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암공(犁巖公,諱이광승) 행장(行狀)
자는 군술(君述), 효절공의 손자이다. 가정 경자년(1540)에 태어나서 계묘년(1630)에 죽었다. 향년은 64세이다.
공은 어렸을 때 학문에 뜻을 두어 총명하고 민첩하여 두세 번만 이르면 외울 수 있었으나 학문의 뜻을 독실하게 하지 아니하여 큰 선비가 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본성이 순수하여 매년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달이 뜨면 술이 얼마 오르지 아니하여서 문득 좋은 시를 지었고, 외물을 만나면 흥이 일어나 하루도 기뻐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보잘 것 없어 부인이 항상 근심하였으나 거문고를 가지고 구름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즐겼으니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었다 할 것이다. 당시에 종가가 퇴락하여 무너졌으나 보수할 계획이 없음을 보고서 공은 집안의 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그 집을 보수할 것을 주창하여 넘어진 것을 다시 세우고 썩은 것을 바꾸어 종손(이사순)으로 하여금 집이 없는 데서 집이 있게 하였으니 어찌 조상을 흠모하고 종손을 아끼는 성한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이 사람이 한 일은 참으로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착함이 있은 연후에 남의 착한 일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보고서도 그 착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듣고서도 그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니 이 사람이 착한 것을 행하는 마음으로 하여금 끝내 시비하는 데로 돌아가게 했으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착한 것을 보고서 기록하지 아니하면 착한 것을 본심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겠기에 그저 그 중의 한둘을 기록한다.(이 사람의 호는 여암이다.)
<국역선성지.영가지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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