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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12장(第十二章)_1-3/7절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주역대전 : 繫辭下傳:제12장(第十二章)_1절
p.499 【經文】 =====
夫乾, 天下之至健也, 德行, 恒易以知險, 夫坤, 天下之至順也, 德行, 恒簡以知阻,
乾건은 天下천하의 至極지극한 剛健강건함이니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平易평이해서 險험함을 알고, 坤곤은 天下천하의 至極지극한 柔順유순함이니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簡潔간결해서 막힘을 아니,
中國大全
p.499 【本義】 =====
至健則所行无難, 故易, 至順則所行不煩, 故簡. 然其於事, 皆有以知其難而不敢易以處之也. 是以其有憂患, 則健者, 如自高臨下, 而知其險, 順者, 如自下趨上, 而知其阻. 蓋雖易而能知險, 則不陷於險矣, 旣簡而又知阻, 則不困於阻矣. 所以能危能懼而无易者之傾也.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면 行행하는 것이 어려움이 없으므로 平易평이하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면 行행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으므로 簡潔간결하다. 그러나 일에서는 모두 그 어려움을 알아 敢감히 安易안이하게 對處대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憂患우환이 있으면 剛健강건한 사람은 위로부터 내려오듯이 하여 그 險험함을 알고, 柔順유순한 사람은 아래서부터 올라가듯이 하여 그 막힘을 안다. 비록 平易평이하지만 險험함을 알 수 있다면 險험함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이미 簡潔간결하고도 다시 막힘을 안다면 막힘에 困難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危殆위태롭게 여길 수 있고 두려워할 수 있으며, 쉽다고 하는 者자의 기울어짐이 없는 것이다.
p.499 【小註】 =====
或問, 乾是至健不息之物, 經歷艱險處多. 雖有險處, 皆不足爲其病, 自然足以進之而无難否. 朱子曰, 不然. 舊亦嘗如此說, 覺得終是硬說. 易之書本意不如此, 正要人知險而不進 不說是恃我至健至順了, 凡有險阻, 只認冒進而无難. 如此, 大非聖人作易之意. 觀上文云,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耶. 當文王與紂之事耶. 是故其辭危, 危者使平, 易者使傾. 其道甚大, 百物不廢, 懼以終始, 其要无咎, 此謂易之道也, 看他此語, 但是恐懼危險, 便不敢輕進之意. 乾之道便是如此. 卦中皆然, 所以多說見險而能止, 如需卦之類可見. 易之道, 正是要人知進退存亡之道. 若是冒險前進, 必陷於險, 是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豈乾之道耶. 唯其至健而知險, 故止於險而不陷於險也, 此是就人事上說. 險與阻不同, 險是自上視下, 見下之險, 故不敢行, 阻是自下觀上, 爲上所阻, 故不敢進. 又曰, 自山下上山爲阻, 故指坤而言, 自山上觀山下爲險, 故指乾而言. 因登山, 而明險阻之義. 又曰, 乾雖至健, 知得險了, 卻不下去, 坤雖至順, 知得阻了, 更不上去.
어떤 이가 물었다. “乾건은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여 그치지 않는 것이니, 險難험난한 곳을 지나옴이 많을 듯합니다. 비록 險험한 곳이 있더라도 모두 問題문제로 여기지 않기에, 自然자연히 充分충분히 나아가고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까?”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또한 이렇게 說明설명한 적도 있지마는, 끝내는 억지 說明설명이라고 생각됩니다. 『周易주역』의 本來본래 意圖의도는 이와 같지 않으니 바로 사람들에게 險難험난함을 알아 나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 自身자신의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을 믿고서 險험하고 막힘이 있더라고 但只단지 무릅쓰고 나아갈 줄 알면 險難험난함은 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다면 聖人성인이 『周易주역』을 지은 뜻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易역의 일어남이 殷은나라 末世말세와 周주나라의 德덕이 盛성할 때일 것이다. 文王문왕과 紂주의 일에 該當해당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그 말이 危殆위태하여, 危殆위태하다고 하는 者자를 便安편안케 하고, 쉽다고 하는 者자를 기울게 한다. 그 道理도리가 매우 커서 온갖 것을 廢止폐지하지 않지만, 두려워함으로 마치고 始作시작하면 그 要點요점이 허물이 없으리니, 이것을 일러 易역의 道도라 한다”고 한 것을 살펴야 하니, 이 말을 본다면 危險위험함을 두려워할 뿐이니 바로 敢감히 輕率경솔하게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乾건의 道理도리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 卦괘에서도 모두 그러하니, 險難험난함을 알아 그칠 수 있어야 함을 자주 말한 까닭은 需卦수괘(䷄)와 같은 部類부류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周易주역』의 道理도리는 바로 사람들에게 나아감과 물러섬, 存立존립함과 없어짐의 道理도리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萬若만약 險難험난함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서 반드시 險難험난함에 빠진다면, 나아감만 알고 물러섬은 알지 못하고, 存立존립함만 알고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乾건의 道理도리이겠습니까? 바로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면서도 險험함을 알기 때문에 險험함에 멈춰서 險험함에 빠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人事인사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險험함’과 ‘막힘[阻조]’은 같지 않으니, 險험함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본 것으로 아래의 險험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行행하지 않는 것이고, 막힘은 아래에서 위를 살펴본 것으로 위가 막혔으므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山산의 아래에서 山산을 오르면 막힘이 되므로 坤곤을 가지고 말하였고, 山산의 위에서 山산의 아래를 살펴본다면 險험함이 되므로 乾건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山산에 오르는 것으로 險험함과 막힘의 意味의미는 밝혀집니다.”
또 말하였다. “乾건이 비록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해도 險험함을 알았다면 다시 내려가지 않고, 坤곤이 비록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해도 막힘을 알았다면 바로 올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 此段專是以憂患之際而言. 且如健當憂患之際, 則知險之不可乘, 順當憂患之際, 便知阻之不可越. 這都是知憂患之際, 處憂患之道當如此. 因憂患, 方生那知險知阻. 若止就健順上看, 便不相似. 如上下文說危者使平, 易者使傾, 能說諸心, 能研諸慮, 皆因憂患說. 大要乾坤只是循理而已. 他若知得前有險之不可乘而不去, 則不陷於險, 知得前有阻之不可冒而不去, 則不困於阻. 若人不循理, 以私意行乎其間, 其過乎剛者, 雖知險之不可乘, 卻硬要乘, 則陷於險矣, 雖知阻之不可越, 卻硬要越, 則困於阻矣. 只是順理, 便无事. 又問, 在人固是如此, 以天地言之, 則如何. 曰, 在天地自是无險阻, 這只是大綱說箇乾坤底意思是如此. 又曰, 順自是畏謹, 宜其不越夫阻. 夫健卻疑其不畏險, 然卻知險而不去, 蓋他當憂患之際故也. 又問, 簡易. 曰, 若長是易時, 更有甚麽險, 他便不知險矣. 若長是簡時, 更有甚麽阻, 他便不知阻矣. 只是當憂患之際, 方見得.
