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경석 풍요롭고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은 필연적인 멋의 문화이다. 살맛나는 세상에서 넉넉하게 멋을 내어 남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자연스러운 표현인지도 모른다. 한때 남자의 짧은 모발은 군대조직 사회에서나 존재하여 짧은 모발의 남자는 「군발이」라고 조롱까지 받았다. 장발이 유행되던 초기 군사정부에서는 유행을 좇는 젊은 이를 마치 죄인 취급을 하며 번화가에 경찰관을 배치, 가위로 긴 머리카락을 싹독싹독 잘라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심한 장발일 때에는 경찰서에 연행, 즉심에 회부까지 했다. 당시 장발은 전 세계에 유행하여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에까지 퍼졌다. 거센 유행의 물결을 제지할 힘이 독재자에게 없었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마침내 장발이 보편화 되기에 이르렀다. 젊은이는 물론 교회의 목사, 성당의 신부까지 조심스럽게 모발을 길렀다. 전두환 대통령도 머리카락이 많았더라면 아마 길렀을 것이다.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도 슬그머니 모발을 길렀다.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당수도 예외일수 없었다. 상당한 기간 장발이 유행되더니 근간에 와서 이변이 일기 시작하였다. 선진국의 퇴폐 히피족들이 자기들이 선도했던 장발을 미련없이 잘라내고 민둥머리가 되는 것을 시발로 약삭빠른 일본의 젊은이들이 그를 본따 머리뒤 아래부분이 허옇게 드러나게 올려쳤다. 그리하여 장발과 작별을 고하자 세계는 다시 단발로 유행의 판도가 바뀌었다.
사람의 눈이 어찌나 간사스러운지 요즈음 유행에 둔감한 장발의 남자를 간혹 만나게되면 촌티가 좔좔 흐른다. 이렇듯 모발의 유행 정도라면 누가 나무라겠는가. 그런데 새로운 배낭문화는 예사 문제가 아니다. 멀쩡한 손가방을 유행을 좇기위한 이유만으로 내다버리는 지경에까지 왔다면 낭비치고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몇년전 프랑스의 한 패션쇼에서는 미녀 모델이 핸드백 대신 가늘고 하얀 가죽끈에 주먹보다 좀 큰 예쁜 가방이 달린 것을 메고 나타나자 유행에 민감한 한 관객이 탄성을 질렀다. 그 배낭의 참신함에서 새로운 패션 동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파리는 물론 뉴욕이나 런던에서 일부 젊은 연인들이 새로운 유행을 따라 예쁜 배낭을 메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선진국에서 그 유행이 시들해질 무렵 엉뚱하게 그 불똥이 우리나의 중고생에 튀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값비싼 손가방을 내다버리고 일제히 둔탁한 배낭을 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남녀 중고생들은 거의 전원이 배낭부대원이 되었다. 육군이나 해병대의 보병이 전투시 또는 행군시 배낭을 짊어지는 것은 손에 들어야할 소총이 있고 필요시 적을 맞아 사격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중고생들이 버스나 전철에서 의자에 않고 서고 할때면 짊어졌던 배낭을 내리고 또 내렸던 배낭을 다시 짊어지는 거북스러운 광경을 보면 답답하다 못해 불쌍해 보인다. 더욱이 여름철 배낭 짊어졌던 등의 질퍽한 땀자국을 보노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파트의 쓰레기 차에 심심치 않게 실려나가는 멀쩡한 손가방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전국의 중고생이 어쩌다 유행의 병폐에 빠져 물건 아까운줄 모르고 손가방을 버릴까?.부모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유행병이다. 교육부장관에게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고 싶다. |
첫댓글 패션에대한 오래전의 글을 보고 지금도 똑같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여자 핸드백이 점점 커지더니 요즈음은 적은 옛날 이뿐 핸드백은 찾을길 없는 것을 보고 참 유행이란 돌고 돌아 남자들의 낵타이 모양도 천태만상으로 변하여가고 의사들은 진료중 곡 낵타이를 맷섯는데 요즈음은 그런 풍속이 없어 아주 편합니다 좋은 글 읽어보며 많은 점에 수궁이 갑니다. 고맙습니다.
패션에는 항상 상술이 작용합니다.
소비를 늘리게 하고 경제에 활력을 주는 긍정 효과도 있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경제의 붕괴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