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수염, 머리카락, 큰 뿔 등을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귀면상으로 벽사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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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잔타 석굴사원의 키르티무카
정면의 얼굴에 실에 꿴 진주다발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는 상으로 우리나라 사찰 귀면상의 원류이기도 하다.
인도 불교사원의 하나인 아잔타 석굴사원의 제1굴 정면 기둥 위와 왼쪽 회랑의 기둥에 키르티무카상이 새겨져 있다. 이 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면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실에 꿴 진주다발 같은 장식물을 입에 물고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키르티무카란 존재는 인도의 고대신화에서 태어났다.
인도 고대신화에 의하면 쟐란다라(Jalandhara)라는 거인 왕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영역의 신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였다. 쟐란다라는 극도에 달한 자존심으로 세계의 창조자이고 유지자이며 파괴자이기도 한 시바에게 도전하여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 전령을 보냈는데, 그 이름은 괴물 라후(Rāhu)였다.
시바에게 전해진 최후 통첩은 시바의 신부가 될 ‘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포기하고 새 주인 쟐란다라에게 그 처녀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시바는 크게 화를 내며 응수하였다. 양미간의 점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뿜어냈는데, 그것이 폭발하면서 곧바로 끔찍한 사자 머리 형상의 악마로 변하였다. 그 악마는 바로 시바가 다른 모습으로 화한 분노의 피조물이었다.
이 괴물의 놀라운 몸뚱이는 깡마르고 야위었으며, 쉽게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굶주려 있었지만 강한 탄력과 불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목구멍에선 천둥같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왔으며, 눈은 불같이 타올랐고, 텁수룩한 갈기는 우주 공간에 널리 펼쳐졌다. 이 모습을 본 라후는 아연 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괴물이 라후에게 덤벼들자 라후는 최후의 수단으로 전능한 시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비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피신하였다. 이것은 매우 새로운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시바는 즉각 사자 머리 형상의 괴물에게 명하여 탄원자를 살려주라고 하였고, 괴물은 시바에게 자신의 굶주림의 고통을 가라앉혀줄 희생물을 달라고 강요하였다.
시바는 괴물에게 시바 자신의 손과 발을 먹으라고 제안했다. 타고난 굶주림에 지쳐 있던 괴물은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손과 발을 삼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삼키고도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그의 이빨은 자신의 배와 가슴과 목까지 삼켜 결국 얼굴만 남게 되었다.
시바는 극에 달한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본 다음, 자기 본질의 또 다른 일면이 생생하게 나타난 것에 만족하여 분노의 피조물에게 미소를 보내며 인자하게 선언한다. “이후로 너는 키르티무카로 알려질 것이며, 너는 나의 문에 영원히 머무를 것을 명한다. 너를 숭배하는 데 게을리 하는 자는 결코 너의 은총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다.
키르티무카는 애초에 시바 자신의 특별한 상징이었으나, 시바사원의 상인방 위에 걸어두는 전형적인 장식물이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사원의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연꽃이나 풀잎을 입에 문 귀면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상을 일명 ‘낯휘’라고도 한다. ‘낯’은 얼굴의 또 다른 말이며, ‘휘’(暉)는 몇 가지의 색깔 띠로 나누어 채색한 것을 가리킨다. 한편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상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입에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연꽃이나 풀잎 등을 입에 물고 있는 얼굴이다. 비율로 보면 전자가 주종을 이루고, 후자는 전자보다 적지만 오히려 이것이 귀면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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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서산대사탑비의 이수 부분에 새겨진 귀면
강화 전등사 대웅전 불단의 우측 아래쪽에 귀면상이 있는데, 양쪽 송곳니가 날카롭고 귀와 뿔을 가지고 있으며, 입에는 당초 비슷한 풀잎과 봉오리 진 연꽃줄기를 물고 있다. 이런 형식의 귀면상은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불단과 보은 법주사 팔상전의 화반, 예산 수덕사 선방의 공포벽, 구례 화엄사 원통전의 불단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법주사 팔상전 화반의 귀면상은 입에 물고 있는 녹색의 풀잎과 줄기가 주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어 이색적이며, 수덕사 선방의 것은 황·녹·적색의 풀잎을 물고 있어 화려한 느낌을 준다.
