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9장 언론은 정도를 걸어야 한다
문선명처럼 언론과 질긴 인연을 맺은 사람도 드물다. 신문과 방송에 의해 끊임없이 뭇매를 맞았지만 언론을 혐오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언론이 갖는 선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1. 그 많은 언론 미디어를 만든 이유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문선명은 언론과 참으로 질긴 인연을 맺어 왔다. 1954년 이른바 연대・이대 사건으로 신문을 통해 하루 아침에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흉악한 사이비 교주'가 되었는가 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첨예한 논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되었다. 문선명이 수감될 때면 온 신문은 사회면에 대문짝만 하게 비난 기사를 실으면서도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될 때는 한구석에 두 줄로 간단하게 처리 되었다. 그 결과 문선명은 지금까지도 가정과 사회를 망치는 이단교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러한 언론을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후에도 문선명 이름 석 자는 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특히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미국의 신문과 방송, 잡지는 문선명의 뒤를 쫓아다니며 매일 기사거리를 쏟아냈다. 그 숱하게 많은 기사와 보도를 통해 문선명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대로 공개되었다. 그 가운데는 칭송이나 칭찬보다는 비판, 험담이 언제나 더 많았다. 단순히 사실만을 보도하는 신문기사조차 열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문선명은 공적인 삶을 시작한 1954년 이후 쉬지 않고 책과 잡지, 신문을 펴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설교집과 기도문집도 있었으나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의 발간과 신문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그것은 통일교 교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돈을 번다는 것관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신도들이 성금을 모아 사업을 도와주기 바빴다.
문선명은 평생동안 신문과 잡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기사나 논설을 단 한 번도 싣지 않았다. 그동안 문선명이 발간했던 「뉴스월드」, 「워싱턴타임스」, 「세카이닛뽀」, 「티엠포스델문도」, 「미들이스트타임스」 등 어느 신문도 통일교 교리를 실지 않았다. 문선명은 자신이 가진 지원과 정성, 통일교 신도들의 정성을 쏟아부으면서 언론이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만을 기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