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나를 지우면서 詩를 쓰고 싶다"
수상자 최승호
미당과 소월은 천년 동안 흐르는 강물 같은 존재
"(시를 쓰는데 있어)시적 형상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고통과 슬픔, 사상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적 형상화를 중시하다 보니 좀 건조한 문체를 스타일로 얻게 됐습니다. 한편 시를 쓰면서 제 자신에게 반복해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 시를 예술이게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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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 최승호(崔勝鎬.49)씨는 수상소감을 묻기 전에 준비된 발언을 꺼냈다. 바둑 아마 3단다운 선수(先手)였다. 최씨는 말 사이사이 충분한 호흡을 두고 리듬감 있게, 그러면서도 나직하게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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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니 수상소감이라기보다 자신의 시론(詩論)에 가까웠다. 그의 나직한 시론은 시의 생사여탈이 문제가 된 가상의 상황에서 시를 옹호하는 최후 변론 같은 힘이 있었다. 얼렁뚱땅 소감을 바꿔치기한 그의 시론은 미당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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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미당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당이야말로 말의 음악성, 말의 회화성을 조화시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당의 시를 읽으면서 '이건 시가 아닌데' 하는 의문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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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뚱맞게 시작한 수상 인터뷰는 내처 최씨의 시론에 대한 문답으로 치달았다. "미당과 소월의 시는 천년 동안 강물로 흘러가고 백년도 못사는 독자는 그 강을 건너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최씨의 말꼬리를 잡아 "당신의 어떤 시가 시의 강물이 되어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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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건너가야만 시가 강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의 시가 흘러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몇편의 시가 흘러갈 수 있다면 행복한 시인이겠죠"라는, 듣기에 따라서 자신만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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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1982년 '오늘의 작가상'을 안긴 대표작 '대설주의보'를 그의 '강물'로 꼽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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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보여준 광활하고 막막한 장면의 감동, 충만한 긴장감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하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지적대로 시 속에 사용된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당시의 정치현실과 관련, 폭력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적 외연을 지닌 기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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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우창은 '대설주의보'를 포함한 최씨의 첫 시집 '대설주의보'(1983년)의 세계를 '뛰어난 사실적 관찰과 상상력의 결합,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각과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분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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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대설주의보' 시절부터 자신의 시에 일관된 특징으로 '말의 회화성'을 꼽았다. "말의 회화성, 말의 건축, 말의 조소(彫塑),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시를 써왔다"는 것이다. 미당 시의 두박자 중 한박자는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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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시에서 자주 써왔다고 밝힌 데페이즈망(depaysement.轉置) 기법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의외의 물건을 갖다 붙여 낯선 충격을 주기 위해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기법이다. 수상작 '텔레비전'에서도 최씨는 산행길 개울가에 버려진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에서 삐딱한 영정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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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 말의 음악성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불협화음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요즘은 말의 자연스러움, 음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만의 시의 음악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열등감 속에 모색하고 공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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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말의 회화성에만 치우쳤다는 반성은 최씨를 자연스럽게 말의 음악성에 대한 추구로 이끌었다. 최씨가 보기에 우리 시단에 대상과 자기 자신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은 많지만 정작 언어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갖는 시인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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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음악성과 역동성에 있어 가장 탁월한 시인이었던 김수영, 언어예술로서의 시에 충실했던 김종삼.박용래 등"이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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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회화성에서 음악성으로의 관심 변화'로 최씨의 시력 20여년을 압축할 수는 없다. '대설주의보'와 이번주에 출간된 최신작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사이에는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그로테스크'같은 시집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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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스스로는 시와 함께한 20년을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초기▶'회저의 밤' 이후 인간 내면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그로테스크' 무렵 시작된 이전 두시기의 종합 등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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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씨는 "나를 지우고 싶다. 나를 지우면서 시를 쓰고 싶다. 그랬을 때 더 큰 세계가 열린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다. 