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제 풍경을 가을에 맡기면서
추적추적 빗소리에 빠져든다
오래 감추어 두었던 가을길이
霽月을 데리고 나온다, 도시의 가을은
가로수 잎이 떨어지는 상식선에서 오고
잡지 표지에 나타난 여인의
야한 눈매에서 타락하고 만다
가을이 타락하고 마는 것은 아름다운 속성이다
가을이 타락하지 않으면
이 외설의 도시에서 누가 슬픔을 노래하랴
우수의 노래조차 온전히
부여잡지 못하고서, 어찌 저 타락한 가을의
빛남을 만나볼 수 있으랴
저기 깊어가는 우수의 유물을 건지고 싶다
정일남 시인은 강원도 삼척태생이다. 탄광이 시의 무대였다가 후에 다시 수려한 강원도 풍광에 깃든 우수가 그의 시를 관통하고 있다. 많은 시의 자취들이 동해안 39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활발하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에 기대어 시를 부여잡고 있다. http://blog.naver.com/jungin3507/10094395837
요즘처럼 비가 잦고 다시 가을이 오는 철에 시인의 시가 다시 읽힌다. 이 시는 처음 4행을 보면 이미지가 한시의 절구처럼 선명하다. 비가 개이고 달 밝은 밤 도시도 동양화의 한 폭처럼 달빛 고요한 하늘을 가졌지만 세상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 문제는 상식선에서 해결되는 도시라는 공간은 이렇게 환하게 밝아오는 가을을 그대로 즐길 수 없게 만든다. 시인의 이상적 지표는 하늘의 달과 같겠지만 시가 쓰여지는 현실은 도시공간이다. 마음은 비개인 하늘의 달빛처럼 맑은 눈빛이겠지만 보이는 현실 또는 머무는 현실은 도시의 공간이고 삶은 아파트 숲에 갇혀져 있고 통속적이고 또 퇴폐적인 문화 공간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아름다움의 개념조차 변질되고 만다. 타락하지 않고 아름다울 수 없는 이 도시는 우수와 슬픔으로 젖어들고 거기에 젖어들지 않고 시 한편을 길어올렸다면 하나의 제월이 되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선명한 이미지의 시대를 살지 못하는 시인의 비애와 비애를 끌어안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고행이 시에 묻어 있다. 동경하는 세상의 가을 달빛과 머물고 있는 남루한 도시의 간극이 모더니스트들의 상투어구로 메워지지 않는 비극이 이 시가 우리에게 남겨둔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