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51)
六, 解脫 長者 --- 第五 具足方便住善知識
1, 依敎趣求
(1) 思修前法
(2) 顯修利益
2, 見敬諮問
(1) 善知識의 大善利
(2) 發菩提心의 相
<화엄경> 88쪽,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상(相)이다, 그 제목부터 할 차롄데요. 이 내용은. 여섯 번째 선지식(善知識) 해탈 장자(解脫 長者), 또 10주(十住)로는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선지식(善知識), 다섯 번째, 제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선지식(善知識)에 해당됩니다.
(2) 發菩提心(발보리심)의 相(상)
첫 문수 보살의 선지식(善知識)은 10신(十信)에 해당되고요.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迴向)·10지(十地), 등각(等覺)·묘각(妙覺), 이렇게 올라가는데. 해탈 장자(解脫 長者)는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선지식(善知識)에 해당된다. 선지식(善知識)의 순서로서는 여섯 번째 선지식(善知識)이고, 그렇습니다.
처음 제목이 의교취구(依敎趣求)라. 가르침에 의지해서. 앞의 선지식(善知識)께서 ‘이렇게 이렇게’ 가르쳐주죠. 가르쳐준 데 의지해 가지고서, 나아가서 다음 선지식(善知識)을 구하는, 그런 제목이고.
그 다음에 큰 제목 두 번째가 견경자문(見敬諮問)이라. 뵙고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 선지식(善知識)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아직도, 앞에는 선지식(善知識)의 대선리(大善利)라. 선지식(善知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좋은 점과 어떤 이익이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고. 여기서는 이제,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상(相)이라, 그랬어요.
보리심(菩提心)은 왜 발(發)하는가? 발심(發心)은 왜 하는가?, 쉽게 말해서··· 우리가 흔히, “아, 발심(發心)했다.” 이런 말을 잘 해요. 그럼, 발(發)이라고 하는 말은 마음 낸 거. 예를 들어서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도 발(發)이예요. 또 집에서 어떤 목적지를 정해 놓고 출발하는 것, 어디 갈려고 나서는 것. 이것도 이제 발(發)에 해당됩니다. 뭐, 출발(出發), 그러죠. 또 마음을 냈다. 어떤 일을 목표로 해 놓고, 그 일을 할려고 막 이제, 시작에 들어가는 것. 이것도 다 발(發)에 해당돼요.
그러면 여기서 발심(發心), 할 때. 그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냈단 말이냐? 불교를 알고 싶은 마음을 냈다·성불(成佛)하고 싶은 마음을 냈다·지금 내 인생이 마음에 안 드니까 이런 현재 마음에 안 드는 이런 인생보다 좀 더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고 싶다! 마음에 드는 인생은 성인(聖人)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뭐, 현인(賢人)의 경지·상당한 인격을 갖춘 그런 경지, 뭐,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사람이 좀 부자로 살고 싶다, 그것도 일종의 발심(發心)이예요. 그런, 어떤 마음을 한 번 내어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서 줄달음을 쳐 보는 것, 이런 일들인데. 불교에 있어서 발심(發心)이라고 하는 거, 그건 다른 말로 하면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럼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하는 거는. 보리(菩提)는 도(道) 또는 깨달음, 진리, 뭐 이런 뜻이니까 그러면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가 한 번 내겠다!” 불교라고 하는 그 자체가 깨달음의 가르침이니까. 그, 부처라고 하는 이는 결국은. 보통 사람인데 깨달은 사람이예요. 도(道)를 깨달은 사람·진리를 깨달은 사람·마음을 깨달은 사람·우주와 인생의 실상(實相)을 깨달은 사람··· 혹은 도(道)의 의미를 깨달으신 분.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깨달은 분의 가르침이 곧, 우리로 하여금 역시 깨닫게 하는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리심(菩提心), 하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마음이예요, 깨달음에 대한 관심이라. 깨달음에 대한 관심을 이제 일으킨다는 거죠. 그러나 이제, 그렇게 말하면 단순하지마는 그 속에는 아주 복잡한, 그런 의미들이 그 속에는 이제 포함돼 있겠죠. 그리 포함 돼 있는데, 여기서는 아주 여러 각도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심(發心)은 왜 하느냐?, 뭣 때문에 하느냐? 발심(發心)하는 이유가 여기 주~욱, 설명이 돼 있어요. 깨달음에 관한 마음을 왜 내느냐? 불교를 왜 알려고 하느냐? 인생의 깊은 뜻을 왜 알려고 하느냐? 알려고 하는 이유가 어딨느냐? 그런 것이 여기 소개돼 있는, 그런 장면이 되겠습니다.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호니
성자 아이선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성자(聖者)여! 하는 것은 해탈 장자(解脫 長者)를 두고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성자(聖者)시여!”, 이런 말이죠. 저는 이미, 먼저 발(發)했습니다. 무엇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가장 크고 바른 깨달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냈습니다. 높고 바른 깨달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왜냐? 그건 이제, 부처님이 그렇게 사셨고. 또 불교의 목적이 역시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했으니. 그것을 왜 했느냐, 왜 발심(發心)을 했는고 하면은.