이 段落단락은 專的전적으로 憂患우환의 때를 말한 것이다. 萬一만일 剛健강건함으로 憂患우환의 때를 만난다면 곧 險험함의 便乘편승할 수 없음을 알 것이고, 柔順유순함으로 憂患우환의 때를 만난다면 바로 막힘의 뛰어 넘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憂患우환의 때를 아는 것이니, 憂患우환에 對處대처하는 道理도리는 이와 같아야만 한다. 憂患우환으로 因인하여 비로소 險험함을 알고 막힘을 알게 된 것이다. 萬若만약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만 가지고 본다면 서로 같지 않다. 萬若만약 위아래의 글에서 “危殆위태하다고 하는 者자를 便安편안케 하고, 쉽다고 하는 者자를 기울게 한다”나 “마음에 기쁠 수 있으며 생각에 窮究궁구할 수 있다”고 한 것 같으면, 모두 憂患우환으로 因인하여 말한 것이다. 大體대체로 乾坤건곤은 但只단지 理致이치를 따를 뿐이다. 그가 萬若만약 앞에 便乘편승할 수 없는 險험함이 있음을 알아 나가지 않는다면 險험함에 빠지지 않고, 앞에 무릅쓸 수 없는 막힘이 있음을 알아서 나가지 않는다면 막힘에 困難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萬若만약 사람이 理致이치를 따르지 않고 그 사이에서 私意사의로 行動행동한다면, 지나치게 剛강한 者자는 비록 險험함의 便乘편승할 수 없음을 알더라도 도리어 억지로 便乘편승하려 할 것이니 바로 危險위험에 빠질 것이고, 비록 막힘의 뛰어 넘을 수 없음을 알더라도 도리어 억지로 뛰어 넘으려 할 것이니 바로 막힘에 困難곤란할 것이다. 但只단지 理致이치를 따라야 无事무사할 것이다.
또 물었다. “사람에 있어서는 참으로 이와 같겠지만, 天地천지로 말하면 어떠합니까?”
答답하였다. “天地천지에 있어서는 本來본래 險험함과 막힘이 없는 것이니, 이는 但只단지 乾건과 坤곤의 뜻이 이와 같다고 大綱대강 말한 것일 뿐입니다.”
또 말하였다. “柔順유순함은 스스로 두려워하고 삼감이니, 막힘을 뛰어 넘지 않는 것이 當然당연합니다. 剛健강건함은 도리어 險험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險험함을 알아서 나가지 않는 것이니, 大體대체로 그가 憂患우환의 때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簡潔간결함과 平易평이함은 무슨 뜻입니까?”
答답하였다. “萬若만약 오래도록 平易평이한 때라면, 다시 어떤 險험함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險험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萬若만약 오래도록 簡潔간결한 때라면, 다시 어떤 막힘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막힘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但只단지 憂患우환의 때에 닥쳐서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南軒張氏曰, 健者, 疑若不知險也, 今乾至健而德行恒易, 故知險而不爲陰所陷. 順者, 疑若不知阻也, 今坤至順而德行恒簡, 故知阻而不爲陽所拒.
南軒張氏남헌장씨가 말하였다. “剛健강건한 것은 險험함을 알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제 乾건은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면서도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平易평이하므로 險험함을 알아 陰음에 빠지지 않는다. 柔順유순한 것은 막힘을 알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제 坤곤은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면서도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簡潔간결하므로 막힘을 알아 陽양에 막히지 않는다.”
○ 漢上朱氏曰, 上繫, 言易簡而天下之理得, 下繫, 終之以易簡而知險阻. 故曰殊塗而同歸, 一致而百慮.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繫辭上계사상」에서는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에 天下천하의 理致이치를 얻는다”[주 319]고 하고, 「繫辭下계사하」에서는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하여 險험함과 막힘을 아는 것으로 끝마쳤다. 그러므로 “길이 달라도 돌아감은 같으며 이룸이 하나여도 걱정은 갖가지이다”[주 320]라고 하였다.”
319) 『周易주역‧繫辭傳계사전』:易簡而天下之理, 得矣, 天下之理得, 而成位乎其中矣. |
320) 『周易주역‧繫辭傳계사전』:子曰, 天下何思何慮, 天下, 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 |
○ 雲峰胡氏曰, 前言乾坤之易簡, 此言乾坤之所以爲易簡. 蓋乾之德行, 所以恒易者, 何也. 乾天下之至健也. 坤之德行, 所以恒簡者, 何也, 坤天下之至順也. 乾健而易, 宜无險矣, 坤順而簡, 宜无阻矣, 此復曰險阻者, 爲上文有憂患而言也. 下危曰險, 乾在上也, 上難曰阻, 坤在下也. 以乾坤健順, 而又曰險阻, 易之辭危也. 健而知險, 則其健也不陷, 順而知阻, 則其順也不阻, 此危者之所平也. 不能知險阻, 而或陷焉, 此易者之使傾也, 聖人憂患之意, 至矣哉.
雲峰胡氏운봉호씨가 말하였다. “앞에서는 乾건과 坤곤의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을 말하고, 여기서 乾坤건곤이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한 까닭을 말하였다. 大體대체로 乾건의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平易평이한 것은 어째서인가? 乾건은 天下천하의 至極지극한 剛健강건함이기 때문이다. 坤곤의 德行덕행이 恒常항상 簡潔간결한 것은 어째서인가? 坤곤은 天下천하의 至極지극한 柔順유순함이기 때문이다. 乾건은 剛健강건하면서 平易평이하니 險험함이 없음이 마땅하고, 坤곤은 柔順유순하면서 簡潔간결하니 막힘이 없음이 마땅하거늘, 여기에서 再次재차 ‘險험함과 막힘’을 말한 것은 위의 글에 ‘憂患우환’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아래가 危險위험한 것을 ‘險험함’이라 하니 乾건이 위에 있는 것이고, 위가 어려운 것을 ‘막힘’이라 하니 坤곤이 아래에 있는 것이다. 乾건과 坤곤의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을 따라서 다시 ‘險험함과 막힘’을 말했으니, 『周易주역』의 말이 危殆위태한 것이다. 剛健강건하면서도 險험함을 알면 그 剛健강건함이 빠지지 않고, 柔順유순하면서도 막힘을 알면 그 柔順유순함이 막히지 않으니, 이것이 危殆위태하다 하는 者자가 便安편안해짐이다. 險험함과 막힘을 알 수 없어서 或혹 빠진다면 이는 쉽다고 하는 者자를 기울게 함이니, 聖人성인의 憂患우환의 뜻이 至極지극하도다!”
