용은 예전부터 중국에서 상상되어오던 전통적인 용의 모습에 불교와 함께 전해진 인도 용의 성격과 불교적인 의미가 혼합된 또 다른 개념의 용인 것이다.
힌두교에서 전래된 불교의 용
불교 발상지인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뱀을 신격화한 용신(龍神)이 등장한다. 인도 용신의 개념은 원래 코브라 중 가장 큰 킹코브라의 형상에서 생겨났다. 아난다(Ānanda)라는 용신을 그린 힌두교의 채색 그림을 보면 하나의 몸체에 일곱 개의 머리를 우산처럼 펴고 있는 뱀이 등장한다. 또한 6세기경에 건립된 남인도 마말라푸람의 석굴사원에 있는 부조상에도 비슈누(Viṣṇu)신과 함께 용신이 등장하는데 역시 머리가 일곱 개인 코브라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흥국사 대웅전 계단의 용두
머리를 곧추세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반야용선의 선수를 상징한다.
뱀을 신격화한 인도의 용신은 불교 성립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護法神)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용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과는 달랐다.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되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용신은 인도 용의 모습을 벗고 중국 전통 용의 도상(圖像)을 따르게 되었다.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중국의 예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불교에서 용신 또는 용왕은 천왕팔부중의 하나이다. 천왕팔부중은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를 말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불경에 의하면 여덟 용왕이 있다고 하는데, 『묘법연화경』 「서품」(序品)에서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들으러 온 참석자들을 열거한 대목을 보면, “여덟 용왕이 있었으니 난타용왕과 발란타용왕과 사가라용왕과 화수길용왕과 덕차가용왕과 아나바달다용왕과 마나사용왕과 우발라용왕이 각각 여러 백천 권속과 함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경에 나오는 이 여덟 용왕이 중국 전통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와 다른 의인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럴 경우 여덟 용왕의 모습이 각기 다른 도상적인 특징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극락을 향해 가는 반야용선의 선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용의 형상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법당 어간어간(御間 ; 전면의 중앙 칸)의 양쪽 기둥머리에 조각해놓은 용두(龍頭)와 계단 소맷돌에 장식된 용이다. 법당에서는 전면 바깥쪽에 용두를, 안쪽에 용미(龍尾)를 장식한 경우와 건물 앞쪽에 용두를, 뒤쪽에 용미를 장식한 경우가 있다. 이때 용두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선수(船首)를 상징한다.
불교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말한다. 또한 ‘반야’(般若, Prajñā)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말하며, ‘바라밀다’(波羅蜜多, Paramitā)는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1) 끝부분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라는 주문(呪文)이 있는데, 당나라 승려 법장(法藏, 643~712)은 이 주문을 “갑시다. 갑시다. 피안으로 갑시다. 피안으로 모두 갑시다. 깨달음의 세계로 속히 갑시다”(度 度 彼岸度 彼岸總度 覺速疾)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탈것이 필요하다. 『금강경』(金剛經)2)에서는 피안으로 향하는 탈것을 뗏목에 비유하였으며 뗏목은 배와 상통한다. 법당은 불자들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 배가 향해 가는 곳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토이다. 이때 법당 앞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용두는 극락정토로 향하는 반야용선의 선수가 되고, 용미는 선미(船尾)가 된다. 다시 말하면 법당 건물에 조각해놓은 용두와 용미는 그곳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용두 - 극락을 향해 가는 반야용선의 선수
증심사 대웅전의 용두 백련사 대웅전의 용두
선암사 대웅전의 용두 미황사 대웅전의 용두 남장사 극락보전의 용두
사찰의 법당은 불자들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 배가 향해 가는 곳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토이다. 이때 법당 앞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용두는 그곳이 극락정토를 향해 가는 반야용선임을 상징한다.
법당을 장식하고 있는 그밖의 용두
불국사 대웅전의 용두
상주사 미륵전의 용두 금산사 미륵전의 용두
개암사 대웅보전의 용두
구례 천은사의 극락보전에서는 건물 앞쪽 좌우 공포에 용두를, 뒤쪽 좌우 공포에 용미를 각각 장식해놓고 있어 반야용선의 의미를 살리려 한 의도를 역력히 읽을 수 있다. 여천 흥국사에서는 대웅전 앞 돌계단의 양쪽 소맷돌에 용을 새겨놓았는데, 이 용들은 모두 머리를 곧추세우고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밖에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앞쪽 계단에서도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모두 반야용선의 선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천은사 극락보전 공포의 용두와 용미
법당 앞쪽 공포에 용두를, 뒤쪽 공포에 용미를 조각해놓았다. 이 법당이 용이 이끌고 가는 반야용선임을 극적으로 상징한다.
