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작가인 이디스 워튼은 상류사회에 들어있던 여성이라고 한다. 상류사회란 19세기 미국에 있었던 원래부터 부자였던, 그리고 새로 부를 창출했던 사람들의 모임을 지칭한다. 나는 상류사회의 흐름, 형태, 삶의 태도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19세기 말 뉴욕에 거주하던 상류층 일단의 삶을 엿볼수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부로써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우리는 드라마속에서 일단의 부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환상과 두려움,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다가갈수 없는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생활들 정말로 그들은 저렇게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기이함도 느낀다. 그러나 더 안타가운것은 그들 곁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이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지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찌져지는것이다. 이 소설의 릴리 바트도 초절정 상류사회를 따라가다 마침내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듯 태어나서 배우고 할줄아는것이 상류층에서의 삶이었으니 그녀의 책이만은 아니다. 상류층에서 돈도 잃고 가족, 친구를 잃어버렸을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원했던 부자 상류층과 결혼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돈을 펑펑쓰며 남편의 위신을 세우는 삶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보통의 상류층과 달리 조금더 순수하고 도덕적이었다. 어쩌면 그의 부모가 너무 어릴적 돌아가지만 않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삶을 살았을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해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어린시절 돌아가셔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은 비교적 가난한 변호사였기에 어려서부터 배워온 상류층 생활을 지켜가기 위해선 마음에도 없는 상류층과 결혼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결혼에 실패하고 빈약한 재정과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 책이 처음 미국 평단에 나왔을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상류층의 일단을 보이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을것 같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류층의 삶에 귀를 기울이듯이 말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현실이란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구차하지만,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