爲欲事一切佛故며
위욕사일체불고
일체 부처님을 섬기고저 해서 그렇다. 부처님을 섬기려면은, 내 발심(發心)을 해야지, 내가 발심(發心)하지 않고 어떻게 부처님을 섬길 수가 있겠나? 그래서 ‘사[事]’자(字)는 ‘섬길 사[事]’자(字)예요. 모든 부처님을 섬기고저 하는 마음에서 내가 발심(發心)했습니다.
爲欲値一切佛故며
위욕치일체불고
그 다음에 또, 두 번째는 일체불(一切佛)을 만나고저. 섬기는데 그치는 게 아니고. 섬기는 건 안 만나도 섬길 수 있어요. 물론 가까이 뵙고 섬길 수도 있지마는 뵙지 않고도 또 마음속으로 섬길 수가 있으니까. 이건 일체불(一切佛)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치(値), ‘만날 치[値]’자(字)예요. 만나고저 하는 뜻에서 발심(發心)했다.
爲欲見一切佛故며
위욕견일체불고
또 견일체불(見一切佛)이라. 모든 부처님을 바로 눈으로 보는 게 ‘볼 견[見]’자(字)예요. 바로 이 눈으로, 육안(肉眼)으로 부처님 모습을 보고 싶다, 이거여. 발심(發心)하지 않고는 부처님 모습을 옆에 두고도 우리가 못 보죠.
爲欲觀一切佛故며
위욕관일체불고
‘견[見]’자(字)와 ‘관[觀]’자(字)는 다 우리말로 ‘볼 견[見]’ ‘볼 관[觀]’인데. 이 관(觀)은 마음으로 관찰하는 거예요. 눈 감고도 볼 수 있는 게 관(觀)이고. 눈 감으면 못 보는 게 견(見)이예요. 견(見)은 눈을 떠야만 보는 게 견(見)이라. 그래서 관(觀)은 눈 감고도 누구를 그릴 수가 있죠. 부처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고·관세음 보살을 마음속으로 이렇게 그릴 수가 있고·관세음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마음속에 이렇게 상상할 수가 있고··· 그 실체를, 우리가 이렇게 그 나름대로 한번 그려볼 수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발심(發心)했다.
爲欲知一切佛故며
위욕지일체불고
또. 부처님을 보고 마음속으로 관찰하고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알겠다, 내가 부처님을. 부처님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내가 알고 싶어. 부처님을 알고저 하는 까닭으로 발심(發心)을 하였고.
爲欲證一切佛平等故며
위욕증일체불평등고
또 모든 부처님, 모든 깨달은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는데·그 깨달음의 경지가 평등하고·그 마음의 경지가 평등하고·그들이 누리는 행복의 경지가 평등하다는데···, 그런 소문만 듣고는 모르죠. 여기서 ‘증[證]’자(字)는 증득한다, 깨닫는다, 그런 경지에 나도 오르고 싶다, 이겁니다. 그런 일체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를 증득(證得)하고저 하는 까닭으로 내가 발심(發心)을 했다. 나도 한 번 돼 보겠다, 이거여. 부처님 같은 그런 경지.
爲欲發一切佛大願故며
위욕발일체불대원고
그러면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끝나느냐, 아니야.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큰~ 원력을 가졌어요. 아, 그 원력을 나도 당연히 내어야지. 대원(大願)을 발한다, 여기도 발(發)한다고 돼 있죠? 원(願)을 낸다, 이거야. 부처님은 중생 건지고자 하는 큰~ 원력을 냈는데 나도 그 원력을 내려고 발심(發心)을 했다. 발심(發心)이 우선이니까. 그리고
爲欲滿一切佛大願故며
위욕만일체불대원고
‘만[滿]’자(字)는 그러면 발(發)하고 무슨 뜻이 있냐? 그 뒤에는 똑같죠, 일체불대원(一切佛大願), 그리 되니까. 일체불(一切佛)의 원력을 만족시킨다[滿], 라고 하는 말은 말하자면 원(願)이 가득 찬다, 이 말이여. 저기는 원(願)을 내기만 했고 아직은 그 원(願)이 가득 차지는 않았어. 예를 들어서 내가 일어(日語)를 금년에 배우려고 했다. 그걸 이제 그런 마음을 낸 것은 발(發)이야. 그래, 일어(日語)를 금년 안에 다 배운 것은 만(滿)이라고요. 그래, 중생을 1년에, 만 명을 제도하고 싶다, 라는 마음을 낸 것은 발(發)이고. 만 명을 충분히 제도했으면 그 때는 만족이고, 그 때는 이제 ‘만[滿]’자(字)가, 가득히 채운다, 이거야. 그러면 일체 부처님의 원(願)을 만족하게 하고저 하는 까닭이다.
