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월피정·3차 쇄신회 자료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루가 10, 25)
- 예수님, 제가 무엇을 쇄신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
8월 중순에 우리 공동체에 코로나 19 확진자 출현이 계기가 되어 계획했던 자료를 변경하여 제가 9월 피정과 쇄신회 자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지구촌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1년 6개월 이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사태들에 조금씩 두려움이 커지긴 하였지만, 그 위험이 우리에게는 멀리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방역지침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삶에서 경험하는 사건, 그리고 일상에서 겪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난 16일 이후의 공동체가 경험한 것들은 우리 공동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쇄신하고, 기도와 희생을 통한 내적 생활을 지속적으로 연마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로 생각되었습니다. 위기를 겪으며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메시지-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피정에서 그간 소홀했던 사항들을 수녀님들과 함께 나누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첫째, 순명에 대해 숙고해봅니다.
세계적/국가적으로 전쟁 못지 않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느슨하고 소홀해진 순명정신으로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한 방역 준수 위반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정을 간과하고, 소홀히 하고, 순명하지 않음으로 인해 공동체 전체 회원들이 몹시 불안하였습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 영성의 근본이 되는 장은, 5장 순명, 6장 침묵, 7장 겸손입니다. 영성생활의 첫 번째 장은 순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려는 원의가 간절한 사람들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로서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RB4,21;5,2;72,10)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자기의 원의나 욕망을 따르지 아니하고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입니다.
순명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려놓으시고 비우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순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회헌에 명시한 것에 순명하는 것은 포교 베네딕도 수녀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도자들이 순명으로 자신의 뜻을 뒤로하고, 사랑으로 당신을 따르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순명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환자들, 의사와 봉사자들, 전쟁, 갈등, 폭행, 박해로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 갖가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하나 되어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희생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될 때, 마침내 우리의 순명은 구원의 도구, 평화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둘째, 침묵의 소홀 · 침묵의 부재 - 우리 수도생활을 돌아봅니다.
집에 비유하자면, 수도공동체 안에서 침묵은 ‘대지’이고, 복음 삼덕인 순명, 정결, 가난은 그 집을 받치는 기둥들이라고 봅니다. 침묵이 흔들리면 순명, 정결, 가난이 무너집니다. 침묵이 무너진 공동체는 절제(자제)와 조절, 균형과 분별의 부재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 수도생활을 하려는 열정을 무너뜨리고, 그냥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단생활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회헌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과 친밀한 길을 찾아 달려가려고 수도서원을 하였고, 서로가 서로의 지렛대가 되며 세상의 공동선을 구현하는 구원의 도구이길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핸드폰은 마치 사회에서 신분증과 같은 역할을 매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직을 위해 필요한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우리 각자 점검하고, 결단해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우리는 정보의 늪 속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침투하여 우리들에게 고요와 침묵의 부재를 낳게 했습니다. 영적독서의 부재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동영상 강의의 청취로 기도시간이 방해받고 있습니다. 정도 이상의 시간할애로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온전한 휴식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매체는 공동생활의 악으로 보는 개인주의, 세속화의 길로 들어서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도원에 침묵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 가능한대로 목소리를 낮춰 소통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시대에 접어들면서 마스크사용으로 상대방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성당, 복도, 식당, 주방, 어디서나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소통합니다. 마스크 착용시대이지만 성당, 식당에서만은 침묵의 분위기가 감도는 고요한 수도원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현존 안에 살려고 지속적으로 침묵수련을 하는 修道者들입니다. 침묵의 덕은 하느님과의 친밀함에 대한 갈망에서 쌓여지고, 말수를 적게 하면서, 이웃을 위해 작은 목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사랑의 실천을 매일 매일 의식하는 가운데 연마하면서 쌓여집니다.
내적인 침묵도 외적인 침묵과 함께 평행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많은 말에서 자신도 모르게 뒷담화로 흐르고, 비판과 판단의 말의 場이 되기에 성규 6장에서 “비록 좋고, 거룩하고, 건설적인 담화일지라도 침묵의 중대성 때문에 완전한 제자들에게도 말할 허락을 드물게 주라”고 베네딕도 성인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도공동체의 안정성은 영성의 받침이 되는 외적, 내적 침묵의 정도로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지난 8월 중순경 어느 날 미사 독서에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단호하게 선언하는 여호수아기 24장의 말씀을 다시 읽어봅니다;
“...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겨라.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며,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 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세상이 섬기는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결단할 수 있는 수도공동체가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세상이 섬기는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오늘 피정을 하시면서 성체 앞에서 다짐하고 결단을 하여,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제자의 삶, 활동조차 제약을 받는 이 시대에 존재자체로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수도자로 거듭나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당신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를 고백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딥니다.
수녀님들 모두 오늘 깊은 침묵 중에 기도하시고, 다짐하는 피정 날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공동체의 쇄신을 간구하는 이 일루미나 수녀
<묵상과 기도자료>
1. 성규 5장, 7장 31-43. 2. 성규 6장, 성규 7장 56-61.
<그룹 나눔>
1. 순명과 침묵을 살아가기 위해 수녀님이 실행하려는 것 하나를 결단한다면 무엇인가요?
2. 공동체의 쇄신을 위해 본원에서 각 그룹별(마리아그룹, 요셉그룹, 베네딕도그룹)/분원에서 침묵을 실행하기 위한 한가지씩의 실천을 결정해주세요.
실천사항을 비서실에 주시면, 정리해서 게시하고 본·분원의 결정을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