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게 사용되는 것은 내 몸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 2021년 12월 19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3:16-17
굳어진 가치관이 바뀌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도 한국교회와 성도들 안에 부흥과 축복이 인본주의와 물질주의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거룩한 것이 세속적인 것으로 둔갑한 그 배후에는 마귀의 교활한 역사와 미혹이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정욕과 탐심이 호응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도 마귀의 미혹을 받을 때에 거절할 수 없었는데 타락한 이후에는 어떻겠습니까? 인간의 정욕과 탐심은 마귀의 미혹에 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라상 같이 한 시대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사역자들도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선지자 노릇을 했으면 크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사람들은 크게 사용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시고 불법을 행한 자들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성도들이 존경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부러워했던 그 사역자들이 심판을 받고 영원히 고통을 받는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격적이게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 크게 사용을 받았는데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일까요? 예수님이라면 고개를 흔들던 불신자와 평생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과 함께 동일하게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한 사람들이 어이없게도 불신자나 우상숭배자들과 동일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습니까? 그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까?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몰랐겠습니까?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을 받을 때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정말 징글징글한 존재입니다. 마귀는 성도가 천국에 갈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됐지 하고 십자가를 내려놓는 순간 마귀는 그 기회와 틈을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사자가 자세를 낮추고 풀숲에 숨어 방심할 때만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활한 마귀를 이기는 길은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깨어있는 믿음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타락한 나의 자아숭배를, 그 정욕과 탐심을 주님이 십자가에 지고 나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나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주님을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타락한 죄인들은 내가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 안에 나를 창조하고 세상에 보내신 진짜 주인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증언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내가 하나님이라고 타락한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까? 나의 타락을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은혜를 믿음으로 회개하여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실 때 거듭날 때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한 그 십자가를 내려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안에 오셨던 성령님이 소멸되고 다시 떠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떠나면 내가 다시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살던 옛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떠나면 죽었던 죄의 몸이 다시 살아나 다시 죄의 종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며 마귀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행위와 사역과 하나님의 일은 계속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 다니고 목회는 계속하며 일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선지자 노릇은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은 행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못된 인식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큰 사역을 하며 크게 사용되는 것이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부흥회나 기도원에서 헌금을 드리며 자식들이 하나님께 크게 사용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 자식을 통해서 자신이 큰 사람이 되지 못한 한을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정욕과 탐심입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사용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자녀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되는 것보다 귀하고 크게 사용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는 자들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의 재물과 돈과 영광과 명예와 권세로 자신을 힘 있는 자와 큰 자로 만들려고 환장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자가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이고 섬기는 겸손한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이며 천국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그저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만 섬김만 받으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그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지 못하면 즉 거듭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사람이 되어도 죽으면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재벌이었어도, 사람들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인기 스타어도, 한 나라를 통치한 왕이어도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변화되지 못하면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면 누구든지 귀한 사람이 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나타난 인생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다 부자처럼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인생은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자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그들의 영원한 세계를 보고도 부자의 인생이 부럽습니까? 부러우면 죽은 다음에 부자처럼 되면 되는 겁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한 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라가 폼나는 인생을 살다 죽어야겠다면 그 길을 가면 됩니다. 그러나 지옥의 영원한 고통은 상상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나사로의 인생의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위해 살라고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잠깐 살다가는 이 세상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가졌는지 무엇을 소유했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좁은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만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존귀하게 된다는 것을 나사로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사로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외면하는 거지였습니다. 더럽고 냄새난다고 얼마나 멸시하였겠습니까? 개들도 나사로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십자가를 만나 사람이었습니다. 그 거지의 냄새나고 병든 몸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외모는 정말 질 그릇도 안 되는 병들고 깨어져 버려진 쓸모없는 그릇 같았지만 그러나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그 안에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그를 존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아 타락한 인간들은 정말 바보같이 된 것입니다. 교회도 크고 화려해야 하나님이 계신 줄 아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와 은혜가 있는 곳이라면 두세 사람이 모이는 다 쓰러져가는 곳이어도 주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도 미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순전히 이 세상의 재물과 돈과 영광과 명예와 권세로 자신의 사회적인 외모만을 꾸미려고 합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들이 많이 모이고 재정이 많고 넓은 집과 좋은 차를 주고 사랑을 받는 곳으로만 가려고 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지만 이 시대의 목회자와 성도들 중에 십자가의 그 영광의 비밀을 알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입니다. 대부분 다 이 세상의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교회 안에 십자가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서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그 가치와 존귀는 밖으로 드러난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에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합의해놓은 사회적인 가치는 이 세상에 있을 때 잠시 뿐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한 것입니다. 티끌과 먼지에 불과한 것이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그 티끌과 진흙에 아무리 금칠을 해봐야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내 죄를 대속해주신 진짜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치 없는 질그릇이 보배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고 에베소서 3장에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라.” 선언하는 것입니다.
외모를 바꾸려고 그것에 목표를 두고 마음을 쓰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그런 것들은 염려하지도 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정말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주님이 주인으로 계신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인도하고 있는가? 나는 그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순종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돌아보고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정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얻은 영광이 아무리 커도 죽은 다음에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면 하나님은 오직 믿음만을 보십니다.
자신의 몸 안에 정말 예수님이 주인으로 있으면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주여 주여 했을 뿐 그 마음에 주님이 주인으로 없었다면 그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도끼로 찍어 죽인 살인마도 자기 죄를 깨닫고 십자가에 회개할 때 용서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 끔직한 살인마라고 정죄를 받았어도 하나님은 십자가를 만나 회개한 사람은 어떤 죄인이든지 용서하시고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착하게 살았다고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만나 교만한 나의 주인 됨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주인이 되는 그 회개와 거듭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으로 있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놓는 예배와 헌금과 봉사와 선행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만남과 회개를 통해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그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가장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으로 귀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크게 되는 것이 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만나 내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드리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사용되는 것임을 명심하시고 반드시 내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