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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육사교수로서 후배생도들의 고뇌를 사랑으로 극복케 해줘 -김종윤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 1부에 편성할 동기생 현역시절의 자부, 즉 시대별 국가적 국방이슈와 관련해, 각자 어떤 역할과 공헌 했었던 지에 대한 회고를 수록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 글은 김종윤 동기가 육사교수로서 후배 생도들의 고뇌를 사랑 훈육으로 극복하도록 했던 보람의 기억을, 남기고 싶은 글로 작성해 보내온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생도시절 우리도 힘들게 극복했던 고뇌들이 후배들에게도 이어졌었음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생도시절의 그 고뇌조차 아련한 그리움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세월을 거슬러 그날을 회고하는 오늘 이 시간에 알맞음의 글이란 생각입니다. 다른 동기생들도 평생의 애국안보 전선에서 심혈을 기울여 복무했던 자신의 남기고 싶은 글들이 있을 것이니, 공유하고 공감할 기회를 가지도록 해 주시기 바랍나다. -주(註) 편집위원 김명수
후배생도들의 고뇌를 사랑으로 극복케 해줘
“화랑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사관생도들에 대한 과도한 사랑으로 악명을 날리기도 했던 내 연구실에는 생도생활, 군 생활, 학습활동이나 이성교제 등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생도들이 자주 드나드는 편이었다. 내 연구실 출입문에는 상담가능 시간표와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를 붙여 놓고, 상담용 탁자 위에는 과자나 초콜릿과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고 생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어느 날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4학년 생도가 찾아왔다. 1학년 시절 담당 교반 교반장 생도였고, 학업이나 생도생활에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도였으며, 꾸준히 내 연구실에 와서 상담을 즐겨하던 미래가 촉망되는 생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학교를 나가고 싶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핵심은 야전생활의 미래가 불안하고, 그런 야전부대의 환경에 적응하여 잘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생도생활을 잘해왔고, 그동안의 대화를 통해 앞으로 야전생활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생도가 그런 속마음을 말하니 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들려준 말들이 가치관 형성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이 들기도 하면서 좀 화도 났다.
그래도 4년의 생도생활 동안 엄청나게 받은 교육과 훈련,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습득된 잠재능력들이 어떤 임무도 잘 수행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격려하며 불안감을 달래주었다.
그 생도를 통해 깨닫게 된 졸업반 생도들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연구실에서 밤새워 ‘불확실한 미래와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칼럼을 써서 육사신보에 게재했다. “ (내가 쓴 육사신보 게재 서평에서 따온 글)
보낸 글의 작성 계기가 위의 인용문에 제시되어 있다. 교수로서 사관생도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전하기 위해 수십 차례 육사신보나 추성지, 그리고 방송인성교육을 통해 칼럼이나 사설, 그리고 시로 써서 발표했었다.
내 정년기념문집에 이런 종류의 글과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교수생활의 중요한 요소였기에 회고록에 게재할 수 있을까 하여 보낸다,
불확실한 미래와 헤라클레스의 선택
김 종 윤
어수선한 잠의 끝에 이르기 전, 한번쯤 깨어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창밖의 어둠처럼 그대들의 삶에 깊이 드리워져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드디어 졸업한다는 어설픈 무상감이나 서투른 감상을 버리고 물같이 흘러가 버린 시간의 빠른 흐름 속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진한 의미를 음미해 볼 일이다. 그러한 고통의 경험들은 그대들의 피와 살 속에 살아남아 언 땅 밑에 죽음처럼 누었다가 이른 봄 일제히 일어나는 초록의 생명처럼 그대들의 삶 속에 꽃피고 열매 맺을 양질의 씨앗들이기 때문이다. 산뜻한 장교 정복을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2초소를 나가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곳 화랑대가 일방적으로 고통과 인내를 강요한, 그리하여 외출이나 휴가 때마다 늘 귀영을 망설이게 하던 어둡고 음습한 저주의 땅이 아니라, 영원히 그리워하게 될 창조와 생명의 대지임을…….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던 두려움을 도전적인 젊음으로 묵살하고 처음으로 들어서던 2초소 앞에서의 잠깐 동안의 망설임과, “참아라, 참아라. 그리고 또 참아라. 사나이는 결코 울지 않는다.”라는 신파조의 진부한 말에 뜨겁게 감격할 수밖에 없었던 기초군사훈련으로 시작한 생도생활. 그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후회 없다느니, 아쉽다느니 하는 식의 상투적인 졸업 소감으로 생도생활을 마감할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일부로서 그 세월에 대해 구체적인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여 손익을 가늠해보라.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항해를 위해 분석해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 중의 하나이다.
