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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주나라를 건국 하는데 일등 공신인 태공망이 자기 부인을 두고 한말이다.
태공망은 나이 70세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공부만 했다고 한다. 부인이 태공망 뒷바라지 하다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된후에도 공부와 낚시만 일삼는 태공망,이후에 사냥을 하던 훗날의 주나라 문왕의 눈에 뜨여 중용되게 된다.
그후 주나라의 제상이 되었고 제나라의 공(公)으로 봉해진다.
태공망이 남긴 유명한 명언으로 복수불반분(覆水 不返盆) 한번 엎지러진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태공망의 전부인 마씨는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태공망을 떠났는데 훗날 태공망이 성공했을때
다시 돌아와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다. 이에 강태공은 하인을 시켜 물을 떠오게 한후 그물을 땅에 쏟으며 그 물을 다시
그릇에 주워 담으면 부인으로 맞아 주겠다고...
물을 담을 수 없다면 쏟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생각하며
지난 경기도 구간 지도가 없어 눈뜬 장님마냥 더듬더듬 걸었지만 이번 구간은
강원도 철원과 화천-양구까지 5만분의1 지도를 가지고 와서 진행하니
공양미 삼백석에 눈뜬 심봉사 마냥 걸음하게 된다.
철원군 동송읍 한탄강의 직탕폭포
이번 구간 강원도 철원에서 양구까지 110km
날짜 18년도 6월16-17일
휴전선 인근으로 인공위성 지도는 표시되지 않은지역 밀가루를 뿌려놓은듯 하얗다
이곳에 오기까지 동대구에서 ktx로 서울역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 1호선 타고,서울 외국어 대학교 앞에 내려
정명 대장님의 도움으로 강원도 철원땅에 다시 도착하게 된다.
먼길 택배 해주신 정명 대장님께 감사 인사 드리며 이번 걸음은 교통편 문제로 양구까지 가야한다
6월 하늘은 맑고 푸르고 미세먼지 없는 山河가 너무 멋지다.
북녁에서 흘러온 한탄강,
이곳을 건너는 돌 다리가 배꼽 인사하듯 허리굽혀 있어 천천히 건너게 된다.
외국의 큰폭포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나라에 이런 소규모의 아담한 폭포가 강을 가로 지르며
횡단으로 길게 자리한다는건 나름의 축복이다.
이물길 따라 내려가면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서 임진강물과 합류하여 흐르다가 한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흘러들게 된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원도 평강군(북한) 장암산 남쪽 계곡까지 오르게 되고
북에서 내려오는 물이지만 그렇게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으니 북녁에도 비가 안오는듯
정명 대장님은 포천시 회사로 출근하러 가시고 오늘도 멋진 할배님과 같이 6월 땡볕을 친구삼아
아스길 탐구 작전을 한다.
정명 대장님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어떻게 할배님을 갈구며 지나야 할지...
이번구간은 중간중간에 슈퍼가 있어 아이스크림과 사랑 나누기를 할것 같고
차가운 음료수 보충하기에 딱 좋은구간이다.
오늘 덥다고 해도 내일이면 잊으리
그리고 내일 일어날 일 미리걱정 할 필요없고
손에든 지도 한장이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내일 오후 3시까지만
지난 구간에 그만둔 태봉대교와 번지 점프하는곳이 보인다.
"살 탄다"하시며 긴옷을 입으시고 뭐가 좋으신지 만세까지 부르시고
월남 스키부대 참전 용사이신데 한국의 더위보다 더 더운곳이 월남 아닌가?
스키부대 출신이라 더위에 약하신건가?
태봉대교와 번지점프장
태봉대교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철원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삼신산의 전설을 간직한 고대산 이며
이곳에서 북한까지 직선거리로 11km내외다
한탄강과 삼신의 전설을 간직한 철원군 동송읍을 뒤로하고 철원군 갈말읍으로 아스길따라 진행하게 된다
갈수록 짙어지는 들판을 보며 곧 가을이 오겠다는 생각을 미련스레 해본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길 옆으로는 군부대가 있고 철대문안으로 초병 몇분이 보여 가지고 간 김밥을 건내 드리며
군생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준다.
