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절경이 일품인 채석강
부안 가는 길목에 생각을 하면 우리에게 부안은 변산반도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채석강 처음에는 가서 보기 전 까지 이 곳은 강 인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바다라는 사실에 놀라던 때 생각난다. 사실 이 곳은 몇 차례 다녀온 장소다. 95년, 97년에 이어 또 다시 이 곳을 찾았다. 우리가 다 이제 알만한 책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2권에서는 내소사와 개암사에 대한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부안을 가기 전 위쪽에 있는 김제의 벽골제란 간판이 있는 도로를 지난다. 부안하면 새만금이 떠 오른다. 새만금으로 유명해진 고장이 또한 부안이다.
→ 채석강 전경
변산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채석강이다. 이 곳은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해식 절벽과 바닷가인데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 수운(水運)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이백(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철에 왔다면 해수욕을 즐기기 좋았을 것을 겨울철에 방문하여도 나름데로 파도와 함께 운치는 있었다.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채석강은 '변산 8경'중의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해 넘이 축제를 하는데, 여기서 보는 서해안의 일몰 낙조는 너무나 아름다워 정말이지 장관을 이룬다.
→ 채석강의 노을공주
맨 끝쪽에 가면 노을공주가 있는데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인어공주 상이다. 이 공주상을 보고 난 사람들은 일년 한 해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는 일이 다 잘 된다고 한다.
전나무 숲 길과 꽃 창살로 유명한 내소사
채석강에서 나와 전나무 숲길로 전국에 너무나 잘 알려진 사찰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 주변도 이제 차츰 관광지화 되어 가고 있는 듯 몇 년전과 달리 숙박시설이 일부 들어서 있었다. 내소사로 들어가기 전 매표소 입구에 있는 문화재 안내간판을 잠시 보았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들어서면 나뿐만 아니라 처음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늘을 찌르는 높은 전나무를 보며 감탄을 할 것이다. 약 600미터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천천히 여유를 두고 걸으며 시간의 여유와 삶의 여유를 모처럼 느껴본다.
→ 봉래루.
천왕문에 들어서서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는 서너 단의 돌 축대가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몇몇의 부도가 있고, 봉래루(蓬萊樓)라는 이층 누각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중간에 큰 나무가 가로막고 있어 절의 가람 배치에 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 내소사 범종각. 네모 안은 고려동종의 세부 모습.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으로 가기전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277호)을 찾았다. 현재 범종각 속에 보호되고 있는 이 종은 고려 시대 동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종이다.
종의 아랫부분과 윗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의 어깨 밑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4개 있고, 그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당좌는 연꽃으로 장식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새겨 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청림사 종으로 만들었으나,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고 한다.
→ 내소사 삼층석탑
이제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을 살펴본다. 앞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이 탑은 위ㆍ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 내소사 대웅보전.
주 건물인 대웅보전을 살펴보면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특이한 것은 대웅보전이면 보통 전각에는 석가모니불이 주존불이나 이 곳에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 백의관음보살.
규모는 정면 3칸ㆍ측면 3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이 곳에서는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 불상 뒤쪽 벽에는 그려져 있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좌우로 위를 보면서 쭉 지나가다가 보살상과 눈이 마주치면 근심걱정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시고, 소원도 성취된다고 보살 님이 설명을 하신다. 현재 이 상은 노후되어 조만간 다른 건물로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 내소사 꽃 창살.
또 한가지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 문 창살에 새겨진 꽃무늬 창살들인데 그 모양이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특이하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라면 엽서용으로도 널리 이용할 만큼 그 무늬가 아름답다.
→ 내소사 설선당
다음으로는 설선당인데, 이 건물은 조선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정면 6칸ㆍ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오른쪽 1칸은 마루이고,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요사는 설선당과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1층은 스님들의 방과 식당,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설선당과 요사는 4면이 연결되어 중앙 내부에 마당과 우물이 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이제 내소사를 나와 개암사로 향한다. 23번 국도를 타고 고창쪽으로 10여키로 가다보면 오른쪽 길가에 개암사라고 쓴 바위가 나온다. 입구부터 이 곳은 주차할 공간이 없다. 도로변 가에 잠시 주차를 해야한다. 현재 주차장을 만들려는 공사인지 한참 공사가 진행중에 있었다.
아늑한 느낌의 개암사 산사의 고요함
→ 개암사 대웅보전 전경.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을때, 우(禹)장군과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년(1314)에 원감국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다시 지어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뒤에 여러 번의 수리가 있었다.
→ 개암사 대웅보전 공포 양쪽에 있는 도깨비 문양.
개암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보물 292호)은 정면 3칸ㆍ측면 3칸 크기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이 건물에서는 주목해서 보지 않으면 자칫 못 보는 곳이 중앙 공포의 양쪽으로 도깨비 문양의 나무 조각이 정면을 향해 무서운 눈초리로 꿰뚫어 보고 있다.
내부에는 작은 크기의 동종이 있고, 금고가 있다고 하는데, 스님의 법회 중이라 보지 못하였고 내부의 화려한 닫집과 삼존불상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 양 옆에 누운 괘불대, 네모 안은 석조 명문.
대웅보전 앞에는 괘불대가 양 옆으로 있고, 돌 석조에 명문이 적힌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절에는 여러 사찰과 달리 탑이 없었다. 들어오면서부터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알고보니 탑이 없는 사찰이다.
→ 개암사 응진전에 모셔진 16나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측 응진전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이 건물 안에는 불상과 16나한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9호)이 모셔져 있는데 그 표정과 자세가 매우 다양하고 가지 가지여서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채색은 새로 모두 한 듯 하였다.
→ 지장전에 모셔진 청림리 석불좌상
문화재 안내문 내용에 의하면 『발원기』와『사적기』등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3년(1677)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건너편으로 지장전이 있는데 이곳에는 청림사(靑林寺) 절터로 불리는 곳에 있었던 불상을 옮겨온 청림리 석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23호)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목과 몸체 부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근래에 복원하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모아진 손바닥으로 구슬을 감싸 쥐고 있어서 지장보살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 좌측으로 산신각이 있다. 뒤편의 울금 바위와 한 폭의 그림을 자아내는 듯 조용한 산사...이 곳에서 미처 못 본 유물들은 다음에 보기로 하는 아쉬움으로 이 곳을 벗어난다. 너무나도 아늑한 분위기의 두 사찰과 아름다운 채석강에서의 장관은 오랜 답사 길에 쉽게 피로를 풀어주는 제촉제와 같은 윤활유가 아닐까? 아직도 못 다본 전라북도의 유적지에서 작은 나의 발자취를 또 남기고 떠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