爲欲具一切佛智光故며
위욕구일체불지광고
또 ‘구[具]’자(字)는 갖춘다는 뜻이죠. 그럼, 모든 부처님은 뭐니 뭐니해도 지혜광명이 제일이라는데. 부처와 중생의 다른 점은 결국은 지혜의 차이거든요. 이, 뭐, 육신(肉身)이야 좀, 서가모니가 좀 잘났다손 치더라도 별 차이 없어요. 전륜성왕(轉輪聖王) 같은 이도 석가모니하고 똑같이 32상 80종호(三十二相 八十種好)를 갖췄으니까. 예컨대 이제, 부처님이 특별히 다른 점은 지혜광명이야. 지혜가 아주 특출해요, 깨달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지혜광명을 구(具), 갖추고저 하는 까닭이다.
爲欲成一切佛衆行故며
위욕성일체불중행고
부처님은 여러 가지 행위, 행동이 있는데 부처님이 하시는 그런 행동을 나도 좀 하고 싶다, 이거여. 성(成), 성취하고 싶다. 일체 부처님의 여러 가지 행동을 성취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爲欲得一切佛神通故며
위욕득일체불신통고
이거는 얻고 싶다. 무엇을? 모든 부처님이 가지고 계시는 그런 신통도 나도 얻고 싶다, 이거여. 부처님의 신통을 얻고자 하는 그런 까닭이다.
爲欲具一切佛諸力故며
위욕구일체불제력고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온갖 힘, 뭐, 정진(精進)의 힘·신통력·법력(法力)·법문(法門)하는 그런 능력···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나도 좀 갖추고 싶다. 갖추고저 하는 까닭에 발심(發心)한다, 이거여.
그래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아~따, 선재 동자(善財 童子) 욕심도 많다··· 뭐, 부처님이 하는 건 다 할려고 하네···’ 사실 그래야 돼요. 우리 불자(佛子)는, 선재 동자(善財 童子)는 우리 모든 불자(佛子)의 대신이예요. 우리 모든 불자(佛子)를 대신해서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앞장선 거거든요. 그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재 동자(善財 童子)의 대표 밑에서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 다같이 해야 될 그런 처지에 있어. 그래,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거, 역시 우리도 그렇게 이런 욕심을 내야 된다. 이런 것은 욕심이라 하지를 않고 원력(願力)이라 그러죠, 원력(願力). 좋은 마음·좋은 생각은 그건 이제, 원력(願力)이다, 라고 그렇게 합니다. 이거는 자기 편하려고 하는 게 아니죠. 다른 사람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하는 그런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것은 원력(願力)이다, 그러는 거죠.
예를 들어서 가족이 있다, 그러면. 대개 그렇죠. 가족을 위한 일이 있겠죠.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 가면은 자기만 위하려고 그래요. 자기 위하려고 한다고요, 막다른 골목에 가면··· 평소에야 뭐, 마음 좋을 때는 화~악,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고·남편을 위해 죽을 수 있고·아내를 위해 죽을 수 있고·뭐, 형제자매를 위해죽을 수 있고··· 그러지마는. 그건 이제 편안할 때, 크게 어려움이 없을 때 그런 말을 하는 거고. 정작 급한 상황에 이르면은. 뭐, 우발적으로 생긴 일이 아닌 이상, 생각을 해 가지고 행동을 옮길 때는 거의 자기만을 위해요. 자기 우선으로 한다고요. 우발적으로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우선으로 할 수가 있어. 그러나 생각을 좀 깊이 하면은 절대 그게 안 된다, 그런 행동이 안 나온답니다, 거의.
그래서 그런 것들은, 고렇게 자기만을 위할 때는 그건 이제, 욕심일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자기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 돈을 벌기도 하고·때로는 나쁜 일도 하기도 하고··· 별별 일이 살다 보면 많은데, 그건 원력(願力)반 욕심 반이예요.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하는 것은, 그거는 순전히 자기만을 위한 거는 아니니까 원력(願力)도 그 가운데는 있고, 욕심도 그 가운데는 있어. 왜냐? 자기 가족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 성인(聖人)들은 자기 가족이라고 하는 거를 몇몇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고 자기 가족을 모든 사람으로 보는 거죠. 그, 참 어려운 주문이기는 하지마는 그걸 이제 그렇게 생각할 줄 알면, 그걸 이제 보살이라고 하는 거죠. 보살이라고 부처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거죠.
<화엄경>의 가르침은 우리하고 차원이 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이런 입장에서는 달라요. ‘아,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가족만 생각했지, 내 가족 밖에는 참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죠. 그게 자꾸 이제 확대돼서 한번씩은 그래도, 내 가족 아닌, 보다 폭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이제, 자꾸 경전을 통해서 훈련을 해야겠죠.
그,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힘도 갖추려고 하고.
爲欲獲一切佛無畏故며
위욕획일체불무외고
획(獲), 이거는 얻는다, ‘얻을 득[得]’자(字)하고 같은 뜻이예요. 일체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 부처님은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이 없거든요. 남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고·뭐, 성난 호랑이를 만나도 두려움이 없고·성난 코끼리를 만나도 두려움이 없고··· 본래, 그래서 다 제지할 수가 있으니까. 그래, 일체 부처님의 무외력(無畏力). 이것도 무외력(無畏力)이죠. 두려움이 없는 힘을 얻고자 하는 연고며.
