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나무 / 신형호
지금도 콧등이 찡하다. 그 겨울 밤 반쯤 열린 아파트 문에 기대어 손을 흔들며 아들을 배웅하시던 모습.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노인을 볼 때마다 희미하게 웃음 띤 당신의 얼굴이 아른거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꽃샘추위로 정원의 꽃들이 바들바들 떨던 날이다. 이른 새벽 어머니의 전화다. 잠이 덜 깬 채로 받는 전화는 늘 불안했다. 경험상 좋지 않은 소식일 확률이 높다. 역시나 어제 자정 무렵 베란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셨다. 어깨가 조금 아프니 파스와 진통제를 사 오란다. 눈앞이 캄캄했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앓는 느낌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정말 살짝 다쳤을까? 오죽 답답했으면 이 새벽에 전화할까?
예상대로였다. 슬쩍 넘어졌다지만 당신의 손가락은 부었고 한쪽 팔은 들기가 어렵다. 아니 이런 지경인데 파스 몇 장으로 치료하려니 화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까?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건 아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내 불만이 쏟아졌다. 연골이 다 닳은 어깨치료는 수술 외에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설명에 가슴이 아려왔다. 설 떡국 두 번만 드시면 아흔이 아닌가. 나이가 많아 수술도 어렵다는 의사의 혼잣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귓전을 스친다.
연골주사와 진통제 도움으로 어머니의 팔은 시나브로 좋아졌다.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예전의 밝은 얼굴이 살아나 내 마음도 편해졌다. “너희들이 잘 해 주어서 빨리 낫고 있다.”는 말에는 괜스레 죄송스러운 마음만 들었다. 맏이지만 직접 모시지도 않고 따로 살고 있다. 같이 살면 서로 불편하단다. 능력이 닿는 한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당신의 말만 믿고 사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사십년도 훌쩍 넘은 일이다. 감기약을 먹고 이불속에서 땀을 내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반신불수가 된 가장의 어깨 짐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옮겨갔다. 오남매와 살아가려고 담 한쪽을 허물어 구멍가게를 열었다. 며칠마다 큰장에 가서 물건 구입하는 어머니를 내가 도와야했다. 한번은 동네 아저씨에게 빌린 짐자전거에 장을 본 잡화와 사과 두 상자를 어렵게 싣고 페달을 밟았다. 아뿔싸! 짐이 너무 많았고 운전미숙에 비틀거리며 십여 미터 달리다가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사방으로 굴러가 버린 사과들과 잡화. 신작로에서 황망히 함께 정리하던 어머니는 물건보다 아들 몸이 다치지 않았나하며 망연자실한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두어 달이 지났다. 이른 아침 또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였다. 엊저녁부터 조금씩 아프던 팔이 이젠 꼼짝을 못하겠다고 한다. 걸음도 지팡이 없이는 못 걷는데 팔까지 이 지경이다니. 조금 좋아지다가 다시 통증이 심해지니 실망이 크신 모양이다. “아파서 도저히 못 살겠다. 오늘 병원에 가면 한 달만 입원해야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새로 찍은 방사선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담당 의사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 “할머니, 손가락은 거의 나았고요. 어깨 연골이 거의 다 닳아서 팔은 조금만 부딪쳐도 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입원보다 통원치료가 나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어머니의 뜻은 완강했다. 입원을 꼭 하겠다고 한다.
입원절차를 밟았다. 몇 가지 기본 검사를 하고 채혈도 했다. 2인실을 권해도 굳이 다인실을 고집했다.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2인실은 부담된 모양이다. 잠시 후 간호사와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어머니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대형병원이 아닌 다인 입원실 실상은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과 불쾌한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니었다. 당신이 생각하던 입원실 풍경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고 환자들은 조용히 누워 책이나 TV를 보는 병실을 기대했었다.
“나 집에 갈란다.” 환자 옷을 가져온 간호사에게 던진 말이다. 내 마음도 같았지만 번복한 결정에 미안함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담당 의사를 찾아가 입원취소를 어렵게 부탁했다. 노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본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어머니는 돌부처 같다. “정말 집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묻는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지금 당신의 착잡한 심신 고통을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요양병원에 모시고 해가 훌쩍 넘었다. 억지로 지탱하던 척추 뼈가 어긋나 부서지니 이젠 간병인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병실 안은 고요했다. 이따금 옆 치매환자의 중얼거림이 희미한 불빛아래 흩어진다. 잠든 어머니의 모습에서 옛 기억들이 하나 둘 살아나온다. 중풍에 걸린 남편과 오남매를 키우기 위해 몸이 부서지라 애쓰시던 날들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진다. 평소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로 “요즘 어떠세요? 많이 아파요?” 여쭈면 늘 “괜찮다.”라고 하시던 어머니. 그때 좋은 병실에 입원해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소년을 위해 열매와 가지를 주고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아낌없이 주고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 당신의 얼굴과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