韓國大全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險阻承憂患說. 苟無險阻, 寜有憂患. 聖人自有乾健坤順之德行, 健故其行之也, 皆平易而無險澁, 順故其處之也, 皆簡約而無礙阻. 然不可以已能而忘之也. 知者忘之, 反不忘, 所以爲憂患後世也.
險험함과 막힘은 憂患우환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險험함과 막힘이 없다면 어찌 憂患우환이 있겠는가? 聖人성인은 本來본래 乾건의 剛健강건함과 坤곤의 柔順유순한 德行덕행을 지니는데, 剛健강건하기 때문에 그 行행함에 모든 것이 平易평이하여 險험함이 없고, 柔順유순하기 때문에 그 居處거처함에 모든 것이 簡約간약하여 障礙장애가 없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知慧지혜로운 者자는 잊어버리는 것인데 도리어 잊지 않는 것은 後世후세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夫乾 [至] 知阻
乾건은 ‧‧‧막힘을 아니
朱子曰, 乾天下之至健, 㪅著思量. 看來, 聖人旡冒險之事, 須是知險, 便不盡向前去.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乾건은 天下천하의 至極지극한 剛健강건함이다”는 말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聖人성인은 險험함을 무릅쓰는 일이 없어서 반드시 險험함을 알면 全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 他只是不直撞向前, 自別有一箇路去. 如舜知子之不肖, 則以天下授禹相似.
그는 그저 莫無可奈막무가내로 앞으로 가지 않아 스스로 別途별도로 갈 길이 있다. 마치 舜순임금이 子息자식의 못남을 알자 天下천하를 禹우에게 준 것과 비슷하다.
○ 乾健而以易臨下, 故知下之險, 險之意思在下. 坤順而以簡承上, 故知上之阻. 阻是自家低, 他卻高底意思. 自上面來, 下到那去不得處, 便是險. 自下而上, 上到那去不得處, 便是阻.
乾건은 剛健강건하여 ‘쉬움’으로 아래에 臨임하기 때문에 아래의 險험함을 아니, 險험함의 意味의미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 坤卦곤괘(䷁)는 順從순종하여 ‘簡潔간결함’으로 위를 받들기 때문에 위의 막힘을 아는 것이니, 막힘은 自身자신은 낮고 相對상대는 도리어 높다는 뜻이다. 위에서 내려와 아래로 더 以上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 ‘險험함’이다. 아래로부터 올라가 위로 더 以上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 ‘막힘’이다.
○ 案, 陽遇陰陷爲險, 陰遇陽隔爲阻. 凡陽爲高陰爲下, 故陽進而陰虛在前, 則如自高臨下, 前有水澤之險, 陰進而陽剛在前, 則如自下登高, 前有山陵之阻. 故南軒謂不爲陰所陷, 不爲陽所拒. 乾中旡陰, 坤中旡陽, 而猶曰易而知險, 簡而知阻, 此所謂能危能懼也.
내가 살펴보았다. 陽양이 陰음의 구덩이를 만나 險험함이 되고, 陰음이 陽양의 막아섬을 만나 막힘이 된다. 陽양은 높음이 되고 陰음은 낮음이 되므로, 陽양이 나아감에 비어있는 陰음이 앞에 있으면 높은데서 낮은 데로 臨임하는데 앞에 물과 못의 險험함이 있는 것과 같고, 陰음이 나아감에 굳센 陽양이 앞에 있으면, 낮은데서 높은 데로 올라가는데 앞에 山산언덕의 막힘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南軒남헌은 “陰음에 依의해 빠지지 않고, 陽양에 依의해 막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乾卦건괘(䷀)에는 陰음이 없고, 坤卦곤괘(䷁)에는 陽양이 없는데, 오히려 “平易평이해서 險험함을 알고, 簡潔간결해서 막힘을 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危殆위태롭게 여길 수 있고,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下危曰險, 上難曰阻. 乾之德行, 旣易而知險, 坤之德行, 旣簡而知阻. 故能免乎險阻, 而无危也.
아래의 危殆위태함을 ‘險험함’이라 하고, 위의 어려움을 ‘막힘[阻조]’라 한다. 乾건의 德行덕행은 이미 平易평이하여 險험함을 알고, 坤곤의 德行덕행은 이미 簡潔간결하여 막힘을 안다. 그러므로 險험함과 막힘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危殆위태함이 없다.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주 321]
恒易以知險.
恒常항상 平易평이하여 險험함을 알고.
夬之澤需之坎爲險也
夬卦쾌괘(䷪)의 못과 需卦수괘(䷄)의 坎卦감괘(䷜)가 險험함이 된다.
恒簡以知阻.
恒常항상 簡潔간결해서 막힘을 아니
剝之山爲阻也.
剝卦박괘(䷖)의 山산이 막힘이 된다.
321) 경학자료집성DB에서는 「繫辭下傳계사하전」 ‘通論통론’으로 分類분류했으나, 內容내용에 따라 이 자리로 옮겨 바로잡았다. |
【심취제(沈就濟) 『독역의의(讀易疑義)』】
健者天也, 順者地也. 乾而至健, 坤而至順, 則與天地凖者, 其非乾坤耶. 至健至順之至字, 卽至德至精至變至神之至也. 前章屈伸, 言過此以往, 未之或知也. 其所不知者, 屈之至也, 窮神知化, 乃德盛仁熟, 而自致也. 其所自致者, 信之至也. 乾而至健, 坤而至順, 則不可知者, 乾坤之健順也, 自然致者, 乾坤之健順也. 雖曰有造化之跡而無跡, 雖曰有神妙之地而無地, 到此而性情卽精神, 精神卽性情. 其所謂神明之德, 非此之謂歟.