爲欲聞一切佛法故며
위욕문일체불법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저 하기 때문에 발심(發心)했다. 이, 중요한 말이예요. 법문(法門)을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그 마음은, 그래도 뭔가 발심(發心)의 건덕지가 좀 있는 사람들이라. 그래, 여기 열심히 나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발심(發心)이 돼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제 말할 수가 있어요. 발심(發心)이 안 돼 있으면은 재미가 없어, 첫째, 부처님 이야기가. 이 불교 이야기가 하나도 재미가 없어. 뭐, 들어가지도 않고 먹혀들지가 않고. 그래, 불교 이야기·경전 이야기··· 이건 딴 세계거든요. 솔직하게 이거는 딴 세계라.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하고는 상당히 어떤 면으로는 거리가 있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현실하고 맞아떨어지는, 정확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또 어떻게 보면 딴 세계 이야기 같고··· 약간 그런 면이 있는데 여기에 뭔가 맛이 있다, 이거야, 재미가 있고. 우리 생활하고 상당히 직결되어 있는 것 같고 우리 인생에 어떤 거울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렇게 맛이 들고 고렇게 살살 감이 잡혀 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상당히 발심(發心)이 돼 있는 거죠. 그래, 일체불법(一切佛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저 한다, 듣고 싶어 한다, 이거야. 일단 이런 데에 욕심을 낼 필요가 있죠. 뭔가 들으면 이치에 탁탁 맞고. 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말이죠.
爲欲受一切佛法故며
위욕수일체불법고
요건 이제 일체불법(一切佛法)을 받아들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거여. 듣는 데 끝나면 안 되죠. 듣는 데 끝나지 않고 듣고, 내 가슴에 받아들이는 것. 듣는 거는 귀까지고 받아들이는 것은 요, 가슴까지라고 말할 수가 있겠죠.
爲欲持一切佛法故며
위욕지일체불법고
문(聞), 수(受), 지(持). 가진다, 이거야. 일체 부처님의 법을 가진다. 가진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가슴 속에 박혀 가지고 떠나지 않는 거죠. 따~악, 들어 있어요, 딱 들어있어.
이번에도 행자 교육에 가 가지고 마승 비구(馬勝 比丘)라고 하는 스님 이야기를 했는데. 사리불 존자하고 목건련 존자가 부처님 당시의 제일 큰 제자거든요. 왼팔과 오른팔과 같은, 그런 제자예요. 하여튼 부처님 있는 데는 목련하고 사리불 때문에 제자들도 많이 생겼고, 한꺼번에. 그 사람들도 지도자였으니까. 자기들이 가르치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고 와 가지고 부처님께 귀의를 했다고요. 그 사람들은 본래 아~주 똑똑한 청년이었어. 똑똑한, 다른 종교의 지도자였는데 자기들 제자들을 데리고 와 가지고 부처님께 귀의를 했는데. 또 사리불 같은 사람은 진리에, 이치에만 밝은 것이 아니라 사(事)에도, 세상사에도 너무 뛰어난 그런 지혜를 가졌어요. 그래서 우리 불교 역사에 제일 훌륭한 사찰, 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전 세계 불교 3천년 역사를 통틀어서 제일 훌륭한 사찰이 어느 사찰인지 아세요? 기원정사야, 기원정사. 기원정사를 제일로 치거든요. 지금은 터만 남아 있습니다마는, 터만 남아 있든지 어쨌든 간에 불교 역사에 남아 있는 사찰로서, 역사에 기록된 사찰로서는, 불국사도 아니고·해인사도 아니고 기원정사야. 인도의 기원정사라고··· 부처님이 거기 24년간 머무르셨어요. 24년인가 26년인가··· 하여간 제일 오랜 세월동안 거기에 사셨어요. 얼마나 좋았으면 부처님이 거기서 그렇게 오래 계셨겠어요? 그, 교화하기 바쁘신 분이, 거기 그렇게 오래 사셨거든요. 근데 그 사찰은 정말 훌륭한 사찰이라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가 보면, 그 터에 가서 앉아 있기만 해도 뭔가 그런 느낌이 와. 편안~하고 평화로운··· ‘아, 평화의 느낌이 이런 거구나!’하는 것을 ···
거기는 하여튼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가지고 가야 돼. 그래 그 넓은 도량에 마음껏 풀어 놓고 실컷 잠도 자고 경(經)도 읽고 도량을 둘러 볼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거기를 가야 된다고요. 태국 신도들은 아예 거기다 텐트 치고 3일을 머물러. 그 도량 옆에다가 텐트를 그냥, 수십 개를 쳐 놓고 수백 명이 와 가지고 머물러, 태국 신도들은. 밥도 해 먹고·거기서 놀고·거기서 경(經) 읽고··· 경행(徑行)을 많이 해, 이래 도는 것. 도량 도는 걸 많이 하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본래 경전에 경행(徑行)이란 게 있거든요. 그래 가지고 느낌이 오는, 그런··· 잘못 해 가지고 태국 신도들하고 한데 어울려 놓으면 야단 나. 그 사람들은 몇 백 명씩 한꺼번에 와서 옆에다 텐트를 쳐놓고 그렇게··· 무슨 우리 성지 순례 가 가지고 용맹전진 하듯이 딱, 그렇게 해요. 태국 신도들, 그~ 신심(信心), 말도 못해. 꼭 우리, 신도들 데리고 성지 순례 다니듯이 스님들이 앞장 서 가지고. 신도들은 또 딱, 수백 명을 이끌고, 그것도 와 가지고는 텐트를 크게 쳐 놓고는 그냥, 몇날며칠씩 정진하고, 돌고 그렇게 간다고요. 그래 그 사람들 와 놓으면 다 차지해버려, 그 사람들이. 그런 경우도 만나고 그러는데····