일상적 자유와 본능적 욕망을 유보한 채 때로는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아낌없이 투자했던 그대들의 젊음과 인내, 그리고 부지런한 투망질에 비해 막상 바구니 속은 너무도 허전한 것은 아닌가? 스스로 삶의 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정해진 일과표에 적응하기에 급급한 수동적 생활은 아니었는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온갖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불합리성, 그것이 바로 삶을 살찌우고 세련시키는 근원적 힘임을 깨닫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가 아니라 그저 불평과 불만으로 회의하던 부정적 사고에 길들여지지는 않았는가? 멋있는 생도, 멋있는 군인, 멋있는 삶을 꿈꾸면서도 막상 그 멋의 구체적인 정체는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애매한 추상론으로 일관한 것은 아닌가? 늘 살아 깨어 꿈꾸고 노래하기를 원하면서도, 그래서 취침 전 일기장에다 수없이 되풀이하던 반성과 좌절의 언어들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의 정서적 감응력은 조금씩 마비되어 이제는 경직된 사고의 포로들이 되지나 않았는가? 세 사람의 좋은 친구를 얻기 위해 그대들이 믿었던 의리와 사랑은 총총히 뒤돌아서 가는 여인의 몸짓하나 어쩔 수 없을 정도의 허망한 인간관계이지나 않은가? 졸음과 악전고투하면서 쌓아올린 그대들의 지적 성취는 A인가, B인가, C인가, D인가, 아니면 스스로 평가하기에 F는 아닌가?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때 남아있는 것” 이라고…….
귀 기울여 겨울바람이 창을 흔드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것은 밤마다 그대들의 피곤한 잠 속으로 찾아와 그대들을 깨어있게 하려는 운명의 두드림이다. 베토벤의 「운명」이 시작하는 소리 말이다. 해야지 해야지 하고 늘 다짐만하다가 결국은 하지 못한 읽고 싶었던 책들과 하고 싶었던 공부가 제출해야 할 과제물처럼 그대들의 의식 속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아쉬움은 늘 남는다.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그대들의 튼튼한 두 다리로 딛고 일어서 새롭게 결의하라. 젊음은 끊임없는 도전을 위한 인내와 용기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어야지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을 위해 낭비되는 탕자의 돈 같은 것이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그대들이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강요된 삶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땀흘려 가꾸어야 하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삶은 보람과 기쁨도 크지만 싸르트르의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실존의 고독과 고통도 동반되게 마련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출발을 결의하는 그대들의 각오도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동시에 수용하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일 때에 가치를 발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이제 곧 그대들은 그대들의 삶을 조건지우는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삶의 곳곳에 묻혀 있다가 사소한 실수에 의해서도 느닷없이 폭발하여 그대들을 무참하게 주저앉히는 지뢰같은 것이다. 그러한 불확실한 미래 속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가치관의 정립이다. 그것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던 갈릴레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 같은 것이어야지 현실타협적 처세를 위한 보호색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삶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을 때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좌충우돌하는 시행착오 인생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갑자기 해제돼버린 각종 금기와 규정으로부터 오는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패한 삶의 무질서 속에 허덕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 두라. 崔瑗의 座右銘은 그러한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우리가 음미해 둘 만한 말이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며, 나의 장점을 자랑치 말라. 남에게 베푼 것은 마음에 두지 말고, 남으로부터 받은 것은 잊지를 말라. 세상의 명예는 아무리 원하여도 부족하니, 오로지 仁으로 紀綱을 삼으라. 隱忍自重하여 행동하면, 남이 나를 헐뜯는다 해도 傷心치 않을 것이다. 명성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어리석다 여기는 것이 성인의 칭찬한 바이다. 진흙탕 속에 있어도 더럽혀지지 않음이 귀하니,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품으라. 부드러움이 삶의 바른 태도이니, 老子는 굳고 강함을 경계했다. 강하게 보이려 함은 비루한 자의 쫓는 바요, 여유 있고 침착해야 그 度量을 헤아리기 어렵다.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며, 만족함을 알아야 재난을 이길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행해야만 그 향기가 절로 사방에 퍼질 것이다.
無道 人之短, 無說己之長. 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 世譽不足慕, 惟仁爲紀綱, 隱心 而後動, 謗議庸何傷 無使名過實, 守愚 聖所臧在浬貴不緇, 曖曖 內含光. 柔弱生之徒, 老氏戒剛强. 行行 鄙夫志, 悠悠故難量. 愼信節飮食, 知足勝不祥. 行之苟有, 久久自芬芳.
