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없어 표류한 방폐장 … 민주사회 발전에 필수조건
과학이 쉽고 재미있다는 주장을 자주 듣게 되면서, 과학을 오락의 도구로 이용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생겼고, 과학 교과서도 그렇게 보이도록 바뀌었다. 물론 그런 노력이 과학을 싫어한다는 요즘 청소년들의 관심을 끄는 수단일 수는 있겠지만,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과학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과학은 오랜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최근에 이룩된 고차원의 논리적 지식 체계다. 우리가 더불어 살고 있는 자연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생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이 현대 과학의 본질적인 목표다. 물론 과학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의 원천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 지식은 엄청난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 이룩된 귀중한 역사적 산물이고,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런 과학을 배우는 일이 결코 쉽고 재미있을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배우고 생활화해야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과학은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비양심적인 사이비 선동가와 기업가들이 힘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사회적 손실은 민주 사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과학은 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과학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애써 배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과학과 관련된 사회문제로 심각한 혼란을 경험해 왔다. 18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문제가 그런 경우다.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논쟁이 많은데, 위험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어서 논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합의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면 방폐장이 아무리 위험해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방폐장이 안전하다는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정부가 그런 위험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잘못된 의제(議題)는 정부의 권위만 떨어뜨릴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 줄 절대 권력자가 없는 민주 사회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관련된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서 그런 시설의 필요성과 정부의 안전한 관리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한다.
청소년에게 과학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 재미있다는 초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흥미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칫 과학의 본질이 왜곡되어 버리면 정말 위험하게 된다.
그래서 과학이 어렵기는 하지만 민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절실함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먹이는 겉치레 교육보다는 미래의 건강을 위해 입에 쓴 약을 제대로 먹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선택권만을 강조하는 지금의 교육 과정이 문제가 된다.
이제 과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열심히 가르쳐야만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과학도 본질적인 것을 알아야만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덕환·서강대 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