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련한 기억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이기에 요즘 신세대들은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이야기이다.
특히나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쥐들이 밤새 벌어는 광란의 파티에 괴로워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기에 이 글을 보면서 혼자 웃인이도 있으리라.
견딜 수 없어 긴 막대기로 천장 여기저기 툭툭 쳐보지만 결코 겁먹지 않고 천정에서 레이싱을 즐기던 그 「쥐」들....
어디든 쥐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우리의 농촌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초 통계로 우리나라의 쥐를 1억 마리로 쳤을 때 쥐들이 축내는 양곡이 연간 32만t에 달했다다느니 하여 1970년 1월 26일 시작된 제1차 쥐잡기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쥐잡기운동」은 각 도(道)별로 마릿수까지 할당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보사부와 농수산부는 물론 사실상 전 정부 차원의 국가사업이었고, 가장 강조된 사항은 '일시에 다같이 잡는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쥐약 놓는 날짜와 시각까지 제시되어 이장이 집집마다 다니며 홍보를 하였던 그 시절이다.
◀ 쥐잡기대회에서 포상후 촬영한 사진이라고 한다.
나는 직접 목격하거나 사용하지는 못하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잡은 쥐에서 가죽을 모아 가공한 수출품도 있었으니 지금은 전설이 된 일명 '코리안 밍크'라는 이야기도 있다.
매년 봄가을 학생들은 쥐잡기 표어와 포스터를 만들었던 기억은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을 그 기억의 「쥐잡기운동」.....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언젠가 뉴스에 소개된 바 있는 세계정상회의(G-20)홍보 포스터에 그 「쥐」를 그려 넣었다가 급기야는 공안사범으로 몰려 기소된 어느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아무튼 골칫거리였던 그 쥐에 대한 기억은 시대와 세월의 변화 덕분에 기억속으로 사라졌지만 요즘은 새로운 쥐들의 소란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금을 빼먹는 쥐새끼같은 인간들이나 기름값에 흡혈귀같은 막대한 세금을 붙이는등 온갖 명목으로 착취하듯 한 세금으로 헛짓거리 정책을 세우는 쥐새끼같은 인간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갉아먹는 쥐새끼가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