그, 역사적으로 그렇게 훌륭했던 사찰을 짓는데 총~감독을 맡았던 이가 사리불이야, 사리불 존자. 대단한 분이예요. 그래, 부처님이 그런 일을 사리불에게 맡길 정도니까··· 어지간한 세속 사람들, 세속의 훌륭한 무슨 건축업자에게 맡겼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사리불에게 맡겼어, 거길. 그 정도로 뛰어난 인데. 그 두 사람을 발심(發心)하게 된 동기가 마승(馬勝)이라고 하는, ‘아싸지’라고 하는 비군[比丘]데. 우리 쪽으로 번역하면 마승(馬勝), ‘말 마[馬]’자(字), ‘수승할 승[勝]’자(字), 마승(馬勝)이라고 하는 스님을 보고 말하자면 발심(發心)을 했어요.
그 먼~ 발치에서 어떤 사람이 가는데, 머리를 깎았고 노란 옷을 걸쳤는데. 하아, 인격이 너무 훌륭하거든. 품위가 너무 있어 보이는 거라, 먼발치에서 봐도. 그 목련하고 사리불은 또 그런 데라면 그냥, 눈이 번쩍 뜨이고, 그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내로라하는 사람이야. 인격으로 보나·지식으로 보나, 그 품위와 고상함으로 보나, 최고의 어떤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고는, 더 멋있는 사람을 보고는 마, 못 견디는 거야. 그래, 두 사람이 쫓아가는 거야. 쫓아가 가지고 “당신은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받들기에 이렇게 인품이 뛰어나 보입니까? 그냥 겉으로만 보기에도 아주 훌륭해 보입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고 당신은 어떤 가르침을 따르기에 이렇게 훌륭합니까? 그리고 왜 머리는 깎았고 옷은 왜 노란 옷을 입었습니까?” 현자(賢者)니까 그런 것을 이제 다 물었어요.
그러니까 이, 마승(馬勝)이라고 하는 스님이 이제 말하죠. “나는, 싯다르타라고 하는 사람이 6년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분에게 들어가서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른다.” 아, 그러냐고, 우리는 그런 소문 아직 못 들었다고. 아마 아직 초기니까. 그런 소문을 못 들었다고. 그래, 거기는 도대체 뭘 가르치느냐고? 막 그냥 다그쳐 물어요. 뭔 가르침이기에 당신은 이렇게 품위 있는 행동을 하느냐고?
그러니까 ”나는 초심자(初心者)라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한 가지만은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너무 많이 묻지 마라.”, 이런 식으로 하면서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이라.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모든 것은 인연이 흩어지면 다 소멸하게 돼 있다. 인연의 도리에 의해서 생기고 소멸하는 것이다. 우리, 깨달으신 어른, 큰 스님, 그 때는 대사문(大沙門)이야. 우리말로 하면 스님이란 뜻인데 큰 사문(沙門)께서는 늘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 자주 하신다. 그래,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어떤 존재 원리를 연기의 도리로, 인연의 도리로 그렇게 딱, 요약해서 설명을 딱 하니까 “카아, 정말 기가 맥힌 말이다.” 이거야.
그런 데에, 종교적인 데에 너무 관심이 많은 목련과 사리불이라서 그런 말 한 마디 하니까 그냥, 가뭄에 단비가 내려져서 한 방울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다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사악, 그냥 흡수를 하는 거죠. 그래서 당장에 우리도 그 쪽으로 안내를 해 달라고, 이런 가르침을 가르치는 분에게 좀 안내해 달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길로 자기가 믿던 종교, 다 버려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는, 그런 아주 큰 사건이었죠, 그 당시로 보면은. 왜냐하면 한 사람의 제자가 250명인가 해서, 그래서 두 사람이 토탈, 500명의 제자가, 다른 종교인이 말하자면 귀의를 해 버렸죠. 그건 이제 말하자면 종교를 바꾼, 그런 사건이니까. 그리고 목련과 사리불은 그 당시 종교 사회에 크게 알려져 있던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마승(馬勝)이라고 하는 젊은 스님이, 물론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었나는 모르지마는 최소한도 여기서, ‘가질 지[持]’, ‘들을 문[聞]’, ‘받을 수[受]’··· 동그라미를 해야 돼, 그래야 눈에 쏙쏙 들어오지. ‘들을 문[聞]’. 들어서. 그 다음에 받아들였죠. 그리고 지(持). ‘가질 지[持]’ 입장은 된 거야. 깊이 이해를 했겠지마는. 우리가 그래도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일체 부처님을 딱, 지닌 거야. 그래가지고 언제든지 튀어 나와. 누가 어떤 경우에 물어도 탁 튀어 나와, 그냥.
