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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처(센터)에 와서 수행하는 것은
수행 방법을 아는 것과
그리고 수행이 이어져 수행의 힘을 모으기 위함입니다.
힘을 쌓기 위해 수행처에서 수행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행을 하는 곳은 자신의 집과 직장이며,
그리고 수행처 밖의 어느 곳에서든지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야 정말로 수행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완전하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운동선수들이
시합하기 전에 준비하고 워밍업을 하는 것처럼
수행처에서 수행함은 진짜 시합에 나가기 위해 연습한 것일 뿐입니다.
이제는 시합장에 나가야 합니다.
밖에 나가면 번뇌를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번뇌로서 칠 것인가, 스스로 번뇌를 칠 것인가?’
수행을 한번 시작하게 되면 멈출 수가 없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잊지 말거라. 이것을 잊지 말고 항상 사띠하라.”
부처님께서는
몸과 마음의 자연적 성품을 항상 잊지 말고,
'알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無常과 無我
그리고 苦의 진리를 항상 알게 될 수 있습니다.
밖에서 수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볼 줄 알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로 수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밖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자주 실수하고 그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실제 생활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지만,
차츰차츰 해나가다 보면 바르게 말하고 행동할 줄 알게 됩니다.
쉐우민 사야도께서도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숲이 짙으면 장작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도끼가 날카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도끼로 나무를 팰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장작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대상이 많은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한 대상만 보면 많은 대상을 볼 줄 모릅니다.
대상이 많으면
더욱 사띠하게 되고 사띠의 힘이 더욱 좋아질 수 있습니다.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띠가 더욱 좋아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대상이 많으면
사띠를 더욱 두게 되고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됩니다.
마음의 자연적 성품을 빼내서 쓰게 되면
더욱더 힘이 생깁니다.
오직 수행하는 것에만 마음을 쓰십시오.
그리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수행을 하지 않고 살 것 같으면
매일 매일 괴로워 하며 살게 됩니다.
수행을 하고 살게 되면 以前만큼은 괴롭지 않습니다.
수행하는 것을 기꺼이 즐거워 하고,
수행하고 싶어 해야 하며, 수행하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수행을 하면 수행할 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법의 공덕이 무엇인가?
지금 하면 지금 바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문제는 항상 일어납니다.
수행을 하게 되면
그 일어난 문제에 대해 자신이 훨씬 편안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편안해지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서 지혜가 생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줄 알게 되면
지혜가 점점 더해 가고 성숙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면
더욱 힘이 생기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수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행에 대해 의논하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수행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이란
일어나는 모든 것,
그러한 모든 것이 대상입니다.
만나고 일어나는 대상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면
더욱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아주 편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만
그것에 탐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너무 편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잘못하게 되면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보다 더 편안해진다고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알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면 불편합니다.
바르게 알면 편안해집니다.
처음에 수행을 시작할 때는
편하게 살고 싶어서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수행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것들을 다 피하면서 혼자 살고 싶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편해지고 싶어서 수행을 하지만
마음은 괴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쉐우민 사야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해서 일어나는 번뇌를 없애야 한다.”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일어나는 마음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대상들은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항상 보이고 항상 들리고 항상 만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업의 결과가 항상 있느냐고 어제 한 수행자가 질문하였습니다.
답변은 항상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만나는 것들이 과거에 지어 놓은 업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업을 만나든 나쁜 업을 만나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 업을 만나면 탐욕이 일어나고,
싫어하는 업을 만나면 화가 나고,
모르면 항상 탐욕과 성냄으로서 살게 됩니다.
법에는
과거에 지어 놓은 업과 현재에 짓는 업이 있습니다.
과거에 지어 놓은 업을 받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업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어가는 身/口/意 三業은
자신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업을 당하고 있을 때에
바른 견해로서 바르게 생각할 줄 알게 될 것 같으면
과거의 업을 키우지 않게 되고 당하지도 않게 됩니다.
지금 만나는 업에 대해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더 좋고 잘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띠가 없으면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나쁜 업을 만나면 身/口/意로서 나쁜 업을 짓게 됩니다.
지금 현재의 업에 대해
身/口/意 三業 중에 어떤 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으로 짓는 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에 바른 견해가 있다면 나쁜 업을 짓지 않게 됩니다.
문제는 지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이렇게 하니 좋고 저렇게 하니 좋지 않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서 알게 될 때,
마음의 힘이 좋아져서 意業을 짓지 않게 됩니다.
지금
현재 둑카(Dukkha)의 윤회를 계속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앎의 지혜가 없으면 괴로움이 계속 생겨납니다.
지혜가 있으면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이 일어나면 매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면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쓸데없는 괴로움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으면 쓸데없는 괴로움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일어나지 않는 것을 괴로움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지혜가 먼저 있다면 번뇌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일어난 번뇌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마저도 모두 없앨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번뇌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지혜만이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띠와 지혜가 있을 것 같으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며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괴로울 때
사람들이 수행을 하면 훨씬 편안해집니다.
괴로울 때
속으로 괴로워하면 더욱 더 괴로워집니다.
수행할 줄 안다면,
괴로움이 생겨날 때 바로 수행을 하십시오.
그리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낙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일어날 테면 일어나라,
나는 수행(알아차림)을 할 것이다’라는 자세로서
단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십시오.
괴로운 것은,
나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괴롭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수행하는 것이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 수행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첫째이고 다른 일들은 모두 그 다음입니다.
나는 출가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수행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행을 생각하였습니다.
수행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법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법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법을 보호하면
법도 자신을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 의미를 바르게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은
사띠사마디, 지혜에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사띠사마디, 지혜가 자신임을
관념적으로라도 정해 놓고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어찌 되었든지 항상 수행하십시오.
수행이란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띠하면 바로 그것이 수행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만 방법만 가르쳐준다.
그러나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곳 호두마을에 올 때마다
자기 자신이 와야 할 곳에 왔다고 생각하십시오.
이 다음번에 여기에 올 때는
수행이 그다지 많이 발전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사띠’가 사라지게 하지는 마십시오.
마음의 힘이 떨어질 것 같으면
다시 끌어올리십시오.
모든 것에 대하여 교훈을 얻고,
잘못된 것에 대해 고치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자기 자신의 지혜로서
여러 가지 심사숙고하여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금껏 배우고 기억해둔 것들을 모두 꺼내서 수행하십시오.
번뇌로부터 결코 져서는 안 됩니다.
번뇌는 항상 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당하지 말고 자신이 배운 것,
기억해 둔 것을 총동원하여 번뇌를 쳐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직접적으로 치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지게 됩니다.
살짝살짝 보아 가면서 치도록 하십시오.
사마타든 위빠사나든 총동원하여 번뇌를 상대해 보십시오.
호두마을 수행처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11. 3. 28. 위빠사나수행처 호두마을
일부용어수정
_(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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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혜을 증장하고 수행정진에 열공
고개숙인채 당하지말고
자신이 배운것
기억해 둔것을 총 동원하여 버뇌를 쳐보도록~!!
사두 ~사두 ~사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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