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늦 가을은 내게는 풍요로운 때였다.
30사단에는 헌병대 옆에 작은 온실(溫室)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가 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보다 두달 늦게 입대한 아주 친한 대학동기가 그곳으로 왔다고 하며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그 온실의 관리 주체가 사단에서 우리 연대로 옮기게 됐다.
어느날 오후 늦게 연대장실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고 주임상사와 함께 달려갔다.
연대장님은 연대장실 뒤에서 머리를 깍고 있었다.
"너 저거 왜 그런지 알아?"
연대장님이 턱으로 가르키는 것은 하귤(夏橘 :나쓰미깡)이였다.
잎은 거의 떨어지고 남은 잎은 하얗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 보지 않아도 "응애"가 잔뜩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네, 저것은 "응애"라고하기도 하고 "아까다니"라고도 하는 아주 작은 거미종류가 끼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일부러 연대장이 알게 하려고 "아까다니"라는 표현을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네, 응애약을 뿌려야 하는데,,,"하며 머리를 굴렸다.
응애약을 당장 뿌려 박멸을 한다해도 식물이 금방 녹색으로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응애를 구제한다고 해도 새잎은 내년에나 나올겁니다."
"약은 어디서 구하나?"
"네, 종로 3가에 농약전문 가게가 몇 있습니다."
"이놈 외박증 끊어 약 사오게 하라구,,,,"
주임상사는 나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너 잘 해야 돼. 너 연대장님께 단단히 찍혔는데 우리 부대에서 온실을 맡게 됐거든."
"마침 우리 부대에 너밖에 원예과 나온 놈이 없는데 연대장님이 안된다고 하시는 거야."
부대내에 농업고등학교 나온 친구도 하나 없단다.
내게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다음날 나를 못미더워 하는 중대장은 서무담당 "장 병장"과 함께 외박증을 가지고 우리집까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장 병장"은 충정도 사람인데 서울은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농약 사는 것은 종로 5가를 가면 해결될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와 함께 여기 저기 구경을 다녔다.
미리 집에 전화를 해 놓았기에 저녁은 집에서 먹고 같이 자고 늦게야 돌아왔다.
사실 농약 사오라고 했지만 돈은 주지 않았다. 그게 당시의 군대였다.
농약과 분무기를 들고 연대장실에 올라가 주변의 떨어진 낙엽을 모두 제거하고 주변까지 철저히 농약을 뿌렸다.
다음날 아침 더 한번 뿌려주고 살펴보니 웅애의 움직임이 없다.
겸사 겸사 다른 화분도 모두 정리를 하고나니 연대장님 기분이 조금 풀리는듯했다.
그래서 30사단의 3대 특과의 하나라는 온실로 짐을 꾸려 가게 되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30사단에는 3대 특과라는 것이 있단다.
그중 제일은 탄(炭) 보급병이란다.
화전 역에 쌓아놓은 무연탄을 부대에 공급하는 직책인데
여름에 탄을 받아 가을에 각 부대로 불출(拂出)하면 일과가 끝난단다.가끔 부수입도 생기는 직책이란다.
제이 특과는 급수대라고 하는데 한번도 가 본적은 없다.
어찌됐던 온실에 가서 친한 친구와 같이 살게 됐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 그곳에는 병장이 먼저 있었는데 우리 둘이 오니 스스로 월남 파병 신청을 해서 가고 말았다.
친구녀석이 빽이 있어 그사람의 특기대로 군수 병참쪽으로 해달라고 했다지만 그건 알 수가 없고,,,
마침 그 때 본부중대로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매형의 먼 친척인 보안대 장교가 나를 찾아 온것이다.
홍대위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는 나보고 당장 짐을 꾸려 가자고 한다.
어디로 가느냐니까 모처의 전화교환으로 가는데 아주 편하고 공부하기도 좋다고 한다.
나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권총차고 범인 잡으러 다니는 곳 아니면 안가겠다고,,,,,
그랬더니 보안대에 그런 보직은 없단다.
온실에서 놀게 됐는데 거기를 왜 간단 말인가.
안가겠다고 하고 그 분을 보냈더니 홍대위가 웃으며 나를 보며 작은소리로 말했다.
"미친 놈,,,,,"
온실에서 대학동기와 근 일년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