또 풀잎이 아닌 활짝 핀 연꽃을 입에 물고 있는 귀면상도 있는데, 김제 금산사 대장전 문의 궁창과 연기 비암사 극락보전 불단의 귀면상이 그것이다. 금산사의 것은 붉고 파란 연꽃을, 비암사의 것은 붉고 흰 연꽃을 물고 있다.
연꽃이나 풀잎을 입에 문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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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대웅전 불단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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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웅전 불단의 귀면 수덕사 선방 공포벽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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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대장전 왼쪽 궁창의 귀면 금산사 대장전 오른쪽 궁창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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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 화반의 귀면 비암사 극락보전 불단의 귀면
이런 형식의 귀면상은 사찰 장식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머리는 산발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머리에 뿔이 하나인 우리나라 전래의 도깨비상과는 구별된다. 성격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전래의 도깨비는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 사찰의 귀면상은 어디까지나 사찰과 불법 수호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용과 관련해서보면, 용은 대부분 여의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입에 물고 있지 않는 데 반해, 사찰의 귀면상은 풀잎이나 연꽃 등을 입에 물고 있어 도상적인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사찰의 귀면상이 용의 얼굴도 아니고 전래의 도깨비상도 아니라고 할 때, 그 조상은 인도의 불교사원에서 볼 수 있는 키르티무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선암사 일주문(좌)과 동화사 대웅전(우) 평방뺄목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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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곳곳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귀면상을 장식해놓았는데, 머리는 산발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머리에 뿔이 하나인
우리나라 전래의 도깨비상과는 차이가 있다.
다양한 시선으로 사찰을 지키는 벽사상
귀면상은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상으로 제작되어 법당을 장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 강화 전등사 대웅전과 정수사 대웅전의 귀면상이 있다. 개암사에는 대웅보전 전면 처마 밑에 2구의 귀면상이 있는데, 전체 모습이 네모에 가깝고 모두 뿔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시선을 보면 왼쪽의 것은 정면을, 오른쪽의 것은 눈을 흘겨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전등사의 귀면상은 부리부리한 눈에 주먹코를 가진 사람의 얼굴을 닮았는데, 둥근 나무토막에 새겨 평방에 부착하였다. 도리 부분에 부착되어 있는 정수사의 귀면상은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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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대웅보전 전면의 귀면
사찰 귀면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을 주시하거나 감시하는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귀면은 각기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데 벽사의 대상 범위를 넓게 하기 위한 묘책이다.
전등사 대웅전 평방(좌)과 정수사 대웅전 도리(우)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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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가 갖는 제약 때문에 완전한 형태를 표현하지 못하였으나 벽사의 기능을 굳건히 하고 있는 조각상이다.
그림이건 조각이건 귀면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단독으로 장식된 경우는 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둘 이상일 경우에는 바라보는 방향이 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금산사의 귀면상을 예로 들면 대장전 오른쪽 문의 궁창에 그려진 것은 눈을 내리깔고 아래쪽을 응시하고 있으며, 왼쪽 문의 것은 눈동자가 안으로 쏠린 사팔뜨기 모습을 한 채 정면 가까운 곳을 주시하고 있다. 구례 화엄사 원통전 불단의 전면에도 3구의 귀면상이 있는데 가운데 것은 정면을, 오른쪽과 왼쪽의 것은 안쪽을 응시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의 귀면상은 다양한 방향으로 시선을 던져 사방을 주시함으로써, 언제 어느 곳으로 들어올지 모를 사악한 무리들을 막아 사찰을 수호하는 벽사상(辟邪像)의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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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원통전 불단의 귀면
이 귀면상들은 각기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는 경계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각주
첫댓글 귀면의 자세한 설명 보배롭게 간직하겠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