그대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항시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노력하라. 그대들의 몸 속에 흐르는 뜨거운 피 때문에 자칫 중대한 문제들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기 쉽다. 빛이 어둠 속에 잉태되어 있듯이 존재의 양면성을 고려하는 이성적 태도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라. 때로는 군인의 길에 대한 깊은 환멸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대들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 사라진 여인이나 기약 없는 사랑에 대한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할 것이며, 세속적 욕망에 번민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 그리워하고 번민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의 징표이다. 그 맺혀있는 한을 그대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역동적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자야말로 지혜로운 자이다. 조급성은 큰일을 그르친다.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한다면 서두르지 말라. 이성적 판단은 늘 여유 있는 행동으로부터 온다.
늘 독서하는 장교가 되라. 책은 그대들의 성공을 보장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그대들에게 자신의 편견과 독선을 강요하는 지휘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독서체험의 부족에서 오는 인격의 파탄임을 기억하라. 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익스피어나 도스토엡스키를 읽지 않고 인생을 말하거나, 삼국유사를 읽지 않고 민족적 주체성을 운운하는 사람이야말로 사람 잡는 선무당임을 명심하라. 회식석상에서 술 잘 먹고 노래 잘하는 장교이기보다는 늘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장교가 되라. 책 속에는 그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책을 통하지 않고 출세를 꿈꾸는 자는 자신의 경험만을 진실로 주장하는 지적 편견과 망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멋진 인생이니 보람된 삶이니 하는 것은 바로 생활 속에서 그러한 멋과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들의 삶이란 하나의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무심히 지나치던 하찮은 풀꽃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휘황찬란한 호텔 로비에 전시된 값비싼 꽃꽂이 작품보다 더 귀한 생명의 경외감을…. 동일한 대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폭넓게, 풍성하게 사는 사람이다. 생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란 것을 느끼며 살기 위해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한다. 바쁘고 피곤한 일과 틈틈이 책을 읽는 장교, 그는 절대로 삶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 母自欺와 愼獨은 예로부터 동양적 선비사상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타인에게 만만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되 자신을 속이지는 말라. 양심이란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켜야 하는 최후저지선이다. 立身揚名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타협을 요구하는 현실적 조건이나 유혹 때문에 너무도 쉽게 위선을 저지르는 인간은 세상에 많다. 그러고도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위대한 인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속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그저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광대와 같은 피동적이고 피곤한 인생일 수밖에 없다. 정직성은 모든 사람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지만,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처세는 자신의 교활함을 드러낼 뿐 인간관계에 실패하기 쉽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성, 그것은 그대들의 양심 속에 늘 푸른 나무처럼 싱싱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한 가지에 안 속으려고 모든 것을 속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종교를 갖도록 하라. 이왕이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유구한 역사를 살아 견딘 뼈대 있고 권위있는 종교를 말이다. 가장 불행한 역사를 지닌 민족이면서도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찬양받는 유태인을 정신적으로 결속시킨 것은 무엇인가. 술 먹는 자리엔 빠지지 않으면서, 바빠서 신앙 같은 덴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사람처럼 살아선 안 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무기력함을 확인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어릴 때 무작정 대장이 되고 싶었던 그대들의 꿈은 이제 얼마나 왜소해지고 변질되어 버렸는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 절대자 앞에 겸허하게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을 건강하고 진지하게 살 수 있는 기본자세를 확립시켜 준다. 어느 날 문득 우리를 엄습하는 외로움을 사랑으로 충만케 하며 극한 상황 속에서 죽음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의 마력이며 신비다. 신앙은 삶의 중압 위에 얹혀 지는 또 하나의 짐이 아니라, 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는 충실한 조력자임을 잊지 말라.
이제 장막을 걷어 젖히고 어둠을 내몰고 다가서는 새벽, 그 찬란한 빛의 미래를 향해 차비하라. 열두 가지의 고역에 직면하는 헤라클레스처럼. 그는 쾌락을 버리고 미덕을 취하여 에우뤼스테우스왕이 제시한 열두 가지의 어려운 일을 해냄으로써 헬레니즘 문명을 이룩한 희랍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웅이 되었다. 군인의 길 그것은 바로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다. 이제 비로소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던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는’ 고역에 직면하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불확실한 미래의 저 편에 서성거리는 것은 불안한 그림자가 아니라 도전을 기다리는 그대들의 꿈이다. 원대한 꿈을 향해 비상하려는 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밀납으로 된 이카루스의 허황된 날개가 아니라 부지런한 나래짓으로 하룻밤에도 수백 킬로를 비행하는 도요새의 작으면서도 튼튼한 나래임을 명심하라.
두 어깨로 하늘을 메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처럼, 그 듬직한 어깨로 자신의 운명을 지고 나아가라. 이 정든 화랑대에 금의환향하는 날까지…….
그대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로 축하한다.
1985. 3. 15.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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