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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승화된 민중의 애환
― 신경림『농무』를 중심으로
글/조정희(하선당)
1. 들어가며
중세 스콜라 철학의 인식론적 보편논쟁의 경향을 지닌 사실주의는 라틴어 res에서 유래하며, 켄터베리(A.ven Canterbury)와 캄파우(W.von Champeaux)가 유명론에 대립해서 주장한 개념이다.
1856년 화가 쿠르베(Courbet)는 자신의 그림 전시에 대하여 <사실주의에 대해서> 김연순, 『독문학용어사전』, 심구당, 1992, p.23.
라는 인상적인 표제를 부여했다. 본래적인 문자적 의미는 그의 주장과 화풍에 대하여 언급된 조소의 뜻을 지닌 어의였으나 보다 구체적인 용어로서의 자리매김은 사실파로 일컬어진 샹폴뤼리(Champfleury)와 기인한다. 그가 1857년 <리얼리즘>이란 논문을 발표한는데 여기에서 ‘문학은 풍자적임과 동시에 잔인하여야 하며, 문학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노출된 대로의 진실’을 묘사하여야 됨을 기술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 있어서의 사실주의는 1830년에서 1880년까지의 예술창작운동 전반을 일컫는다. 대다수의 문학 예술 운동이 그러하듯 이의 실천에 있어 주도적인 나라는 프랑스이다.
자기의 감정을 노래하고 자아를 해방하고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있어서도 사로잡힘이 없는 눈으로 역사를 직시하며 모든 현상을 상대적으로 고찰하여 사물의 보는 법을 나름대로 심도있게 접근하는 근대정신의 자각 시대를 낭만주의로 지칭할 때, 보다 근대정신이 확립 발전한 시기를 사실주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시대를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자연과학의 눈부시고 가속적인 발달과 정치제도의 변이에서 비롯된 문학인들의 심각한 좌절감이다.
사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학운동으로 전개되고 근대문학의 성격을 크게 바꾼 19세기 유럽의 현상이다. 18세기에도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현실의 사회풍속을 정확히 묘사하려는 사실적 문학이 소설과 희곡으로 대두했으나 아직 미성숙했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자 비약적으로 발달한 실증주의 정신이 이러한 경향을 크게 조장하였다. 생물학이나 의학의 발달, 역사학이나 사회학의 발달이 사실주의를 뒷받침하는 기운을 조성하고, 인간이나 사회를 관찰하는 작가의 눈을 단련시켰다. 발자크(Hanore de Balzac, 1799~1850),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80) 등의 문학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인간이 생활하는 모습을 직관적인 작가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에 뛰어났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한결같이 시대정신으로서 과학에 대한 커다란 신뢰가 있었다. 이들 뛰어난 사실주의 작가가 그 후의 문학에 공헌한 것은 전시대의 오만한 상상력을 통제하고, 변모하고 있는 근대세계에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는 작가 훈련의 필요를 재촉한 것이다.
사실주의는 문학 장르상에 있어 주로 소설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839년대에 들어와서 과거의 어색한 고전주의 형식에서 문학이 해방되고 작가는 산문으로 자유로이 창작을 할 수 있고 사상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자유의 의식과 사실을 존중하는 사실주의 문학의 형식으로서 이것을 현대사회의 서사시로 높이려는 의욕이 일체화 되어 소설이 공전의 유행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쉽고 간명한 것을 좋아하는 민중에게는 산문으로 쓰이고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적인 소설이 가장 그 기호에 알맞은 예술이 되었다.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문학사조로서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것과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배척하였다. 자연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서도 낭만주의가 자연미에 자기 자신을 동화시키려는 것과는 반대로 자연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사실주의의 문학은 현실적, 객관적, 이지적, 상식적이며 관찰과 분석을 기초로 하는 자연주의와도 같아 실로 자연주의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엄창섭, 『관대논문집 제22집 1호』, 關東大學校, 1992, pp.81-82.
