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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자그만한 기적을 통해서라도
주님께서 성령의 약속을 지키로 오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오직 말씀과 기도로 이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어 우리의 힘든 삶에
참된 위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성경 말씀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설교의 주제: 다시 태어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성경적인 배경은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이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자 마자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임하게 되는 성전인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특히 이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기쁨을 맛보시어서 다들 거듭나게 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어떠한 삶이 되어야 합니까?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 중에 아무도 몰래 살짝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그가 은밀히 예수님께로 찾아왔을까요? 그는 아직도 바리새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 당시에 니고데모와 같은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하면,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70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대 사회의 입법과 사법을 관장했을 정도로 아주 막강한 권력기관이었습니다. 그는 공의회 의원으로써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세상에 드러날 경우에는 감당할 수 없는 비판과 자칫 잘못하면 의원직도 잃어버릴까 봐 매우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많은 이적의 풍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닭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하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시면,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의 소문을 듣고 이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고 아무에게나 일어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가나의 표적 사건처럼 물을 떠서 항아리에 넣어 둔다고 해서 그 물이 바로 포도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면, 그것은 바로 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 외에도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표적들을 행하실 수 있다고 니고데모는 여기면서 또한 이를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니고데모를 만나자 마자 니고데모가 행하고자 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다라는 말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중생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옛 인생이 죽여야만 새 인생이 시작될 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다라는 것은 전적으로 위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난다는 이와같은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는 것은 어머니 뱃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다시 모태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그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예수께서는 5절에서 아주 강력한 말씀을 이어서 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아주 놀라우신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물은 무엇일까요? 예! 바로 세례를 뜻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사람이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리라고 외치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세례는 거듭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 물세례는 누구에게서 받습니까? 오직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잠기게 되면,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놀라운 신앙적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제사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주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스스로 거듭나려고 애를 써 봐도 결코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먼저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될까요? 예!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만 그 사람의 인생도 바뀌는 것입니다. 항상 부정적인 사고와 거친 말을 내 밷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긍정적이면서 항상 기뻐하는 삶으로 변화가 되겠습니까? 아주 불가능하지요 이제 결론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이와같이 그냥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이처럼 스스로 거듭나게 되어서 변화된 자신의 삶에 대한 기쁨을 맛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다시 태어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6절에서 육으로 나게 되면, 육에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육체의 정욕대로 육체의 욕망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육에 속하게 되면 멸망이 뒤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사람은 결코 영적인 것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주기에 영적인 사람에 속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생명을 가지고 올바르게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어리석음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게 되기에 모든 것을 알 수도 있고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말하면서도 성령에 이끌려 살지 않고, 육체의 욕망대로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멸망에 이끌려가지 않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소금이 본연의 맛인 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빛도 빛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들 육적인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7절에서 예수께서는 네가 거듭나야 겠다고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주님께서는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마태복음서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외침과 함께 내 뒤에 오실 분은 그 분의 신을 들기조차 어려울 정도인데,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 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실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면서 나의 구세주이심이 꼭 믿어야만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성령의 역사의 물결로 자신들도 휩쓸려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들에게 구원자가 되신 것을 믿어야 되지 않을까요? 예!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거듭나게 됩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8절에서 바람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람이 불 때에 그 소리가 들려도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숲을 지나가면, 나무 가지나 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는 방향을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거듭난 사람은 그가 뿌린 씨앗과 맺은 열매로 누구나 그냥 알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의아해 하면서 다시 물었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의심의 눈길로 거듭남에 대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 가를 생각하면서 은근히 불가능성을 가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세인인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그는 지금까지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왔단 말입니까?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권능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 행위에 의지하라고만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선생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바에 의해서 살고 있음을 명백하게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이와같은 증거를 받아드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중생과 회심을 가능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은 지나가게 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새 사람이 된 이는 거듭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흘러 내리지도 않고 그 포도주의 맛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주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듭남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 열매를 보면 그냥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육신으로 먼저 나고 성령으로 다시 거듭난 이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통치를 느끼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거듭남에 대한 확신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인식과 그 통치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거듭난 성도의 삶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온전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끝맺음의 기도
거듭나기를 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직도 깨닭지도 못하고
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거듭남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어
주 안에 거하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순종하는 삶 속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풍성한 은혜를
체험토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