그래, 제가 행자들한테 그런 이야기 했어요. 이제 사미계(沙彌戒) 받고, 집안 식구들도 이렇게, 요즘 이제 와서 계(戒) 받을 때 환영하라고, 그렇게 허락을 해요. 집에다 연락을 해 가지고 식구 데려 와 가지고 같이 축하하라고 그렇게 일부러 권해요. 그럼 이제 어떤 사람들은 가족에서 와요, 가정에서. 뭐, 부모도 오고 형제도 오고, 와 가지고 뭐, 꽃다발도 주고 축하도 해 주고··· 신부(神父)들, 그렇게 하거든요. 서품 의식(敍品 儀式) 있을 때. 와 가지고 그냥 막, 이렇게··· 태국도 그래요. 태국도, 스님들이 스님 될 때 온 집안이 다 따라와, 그냥. 코끼리 타고 풍악 울리고 나팔 불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렇게 친구들하고 이렇게 와 가지고 환영을 해 주거든요. 그래, 우리도 이제 그런 식으로 하자, 해 가지고 행자들, 행자 수련대회 다 마치고 사미계(沙彌戒) 받을 때, 그 때는 이제 전부 연락해 가지고 은사 스님들도 오고, 그 다음에 이제 집안에도 부모님들이 와서 환영해 주고··· 삼계도사(三界導師)가 하나, 집안에 이제 생기는 판인데 집안에서 부모들이 와서 환영해야 될 거 아니냐? 해 가지고 그렇게 하자고 해서 하는데. 사실은 그리 해야 되거든요.
그래, 이제 그럴 때. 누가 “그동안 절[寺]에서 무얼 배웠나?” 하거든, 탁, 튀어 나오는, 무의식중에 탁, 튀어 나오는 말이 있어야 된다, 제가 그랬어요. 무의식중에 탁, 튀어 나오는 말. 여기 마승 비구(馬勝 比丘)는 제가 이제 말한,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이게 무심결에 그냥 탁 튀어 나온 거라. 그 사람들이 와서 막, 다짜고짜 물으니까 나는 신참이라 잘 모른다. 그런데 얼른 생각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이거는 부처님이 자주 말씀하셔가지고 내 머릿속에 탁 박혀 있다. 이, ‘가질 지[持]’자(字), 딱, 가지고 있는 게 돼.
그럼 우리 불자(佛子)들은 보통, 관세음 보살 하나는 제대로 가지고 있을 거야, 아마. 아쉬우면 그냥, “관세음 보살” 이렇게 나가겠지. 그것도 ‘가질 지[持]’자(字)에 해당된다고요. 관세음 보살의 사상·관세음 보살의 마음을 이해해야 돼. 그 다음 단계는 ‘이해할 해[解]’잔[字]데. 관세음 보살은, 그 소리만 탁 튀어 나와서 위급할 때 “관세음 보살”하고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고. 관세음 보살의 자비 사상이 이해가 돼 가지고 그것이 몸으로 실천이 되어야, 사실 그게 진짜 관음기도하는 본래의 취지거든요. 어디 말로만 “관세음 보살”하는 그거, 그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마는 그래도 자비(慈悲)가 먼저 나와야 돼. 자비의 어떤 행동, 자비의 마음··· 그게 관세음 보살이야. 자비가 관세음 보살이지 ‘관세음 보살’ 말이 관세음 보살 아니야. 그거는 그냥 간판일 뿐이예요. 간판 달고 있는 집에, 안에 들어 가 보면은 말하자면 간판뿐입니까, 어디, 그 안에는 자비가 넘치고 있어야 되겠지. 그래서 관세음 보살 기도도 관세음 보살 정신인, 그 자비 사상이 마음에 흘러 넘쳐야 그게 옳고. 그러나 “관세음 보살”이라고 톡, 튀어 나오는 정도로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도 장한 일은 장한 일이예요.