아직은 시작이니 발걸음은 신나는 음악처럼 경쾌하게
갈말읍 가는길에 아랫 상사리을 지나게 된다.
어느 힘좋은 머슴이 주인 마님을 좋아해서 생긴 상사병과는 무관하게 상사리라고 한다.
내대2리
마을을 지나고
내대2리 연지 곤지마을의 장승
입술을 붉게바른 여자 木장승의 익살스레 웃는 모습에 연지곤지 마을이 오래도록 기억날듯
내대리 초등학교 인근에서 강원도 김화로 가는(대득지맥) 산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그쪽으로 가려니
군부대가 있어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한바퀴 돌아가야 하니 발걸음만 더늘어 날수 있겠다.
군부대로 인해서 가지 못하는 구간이 많고, 돌아가야 할 구간도 늘어난다.
혹시라도 지나 가는길에 총에 맞을까! 가스통 할배 배낭에 뜨끈한 보일러 대신에 태극기 하나 달아 드리며
우리는 국토 사랑,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백성임을 만천하에 알린다.
갓길이 없어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지나가는 차량들도 태극기를 보면 속도를 좀 줄일것 같은데
어떻게된게 더 빠르게 지나 가는것 같다.
가스통 할배인줄 아시나...
철원군 갈말읍에 도착해서
지나 가는길에 편의점 공략하는 법을 배우며 빠짐없이 들어가 본다.
철원군 소방서를 지나
이제부터 김화로 가는 43번 국도 여행길이다.
군부대
나무 그늘은 찾아 볼려해도 빈대 낯짝 많큼도 안보인다.
더운건 어쩔수 없지만 한발의 노력으로 어린이 소아암 돕기 1만원 후원해야 하니 이생각만 하며 걷는다.
지나온 대득지맥길의 갈현고개
대득지맥은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명성지맥에서 다시 2차 분기되어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에서 한탄강과 남대천이 만나는곳에서 맥을 다하는 지맥이다.
여기저기 접근 금지임을 알리니 잘못 기웃거리다가 골로 가는 수 있겠다 싶어 앞만 보고
백골부대 마크 앞을 지나며
발바닥이 이글 이글 타는듯
가는길 좌,우측은 모두 군부대가 자리한다.
김화 직전의 지경리를 지나며
김화읍에 도착은 했지만
바람없고 뜨거운 열기만 올라오는 아스길 탐구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태극기 할배는 언제나 앞에서서
지나가는길에 어떤분이 할배께 시원한 얼음물 주셨는데
왜 주셨는지...나름대로 추측해 보니
1.이 더위에 곧 쓰러질것 같아서
2.버리기 아까워서
3.태극기 달고 가시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길 가는데 고마운을 만나니 기분 좋습니다.
화강 다리 건너기전에 부폐식당에 들러 점잖게 한상 받아놓고
시골이라 밥맛이 집밥 맛이다.
화강 김화교을 건너며
화강 이 물이 흘러 한탄강으로 흘러든다.
벌써부터 많은분들이 여름을 즐기시는듯 다리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가득
잡았어...
화강 다리건너 시가 있는 공원에서
화강교를 건너며
멀리 한북정맥 공덕산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맞겠지
가스통 할배는 저 멀리 가시고 한참동안 다리난간 아래로 쳐다봤지만
물고기란 녀석들은 한마리도 안보인다
이곳 화강도 그렇게 깨끗하지 않고 물속으로는 찌꺼기가 가득 눌러 붙어있다.
깨끗한 물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비무장지대의 북녁의산 오성산
한북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산이다.
오후 4시무렵 말고개로 가는길은 지뢰제거 작업중이라며 통제를 하고,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시간이 늦어 가지못해 한북정맥길 남측 구간의 수피령으로 가야한다.
*말고개로 가는길은 오전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갈 수 있으며 그이후로는 통제되는 곳이다.
걸어서 간다면 아침에 시작하면 될듯
태극기 할배와 지뢰탐지 작전중 교통통제 중이신 아주머니와 회담하고 계신다.
회담은 "말고개로 갈 수 있느냐?없느냐? 길게 이어질것 같은 회담은 생각외로 금방 결렬되고
결국 수피령으로 진행 하기로 한다.
