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암에서 도락산, 황장산 줄기 등 소백산맥을 넘어 문경으로 향했다
아마 죽령을 넘은 것 같다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登竹嶺(竹嶺에 오름) - 오상렴
역말에서 말에게 꼴 먹이고 아침 닭 소리 듣고 郵村秣馬聽朝雞
한 걸음 한 걸음 구름따라 돌 사닥다리를 올라가네 步步綠雲上石梯
하늘이 나라를 위해서 이 험한 地勢 만들었고 天爲邦家設險阻
땅은 湖西와 嶺南을 나누어 수레가 많이 다니게 했네 地分湖嶺錯輪蹄
세찬 물결이 구렁에 떨어지니 바람과 천둥이 경쟁하고 奔流囓壑風霆鬪
끊어지는 山峽이 하늘에 매달렸으니 해와 달이 나즈막하네 絶硤盤空日月低
좌절을 맛보는 일은 尋常히 平地에서도 있는 일이어니 覆轍尋常在平地
시름하는 사람은 비단 靑泥(城의 이름, 晋書 安帝記에 보면 < 赫連勃勃大敗王師於靑泥北>이라 했다) 의 일만이 아닐세 愁人不獨是靑泥
문경새재로 가기 위해서이다
문경새재는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등 사이에 있는 조령의 또다른 말이다
생각보다 시원했다. 해도 구름 사이로 들어갔다
예전엔 제1관문에서 먼 주차장에 주차를 해서 한참을 땡볕아래 걸었던 것 같은데 한 쪽 편 계곡길이 있는 것을 몰랐다
어쨌든 경상도로 오니 관광지 시설 들이 어마어마하다
주차장만 해도 몇 만 평은 되는 듯하다 무슨 돈들이 많아서 이렇게 시설이 대단할까? 국가 돈이 다 경상도로 빨려 들어간 듯 하다
곳곳에 별 박물관들도 으리으리하게 세워져 있다
역시 미르공원 같은 시설도 또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문경새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령(鳥嶺)이라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점·조령은 ‘새재’를 한자로 옮긴 표현[訓借]으로서 어느 쪽이든 선인들은 ‘새재’라고 읽었다.
'새재'는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초점'이라 쓰인 이후, 16세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조령'과 '초점'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되었으며, 18세기의 『해동지도』 이후에는 '조령'으로 굳어졌다.
철도가 없던 옛날에 서울∼부산 간의 주요 도로는 대개 이 고개를 통하였다. 동서 양편이 화강암의 절벽으로 되어 천연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축성한 제1 · 2 · 3관문과 부속 성벽으로 된 문경 조령 관문이 있다.
이 관문들은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어 시설을 축조하기 위하여 현지 실측이 시행되었다.
충주 사람으로 수문장 출신인 신충원(辛忠元)이 조정의 결정에 앞서 조령에 머무르면서 단독으로 설관(設關)에 착수하여 만든 첫 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에 크게 증축되어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 떨어진 곳에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 주흘관)이라 하였다. 이것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 숙종 때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고개 위에 조령산성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조령고개에 위치한다.
조령관문과 영남로 주변의 유적지들, 조령천 곳곳의 옥녀탕 · 용추 · 선녀소 등을 포함한다. 주변에 수옥폭포(漱玉瀑布) · 이체불(二體佛) · 혜국사(惠國寺) · 진남교(鎭南橋)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이 많다.
한쪽엔 태조왕건촬영세트장도 있어 볼 거리들은 많다
제1관문까지 별로 걷지 않고 당도해 제 2관문도 가까운 줄 알고 무작정 올랐다
주변 계곡과 숲이 산책하기 좋기 때문이다
중간 기암절벽에 선정비 등 새겨놓은 비문이 많았다 요즘엔 자연환경에 민폐 끼치는 행동이라 하여 눈쌀을 찌푸리는 조선시대 풍습이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鎭)과 군창(軍倉)터 및 경상감사의 신임자와 후임자가 만나 서로 공문서에 날인하였다는 교구정(交龜亭)터 등이 남아 있다.
또한, 수안보온천과 월악산국립공원이 근접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조령의 동쪽 사면은 남쪽으로 흐르는 조령천(鳥嶺川)의 상류 하곡으로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팔봉강(八峯江)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주흘산(1,106m)과 조령산(鳥嶺山, 1,020m) 계곡 내에 위치한다.
조령원터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보인다 제 2관문까지 1.5km 남았단다 지금까지 온 길도 1.5km인데...
발목도 아프고 해서 다시 내려왔다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 과거보기 위해 이곳을 거치기 때문에 좋은 소식을 듣고 싶다는 바램에서 생긴 지명 문경,
오늘 컨디션으로 보면 나는 과거 근처도 가질 못하겠다
이화령 터널을 거쳐 괴산으로 오니 도로도 잘 되어있고 생각보다 쉽게 천안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