양산 통도사 극락전 뒤쪽 외벽에는 조각상은 아니지만 반야용선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제작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중생들의 환희에 찬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는 배는 용두와 용미를 갖추고 있으며, 선실에는 합장을 한 많은 중생들이 있고, 인로왕보살3)과 지장보살4)로 보이는 양대(兩大) 보살이 앞뒤에 서서 극락세계로 배를 인도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의 뒤쪽 외벽과 제천 신륵사 극락전의 오른쪽 외벽에도 있다.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불자들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반야용선이 어떤 모습인가를 좀더 분명하게 살필 수 있다.
보광사 대웅보전(우)과 통도사 극락전(좌) 외벽의 반야용선도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반야용선을 타고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상상 속의 반야용선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우렁찬 종소리의 근원, 범종의 용
용은 장식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범종을 매달기 위한 목적으로 종 위쪽에 만들어놓은 장치를 종뉴(鐘鈕)라 하는데, 대부분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 용뉴(龍鈕)라고도 한다. 그런데 종 위에 앉아 있는 용을 특별히 포뢰(蒲牢)라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5)에 의하면 포뢰는 용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다.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鯨魚 ; 고래)를 가장 무서워하여 그를 만나면 놀라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종은 그 소리가 크고 우렁차야 한다. 옛사람들은 포뢰 모양을 만들어 종 위에 앉히고 경어 모양의 당(撞)으로 종을 치면, 경어를 만난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며, 그래야만 크고 우렁찬 종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범종의 소리를 경음(鯨音)이라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포뢰는 중국이나 일본의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범종 장식물이다. 범종 위에 포뢰를 앉히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는데, 포뢰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 제4 ‘사불산·굴불산·만불산’조를 보면, “아래로 세 개의 자금종을 달아놓았는데, 모두 각(閣)과 포뢰가 있고 경어로 당(撞)을 삼았다”(下列紫金鐘三簴 皆有閣有蒲牢 鯨魚爲撞)고 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의미 없는 둥근 통나무 형태의 당으로 종을 치고 있지만, 승주 선암사에서는 비늘문양이 뚜렷한 물고기 형태의 당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범종각에 매달려 있는 이 당은 물론 근세에 만든 것이지만, 그 형태에 있어서 경어 모양의 당으로 종을 쳤던 옛 전통의 희미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선암사 물고기 모양의 당
종 위에 올라앉은 포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고래, 즉 경어이다. 당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실은 경어를 연상했을 것이므로, 이 당으로 종을 치면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를 터이니 종소리 또한 크고 우렁찰 것이다.
“종이 울리면 돌아다니는 중들이 다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은은히 염불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였으니 그 중심체는 종에 있었다”(有風而鐘鳴 則旋遶僧皆仆拜頭至地 隱隱有梵音 盖關棙在乎鐘也)라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보더라도, 종은 절의 법구(法具)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승도들은 우렁찬 소리가 나는 범종을 제작하려 했고, 그 묘책으로 종 위에 포뢰를 앉혔던 것이다.
포뢰를 앉힌 범종 가운데 볼 만한 것으로는 평창 상원사 범종, 부안 내소사 범종, 공주 갑사 범종, 양양 낙산사 범종, 화성 용주사 범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상원사 범종은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이다. 용뉴의 머리는 매우 크고 몸은 음관(音管)에 붙어 있으며, 종의 정상에 발을 버티고 있다. 아래턱을 종 표면에 댄 채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다. 내소사 범종의 용뉴도 큰 얼굴에 허리를 고리 모양으로 구부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갑사 범종에는 하나의 몸에 얼굴이 두 개인 용을 앉혔는데, 윗입술을 위로 젖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상원사 범종(좌)과 갑사 범종(우)의 용뉴
종 위에 올라앉은 용(포뢰)은 대부분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경어의 공격을 받은 포뢰가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다.
이상 몇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용뉴는 긴장된 자세로 버티면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포뢰와 경어에 관한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법과 도량을 지키는 수호신
용은 『묘법연화경』에서 보듯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온 청중인 동시에 부처님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호법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찰 도처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사찰 초입의 돌다리 밑에 숨어 있는 용도 그 중 하나이다.