2. 문예사조의 흐름과 ‘사실주의’
2.1. ‘사실주의’의 뿌리를 찿아
1850년경 대다수 서구문학의 풍토는 ‘문학의 대현실적 측면’이 강조되는 두드러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당시의 문인들에게 있어서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주어진 상황을 이전의 기법이나 사물에의 접근과는 상이하게 객관적으로 세밀하고 적확하게 묘사하려는 강한 움직임이 일었다. 현실에 몸 담으면서 대상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연결지어 놓은 것은 사실주의 문학에 종사하는 일부의 문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단 전반에 공통된 관심사였다.
고전주의 시대의 작가들인 경우 그들은 눈을 주로 인간의 내부에 돌리어 그 한없이 복
잡한 현상을 그리려고 하였다.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들의 경우는 현실에 눈을 돌리기는
하였으나 거의 예외 없이 감상을 섞거나 설교를 가하거나 하였다.
여기서 사실주의라는 의미의 지배적 특징들이 당시의 현실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 그 개념은 내용적으로 축소되어 표출된다. 즉 그 시대와 연계된 현실성과 사회,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시대 현상들에 대한 반영을 도움으로 해서 사실주의는 기술되어진다. 또 하나 사회적 존재 양식과 개개인의 존재 양식의 인과관계, 시간적․공간적 세부 사항에 있어서의 정확성, 서술된 인간들의 심리학적인 구분, 현실을 정태적으로 확정된 상황으로서가 아닌 문화운동의 변증법으로서의 파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폭넓게 다루어진다.
사실상 사실주의가 수용된 문학작품은 현실 개념, 현실 개념의 미래 가능성 및 이와 연관된 효과 의도가 중시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대두된 사실주의는 현실에 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현실에 대한 관심은 소위 있는 그대로, <反映> 또는 <再現>하는 태도에서 초기 사실주의문학이 성립되었고, 차츰 이러한 반영론은 현실의 무엇을, 어떤 것을 반영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이강산, 「韓國近代小說論總」, 螢雪出版社, 1983, p.14.
그러므로 현실을 가장 정밀하게, 정확하게,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식의 작용이 지배했을 때 결코 간접화법으로써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그와 상반된 직접화법을 통한 문학을 전개하려는 기법을 꾀하기도 하였다. 물론 문예사조적인 시각에서 현실의 모방, 모사인 미메스(Mimesis)와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과정인 포에시스(Poiesis)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사실주의를 예술유형학적인 개념으로 파악할 때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문제들과 연관되어짐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실주의의 정의가 다양하지만 두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 하나는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제기된 바 있듯이 당대의 현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작품의 소재 선택과 기법, 문체 등을 명시하는 입장이며, 또 다른 하나는 당대 현실의 객관적 제시라는 명제 자체를 중시하기는 마찬가지나 단순한 복사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그 현실의 전체 내지는 핵심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전체나 핵심이 과연 어떠한지에 대한 판단은 역사관과 직결되는 문제니 만큼 어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입장에 걸맞는 현실 묘사만이 ‘진정한 리얼리즘’이라는 독단으로 흐를 염려도 있다. 白樂晴編, 「서구 리얼리즘 소설연구」, 창작과 비평사, 1982, p.99
1850년대의 시인들은 비교적 사회와 단절하고 자기의 내면에 눈을 돌리면서 안중의 방법을 찾고, 순수한 미를 추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대다수 문인들은 문학의 현실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노출시켰다. 문학자란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현실적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직면하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다 더 치밀하게 묘사해야 할 최소한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
예술상의 표현에 있어서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경향의 樣式인 사실주의의 특징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표현의 대상을 공통의 形態, 性狀을 유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개개의 대상과 그 개성적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2) 표현의 내용을 대상의 가치에서 선택하여 과장없이 사물의 전국면을 현실 그대로 재현하며,
3) 표현방식 원리에 따라 대상을 미화하려는 경향에 반하여 아름다움보다는 개성적인 것을 존중하며,
4) 표현방식에 있어선 주관적인 변형보다는 소재로서 주어진 경험내용을 사실 그대로 표출하며,