감수성이라는 시인의 필터를 깨끗하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필터를 깨끗이 하기 위해 최씨는 선사(禪師)들의 어록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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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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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8 17:48 입력 / 2003.09.19 08: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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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데 있어)시적 형상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고통과 슬픔, 사상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적 형상화를 중시하다 보니 좀 건조한 문체를 스타일로 얻게 됐습니다. 한편 시를 쓰면서 제 자신에게 반복해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 시를 예술이게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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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 최승호(崔勝鎬.49)씨는 수상소감을 묻기 전에 준비된 발언을 꺼냈다. 바둑 아마 3단다운 선수(先手)였다. 최씨는 말 사이사이 충분한 호흡을 두고 리듬감 있게, 그러면서도 나직하게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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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니 수상소감이라기보다 자신의 시론(詩論)에 가까웠다. 그의 나직한 시론은 시의 생사여탈이 문제가 된 가상의 상황에서 시를 옹호하는 최후 변론 같은 힘이 있었다. 얼렁뚱땅 소감을 바꿔치기한 그의 시론은 미당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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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미당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당이야말로 말의 음악성, 말의 회화성을 조화시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당의 시를 읽으면서 '이건 시가 아닌데' 하는 의문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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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뚱맞게 시작한 수상 인터뷰는 내처 최씨의 시론에 대한 문답으로 치달았다. "미당과 소월의 시는 천년 동안 강물로 흘러가고 백년도 못사는 독자는 그 강을 건너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최씨의 말꼬리를 잡아 "당신의 어떤 시가 시의 강물이 되어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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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건너가야만 시가 강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의 시가 흘러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몇편의 시가 흘러갈 수 있다면 행복한 시인이겠죠"라는, 듣기에 따라서 자신만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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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1982년 '오늘의 작가상'을 안긴 대표작 '대설주의보'를 그의 '강물'로 꼽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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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보여준 광활하고 막막한 장면의 감동, 충만한 긴장감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하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지적대로 시 속에 사용된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당시의 정치현실과 관련, 폭력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적 외연을 지닌 기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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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우창은 '대설주의보'를 포함한 최씨의 첫 시집 '대설주의보'(1983년)의 세계를 '뛰어난 사실적 관찰과 상상력의 결합,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각과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분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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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대설주의보' 시절부터 자신의 시에 일관된 특징으로 '말의 회화성'을 꼽았다. "말의 회화성, 말의 건축, 말의 조소(彫塑),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시를 써왔다"는 것이다. 미당 시의 두박자 중 한박자는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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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시에서 자주 써왔다고 밝힌 데페이즈망(depaysement.轉置) 기법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의외의 물건을 갖다 붙여 낯선 충격을 주기 위해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기법이다. 수상작 '텔레비전'에서도 최씨는 산행길 개울가에 버려진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에서 삐딱한 영정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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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 말의 음악성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불협화음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요즘은 말의 자연스러움, 음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만의 시의 음악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열등감 속에 모색하고 공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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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말의 회화성에만 치우쳤다는 반성은 최씨를 자연스럽게 말의 음악성에 대한 추구로 이끌었다. 최씨가 보기에 우리 시단에 대상과 자기 자신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은 많지만 정작 언어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갖는 시인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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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음악성과 역동성에 있어 가장 탁월한 시인이었던 김수영, 언어예술로서의 시에 충실했던 김종삼.박용래 등"이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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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회화성에서 음악성으로의 관심 변화'로 최씨의 시력 20여년을 압축할 수는 없다. '대설주의보'와 이번주에 출간된 최신작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사이에는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그로테스크'같은 시집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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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스스로는 시와 함께한 20년을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초기▶'회저의 밤' 이후 인간 내면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그로테스크' 무렵 시작된 이전 두시기의 종합 등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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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씨는 "나를 지우고 싶다. 나를 지우면서 시를 쓰고 싶다. 그랬을 때 더 큰 세계가 열린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다. 감수성이라는 시인의 필터를 깨끗하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필터를 깨끗이 하기 위해 최씨는 선사(禪師)들의 어록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