산지 사찰에는 대개 절 입구에 개천이 흐르고 그 위에 극락교(極樂橋), 승선교(乘仙橋), 삼청교(三淸橋)라는 이름의 돌다리가 있다. 승주 선암사에서도 일주문을 지나 개천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아치형의 아름다운 돌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의 이름을 승선교라고 하는데, 다리 밑에 용두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조각 솜씨도 뛰어나거니와 물에 비친 또 하나의 용 그림자와 쌍을 이루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이 용은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보고자 한다면 일부러 다리 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이런 위치에 용두를 조각해놓은 것은 당초부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천의 물을 타고 사찰 경내로 들어올지 모를 사악한 무리들을 막아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유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선암사 승선교와 다리 밑의 용두
사찰의 다리는 기능적인 역할 외에 사바세계와 청정도량을 구분짓거나 연결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때 다리 밑의 용두는 사악한 무리를 막는 역할을 한다.
이와 비슷한 다리가 순천 송광사에도 있다. 부도군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척주각(滌珠閣), 세월각(洗月閣)이라 이름한 작은 목조 건물이 있고, 그 왼쪽으로 법당 구역에 진입하기 위해 건너는 삼청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이 다리 밑에 숨어 있는 용두 또한 선암사 승선교에서처럼 사찰을 외호하고 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불국세계를 외호하는 역할을 하는 용은 법당 안에도 있다. 법당 안의 닫집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도 용을 장식하는데 대개 그림이나 조각의 형태이다. 특히 닫집에는 용이 빠지지 않는데 그 조각 솜씨가 다른 어느 것보다 뛰어나다.
통도사 용화전 외벽의 용
용화는 미륵이 부처가 될 때 곁에 있던 용화수와 관련이 있으나, 이 벽화의 용은 불전을 외호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알려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닫집의 천장 부분에 길게 똬리를 틀고 있는 용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특히 머리를 곧추세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흥국사 대웅전 닫집에는 두 마리의 봉황 뒤로 세 마리의 용이 오채(五彩)6)의 구름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 용들 또한 부처님이 앉은 자리에 접근할지도 모르는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흥국사 대웅전 닫집의 용
벽사와 외호의 기능을 하는 용으로, 벽사는 상서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다. 불상을 위쪽에서 장엄하고 있는 닫집의 용은 부처님 주변을 상서로운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의도로 장식한다.
이렇듯 다리 밑이나 법당 안의 닫집, 대들보, 기둥 등에 장식된 용은 도량을 청정하게 유지하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자 불법을 설하는 장소인 법당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천변만화의 능력과 그 비유
무수한 것을 비유하여 용린(龍鱗 ; 용의 비늘)이라고 한다. 용 비늘의 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또 비를 멎게 하거나 비를 오게 하는 등의 힘은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의 ‘용력불사의’(龍力不思議)라는 말이 있다. 부처의 설법을 법보(法寶)의 다른 이름인 용장(龍藏)이라고 하는 것 역시, 용의 신통력이 자재(自在)하여 구름과 안개를 일으키고 비와 이슬을 내려 만물을 회생시키며 윤택하고 기쁘게 하는 것처럼 부처의 설법이 이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미륵보살이 부처가 될 때 용화수(龍華樹)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그 꽃가지가 마치 용의 머리처럼 생겨 용화(龍華)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종자가 용궁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은 현재 도솔천(兜率天) 내원(內院)에 머물고 있으나,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이 세상에 내려와, 화림원(華林園) 가운데 있는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법회[龍華會]를 열고 인천(人天)을 제도하게 된다. 일설에는 몸을 용신으로 화현하고 선정에 들어 있다가 용화회 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용과 관련된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은 종교적 환상을 용의 신비한 능력에 비유한 것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 불국세계를 더욱 신비롭고 이상적인 세계로 미화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킹코브라를 시원으로 하는 불교의 용은 기본적으로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의 성격과 기능을 지니는 영물스러운 존재이다. 용은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때에 따라 중생들을 피안의 불국정토로 인도하기도 하고, 소리 공양의 중심체인 범종의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도록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 자재한 신통력이 부처님의 설법에 비유되기도 한다.
용이 가지고 있는 이런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능력은 따지고 보면 용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과 끊임없는 상상력은 용을 더욱 영물스러운 존재로 만들었고, 그 용을 그림과 조각상으로 만들어 곳곳을 장식함으로써 사찰, 나아가 관념상의 불국세계를 더욱 청정하고 신비롭게 장엄했던 것이다.
대비사 대웅전 기둥의 용
부처님이 계신 불전 내부를 용이 지닌 벽사의 기능에 의탁하여 청정하게 유지하려는 불자들의 신심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