5) 비근한 市井生活, 하층민의 生態, 인생의 추악상, 인간의 獸性 등을 주제로 한 작품형성을 그 특질로 하고 있다. 사실주의의 의의와 진전의 側面을 보면 19세기 사실주의가 문학에 남긴 유산은 종합적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문학의 기술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주의가 대두된 19세기 후반의 특징을 랑송은 종교적 신앙에 대한 과학적 실증주의의 우월, 정신적 관심에 대한 물질적 관심의 우월, 사회문제에 대한 정치문제의 우월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사실주의는 다양한 민족적인 형성과정을 겪어왔으며, 이 시기의 많은 예술 영역들, 예를 들면 마술극, 오페라, 이상주의 역사극 등은 사실주의라는 개념에만 국한시켜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학적인 공평한 태도를 견지하고 이지적 실증을 찾아 객관주의, 보편성을 존중한 사실주의 세기적인 문예사조로 자리매김을 확장하게 만든 원동력은 세가지로 특징지어진다. 그 하나는 상공업의 발전에 의거 프랑스 국민의 마음에 실리주의적인 사고가 깊이 뿌리를 박고, 사회 인심을 지배하는 기풍이 조성되었고, 둘째는 사상면에 있어서 콩트가 역설한 실증철학에 의거 실험적 방법에 의해서 완전한 인식을 확립하며 개인생활이 전적으로 사회생활에 종속적인 상태로 존재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셋째는 과학에 있어서 생물학과 사회학이 발달함으로써 예술이 사회적 기능을 의식하고 현실과의 접촉을 다시 꾀하게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기실 사실주의를 표방한 문학이론은 예술과 삶의 합일을 요구하고 문학의 합법적인 대상으로 사회생활의 일상적 현실의 강조라는 의식의 변화 속에서 전개되었다.
2.2. 한국문학에 끼친 ‘사실주의’의 영향
사실주의란 다양한 뉘앙스를 내포하면서 전개되므로 사실주의를 하나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그 개념을 규정하는 일은 무리한 작업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문예사조의 도입, 발전은 서구적인 것과는 아주 판이하게 대두되고 실험되어 나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몇가지 특징 이라면 첫째, 낭만주의․자연주의․사실주의 등의 문예사조가 나타난 것은 정상적인 사조의 교체운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서구의 문예사조에 대한 모방에 의해 문예사조가 동시에 혼류돼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창조」,「폐허」,「백조」 동인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문예사조의 개념에 대하여 착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한국의 근대문예사조의 혼류를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즉 「창조」동인들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同義異語로서 알고 있었으며 「폐허」동인들은 낭만주의의 일분파인 퇴폐의식을 낭만주의의 개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셋째, 당시의 대표작가라 할 수 있는 김동인, 전영택, 염상섭, 현진건 등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서구의 문예사조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였다는 점이다.
1919년 2월 창간된 『창조』의 <남은 말> 김동인, ꡒ남은 말ꡓ『창조, 제1호』, 1992, p.81.
에서 김동인이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모았다. 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땅의 작가들은 다양하게 현실조응의 방법을 독자적으로 모색하면서 노력했지만 대다수 자신의 주관에 치중, 현실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에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조」동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서구 사실주의의 개념에 대하여 바른 파악이나 깊은 인식이 없었다 하더라도 신문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하여 사실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문학을 이해하면서 창작을 위한 작업에 임했다는 사실은 일단은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문예사조의 도입에 있어 서구로부터의 직접적인 수용이 아니라, 일본을 거쳐 재 수용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나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 또한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시는 주로 낭만주의적 경향을, 소설은 주로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특징지을 수 있다.
사실주의(Realism)는 시적, 환상적, 비현실적인 경향과 대립하여 사상을 주지하면서 이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문학을 가리킨다. 사실주의의 특징은 시대나 각국의 문학적 전통 및 특색에 따라 한결 같지는 않다. 일상생활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도 있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같이 혁명의식, 정치의식과 깊이 결부된 것도 있다. 문학의 모든 장르에서 인생의 진상을 그리는데 예술이 성립된다고 믿는 것이 사실주의지만 단순히 세상을 현실 그대로 묘사하려는 사실주의와는 다르다.