사곡2리 방향으로 가면 수피령으로 오르는 길과 연결된다.
멀리 한북정맥길의 복주산이 고개를 내미나 가야할 길이 만만 찮으니
육단리로 가는길에 당고개를 넘는다.
당고개의 김화지구 합동 순의지가 보여 올라가 본다.
김화지구 합동 순의비
이곳은 8,15광복과 국토가 양단된 38도선 이북으로 잔악한 공산당의 학정하에 있었던 곳이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38선을 넘어 자유 대한으로 탈출한 김화지역 주민들은 화랑공작대를 작성하여
1947년 3월부터 대한민국이 수복할 때까지 반공할동의 거점을 구축하고 반공투쟁을 감행하였다.
이에 북한은 이지역의 반공인사 및 가족 등 78명을 이곳에 연행하여 무참히 집단 학살하여, 지역 유지분들에 의해
합장되고 분묘를 마련한곳이다.
잠시 서서 묵념을 하고 돌아서니 개망초 꽃이 반기며 바람에 흔들린다.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에 들어서서
더우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는 할배와 저 둘뿐이다.
춘천 -사창리 방향으로 가는길에
마실나온 아주머니 몇몇분이 손을 흔들며 화이팅을 외쳐 주시니 기분좋고
육단리부터 수피령까지 지긋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길가에 자리하는 군부대 철조망과 담벼락 구경 삼매경에 빠져든다.
수피령 오르는길에
좌,우측 모두 군부대가 있으며 차량 이동은 뜸한편이다
수피령 오름길에
도로가 옆으로 물소리가 들려 더위를 식힐겸 내려가 '운기조식"하고 머리감고 씻고
계곡 상류지역이라 물맛도 괜찮다.
계곡에서 대충 씻고 보니 수현공원 안내판이 보인다.
이런 산중에 공원이라니?...
병장 김수현 충혼비
1964년 11월 14일 11시경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 수피령 지역에 북한 5집단군 도보정찰소 소속의 무장간첩 2명이
침투하여 당시 김수현 일병을 포함한 50연대 수색대원이 수색하던중 수상한 흔적을 발견 무장 간첩의 침투로 판단되어
작전을 전개한다.
이때 김수현 일병은 도주하는 적을 추격 1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한명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적에게도 관통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이후에 충무 무공훈장에 추서되며 2계급 특진된다.
북한간첩 은거바위
바위에 흰색으로 표시된곳은 적과 교전중 생긴 총탄자욱
김수현 공원을 들러보고 수피령 오름길에 본 대성산이 길게 자리하며
서산으로 해가 넘어 갈 무렵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이제 좀 걸을만하다.
꼬불꼬불
수피령 꼬불이는 다음날 평화의 댐으로 가는 해산령의 아흔 아홉굽이 꼬불이에 비하면 평지나 다름 없다.
한북정맥 남측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 "수피령"
어찌하다 보니 이곳에 세번째로 올라서게 되나 주간에는 처음이다.역시나 밝을때 보는 풍경이 제맛이다
이제 강원도 철원 땅을 벗어나 겨울 산천의 축제의 고장 화천땅으로 입성
푸른바다 동해를 거처 장군의 바다인 남해를 휘돌아, 갯벌의 고향 서해를 지나면서 크고 작은 강줄기를 모두 지나고
9정맥길의 산줄기 끝을 잡아 끌며 이곳까지 오고보니, 이제 남은건 백두대간 진부령만 넘으며 강원도 거진이며
통일 전망대가 기다린다.
대성산 지구 전적비 앞에서 잠시 묵념하고
1951년 6월9일 국군 2사단17연대가 대성산 1042고지에서 할동중이던 중공군 제 58사단 177연대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 1042고지와 신월동 및865고지를 탈환한다
삼천봉 바조봉 일대까지 적의공격을 분쇄 하였으며 이전투에서 적사살 453명이며, 아군의 피해는 전사 38명 부상 123명으로 전공을 세웠다.
정맥길에 노란 시그널들
수피령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니 다목리다.
이곳 중국집에서 자장과 잠뽕을 시켜 먹으려고 보니
아니! 이런 시골에도 "이비가"란 중국집 체인점이 보인다.