剛健강건함은 하늘이고, 柔順유순함은 땅이다. 乾건으로서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坤곤으로서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니 ‘天地천지와 더불어 같은 것’이 乾坤건곤이 아니겠는가?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다고 할 때의 ‘至지’字자는 ‘至極지극한 德덕스럽다‧ 至極지극히 精密정밀하다‧至極지극히 變化변화한다‧至極지극히 神妙신묘하다’고 할 때의 ‘至지’이다. 앞 章장의 ‘굽히고 폄[屈伸굴신]’은 “이를 지나간 뒤로는 或혹 알지 못한다”를 말한다. 그 알지 못하는 것은 굽힘이 至極지극한 것이고,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은 德덕이 盛大성대하고 어짊이 圓熟원숙하여 저절로 이르는 것이다. 그 저절로 이르는 것은 미더움이 至極지극한 것이다. 乾건으로서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坤곤으로서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니, 알 수 없는 것이 乾坤건곤의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이고, 自然자연히 이르는 것도 乾坤건곤의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이다. 비록 造化조화의 자취가 있다고 했지만 자취가 없고, 神妙신묘한 곳이 있다고 했지만 場所장소가 없으니, 이에 이르면 性情성정이 바로 精神정신이고, 精神정신이 바로 性情성정이다. 이른바 神明신명의 德덕스러움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天尊地卑, 乾坤居其中, 則人之位, 非乾坤耶. 天地本自健順也, 至不可論也. 中庸曰, 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在人而言至誠, 則乾坤之至健至順, 其非居人之位而然耶. 天地乾坤之際, 可以黙會其至字也, 乾之至健坤之至順, 故爲天地之性情. 天尊地卑者, 畫前之乾坤也, 乾健坤順者, 畫後之天地也.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乾坤건곤이 그 가운데 자리한다면, 사람의 자리가 乾坤건곤이 아니겠는가? 하늘과 땅은 本본디 저절로 剛健강건하고 柔順유순하니, 至極지극함을 論논할 수가 없다. 『中庸중용』에서 “精誠정성스러움은 하늘의 道도이고, 精誠정성스럽고자 함은 사람의 道도이다”라 하여 사람에 對대해서 至極지극한 精誠정성을 말하였으니, 乾坤건곤이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한 것이 사람의 자리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땅과 乾건‧坤곤의 사이에 그 ‘至지’字자를 默默묵묵히 吟味음미해 볼 만 하니, 乾건이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坤곤이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性情성정이 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것은 畫획을 긋기 前전의 乾坤건곤이고, ‘乾건은 剛健강건하고 坤곤은 柔順유순하다’는 것은 畫획을 그은 後후의 하늘‧땅이다.
○ 德行者, 健順之德行也. 上下傳, 始以道終以道, 則道爲頭尾, 而德居其中. 德本是中也, 道亦是中也. 德行卽中庸也, 中庸卽德行也. 以性情謂之中和, 以德行謂之中庸, 中庸之中, 兼中和之意, 中和之中, 包中庸之義也. 是故, 健順之下, 言德行也.
德行덕행이란 剛健강건하고 柔順유순한 德行덕행이다. 「繫辭傳계사전」 上下篇상하편이 道도로써 始作시작하고 道도로써 마치니 道도는 머리와 꼬리가 되고 德덕이 그 가운데 居거한다. 德덕은 本來본래 ‘中중’이고 道도 亦是역시 ‘中중’이다. 德行덕행이 바로 中庸중용이고, 中庸중용이 바로 德行덕행이다. 性情성정으로써 中和중화를 말하고, 德行덕행으로써 中庸중용을 말하니, 中庸중용의 中은 中和중화의 뜻을 兼겸하고, 中和중화의 中은 中庸중용의 뜻을 包括포괄한다. 이런 까닭으로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 아래에서 德行덕행을 말하였다.
恒易恒簡之恒, 卽中庸之庸字, 首章所謂貞勝貞觀之貞字也. 天之所以於穆不已者恒也, 人之所以純亦不已者恒也. 易而不恒, 則非健之易也, 簡而不恒, 則非順之簡也. 能易能簡者, 惟在恒之一字也.
‘恒常항상 平易평이하고 恒常항상 簡潔간결하다’고 할 때의 ‘恒항[恒常항상]’은 바로 中庸중용의 ‘庸용[늘상]’字자 이고, 첫째 章장의 이른바 ‘늘 이기고[貞勝정승], 늘 보여준다[貞觀정관]’고 할 때의 ‘貞정’字자이다. 하늘이 ‘深遠심원하여 그치지 않는 것’은 恒常항상 되기 때문이고, 사람이 ‘純粹순수하여 마지않는 것’[주 322]도 恒常항상 되기 때문이다. 平易평이하지만 恒常항상 되지 않으면 剛健강건한 平易평이함이 아니고, 簡潔간결하지만 恒常항상 되지 않으면 柔順유순한 簡潔간결함이 아니다. 平易평이할 수 있고 簡潔간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恒常항상’이라는 이 한 마디에 달려있다.
322) 『中庸중용』 26章장. |
易簡之對險阻也, 處易簡而不見險阻, 則不知其易簡之道也. 當險阻而不見易簡, 則亦不知其險阻之義也. 易簡險阻, 以陰陽言之, 則易簡陽也, 險阻陰也. 易簡之中有險阻, 險阻之中有易簡, 則通乎易簡險阻, 而不失其正, 而恒久不已者, 其非文王之至精至神耶.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은 險험하고 막힘과 相對상대되니,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에 處처해서 險험하고 막힘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한 道理도리를 모르는 것이다. 險험하고 막힘을 만났을 때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을 보지 못한다면 또한 그 險험하고 막힘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과 險험하고 막힘을 陰陽음양으로 말한다면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은 陽양이고, 險험하고 막힘은 陰음이다.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한 가운데 險험하고 막힘이 있고, 險험하고 막히는 가운데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이 있으니, 平易평이하고 簡潔간결함과 險험하고 막히는데 通達통달해서 그 바름을 잃지 않아 끝없이 恒久항구한 것은 文王문왕의 至極지극히 精密정밀하고 至極지극히 神妙신묘함이 아니겠는가?
心統性情也. 乾坤之至健至順者, 理與心會而入心之微也. 心說硏慮者, 心與理會而致用之幾也. 就說心而言, 則心自明白而通乎理也, 乾之事也, 硏慮者, 慮能要約而審乎理也, 坤之事也. 理者妙也, 心用其妙, 則天下之故, 何所不通, 天下之吉凶, 何所不定也. 易之情, 愛惡者, 情也, 論其性情, 故終之以情也. 辭慙辭枝辭屈, 無非情之所發, 聖人之情發乎辭, 則辭以終之, 不亦宜乎. 又以知言終下傳者, 其不合於上傳末之德行乎. 知行二字, 庸學備言也.
마음은 性성과 情정을 統攝통섭한다. 乾坤건곤이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한 것은 理致이치가 마음과 合합해서 마음의 隱微은미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으로 기뻐서 硏究연구하는 者자는 마음이 理致이치와 合합하여 作用작용하는 幾微기미를 이루는 것이다. 기뻐하는 마음에 나아가 말한다면, 마음이 저절로 分明분명하여 理致이치에 通통하는 것은 乾건의 일이고, 硏究연구하는 者자가 생각을 간추려 理致이치를 살피는 것은 坤곤의 일이다. 理致이치는 奧妙오묘한 것이니 마음이 그 奧妙오묘함을 쓴다면 天下천하의 緣故연고를 어떤 것인들 通통하지 못하겠으며, 天下천하의 吉凶길흉을 어떤 것인들 判定판정하지 못하겠는가? 易역의 情정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情정인데, 그 性情성정을 論논하였기 때문에 情정으로 끝맺었다. 그 말이 부끄러워하고, 말이 갈라지고, 말이 卑屈비굴한 것은 情정이 發발한 것이 아님이 없으니, 聖人성인의 情정이 말에서 發발하여 말로써 끝맺은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는가? 또한 ‘말을 아는 것’으로써 「繫辭下傳계사하전」을 마치는 것이 「繫辭上傳계사상전」 끝머리의 ‘德行덕행’에 符合부합하지 않는가? 知行지행 두 글-字자는 『中庸중용』과 『大學대학』에 말이 갖추어 있다.
