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제5권
54. 불설부부경(佛說夫婦經), 청신사와 그의 아내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청신사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단정하고 그 모습이 특히 뛰어났다. 위광(威光)이 높디높으며 위덕이 비할 데가 없었다.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말에 변재(辯才)가 있어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하여 뭇사람들의 공경을 받았다.
그런데 그 남편은 그녀를 중히 여기거나 공경하지 않고 미워하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늙은 노복을 좋아하고 공경하여 노비를 첩으로 삼고 그를 공경하였다.
그 아내는 남편의 마음이 딴 데 있어 불화(不和)하고 노복에게 뜻이 있는 줄을 알고 그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마음으로 나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제 청을 들어주세요. 출가하여 도를 수행하는 비구니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여러 번 말하니, 그 남편이 청을 들어 주었다. 즉시 출가하여 도를 닦는 비구니가 되어서는 밤낮으로 정진하며 도를 행하니 오래지 않아 나한도를 증득하였다.
그 후에 그 청신사가 사랑하던 여인이 죽었다. 그때 청신사는 곧 전에 그의 아내였던 비구니를 찾아서 그를 불러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비구니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출가하여 타인이 되었소. 다른 세상에서 살아서 죄와 복이 다릅니다.”
그때 비구니에 대한 것을 듣고 세존께 가서 그 본말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청신사는 이번 세상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세상에도 이 덕이 있는 여인을 욕하였느니라. 이 여인은 태어날 때마다 덕이 있었으며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항상 그를 괴롭혔느니라.
지금 이 비구니는 이미 대로(大路)에 들어섰으니, 또 그를 욕한다 해도 다시는 남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무수히 오랜 옛날 한 범지가 있었는데 연화(蓮華)라고 이름하는 아내가 있었다.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특히 그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세상에 드문 제일가는 용모였다. 그 덕도 누구도 미치기 어려울[難及] 정도였는데
그 범지는 한 노비와 가깝게 지내며 그 노비를 좋아하고 공경하면서 이 연화 부인은 공경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노비의 말을 들었느니라.
아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산에 가서 우담발(優曇鉢) 나무의 잘 익은 과일들을 따서 먹었는데 남편은 덜 익은 것을 버리기도 하고 그것을 아내에게 주기도 하였다.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어찌하여 혼자서만 익은 과일을 먹고 덜 익은 것은 버리거나 제게 주십니까?’
그 남편이 말했다.
‘잘 익은 것을 먹으려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스스로 가져와야 하지 않겠소?’
그 아내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내게 주지 않으니 저는 얻을 수가 없군요. 남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아내는 즉시 나무 위에 올라갔다. 남편은 아내가 나무 위에 올라간 것을 보고 즉시 나무 아래에 가시나무를 많이 가져다가 둘레에 쌓아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아내를 나무 위에 내버려두고 가면서 그 위에서 죽기를 바랐다.
그때 국왕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사냥을 나왔는데 그 나무 아래를 지나가다가 이 여인을 보게 되었다.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특히 그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였다.
그래서 곧 그 여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며 어디서 왔는가?’
그 아내가 전후 사정을 말하니 국왕은 ‘변고로구나’라고 하였다.
왕이 여자의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구족하여 아무런 결점[瑕]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 범지는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자로 장부가 아니로구나. 이런 여인을 좋아하고 공경하지 않다니 말이다.’
그 가시나무를 치워버리고 왕궁으로 데려와 왕비로 삼았다. 그 왕비는 지혜와 변재가 그 누구도 미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더불어 저포(摴蒲:놀이의 일종)를 하고 육박(六博:놀이의 일종)과 서소(書疏)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멀고 가까운 데서 여인들이 와서 왕비와 육박놀이를 하면 왕비가 이겼으니, 그를 능히 당해낼 이가 없었다.
그때 범지는 멀리서 왕비가 용모가 단정하고 육박을 잘한다는 것과, 갔다 온 사람이 왕비가 이겼으며 왕비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를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생각하였다.
‘이는 나의 전처일 것이니, 다른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의 전처는 육박을 제일 잘하였다.’
그 범지도 육박을 잘하였으므로 왕에게 가서 그 기술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때 왕후는 어떤 범지의 모습이 이러이러하고 그 얼굴과 장단점과 잘 생기고 못 생긴 모습이 어떻다는 말을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나의 전 남편이구나.’
그때 범지는 왕궁의 문으로 가니 왕은 그를 보고 멀리서 육박의 기술을
시험하였고, 시종 드는 사람의 이름은 치(齒)였느니라.
그때 범지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머리가 아름다워 8척이 되고
그 눈썹은 그림과 같도다.
그 부드러움이 제일이니
마땅히 익은 과일을 생각해보시오.
이때 왕후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노비는 제멋대로 하며
그대 마음은 그를 좋아하였소.
그를 첫째로 공경하고 중히 여기니
나는 쫓겨나서 첫째가 된 것이오.
그때 범지는 게송으로 다시 왕후에게 대답하였다.
용이 머무는 한가한 곳에 와서
용상에서 항상 노닐며
더불어 오락을 하고 있구려.
마땅히 익은 과일을 생각해보시오.
왕후가 게송으로 범지에게 대답하였다.
혼자서 익은 과일을 먹고
날 것은 나를 주었네.
이것이 나의 숙명적인 인연인 까닭에
범지에게 쫓겨나게 되었네.
이때 범지는 마음속으로 회한이 일어 곧 자신을 책망하고 한없이 후회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범지는 지금의 청신사였고, 그 아내는 지금의 아내였으며, 그 국왕은 나였느니라. 그때 난리를 일으키더니 지금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