그래서 행자들에게도, 무슨 부모들이나 친구들이 와서 뭐라고, 불교에 대해서 묻거든, 톡, 튀어 나오는 구절이 하나 있어야 된다. 그거는 최소한도, 딱!, 외워서 가지고 있어야 된다. ‘가질 지[持]’. 깊이 이해는 안 되더라도 ‘가질 지[持]’의 뜻은 돼야 된다. 그래서 뭐, <천수경>에도 그런 거 있죠. 수지(受持). ‘받을 수[受]’, ‘가질 지[持]’. 또 그런 거 있죠.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我今)문(聞)·견(見)·득(得)수(受)·지(持). 이렇게 돼 있다고요. 듣고 보고 얻고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가질 지[持]’. 득수지(得受持). 가지는 거야, 이거는. 깊이 가지는 거야. 그래 가지고 뭐, 곤히 잠든 사람을 깨워 가지고는 말이지. “불법(佛法)이 뭐냐?”하더라도 그냥 한마디로 나가면 “관세음 보살이다”, 마, 그냥 이렇게 해도 좋고 그냥··· 아쉬운 대로···(웃음)
그런데 그, 마승 비구(馬勝 比丘)가 사리불이나 목련한테 이야기한 그 대목이 참 좋은 거야. 모든 건 전부 인연(因緣)도리다, 인연의 도리. 뭐, 잘 되는 것도 인연(因緣)의 도리요·못 되는 것도 인연의 도리요··· 잘 되려고 하면 인연(因緣)의 도리니까 잘 되려고 하는 조건을 갖추면 잘 된다, 이거야.
그럼, 잘 안 되는 거는? 잘 될려고 하는 조건이 못 갖춰져 있으니까 잘 안 될 거 아니냐?, 이거야.
그건 뭐, 너무나 당연한 거죠. 정말 당연한 이칩니다, 그 인연(因緣)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마승 비구(馬勝 比丘)도 아마 그 말에 너무 감동이 돼서, 잘 외우고 있었던 모양이예요. 그리고 목련과 사리불도 그 말에 그냥 금방, 헤까닥 돌아가 버린 거야. 자기들 종교, 그렇게 오랫동안 믿어 오던 거, 다 버려 버리고 그 말 한마디에 그냥, 싹 그냥, 돌아가 가지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됐다, 고 하는 거예요. 그래 그만치 그 말이 중요하다고요.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그건 이제, 해석하면 그래요.
제법(諸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세상사·인생사야. 모든 세상사·인생사는.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또 모~든 인생사·세상사는 전부 인연으로부터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큰 사문께서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이라. 항상 이와 같은 말씀을 설하신다. 여시설(如是說).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래, 부처님도, 아마 그 도리가 당신의 어떤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가 보죠. 그러니까 자주 말씀하셨어요. 중요한 거 자주 말씀하시게 돼 있으니까.
“불교가 뭐냐? 부처님의 가르침이 뭐냐?” 하면 이제 “다 인연(因緣) 도리야.”, 그렇게 하면 돼요. 그 말은 한마디로 “전부가 인연 도리야. 네가 잘되고 못되고는 인연 도리야. 잘 되려고 하거든 잘 될만한 인연을 지어. 지으면 되게 돼 있고. 네가 못 지었는데 잘 되려고 하면 되냐? 욕심 부리지 마라···”, 이거예요, 바로. 쉽게 이야기 하면은. 전~부 인연 도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차츰차츰 성장하죠. 성장하다가 성장하다가 계~속 뭐, 10m·20m를 자랄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그저, 한 1m, 한 7,80쯤 자라고는 그 다음부터는 머물러 있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차츰차츰 노쇠해 가고. 변하고 노쇠해 가고. 그리고는 결국은 우리도 가야, 그 다음 뒷사람들이 설 자리가 있으니까 먼저 온 사람들은 가 주고. 또 뒷사람들이 와서 그 공간을 채워 주고··· 그래, 우리는 갔다가 다시 어떻게? 오는 거죠, 또. 다시 갔다가 오는 거예요. 그렇게 계속 그렇게 도는 거, 이게 다 인연의 도리라. 그래, 계절의 변화, 보면은 이게 틀림이 없죠. 춘하추동(春夏秋冬)도 그렇게 전~부 인연의 도리로, 그렇게 돌아간다. 그게 이제, 그 정도는 우리 불자(佛子)들이 잘, 지(持), ‘가질 지[持]’, 지니고 있어야 돼요. 문[聞]·수[受]·지[持], 여기는 그래 놨네요. 듣고 받고 그 다음에 지니고.