上下傳, 首以乾坤, 終以乾坤, 則上下傳, 不過乾坤內事, 而學者知而行之, 則可以成能於乾坤之中也. 在天曰命, 在人曰辭, 則明乎天命而能繼文王者, 非夫子繫辭耶. 苟非至神至變至精, 孰能與於此哉.
「繫辭傳계사전」 上下傳상하전에서 乾坤건곤으로 始作시작하고 乾坤건곤으로 끝맺으니 上下傳상하전이 乾坤건곤 안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工夫공부하는 이가 알아서 行행하면 乾坤건곤의 가운데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있어서는 命명이라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辭사라고 하니, 天命천명을 잘 알아서 文王문왕을 繼承계승한 것이 孔子공자의 「繫辭傳계사전」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至極지극히 神妙신묘하고 至極지극히 變化변화하고 至極지극히 精密정밀한 者자가 아니라면 누가 여기에 參與참여할 수 있겠는가?
【윤행임(尹行恁) 『신호수필(薪湖隨筆)‧계사전(繫辭傳)』】
易而知其險, 所以至健也, 簡而知其阻, 所以至順也. 有至健之德則知險, 有至順之行則知阻, 知險知阻, 所以爲至健至順. 心誠好之, 慮以審之, 然後, 可以謂出而成其務, 居而斷其疑.
平易평이하여 그 險험함을 아는 것이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한 까닭이고, 簡潔간결하여 그 막힘을 아는 것이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한 까닭이다.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한 德덕이 있으면 險험함을 알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한 行動행동이 있으면 막힘을 아니, 險험함을 알고 막힘을 아는 것이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하고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하게 되는 까닭이다. 마음으로 眞實진실로 좋아하고 생각하여 살핀 然後연후에 나가서는 그 일을 이루고 居處거처해서는 그 疑心의심을 決斷결단할 수 있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言聖人用易之道, 而章首以健順易簡而知險阻特言之, 以結上下傳首章易簡之義也. 乾之至健, 所行旡難, 而恒易. 然臨事, 則知其險難, 而不敢處之以易. 坤之至順, 所行不煩, 而恒簡. 然臨事, 則知其阻塞, 而不敢處之以簡. 此乃易道所以終始危懼, 而聖人所以成盛德大業者也.
이는 聖人성인이 易역을 쓰는 道理도리를 말한 것으로, 이 章장의 첫머리에 剛健강건함과 柔順유순함 그리고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으로써 險험함과 막힘을 안다는 것을 特別특별히 말해서 「繫辭傳계사전」上下篇상하편이 첫 章장의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의 뜻이라는 것으로 結論결론지었다. 乾건의 至極지극히 剛健강건함은 行행하는 바가 어려울 것이 없으니 恒常항상 平易평이하게 한다. 그러나 일에 臨임해서는 그 險難험난함을 알아 敢감히 平易평이함으로 對處대처하지 않는다. 坤卦곤괘(䷁)의 至極지극히 柔順유순함은 行행하는 바가 煩雜번잡하지 않아 恒常항상 簡潔간결하다. 그러나 일에 臨임해서는 그 막힘을 알아 敢감히 簡潔간결함으로 對處대처하지 않는다. 이것이 易역의 道도가 危殆위태롭고 두려워함으로 마치고 始作시작하는 까닭이고, 聖人성인이 盛성한 德덕과 큰 業업을 이루는 까닭이다.
【이진상(李震相) 『역학관규(易學管窺)』】
知險, 知阻.
險험함을 알고, 막힘을 안다.
險者, 陰體, 如水澤之險是也. 阻者, 陽體, 如山陵之阻是也. 陽遇陰, 則懼其陷, 故乾以知險, 陰遇陽, 則懼其隔, 故坤以知阻.
‘險험함’이란 陰음의 몸-體체이니 江강물과 못의 險험함이 이것이다. ‘막힘’이란 陽양의 몸-體체이니 山산과 언덕에 막힘이 이것이다. 陽양이 陰음을 만나면 거기 빠질 것을 두려워하므로 乾건으로써 險험함을 알고, 陰음이 陽양을 만나면 그 막힐 것을 두려워하므로 坤곤으로써 그 막힘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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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12장(第十二章)_2절
p.502 【經文】 =====
能說諸心, 能研諸侯之慮, 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마음에 기쁠 수 있으며 생각에 窮究궁구할 수 있어 天下천하의 吉凶길흉을 定정하며, 天下천하의 부지런히 애씀[亹亹미미]을 이루는 것이니,
中國大全
p.502 【本義】 =====
侯之二字, 衍. 說諸心者, 心與理會, 乾之事也, 研諸慮者, 理因慮審, 坤之事也. 說諸心, 故有以定吉凶, 研諸慮, 故有以成亹亹.
‘侯之후지’ 두 글-字자는 必要필요 없는 글이다. ‘마음에 기쁘다’는 마음이 理致이치와 맞음이니 乾건의 일이고, ‘생각에 窮究궁구한다’는 理致이치를 생각에 依의하여 살핌이니 坤곤의 일이다. 마음에 기쁘므로 吉凶길흉을 定정할 수 있고, 생각에 窮究궁구하므로 부지런히 애씀을 이룰 수 있다.
p.503 【小註】 =====
朱子曰, 能說諸心, 是凡事見得通透了, 自然歡悅. 旣說諸心, 是理會得了, 於事上更審一審, 便是研諸慮. 研, 是去研磨他.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마음에 기쁠 수 있다’는 모든 일을 끝까지 알아서 自然자연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미 마음에 기뻐하였다면 完全완전히 理解이해한 것이지만, 일에서 다시 한 番번 살펴보는 것이 바로 ‘생각에 窮究궁구함’이다. ‘窮究궁구[研연]’는 그것을 硏磨연마하는 것이다.”
