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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둥근달
▲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의 표제면. 초판 4000부가 두 주일 만에 매진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였다. |
한창 자신에 대한 파문이 진행되고 있던 종교개혁의 중대한 해인 1520년에 루터는 3편의 작품을 저술하여 발표하였다.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은 8월에 썼고외부적인 개혁을 다룬다. 루터는 세속정부가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주도권을 취하도록 권유하였다. 영적계급이 세속계급보다 우월하다는 중세적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모든 세례 받은 자들은 제사장이라는 명제를 내세웠다. 한편 세례 받은 이들은 모두 제사장들(sacerdotes)이지만, 단지 목사들만이 교역자들(ministeri)이다. 루터는 교황주의가 세 개의 ‘벽들’을 세워 개혁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1. 영적 권위자들이 세속 권위자들보다 우월하다는 것 2. 교황만이 성경의 최종적 해석자라는 것 3. 교황이 교회회의들보다 우월하다는 것 “만인 제사장설”은 이 벽들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는 10월에 저작됐는데,신학 자체의 중요한 개혁, 특히 성례전 교리 및 집행과 관련된 개혁을 다룬다. 그는 로마 교황청이 그 권력의 근거로서 ‘일곱 성사’를 창안하고 이용해 왔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특히 카톨릭의 성만찬론 비판에서 세 가지 ‘포로 상태’를 말한다. 1. 평신도에게 포도주를 금하는 것 2. 화체설 3. 미사가 희생제물이라는 것 한편 루터는 성사의 수를 일곱에서 세례와 성만찬,두 개의 성례전으로 줄였다. “크리스천의 자유에 관하여”는 11월에 쓰여졌다.두 개의 극단적인 명제를 다룬다. 1. 크리스천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2. 크리스천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 이중적 명제는 지금까지 바울의 자유 이해를 표현한 가장 성공적이고 적합한 말이다. 이 논문이 ‘크리스천의 삶 전체를 간략한 형태로 포함하고 있다’고 규정짓는 루터는, 복음이 주는 절대적인 자유와 이웃을 향한 절대적인 섬김의 모습 사이에는 전혀 갈등이 없다고 설파하였다. |
▲ “교회의 바벨론 포로”의 표제면. 루터는 이 책을 성례전에 대한 더 기본적이고 자세한 논쟁의 서곡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 |
▲ “크리스천의 자유에 관하여”의 표제면. 루터는 밀팃츠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