3. 민중애환의 시적 승화
3.1. 시인의 생애와 사상
신경림 신현춘, “신경림론/신경림 시의 민중적 서정성과 그 방법론”, 『초등국어교육 제4호』,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1994, pp.85-108.
은 1935년 4월 6일 충북 충주군 노원면 연하리에서 태어났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읽던 충주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동국대 문리대 영문과를 뒤늦게 졸업했다. 1956년 대학 3학년생으로 「낮달」,「갈대」,「석상」등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가 가난에 허덕이는 생활 등 서울생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하향을 한다.(1975년 봄) 서울을 떠나온 그가 이때부터 10년간 문학적으로는 침묵의 시간으로, 생활면으로는 갖가지 이력의 시간으로 신산의 날들을 보내게 된다. 즉, 그 침묵의 세월동안 그는 광부, 농사일, 장사, 공사장 인부, 학원 강사, 학교 강사 등의 일을 하면서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오랜 침묵을 깨고 『창작과 비평』에 평론가 유종호의 소개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재등장하게 되고, 드디어 1973년에 시집 『농무』를 자비 출간하게 된다.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과 함께 1981년에는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 수상 등의 경력을 가지고 문단 생활을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3.2.「농무」에 나타난 농촌의 현실
시의 값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신경림, 시집『길』의 후기에서.
라고 시인 자신이 밝혔던 것처럼 신경림은 소외된 자들, 단지 익명의 ‘백성’일 따름인 그들에게 ‘민중’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보이고 들리게끔 형상화시키는 문학을 추구해 왔음8) 현기영, 「내가 아는 신경림」,『시와 시학』, 1990년 봄호, p.81.
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적 시인, 전통적 서정시의 맥을 계승하는 시인 등의 칭호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시집 『농무』에 실린 40여 편의 시는 모두 농촌에 관한 상황시다. 이 시집에 대해서 백낙청이
‘우리’의 이야기가 못될 ‘나’의 이야기는 애써 피하고 인식의 혼란이나 감정의 낭비를
가져오기 쉬운 생소한 낱말들을 철저히 솎아 버렸다 백낙청, 시집『농무』의 해설 중에서.
라고 칭송했듯이 그는 우리들과 가까운 시로 시작했던 것이다.
리얼리스트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정확한 묘사와 압축된 사연들을 담고 있는 등 시에
민요를 방불케하는 친숙한 가락을 띠기도 한다. 백낙청, 앞의 책.
것에서도 알 수 있는 우리가락과 우리의 사연들이 『농무』에는 담겨져 있다.
4․19로 표출된 민족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이 5․16쿠데타로 무위로 돌아간 1960년대는 군사정권의 주도하에 산업화가 급소도로 진천되고, 사회의 제반 질서는 소위 ‘근대화’라는 유일한 가치에 맞추어져 유지되는 시대였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생산기반인 농업이 자본주의적 경제하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농업 인구의 급속한 감소에 따른 농촌 공동체의 해체 과정으로 이어졌다. 농업생산 자체가 자본주의적 유통질서에 종속되면서, 농산품은 생산비를 보전할 수 없는 수준에 묶여 있게 되고 이것은 농업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농민들의 생존권을 끊임없이 위협하게 된 것이다.
해방과 전란을 거친 현대시사가 해방공간의 정치적․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현실성과 유리된 순수시 지향의 허약한 모습을 보인 이때 먹고 살기 위해 자신과 남을 함께 짓밟아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끼리 떳떳하고 정직하고 또 평등하게 주고 받는 이야기와 노래의 시로 농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시켜 제1시집 『농무』를 내 놓았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 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농무」전문 신경림, 「농무」, 『농무』, 도서출판 답게, 1999. p.22.
