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보는 것은 쉽다. 음악과 미술처럼 열린 감수성이면 족하다. 좋은 음악에 귀가 서고 아름다운 미술작품에 눈이 커지듯, 우리는 잘 지어진 건물의 자태에 감탄사를 앞세운다. 서울 동숭동의 ‘샘터사옥’은 참 아름답다. 재료를 잡다하게 사용하지 않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벽돌로만 쌓았다. 창틀도 보이지 않고 유리만 보일 정도이다. 단순한 재료 사용은 구현하기 어려운 덕목으로 건축가의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또, 착하기도 하다. 1층을 뚫어 앞마당을 제공하였다. 땅값 비싼 서울에 너무나도 고마운 쌈지마당이다. 연극을 보려고 친구를 만나려고 북적거리는 곳, 동숭동에서 가장 많이 기억되는 곳이다. 상자모양의 건물로서 ‘힐튼호텔’만큼 건축가의 센스를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이 건물은 대단히 길쭉한 평면 건물이어서 밋밋하거나 지루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건축가는 장식 대신에 건물의 양쪽을 살짝 꺾었다. 이 꺾음에 의해 건물은 날아갈 듯이 가볍고 세련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서로 어울려서 더욱 아름다운 건물도 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대한의원본관’이 그러하다. 규모가 큰 ‘서울대학교병원’이 두 팔을 넓게 벌려 ‘대한의원본관’을 포옹하듯 배경으로 서 있는데, 마치 전생에 이미 점지된 배필인 듯 서로를 아껴준다. ‘하얏트호텔’ 앞에 위치한 ‘갤러리빙’은 덩치가 작은 건물이다. 그런데 건축가가 마치 보석을 깎듯이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어서 ‘하얏트호텔’은 담담한 무대 배경이 되었다. 서로가 있음으로 해서 풍성함을 풍긴다. 아름다운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사당’은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사용방식도 권위적이다. 의회민주주의 상징인 건물인데 왕권시대의 흔적이 있다. 의사당 앞길에 들어선 건물들은 규제에 의해 키가 똑같다. 정문은 국회의원들만 출입할 수 있고 유권자는 뒷문을 이용해야 한다. 앞마당에는 품계석이 설치되어 있어 아무나 주차할 수 없다. 조선시대의 궁궐을 담고자 함이다. 건축은 비를 피할 만한 공간을 만들거나, 한 뼘이라도 더 임대할 공간을 짜내는 것이 아니다. 건축은 사람의 모습과 생활,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까지 담는다. 그래서 건축은 건축가가 표현하는 시대정신인 것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건물은 어떤 것일까?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서 우리 건축의 영원한 고전이다. 1300년을 이어오는 동안 세월의 도전을 받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낸 절이다. 이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시대의 간극을 두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아주 빼어난 눈썰미를 가졌을 것이고, 어떤 이는 충실한 교리의 해석자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부석사>를 만드는데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쏟았다. 이름은 서로 다른 세월의 저편에 묻혀 있지만 우리는 최고의 건물을 만들겠다는 일관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부석사’는 그렇게 우리 앞에 서 있다.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건축의 가치는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 사고구조를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