○ 能說諸心, 乾也, 能研諸慮, 坤也. 說諸心, 有自然底意思, 故屬陽, 研諸慮, 有作爲底意思, 故屬陰. 定吉凶, 乾也, 成亹亹, 坤也. 事之未定者屬乎陽, 定吉凶所以爲乾, 事之已爲者屬乎陰, 成亹亹所以爲坤. 大抵言語兩端處, 皆有陰陽. 如開物成務, 開物是陽, 成務是陰. 如致知力行, 致知是陽, 力行是陰. 周子之書屢發此意, 推之可見. 又曰, 定吉凶是陽, 成亹亹是陰. 且以做事言之, 吉凶未定時, 人自意思懶散, 不肯做去. 吉凶定了, 他自勉勉做將去, 所以屬陰. 大率輕淸屬陽, 重濁屬陰, 成亹亹, 是做將去, 涉於事爲, 故屬陰.
‘마음에 기쁠 수 있음’은 乾건이고, ‘생각에 窮究궁구할 수 있음’은 坤곤이다. 마음에 기뻐하는 것은 自然자연스러운 것이므로 陽양에 屬속하고, 생각에 窮究궁구하는 것은 作爲작위 하는 것이므로 陰음에 屬속한다. 吉凶길흉을 定정함은 乾건이고, 부지런히 애씀을 이룸은 坤곤이다. 일이 아직 定정해지지 않은 것은 陽양에 屬속하니 吉凶길흉을 定정함이 乾건이 되는 것이며, 일이 이미 行행해지는 것은 陰음에 屬속하니 부지런히 애씀을 이룸이 坤곤이 되는 것이다. 大體대체로 말이 둘로 끝나는 곳은 모두 陰陽음양이 있다. ‘萬物만물을 열어 일을 이룸’과 같으면 萬物만물을 엶은 陽양이고 일을 이룸은 陰음이며, ‘앎을 다하고 힘써 行행함’과 같으면 앎을 다함은 陽양이고 힘써 行행함은 陰음이다. 周子주자의 글에 屢次누차 이 뜻을 밝혔으니, 이를 類推유추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吉凶길흉을 定정함은 陽양이고, 부지런히 애씀을 이룸은 陰음이다. 일하는 것으로 말하면, 吉凶길흉이 定정해지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 스스로의 생각은 나른하게 흩어져 기꺼이 하려 하지 않는다. 吉凶길흉이 定정해지면 그는 스스로 힘쓰고 힘써서 實踐실천해 갈 것이니, 그래서 陰음에 屬속하는 것이다. 大體대체로 가볍고 맑으면 陽양에 屬속하고, 무겁고 濁탁하면 陰음에 屬속하니, 부지런히 애씀을 이룸은 實踐실천해 가는 것으로 일함과 關聯관련되므로 陰음에 屬속한다.”
○ 定天下之吉凶, 是剖判得這事, 成天下之亹亹, 是做得事業.
‘天下천하의 吉凶길흉을 定정함’은 이 일을 갈라서 判斷판단하는 것이고, ‘天下천하의 부지런히 애씀을 이룸’은 事業사업을 進行진행하는 것이다.
○ 平庵項氏曰, 唯乾坤知之明, 故能道占者之心使之說, 能因占者之慮爲之研.
平庵項氏평암항씨가 말하였다. “오직 乾坤건곤은 앎이 分明분명하므로 占점치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 기쁘게 할 수 있고, 占점치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서 窮究궁구하게 할 수 있다.”
○ 漢上朱氏曰, 天下之吉凶, 藏於无形, 至難定也, 天下之亹亹, 來而不已, 至難成也. 定之成之者, 易簡而已.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天下천하의 吉凶길흉은 숨어서 形體형체가 없으니 定정하기가 至極지극히 어렵고, 天下천하의 부지런히 애씀은 끊임없이 招來초래하니 이루기가 至極지극히 어렵다. 定정하고 이루는 것은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일 뿐이다.”
○ 雲峰胡氏曰, 理悟而心悅, 乾之事也, 故有以定吉凶, 事來而慮研, 坤之事也, 故有以成亹亹. 此言易之辭危而能使人如此也.
雲峰胡氏운봉호씨가 말하였다. “理致이치를 깨달아 마음으로 기뻐함은 乾건의 일이므로 吉凶길흉을 定정할 수 있고, 일이 닥침에 생각해서 窮究궁구함은 坤곤의 일이므로 부지런히 애씀을 이룰 수 있다. 이는 『周易주역』의 말이 危殆위태하여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韓國大全
【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주 323]
聖人之心, 有乾坤之理, 故能如此.
聖人성인의 마음에는 乾坤건곤의 理致이치가 있으므로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이다.
323) 경학자료집성DB에 「繫辭下傳계사하전」第九章제9장에 編輯편집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영인본의 體制체제에 依據의거하여 「繫辭下傳계사하전」第十二章제12장으로 옮겨 바로 잡았다. |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能說諸心, 精神合也, 能研諸慮, 思度審密也. 聖人作易之功如此, 故能斷定天下之吉凶, 以之傳遠而成後世之亹亹. 亹亹久遠之義. 聖人作易之效如此.
‘마음에 기쁨이 있을 수 있는 것’은 精神정신이 合합하는 것이고, ‘생각에 窮究궁구할 수 있는 것’은 잘 살펴서 헤아리는 것이다. 聖人성인이 易역을 지은 功공이 이와 같다. 그러므로 天下천하의 吉길함과 凶흉함을 判定판정할 수 있고, 그것을 멀리까지 傳전해서 後世후세의 부지런히 애씀[亹亹미미]을 이루었다. ‘亹亹미미’는 오래가고 멀다는 뜻이다. 聖人성인이 易역을 지은 效驗효험이 이와 같다.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能說 [至] 亹亹
마음에 기쁠 수 있으며‧‧‧부지런히 애씀을 이루는 것이니,
漢上朱氏曰, 易簡也, 故能說諸心, 知險阻也, 故能硏諸慮. 易簡者, 我心之所固有, 反而得之, 能旡說乎. 以我所有, 慮其不然, 反覆不舎, 能旡硏乎.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쉽고 簡潔간결하기 때문에 마음에 기쁠 수 있고, 險험함과 막힘을 알기 때문에 생각에 窮究궁구할 수 있다. 平易평이함과 簡潔간결함은 내 마음에 本본디 있는 것인데 돌이켜 求구하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가진 것으로써 그 그렇지 않은 것을 생각하여 反復반복해서 버려두지 않아야 하니 窮究궁구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 朱子曰, 說諸心, 只是見過了便說, 這箇屬陽. 硏諸慮, 是硏窮到底, 似那安而能慮, 直是子細了, 這箇屬陰.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마음에 기쁘다’는 것은 但只단지 보면 바로 기쁜 것이니, 이는 陽양에 屬속한다. ‘생각에 窮究궁구 한다’는 것은 徹底철저하게 硏究연구하는 것으로 마음이 安定안정되어 생각할 수 있어 細密세밀한 것과 같으니, 이는 陰음에 屬속한다.”