중국집 밖 도로가에서 볼때는 분명 "이비가"(체인점) 였는데 안에 들어가니 아비가란 중국집이다.
그래도 맛은 "이비가" 보다 아비가 더 좋았다.
화천군 다목리
다목 초등학교
6월은 호국 보훈의달 "나라를지킨 그분들의 꿈이 지금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 집니다."
해는 넘어가고 갈길은 급하고 도로따라 가다보니 어느펜션에서 동네분들이 노래자랑을 하는지
노래 가락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시골 일이란게 바쁜일 모두 끝내고 나면 잠시 한가한 시간도 있는법
노래 가락 소리가 조용해질때까지 우리는 멀리 걸어 나간다
인민군 사령부 막사가 자리 하는곳을 지나지만
왕복해야할 거리가 부담이고
뭐 볼것이나 남아 있겠나 싶어 우리는 우리 갈길로 간다.
잘한건지 못한건지
어느덧 어둠이 찾아올 무렵 길가로는 차한대 지나지 않고
다목2리 마을앞을 지나게 된다
어느 산인지 모르겠으니 달과 목성을 함께 거느리며 서있으며
시골길에 개진는 소리이외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다
조용한 시골길은 개짖는 소리로 시작해서 개짖는 소리로 끝난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집앞으로 나와 보는이가 없으니 마음놓고 돌아다닌다.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이곳 봉오리에서 음료수 사서 보충하고
배낭 무게는 대부분 물 무게이며 그외 먹을건 아무것도 없다.
도로따라 정처없이 걷다보니
상서면 파포리가 나온다.
갈전교 건너 숙고개 터널
숙고개 터널안
내일 오전에 도착하게 될 평화의댐
아직 갈길이 멀고 긴긴밤은 언제나 끝날지
상서면 파포고개에 자리하는
마현리( 한북정맥길 대성산 옆 말고개)민통선 출입금지을 알리는 글
수피령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5번국도를 지나 말고개를 넘어 이곳으로 왔을듯
잠시 5번 국도따라 가다가 461번 지방도를 따른다.
461번 지방도 따라 오다가 화천읍으로 오기전 상서면 신읍리 마을입구 6각 정자에서 잠시 고단한 몸을 누워본다.
은박지 깔고 침낭속에 들기전 할배께서 가지고 온 독한 술한잔에 곧바로 잠이 들었으나
시골 동네 입구로 차들이 들락 날락하는 통에 잠은 깨고 ...
두시간 가량 시간이 흘러 동네 개들의 환호를 받으며 평화의 댐을 찾아서 다시 길을 나선다.
어둠속에 빛나는 별들
강원도의 밤하늘은 검푸른 바탕에 총총한 별들이 곱게 수를 놓아 아름다운 밤하늘을 연출한다.
새벽 바람은 춥울 정도로 느껴지며 몸이 한껏 움추려 들어
녹았다 얼었다하는 황태 덕장의 황태마냥 ...꼬들 꼬들해지겠다
신읍리 마을앞을 지나
신읍 삼거리에서 좌측
평화의댐 방향으로
두번 다시 오지 않을것 같던 긴긴밤이 지나고 밝음이 찾아 왔으나
아스길은 쉽게 끝날것 같지 않다.
이런날 산길이 그리운건 바로 낙엽이 쌓여 있기때문
화천읍 풍산리 인삼밭을 구경 삼아 걸으니 멀리 운통 운무로 가득한 산세가 수묵화처럼 인상적이다.
공기좋고 발걸음도 가볍고
풍산초등학교
학교앞을 지나 중앙 상회란 슈퍼에 들러 할머니께 라면 부탁드려 잠시 쉬면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 사이로 물집에 빼곡하다.미련한건지 감각이 없는건지
터트릴 수 있는건 터트리고 나머지는 밴드로 꽁꽁 감아둔다.
평화의 댐이 지척이나
이제부터 길고긴 꼬불이 길이 기다린다.
지나온 꼬불이길
대관령 아흔 아홉굽이보다 더한 꼬불이다.
