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직으로서의 설움과 위축됨을 만회할 수 있는, 그리고 당당한 엄마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합격하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했다.
모든 것이 엉성한 나에게 이렇게 절실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해서….
주어진 시간은 4개월, 15%안에 들어야 했다. 그동안 아이 공부 때문에 읽었던 ‘스폰지 2.0 공부잘하는 비법’ 등 책들의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공부했는지,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달았던 경험이 있었다. 이 책들에 따르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노트가 있었다고 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고 나면 그 다음날부터 노트에 정리를 했다. 매주 금요일 인터넷 강의를 약 3시간 듣고 노트정리 하면서 이해 안가는 부분은 다시 듣고 해서 2개월의 행정학 이론과정을 마쳤다.
행정학 이론과정이 끝나고 나니 노트 한 권 반이 나왔고, 강사가 이야기한 내용은 이 노트에 모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렇게 하니 시간이 그리 많이 투자되지는 않아 사무실에서 내가 맡은 일하면서 아이들 돌보며 집안일도 모두 할 수 있었다.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니 TV 보는 시간, 점심시간, 주말, 일과 중 휴식시간 등 짬짬이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 그렇게 하니 한 주에 행정학 인터넷 강의 3시간, 노트정리 4시간을 충분히 빼낼 수 있었다.
시험준비 하면서 사무실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를 평소같이 할 수 있었고 7, 8월 저녁에는 아이들과 공원에 매일 산책도 갔고 여름휴가도 예전과 같이 5일을 다녀왔다.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노트정리도 다 돼 있는데 시간이 남을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때가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놀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늘 가슴 속 한 켠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외에 내가 즐기는 모든 것들을 금지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괴로움이지 않을까?
아이들, 남편과 놀러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인 ‘패떳’과‘1박2일’과 너무나 보고 싶은 ‘국가대표’영화도 뿌리치며 공부를 했다. 그러나 정말 공부가 안될 때는 아이들과 공원으로 갔다. 아이들의 등살에 공원을 자주 나가게 돼 공부를 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공부하기 힘들수록 더욱 집중력으로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부족할 때는 잠을 덜 자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날 집중력을 해치고 그 피곤함이 그 다음날까지 가서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시험준비기간 동안 잠은 어느 정도 자면서 했다. 하지만 압박감이 때때로 나로 하여금 잠을 설치게 했다. 수험생은 그래서 피폐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꼭 합격하고 말거야~ 더 이상의 실패를 겪고 싶지 않은 욕심에 나 자신에게 4개월 동안 내가 즐기는 모든 것들을 금지시켰다.
시험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불안해졌다. 과연 내 실력으로 합격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공부했을 텐데…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시험볼 때 실수하지 않을까, 밀려쓰지는 않을까 하는 등 불안감이 수험생인 나를 또 한번 좌절하게 했다.
시험 20일 전부터는 퇴근 후 집안일이며 아이들 챙기는 일 모두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이 편해졌지만 간혹 불안할 때는 문제풀이를 했다. 문제풀이를 하며 이론 정리를 다시 한번 하고 노트정리한 것을 늘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봤다.
이렇게 한 덕분인지 결국 나는 행정학 90점, 사회 100점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점수를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전략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는 것 같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면서 공부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나의 공부 비법은 정리노트, 그리고 짬짬이, 틈틈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버리는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험 준비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국가정책의 중요성과 그 속에서 공무원의 역할, 그리고 그 일련의 노력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들이었고 그 속에서 공무원의 역할이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깨우쳤다.
행정학이란 과목을 준비하며 내가 여태껏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과 수많은 공문 속에 공무원의 사명 등의 글을 보고도 느끼지 못한 큰 의미를 깨달았다. 그리고 왜 이리 청념을 강조하고, 왜 이리 모범을 보여야 하며, 왜 이리 규정을 따지고, 왜 이리 불합리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깨달았고, 그 속에서 나도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내 인생이 의미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거창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은 나를 끝까지 괴롭혔지만 행정학이란 과목은 재미있었고 강사분의 이야기 또한 도전이 되고 재미있었다. 지난 4개월이란 짧은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작은 성공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전수해 줄 정신적 기둥 하나를 가진 기분이라 기뻤다. 이 수기를 보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며...
글 : 이경규 / 등록일 201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