爲欲解一切佛法故며
위욕해일체불법고
그 다음에 해일체불법(解一切佛法)이라 했죠. 위욕해(爲欲解). 이해한다, 이 말이예요. 요거는 이제. 속에 전부 그냥, 말하자면 전부 요해(了解)가 돼 버린 거야. ‘인연의 도리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연의 도리를 강조하신다, 아! 참 인연의 도리는 이런 거야.’ 자연의 변화, 계절의 변화만 잘 이해할 게 아니라 인간관계의 사계절도 잘 이해해야 돼, 인간관계의 사계절도··· 때로는 감이. 엊그제 보니까 새파란 감이 떨어졌더라구요. 그게 다, 말랑말랑 안 익었는데 그래도 떨어지는 수가 있어. 그 뭔가, 벌레가 먹었거나 아니면 바람이 세게 불었거나 어쨌든, 다른 거는 안 떨어졌는데 저는 떨어졌으니까 떨어질 이유가, 그 나름대로 있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야. 사람도 꼭 늙어서만 죽는 게 아니더라고요, 보니까. 간혹 보며는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들도 있고. 또. 만나고 헤어짐이라고 하는 것도 만나서 오래 가는 인연도 있고. 뭐, 한 번 스치고 마는 인연도 있고. 뭐, 길 이렇게 가다가 한 번 스치고 가는 인연이 제일 많지. 하루에 사악 스치고 지나가 버리는 인연·두 번 본 인연·세 번 본 인연···
저기 저, 강원도 사는 어떤 사람. 처음에 이제 떠억 알았는데 나중에 이제 결혼을 했어. 그래, 어떻게 해서 했냐고, 아느냐 하니까. 본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멀리 선 거리에서 자주 만나지더라는 거라. 자꾸 만나지고 또 만나지고··· 그래, 서로가 이상해 가지고 나중에 네 번짼가 다섯 번째 스칠 때는 그래, 이야기를 서로 하게 됐다고, 그래. 그리고 나서는 만날 데가 아닌데 또 만나지고··· 거, 참, 그런 게 천생연분이겠죠. 그래서 잘 사는 사람이 꽤 있는데 그런 경우도 또 특별한 경우도 있죠. 만나고 헤어짐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다~ 인연소칩니다, 인연. 나에게 온 인연은 또, 나에게 온 인연이구나, 이렇게 이해를 해야겠죠. 이 ‘해[解]’자(字)는 고렇게 깊이, 마음에 사무치게 인연의 도리를 이해하는 것. 위욕해일체불법(爲欲解一切佛法)이라. 우리 발심(發心)하는 거, 부처님한테·불교에·불법(佛法)에 관심을 갖는 거, 이게 발심(發心)이라 그랬어요. 불교에 관심, 왜 갖느냐?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거야. 이해하려고 내가 발심(發心)을 한다.
爲欲護一切佛法故며
위욕호일체불법고
그러면 문[聞]·수[受]·지[持]·해[解]·호[護]. ‘보호할 호[護]’잔[字]데 이거는 이해해서 불법(佛法)을 자기가 능동적으로 보호하는 입장, 저 앞에 이제 일체불무외(一切佛無畏)를 획(獲)한다, ‘획[獲]’자(字)하고 차이가 있네요. 요거는 일체 불법(佛法)을 자기가 보호하고 또 나아가서는 펴고. 요, ‘보호한다’는 것은 펴는 데도 그 의미가 있어요. 보호한다는 것·편다는 것·포교를 한다는 것·지켜준다는 것··· 이건 이제 불법(佛法)을 이해하는 차원하고는 또 달라요. 넘어선 거죠.
그래서 문[聞]·수[受]·지[持]·해[解]·호[護]. ‘보호할 호[護]’자(字). 우리, 호국불교(護國佛敎), 그러죠. 우리나라 불교의 한 가지 특색 중에는 나라를 보호하겠다, 하는 그런 정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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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발심.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인생말고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는 것도 발심이라고 하시네요. 이맘때. 봄의 따스한 기운이 조금씩 느껴질 때. 경칩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 봄부터는 좀 다르게 살아 봤으면... 그 이름만으로도 따스해지는 관세음보살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따스해졌으면...^^*
저두요^^
()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가을햇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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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心...............가을햇살 님! 편안하게 공부 잘 하고 갑니다..고맙습니다.._()()()_
문聞·수受·지持·해解·호護...고맙습니다...()()()
화엄경 공부는 보다 폭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경전을 통해서 훈련을 하는 것이다. 햇살님 고맙습니다. _()()()_
가을햇살님, 녹취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 감사히 잘 읽습니다. ()
發菩提心...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_()()()_
가을햇살님,고맙습니다._()()()_
선재 동자의 원력이 대단합니다. 부럽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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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一切佛 관(觀)은 마음으로 관찰하는 거예요. 눈 감고도 볼 수 있는 게 관(觀)이고. 눈 감으면 못 보는 게 견(見)이예요.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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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따 선재 동자 욕심도 많다,부처님 하시는 것 다하려고 하네'
---우리도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런 욕심은 願力이라고 한다
내 가족이 아닌 다른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생각해 볼 줄 아는 마음을 훈련해야 한다
발심하는 이유
;일체 부처님을 섬기기 위함 事
;일체 부처님을 만나기 위함 値
;일체 모든 부처님을 보기 위함 見
;일체 모든 부처님을 관찰하기 위함 觀
;일체 모든 부처님을 알기 위함 知
;일체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를 증득하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大願을 發하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大願을 채우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갖추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하시는 모든 행동을 성취하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을 얻기 위함
;일체 모든부처님의 모든 힘,능력을 갖추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을 얻기 위함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받아들이고 지니고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함
聞 受 持 解 護一切佛法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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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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