○ 案, 心與理會, 則其心明白易見, 乾道也. 理因慮審, 則其事縝密便簡, 坤道也.
내가 살펴보았다. 마음이 理致이치와 맞으면 그 마음이 分明분명하여 쉽게 보이니 乾道건도이다. 理致이치를 생각에 依의하여 살피면 그 일이 찬찬하고 細密세밀해서 簡潔간결하니 坤道곤도이다.
* 縝고울 진: 1. 곱다 2. 仔詳자상하다, 찬찬하다(성질이나 솜씨, 行動행동 따위가 꼼꼼하고 仔詳자상하다) 3. 촘촘하다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本義, 侯之二字衍. 說諸心者, 心與理會. 硏諸慮者, 理因慮審. 定吉凶者, 陽也, 成亹亹者, 陰也.
『本義본의』에서 말하였다. “‘侯之후지’ 두 글-字자는 必要필요 없는 글-字자이다. ‘마음에 기쁘다’는 마음이 理致이치와 맞음이다. ‘생각에 窮究궁구 한다’는 理致이치를 생각하여 살핌이다. 吉凶길흉을 定정하는 것은 陽양이고, 애씀을 이루는 것은 陰음이다.”[주 324]
324) 『本義본의』의 內容내용과 小註소주의 內容내용이 섞여 있다. |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侯之二字, 衍文也, 承上文而言健而知險, 不敢處之以易. 故能理會于心, 而得其相說, 以定天下之吉凶, 此卽開物之道, 乾之事也. 順而知阻, 不敢處之以簡, 故能慮審于理, 而得其精研, 以成天下亹亹之業, 此卽成務之道, 坤之事也.
侯之후지 두 글-字자는 必要필요 없는 글이다. 윗 文章문장을 이어서 剛健강건하여 險험함을 알아 敢감히 平易평이함으로 對處대처하지 않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理致이치가 마음에 모일 수 있어서 그 서로 기뻐함을 얻어 天下천하의 吉凶길흉을 定정하니, 이것이 바로 萬物만물을 여는 道理도리로 乾건의 일이다. 柔順유순해서 막힘을 알아 敢감히 簡潔간결함으로 對處대처하지 않으므로 理致이치에 對대해 살펴서 그 精密정밀한 硏究연구를 얻어 天下천하의 부지런히 애쓰는 事業사업을 이루니, 이것이 일을 이루는 道理도리로 坤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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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12장(第十二章)_3절
p.504 【經文】 =====
是故, 變化云爲, 吉事有祥. 象事知器, 占事知來,
이런 까닭으로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에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알며, 일을 占점쳐서 올 것을 아니,
中國大全
p.504 【本義】 =====
變化云爲, 故象事可以知器, 吉事有祥, 故占事可以知來.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하므로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알 수 있고, 吉길한 일에는 祥瑞상서로움이 있으므로 일을 占점쳐서 올 것을 알 수 있다.
p.504 【小註】 =====
朱子曰, 此節上兩句, 是說理如此, 下兩句, 是人就理上知得. 在陰陽則爲變化, 在人事則爲云爲, 吉事自有祥兆. 唯其理如此, 故於變化云爲, 則象之而知已有之器, 於吉事有祥, 則占之而知未然之事也.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이 句節구절의 앞의 두 句구는 理致이치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고, 뒤의 두 句구는 사람이 理致이치에서 깨닫는 것이다. 陰陽음양에 있어서는 變변함과 化화함이 되고, 人事인사에 있어서는 말함과 行행함이 되며, 吉길한 일에는 自然자연 祥瑞상서로운 兆朕조짐이 있다. 오직 理致이치가 이와 같으므로 ‘變변함과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에 對대해서는 이를 그려내어 이미 있는 器物기물을 알며,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음’에 對대해서는 이를 占점쳐서 아직 있지 않은 일을 아는 것이다.”
○ 問, 凡見於有形之實事者, 皆爲器否. 曰, 易中器字, 是恁此說.
물었다. “모든 形體형체가 있는 實際실제의 事物사물로 드러난 것이 모두 器物기물이 아닙니까?”
答답하였다. “『周易주역』의 器物기물은 이런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 問, 易書之中, 有許多變化云爲, 又吉事皆有休祥之應, 所以象事者於此而知器, 占事者於此而知來. 曰, 是.
물었다. “『周易주역』에는 數수많은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이 있고, 다시 吉길한 일에는 모두 祥瑞상서로운 反應반응이 있으니, 일을 그려내는 사람은 이에 根據근거하여 器物기물을 알고, 일을 占점치는 사람은 이에 根據근거하여 올 것을 아는 것입니까?”
答답하였다. “맞습니다.”
○ 問, 變化云爲, 主於人而言否. 曰, 變化者, 陰陽之所爲, 云爲者, 人事之所作.
물었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은 사람을 爲主위주로 말한 것입니까?”
答답하였다. “變변하고 化화함은 陰陽음양이 行행하는 것이고, 말하고 行행함은 사람의 일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 變化云爲是明, 吉事有祥是幽. 象事知器是人事, 占事知來是筮. 象事知器, 是人做這事去, 占事知來, 是他方有箇禎祥, 便占得他. 如中庸言必有禎祥, 見乎蓍龜之類. 吉事有祥, 凶事亦有.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은 밝은 것이고,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는 어두운 것이다.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안다’는 사람의 일이고, ‘일을 占점쳐서 올 것을 안다’는 占점치는 것이다.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앎’은 사람이 이 일을 해나가는 것이고, ‘占점쳐서 올 것을 앎’은 저것에 막 祥瑞상서로운 兆朕조짐이 있자마자 바로 그것을 占점치는 것이다. 『中庸중용』에서 “반드시 祥瑞상서로운 兆朕조짐이 있어서 蓍草占시초점과 거북-占점에 나타난다”[주 325]고 한 것과 같은 部類부류이다. 吉길한 일에도 祥瑞상서로움이 있고, 凶흉한 일에도 또한 있다.
325) 『中庸중용』: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見乎蓍龜, 動乎四體. |
○ 息齋余氏曰, 變化云爲, 吉事有祥, 不假象占者也, 象事知器, 占事知來, 求諸象占者也, 不假象占, 百姓之所以與能也.
息齋余氏식재여씨가 말하였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과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는 그려내고 占점칠 必要필요가 없는 것이고,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앎’과 ‘일을 占점쳐서 올 것을 앎’은 그려내고 占점쳐서 求구하는 것이니, 그려내고 占점칠 必要필요가 없는 것에 百姓백성이 功能공능에 參與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 雲峰胡氏曰, 在天道爲變化, 在人事爲云爲. 人事與天道相符, 則吉事有祥矣. 此言易之理如此也. 於變化云爲, 則象之而知其已形之器, 於吉事有祥, 則占之而知其未形之事. 此言人於易之理, 可以知其如此也.