農者들이 운동장 가설 무대에서 한 판을 막 끝내고 값싼 소줏집에서 고달픈 마음을 달랜다. 농무로 다시 원통함을 달래기 위해 거리로 나서지만, 가난과 분노가 없어지지 않는 한 별수 없는 일, 농사라고 지어봤자 비료값도 안되는 농사는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원통함을 농무로 달랜다는 이야기다. 도수장 앞에서 신명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은 가난의 비애와 정한과 죽음이 도수장에서 하나로 융합됨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농촌공동체의 전통적인 예술 행위의 ‘농악’은 구성원들간의 상호 유대와 결속을 다지는 통합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농악의 노래와 춤을 통해 「농무」의 서정적 자아는 공동체의 삶을 관조하고, 더 나아가 그 삶의 이면에 있는 허무와 분노를 자기의 것으로 삼아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박윤우, 「민중적 상상력의 양식화와 리얼리즘의 탐구」, 『시와 시학』, 1993 봄호, p.110.
즉, 농민의 삶의 현장이 지니고 있는 탄식과 분노, 울분과 허무, 그리고 고통을 ‘농민’이라는 집단적 자아의 이름을 빌어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의 비통한 농촌 현실을 포착하고, 소외된 농촌이 사회 현상에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나오며
신경림의 시세계는 끝없는 자성으로 새롭게 탈바꿈되고 깊이를 더해가는 변모의 세계이자 움직이는 세계였다. 그러므로 그의 시세계를 어떤 하나의 모양에 담아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70년대 「농무」를 발표하면서 농민시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신경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가난한 사람, 소외받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 민중시인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내었다.
신경림은 분단된 국토을 잊지 않고 이것으로부터 수많은 시적 발상을 얻었으며, 자신의 목소리이자 떠도는 원혼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허리잘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 놓았다. 신경림의 작은 소망은 그의 시가 늘 어렵게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과 이웃들을 위해 조그만 마음의 위안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작은 소망대로 신경림은 도시 빈민들과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위해 시를 썼고 또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민중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신경림은 자기만의 방법을 통해 이루려고 애를 썼다. 민요체 양식을 도입하여 전통적 가락에서 시를 소화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풀이 정서를 통해 원한 맺힌 이웃들의 아픔을 사회에 알리고 달래주었다. 또 많은 사연이 서린 남한강을 소재로 서사시를 창작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직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중적 응집력의 형성과정을 전형화시킴으로써 역사적 현실의 동시대성과 민중집단의 공동체 의지를 나타냈다.
신경림 시에서의 ‘민중’은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집단이라기보다는 민족사의 애환을 대변하는 증인집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민중’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역사의 현장과 함께 등장하며 비극적 세계관에 의해서 그러한 현장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림의 발단과 공간적 배경은 광산과 산촌, 들판, 논 따위의 일터와 희뿌연 먼지로 뒤덮인 길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물들은 광부, 농민, 노동자, 빈민, 건달, 아편쟁이, 심지어는 한을 품고 죽은 원구들까지도 등장한다. 이런 배경과 인물들이 엮어 내는 소재적 사건들은 거의 어김없이 슬픈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한맺힌 이야기, 노여움, 괴로움, 서글픔, 절망, 좌절, 실의 낙담, 죽음 따위로 연결되어 왔던 것이다. (*)
참고문헌
논문
신현춘, 「신경림론/신경림 시의 민중적 서정성과 그 방법론」, “초등국어교육 제4호”,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1994.
엄창섭, 「사실주의 문학의 이론」, “관대논문집 제22집 1호”, 冠東大學校, 1992.
시집 및 단행본
白樂晴編, 『서구 리얼리즘 소설연구』, 창작과 비평사, 1982,
김동인, 「남은 말」『창조, 제1호』, 1992.
김연순, 『독문학용어사전』, 심구당, 1992.
이강산, 「韓國近代小說論總」, 螢雪出版社, 1983.
박윤우, 「민중적 상상력의 양식화와 리얼리즘의 탐구」, 『시와 시학』, 1993 봄호.
신경림, 『길』, 창작과 비평사, 1990.
신경림, 『농무』, 창작과 비평사, 1975.
신경림, 『농무』, 도서출판 답게, 1999.
현기영, 『내가 아는 신경림』,시와 시학, 1990년 봄호.
글/조정희(하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