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무대 위의 탱고를 경험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댄스스포츠 대회 장면을 통해 접하는 경우다.
탱고가 어떤 춤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팔을 옆으로 쭉 뻗고 '헤드 플릭(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는 동작)'을 과장해 흉내내며 "이런 춤이죠?"라고 묻는다. 이런 헤드 플릭이 바로 인터내셔널 스탠더드 탱고를 추는 댄스 대회에서 주로 사용되는 동작으로, 도도하고 힘찬 분위기를 연출해 시선을 끈다. 춤에 쓰이는 음악도 빠르고 경쾌한 행진곡풍이다. 한 곡의 길이도 2분 10초 내외로 통일돼 있다. 이런 춤과 음악을 탱고라고 알고 있다가 아르헨티나 본고장의 탱고를 처음 접하면 관객은 몹시 당황한다.
느리고 애조를 띤 음악과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동작,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표현되는 이 춤을 보면 '탱고란 과연 어떤 춤인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로큰롤이 등장하면서 차츰 잊혀졌던 탱고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중에 밀실에서 숨을 죽여야 했고, 그 사이에 유럽 특히 파리에서 새로운 형태로 꽃피어 그 열풍이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역수입되기에 이른다. 그러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주말이 되면 사람들은 디스코텍에 가는 대신 탱고를 출 수 있는 밀롱가에 갔고,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엄청난 수의 댄스 쇼가 제작됐다.
그리고 유럽 대도시에 속속 생겨난 탱고 스쿨들은 아르헨티나의 댄서들을 교사로 초빙했다. 그러면서 직업적인 탱고 댄서들이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장이 조성됐고, 90년대에는 베를린과 바젤이 유럽 탱고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했다. 83 년 댄스 쇼 형식의 무대 공연 '탱고 아르헨티노'가 제작되면서 탱고를 쇼 형식에 적합하게 바꾼 '탱고 판타지아'라는 새 장르가 개발됐다. 탱고를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만든 셈이다.
이 쇼가 세계 각지의 순회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이와 비슷한 새로운 공연작품이 계속 제작됐다. 물론 이런 공연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 화려하고 흥미로운 공연들 덕분에 전세계 사람들이 탱고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탱고 패션'이라는 공연으로 세계를 순회한 탱고 댄서 필라 알바레스와 클라우디오 호프만은 이 작품의 제작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적인 뮤지컬이나 발레 공연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안무(코리오그래피)에 따라 움직여야겠죠. 하지만 탱고 공연은 다릅니다. 물론 군무장면에서는 안무를 따라야 하지만, 한 커플만이 무대에 등장해 춤을 출 때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춤출 것인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요. 그런 식으로 공연자에게 많은 자유를 허락하기 때문에 기꺼이 공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필라는 85년 처음으로 탱고 공연을 봤을 때만 해도 고전 발레를 전공하고 있었다. "무대 위의 두 탱고 댄서가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몸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느꼈어요. 발레와는 전혀 다른 언어였죠." 그래서 필라는 그때부터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스로 '탱고 메트로폴리스'라는 공연물을 제작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탱고 공연에 참여하는 댄서들 가운데는 탱고와 함께 발레와 현대무용을 모두 제대로 익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새로운 몸의 언어를 배우고 그것들을 조합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만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밀롱가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탱고 공연이라면, 관객은 오히려 지루해할 것이다. 그러나 현란한 의상과 조명·무대장치 등으로 문외한들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무대 공연의 놀라운 효과는 의외로 컸다. 2002년 가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알랭 드 카로가 제작한 '패시네이팅 탱고' 공연이 있었고, 2003년 초에는 LG아트센터에서 루이스 브라보의 '포에버 탱고' 공연이 다시 한국 관객을 찾았다.
공연 전에 분위기 타진을 위해 두 차례 내한했던 알랭 드 카로는 "탱고의 서글프고 깊이있는 곡조가 한국적 리듬과 정서에 어울린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탱고 공연이 탱고에 정서적 유대감을 갖는 한국 관객들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