雲峰胡氏운봉호씨가 말하였다. “天道천도에 있어서는 變변함과 化화함이 되고, 人事인사에 있어서는 말함과 行행함이 된다. 人事인사가 天道천도와 서로 符合부합하면 ‘吉길한 일이 祥瑞상서로움이 있을 것’이다. 이는 『周易주역』의 理致이치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에 對대해서는 이를 그려내어 이미 形成형성된 器物기물을 알며,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에 對대해서는 이를 占점쳐서 形成형성되지 않은 일을 안다. 이는 사람들이 『周易주역』의 理致이치가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韓國大全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變化 [至] 知來,
變변하고 化화하며‧‧‧올 것을 아니,
平庵項氏曰, 云爲卽言動也. 人之言動, 卽易之變化也. 故曰, 變化云爲, 此四句, 卽上繫之四道也. 變化云爲, 卽尙其事, 尙其變也. 象事占事, 卽尙其象, 尙其占也. 精於變化云爲, 則知動之微見, 吉之先, 有擬議之功, 旡諂瀆之禍, 故曰吉事有祥. 此以辭與變, 體之於身也. 精於觀象, 可知制器之理, 如十三卦是也. 精於占卜, 可知方來之事, 如遂知來物是也. 此以占與象, 措於辭也.
平庵項氏평암항씨가 말하였다. “云爲운위는 ‘말함’과 ‘行행함’이다. 사람이 말하고 行動행동함이니 바로 易역의 ‘變변함’과 ‘化화함’이다. 그러므로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한다”는 이 네 句節구절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道도이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한다”는 그 일을 崇尙숭상함이고, 그 變化변화를 崇尙숭상함이다. ‘일을 그려내고, 일을 占점친다’는 바로 ‘그 象상을 崇尙숭상하고, 그 占점을 崇尙숭상함’이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하기를 精密정밀하게 하면 움직임이 微妙미묘하게 드러남을 알아차려서, 吉길한 것에 앞서서 헤아리는 功공이 있고, 困境곤경에 빠지는(瀆독) 禍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辭사와 變변으로써 몸에 體得체득하는 것이다. 象상을 觀察관찰하기를 精密정밀하게 하면 器具기구를 만드는 理致이치를 알 수 있으니 十三卦13괘 같은 것이 이것이다. 占점치기를 精密정밀하게 하면 막 올 일을 알 수 있으니, 마침내 올 것을 안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占점과 象상을 가지고 辭사에 놓은 것이다.”
○ 案, 吉凶見於卦之變化, 妖祥見於人之云爲, 如中庸所謂見乎蓍龜, 動乎四體是也. 只言吉事, 則凶事在其中.
내가 살펴보았다. 吉凶길흉은 卦괘의 變化변화에서 보이고, 妖邪요사함과 祥瑞상서로움은 사람이 말하고 行행하는데서 보이니, 『中庸중용』에 이른바 “蓍草占시초점과 거북-占점에 나타나며, 四肢사지에서 드러난다”[주 326]는 것이 이것이다. 吉길한 일만 말하면 凶흉한 일을 그 가운데 있다.
326) 『中庸중용』 二十四章24장.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在天道則爲變化, 在人事則爲云爲. 人事與天道相符, 則吉事有祥. 所以象事者, 於此而知器, 占事者於此而知來.
天道천도에 있어서는 變변하고 化화하며, 人事인사에 있어서는 말하고 行행한다. 人事인사가 天道천도와 서로 符合부합하면 吉길한 일에는 祥瑞상서로움이 있다. 따라서 일을 그려내는 者자는 여기에서 器物기물을 알고, 일을 占점치는 者자는 여기에서 올 것을 안다.
【윤행임(尹行恁) 『신호수필(薪湖隨筆)‧계사전(繫辭傳)』】
中庸曰, 國之將興, 必有禎祥, 此之謂吉事有祥. 伏羲之時, 河而出圖, 大禹之世, 洛而出書, 吉祥也. 如僞周書白魚赤烏, 讖緯之筌也.
『中庸중용』에 “나라가 將次장차 興흥하려 하면 반드시 祥瑞상서로운 兆朕조짐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吉길한 일에는 祥瑞상서로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伏羲氏복희씨 時節시절에 黃河황하에서 「河圖하도」가 나오고, 禹우임금의 時節시절에 洛水낙수에서 「洛書낙서」가 나온 것이 吉길한 祥瑞상서로움이다. 僞書위서인 『周書주서』에 나오는 흰 물고기와 붉은 새의 豫言예언 같은 것은 讖緯참위의 道具도구(筌전)이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單言吉事, 則凶可推也. 此節承上文定吉凶成亹亹之語, 言辭變象占四者之道也. 變化云爲者, 言陽變陰化之事, 皆有動作而云爲也. 吉事有祥者, 言以吉, 繫辭之事, 皆有禎祥之先見也. 象事知器者, 言尙其象而知制器之事也. 占事知來者, 言尙其占而知未來之事也.
吉길한 일만 말하면 凶흉함은 미루어 볼 수 있다. 이 節절은 윗 文章문장의 ‘吉凶길흉을 定정하고 부지런히 애씀을 이룬다’는 말을 이어서 辭사‧變변‧象상‧占점의 네 가지 道理도리를 말하였다. “變변하고 化화하며 말하고 行행함”은 陰陽음양이 變化변화하는 일이 모두 움직이고 말하고 行행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吉길한 일은 祥瑞상서로움이 있다”는 吉길함으로써 말한 것이니 말을 매다는 일은 모두 祥瑞상서로움을 먼저 보인 것이다. “일을 그려내어 器物기물을 알며”는 그 象상을 崇尙숭상하여 器物기물을 製作제작하는 일을 앎을 말한 것이고, “일을 占점쳐서 올 것을 아니”는 그 占점을 崇尙숭상하여 未來미래의 일을 앎을 말한 것이다.
【이진상(李震相) 『역학관규(易學管窺)』】
○ 吉事有祥
吉길한 일에는 祥瑞상서로움이 있다.
天道變化, 而妖祥著焉. 人事云爲, 而吉匈判焉, 天人相應之妙也. 象是象其變化, 而云爲卽著於器. 占是占其吉匈, 而妖祥以類而來.
天道천도는 變변하고 化화함에서 妖邪요사스러움과 祥瑞상서로움이 드러나고, 人事인사는 말하고 行행함에서 吉凶길흉이 갈라지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呼應호응하는 奧妙오묘함이다. 象상은 그 變化변화를 本본뜨는 것이고, 말하고 行행함은 器物기물에서 드러난다. 占점은 吉凶길흉을 占점쳐서 妖邪요사스러움과 祥瑞상서로움이 部類부류대로 오는 것이다.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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