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프라 안젤리코
도미니코회 수사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는
1437-1443년에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총 51점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 재위 1431-1447)가 주문하였고,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후원했다.
코시모는 미켈로초(Michelozzo di Bartolomeo, 1396-1472)에게 건축을 맡기고,
프라 안젤리코에게 벽화를 맡겼다.
1436년에 도미니코회가 산마르코 수도원을 인수받았을 때
성당과 수도원 일부는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그래서 1437-1443년까지 7년에 걸쳐 산마르코 수도원을 재건하게 된 것이다.
수도원의 1층 회랑의 각 방 출입문 위에 다섯 점의 류네트(Lunette)와
참사회의실(Chapter room)과 회랑에 각각 한 점씩 총 일곱 점의 류네트 벽화가 있고,
2층 복도에는 세 점의 벽화가 있으며,
44개의 침실 중 12-14번 방을 재외하고 41개의 수도자들의 독방(Cells)에
각각 한 점씩의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독방을 사용하는 수도자들의 신분에 따라 다섯 그룹으로 벽화가 구분되는데,
각 그룹의 독방 벽화들은 수도자들의 신분에 따라 다른 특성을 지닌다.
특히 수도원 외부 방향의 동쪽 2-9번 독방은 참사위원 신부들의 방으로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여덟 개의 주요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
그중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네 번째 방에 있는 벽화로,
마태오 27,32-56; 마르코 15,21-41; 루카 23,26-49; 요한 19,16-30이 그 배경이다.
십자가가 있는 골고타에는 칠흑 같은 어두운 하늘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십자가를 경계로 바위산이 둘로 갈라져 있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마태 27,45)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마태 27,50-51)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하늘과 둘로 갈라진 바위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에로 깊이 몰입하게 한다.
십자가의 명패에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고 약자(INRI)로 쓰여 있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께서는 두 눈을 감고
인류 구원을 위해 고요히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와 두 발에서는 선혈이 뿜어져 나와 땅을 흠뻑 적시고 있다.
예수님 몸에서 흐르는 붉은 피는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강조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신학적 토대가 되는 성체성사 신심은
13세기 탁발수도회를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발전하였다.
도미니코회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기념하는 성체성혈 대축일을 축일로 지냈는데,
이것은 도미니코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는 성찬의 전례에서 성체와 성혈이 되기 때문에
미술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강조하는 것은 성체성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십자가 아래에는 네 명의 성인이 있는데,
성모마리아와 사도 성 요한, 성 도미니코와 성 예로니모이다.
왼쪽에는 수난을 상징하는 보라색 옷을 입은 성모마리아와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도 성 요한이 서 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으며,
그때부터 그 제자가 성모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기 때문이다.(요한 19,26-27)
그런데 성모마리아는 이 엄청난 순간에도 기절하지 않았고,
사도 성 요한 역시 어머니를 부축하지 않았으며,
십자가를 향해 똑바로 서 있다.
중세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 성모님을
구원의 동반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도미니코회의 신학자인 성 알베르토(St. Albert the Great, 1208-1280)와
성 안토니오(St. Antonino, 1389-1459)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들 예수님을 구원의 희생 제물로 바친 마리아를
‘정의의 사제’라고 칭했고,
이로 인해 마리아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인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십자가 아래에 곧게 서계신 성모마리아는
굳건한 믿음으로 구세사에 협력한 가장 모범적인 성인이 된 것이다.
사도 성 요한은 성모님 뒤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맞은편에 있는 성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도 성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에 관한 말씀들이
그들에게 번역과 관상의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성 요한은 맨발이다.
그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한 수난까지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른편에 머리 위에 별이 있는 성 도미니코는
곧게 서서 양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고 있는데,
이 동작은 하느님과 깊은 내적 일치를 이룰 때 하는 기도의 자세이다.
성 도미니코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그가 실제로 여행 중에도 조용한 곳으로 가서 똑바로 몸을 세우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였다고 한다.
성 도미니코 뒤에 있는 성 예로니모는
낡은 흰색 장백의를 입고 있는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다.
그도 사도 요한처럼 맨발이다.
그는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예루살렘 광야에 들어가
평생 동안 은둔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는 사슬과 붉은 책이 들려있다.
이것은 감옥과 같은 동굴에서 불가타 성경을 집필한 그의 업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오른쪽 발치에는 붉은색 모자가 있다.
그의 신분이 추기경이었기 때문이다.
성 예로니모는 참회의 성인으로 유명한데,
중세에서 참회란 죄를 뉘우치며 고행하면서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마르코수도원 4번 방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도미니코회의 핵심교리인 성체성사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관객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대한 성모님의 굳건한 믿음과
사도 성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관상을 통한 성 도미니코의 깊은 영적 체험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수난을 따르기 위해 고행과 참회의 삶을 실천한
성 예로니모를 본받도록 독려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