지겹고 지겨운길 끝없이 올라오니
1,986m의 해산령 터널
지겹도록 올라온 꼬불이 다시 내려갈 일이 걱정인데
평화의 댐으로 내려가는길이 아흔아홉구이...ㅠㅠ
그렇다면 올라온 꼬불이는 뭐야
해산령 꼬불이 내려가는길에 자리하는 포장마차
그냥 가면 섭섭하고 뭐 먹을것 있나 싶어 반쯤 열려진 문을 열어 반갑지 않은 낯짝부터 들이 밀어보니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밤에 추우셨는지 포장마차 안에는 장작 난로에 불이 지펴져있다.
강원도 철원쌀로 만들었다는 쌀국수
국물맛이 진하고 맛은 어지간한 국수집보다 더 좋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DMZ길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그중에 외국인들도 있다고 하니..."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써 좀 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는것 같아 괜히 미안해 진다.
철원 쌀국수의 힘으로 아흔아홉 꼬불이길 정복에 나선다.
아자 아자!~~~
북한강이 보이는곳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길은 공사중이라며 바리케이트로 막아 두었지만
"그건 차량에 한해서" 라며 금줄을 넘어 씩씩하게 진행 하시는 할배
가다가 걸리면 뒤에 메달아둔 태극기만 보여 드리면 무사통과할듯한데...
평화의 댐
북한강 줄기에 막은 댐이며 국민의 성금으로 만든댐이다.
평화의댐은 길이 410m 높이 80m 최대 저수량 5억 9000만톤으로 파로호 상류에 자리한다.
제 5공화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에서 금강산(임남)댐을 건설한다고 해서 하류인 우리나라의 홍수피해를 방지 하고자
1988년 1단계 댐을 완공한다.
북한의 임남댐은 길이 710m, 높이 121m 저수용량 26억톤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이 수공으로 공격한다면 평화의댐 하나로 버터줄지 의문이나 방어용으로 만들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한때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북한이 수공으로 공격할 수 있기에 평화의 댐은 항상 비어있다.
댐 구경하고 곧장 "댐위로 걸어 가느냐! 아니면 왔던길로 다시 돌아 가느냐!
강심장이 아니기에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평화의 댐 주변으로 공사중이라 댐을 건너 가지는 못하고 댐 바로 옆 계곡으로 ...
이런건 전문이다.
평화의 댐
해산령 터널 지나서 철원 쌀국수 하나 드시더니 힘이 남아 도시는듯
남는 힘 주체를 못 하시고 힘빼기 신공을 발휘합니다.
평화의댐 공원
전쟁은 이제 그만
노랑 탱크
고질꼬질한 우리 두사람보고 노랗게 질렸다는 바로 그탱크다.
북한강을 건너 양구땅에 입성
평화의 댐 조형물
은가락지 두개를 선물한다며 높은데 걸어 두었다
노송 할배께서 서해안 해수욕장에서 혹시라도 누군가 떨구고 간 금가락지 하나 주울까 연신 땅만 보고 오셨는데
여기 이렇게 있는걸 해안길에서 오매불망 찾으셨으니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 이곳 식당에 들러 점심 챙겨 먹고보니 계곡의 물이 아주 깨끗하다.
좀 씻고 가면 안될까
양구로 가는길에 그저 그런 꼬불이 오름길을 진행하게 된다.
나른한 오후 잠은 오고...
더운날 이곳 오천 터널 오기전에 얼마나 졸았는지
이쪽에서 졸다가 저쪽 끝으로 왔다리 갔다리 몇번 반복하니 오천터널이 나온다
다행이 차가 오지 않아 방콕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200년된 소나무 둘레 3m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나무아래 돌로 만들어 놓은 제단도 보인다.
나른하고 잠오는 시간 아스길 탐구도 이제 거의 끝지점이다
소아암 돕기 1만원을 찍었으니 이제 어디가서 씻고 집으로 갈준비만 하면 될듯
오후 3시 무렵에 도착한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
이곳에 도착하니 양구로 가는 마을버스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우릴 기다린다.
마을 우물가에 가서 대충씻고 양구- 춘천-대구로 오니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해에서 시작한 대한민국 한바퀴 돌기
내가 가는길에 대문이 없으니 들어가는 문도 없고 나오는 문도 없다 하지만 결국 한바퀴 돌아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