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 대판 진 랑중 광수 계 (安西大判( 현 황해도 해주) 陳 郞中 光脩 啓) 여양진씨 3세조 진광수(光脩)
동문선(東文選) 계 (啓)
황곡이 허공에 나르매 구소에 올라갈만한 날개가 있지만 흰망아지 골짜기에 있는데 한다발 생추없는것이 한입니다. 감히 긴 부리로 슬피우니 혹 마음이 감동되시어 살펴주실련지요 모는 운명이 고생많게 타고 났으며 성품은 지극히 어리석게 태어났습니다. 안회 현인의 낙을 흠모하여 물마시고 팔베개를 베고 눕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요, 진등과 같이 국사가 될 마음은 없고 한갓 밭이나 구하고 집이나 물으려 하였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가 태조께서 창업하던 때를 만나 숫대를 장막안에서 놀렸의니 정말 장량과 같은 인걸이셨으며 형상이 능연각에 그려졌아오니 당나라 공신에 참예되었습니다.
이에 철권을 내리고 영원히 토전을 주셨는데 후세 자손에게 전해 내려오다가 남에게 빼앗기게 되어 그만 충의의 혼으로 하여금 오래도록 해마다의 제향을 끊이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탄식하며 매번 원통함을 송사하려 하나 외롭고 졸연한 마음에 진실로 위태하기 쉽다하여 스스로 움츠렸고 떠돌아 다니는 종적이 바야흐로 멀리 물러나 깊이 숨으려합니다. 입을 숭상하면 궁해지는 법이요 말 많은 것이 두려운 것이오니 그 때문에 울울이 맺힌 마음을 펴지 못하고 앉아서 기한에 떠는 것입니다.
이제 지극한 정성을 피력하여 고명하게 살펴주심을 바라오며 비록 몸소 나아가 청하지는 못하오나 실은 가련한 것을 알아주십사 하는 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용납해 주어야 공정한 것이니 바라는 바를 어기게 말아 주소서. 한형주와의 일면식이 만호의 봉후보다 더 귀한 것을 바라고자 하며 유홍의 한장 편지를 얻는 것이 십부종사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장 후원이 모자라 오히려 우 예의 판결을 늦추었습니다. 법을 잘 따르는 관원의 착한 정치는 오직 어진 이천석이요. 노는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를 짓지 않고 먹게 한다면 어찌 벼 삼백의 노적가리가 있겠습니까? 인인(仁人)이 계시지 않는다면 누가 언 백성을 입김으로 불어주겠습니까?
공손이 생각하건데 모 관께서는 천인의 이치를 정통한 지식인 이시고 세상을 지도할 만한 현명한 재주이십니다. 이태백이 홀로 가사를 잘 하니 사람들이 국수라 일컬었고 진자앙이 다시 시풍을 일으키니 세상사람들은 그를 문종이라 하였습니다. 천자가 한 세상에 만난것을 기뻐하고 조정신하가 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계책을 가지고 임금에게 고하니 평소에 이윤의 충성을 힘썼으며 대각에 바람이 일어나니 일찍 진함의 기절을 떨쳤습니다. 엄조의 승명전 숙직을 마다하고 장창처럼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 맡기를 청하였습니다. 과연 임금의 마음에 들어 뽑혀 서해의 대판으로 나오셨습니다.
멀리 왕의 교화를 퍼뜨려 크게 민심을 위로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지방의 토호들을 꺽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고 우아한 이들을 예우하여 사방에서 맞아들였습니다. 선비들은 품평받기를 원하였고 사람들은 즐겨 흠모를 하였는데 하물며 망용한 이사람은 더욱 우러러 존경합니다. 뜻이 산수에 있다하던 종자기의 지음을 만난것과도 같고 가죽속에 춘추가 있다는 저부의 고상한 인품에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데 사람을 구하는데는 한 사람도 버리지 마시고 일을 결단하는데는 귀신같이 하여 옛 장수의 후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봉해 내려온 조그마한 땅을 먹도록 하시면 온 집안이 배부르고 등이 따스하겠습니다. 만약 유말의 은택을 입는다면 만번 죽어 가루가 되더라도 감히 몸에 옻칠하여 은혜에 보답하기를 맹세하겠습니다.
위 계문은 서하 임춘(1150 전후 출생) 이 안서 대도호부사 (현 황해도 해주)로 부임한 진광수(여양진씨 3세조)에게 올린 것으로 자신의 가문이 억울하게 빼앗긴 토지를 찾아 달라는 일종의 민원 요청서이다.
서기 2006년 10월 22일
여양진씨 예빈경 대종중회 병술 세보 발간 사업추진본부
상대사 연구자: (전) 연세대 교수 양권승
공동연구자 : 예빈경 대종중회장 진영기
수석부회장 진양섭
부회장겸 성역화 사업, 세보발간 사업본부장 진옥수 근지(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