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사상>, 2015년 봄호.
【권두 대담】 세월호 참사 1주기
일시 : 2015년 3월 18일
장소 : 푸른사상 사무실
맹문재 : 선배님, 안녕하세요. 연구 활동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참으로 바쁘시지요. 오늘의 대담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교수 지식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면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번 ‘국민모임’을 발기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총체적인 위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지난번 서울대 교수들도 시국선언에서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을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지요.
이도흠 :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 모순들이 응축하여 일어난 사건이 바로 세월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침몰이 아니라 침몰 이후에 빚어진 것입니다.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침몰 이후라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소중한 생명 304명을 국가가 구조를 하지 않아 수장시켰습니다. 탈출 시뮬레이션 전문가 박형주 교수는 훈련된 선장과 선원들의 퇴선 명령이 있었다면 최소 5분에서 최대 9분 안에 476명의 승선원 전원이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해경이 도착하자마자 진입해 구조했으면 세월호 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해경이 승객을 구출하지 않은 채 선장과 선원만 구조하고 선장을 자신들의 아파트로 빼돌리고 이를 은폐하였습니다. 선장의 탈출 행위 또한 국가와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헌법 제34조 6항은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임무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왜 국가는 위헌 행위까지 행하면서 ‘사회적 타살’을 한 것일까요?
맹문재 :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도흠 : 세월호 참사를 간단히 요약해 봅시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단으로 밀고 간 이명박 정권은 국가 안전 업무를 민간에 이양하고 20년으로 제한된 배의 선령을 30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해운법을 개정하는 등 안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청해진해운은 이를 토대로 삼아 고물 배를 사서 증개축에서 과적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돈을 앞세워 인권과 생명을 경시한 위법 행위를 했으며, 관료들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침몰하자 선원들은 승객을 구조할 임무를 포기한 채 자신들만 사지에서 탈출했으며, 해경은 민간업체와 유착관계를 맺고 구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1,600억 원을 들여 구입한 최첨단 해난 구조선인 통영함은 방산비리로 고철덩이로 변하여 출항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콘트롤타워가 부재한 채 국가 재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데, 수백 명의 국민 목숨이 오고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유기를 범하고서 선장과 유병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채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서 홀로 탈출하였습니다. 이미 환경 감시 기능이나 정부 견제 기능을 상실한 언론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린 채 선정적인 보도를 하거나 정권의 입맛에 맞게 오보를 일삼았으며, 제1야당은 여당의 2중대임을 자처하며 대통령이 제안한 가이드라인대로 협상하였습니다. 일베와 그들에 동조하는 이들은 유족을 조롱하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고, 애도하던 국민들도 침묵하거나 쉽게 망각하였습니다. 대통령에서 관료와 자본, 언론, 여야 정치인, 시민사회 모두가 ‘비정상’인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 물질적 근대화만을 추구한 개발 독재, 도덕적 가치와 분배의 정의를 철저히 배제한 채 이윤과 효율에만 골몰한 천민자본주의, 자본-국가와 관료-대형 교회-보수 언론-어용학자로 이루어진 부패 카르텔, 자본의 야만을 규제하던 모든 장치와 제도를 해제하면서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전환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있습니다. 이것이 어우러져 국가 재난시스템마저 무력화하는 비리 공화국을 만든 것이지요.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리 공화국에 대해 지금 성찰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재발할 것입니다.
맹문재 : 세월호 참사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이 총체적 난국인 것을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면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좀 더 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도흠 : 한마디로 말하여 신자유주의 정책 20여 년의 결과 국민의 99%는 생존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금 노동자의 절반인 960만 명이 장그래, 즉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절반이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고 다단계 판매로 나선 572만 명 가운데 3/4이 단 돈 1원도 벌지 못합니다. 시간제 노동자 200만 명은 월 평균 66만밖에 벌지 못합니다. 연이어서 FTA를 체결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수록 빚이 늘어나 농사 자체를 포기할 지경에 있습니다. 전세 총액 908조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2,000조원, 국가 채무와 공기업 부채를 합한 공공부문의 부채는 1,000조원에 달하는데, 전세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장기불황은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10대 기업의 곳간에 쌓여 있는 돈이 515조 원에 이르지요. 그런데도 정권은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줄이는 등 기업에 유리한 정책만 구사하고, 기업은 정권의 지원 속에 쉽게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실업자는 늘어만 나는데 갖가지 복지정책은 폐기되어 사회의 안전망이 파탄이 나는 바람에 국민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국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쌍용자동차 노동자처럼, 세 모녀처럼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입니다. 노동 배제와 억압은 ‘야만’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합니다. 왜 이 땅의 노동자들은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러 죽음을 각오하고 굴뚝으로 올라야만 하는가요.
이런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이 정치이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시민과 학생과 노동자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1987년의 민주주의 체제는 사실상 종언을 고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통제되고 있고, 1987년의 성과로 창당된 진보정당은 해산이 되었으며, 신자유주의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만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 21세기입니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 각 분야에서 독점을 깨는 참여민주제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경제민주화 시대로 이행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대의 민주주의마저 껍데기만 남겼으니, 이는 분명히 역사의 퇴행입니다. 이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전혀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관계와 동아시아 질서 또한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어요. 정권은 종북 프레임을 작동하며 권력을 강화하고 비리를 은폐하고 있을 뿐 남북관계를 더욱 경색 국면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권은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에 따라 중국 봉쇄정책을 강화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용인하며 전후체제를 사실상 종결하였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데, 정권은 우왕좌왕하며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국민들도 각박해졌습니다. 취업도, 직장 유지도, 먹고 살기도 모두 힘들다보니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며 신자유주의 탐욕을 내면화하여 삶의 여유, 우정과 의리, 인간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윤리들을 시나브로 상실한 채 서로 악마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지요.
맹문재 : 선배님의 진단에 저도 공감합니다. 총체적인 난국의 원인이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네요.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영향을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도흠 : 우선 서양에서 300년 동안 이루어진 산업화 및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어요. 그러다보니 공동체는 해체되고 전통의 가치를 잃어버렸지요. 대다수 대중들이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물신주의의 포로가 되었어요. 박정희 정권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보한 채 온 국민을 경제 발전과 수출 목표 달성에 동원하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재벌을 비호하는 개발 독재 체제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에 저항하면 빨갱이로 몰아 구속하고 고문하고, 때로는 처형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는 제대로 조직화를 할 수 없었고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도 형성될 수 없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성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설립되어 노동자가 세력화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보수 양당 체제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노동 진영 자체 내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다수 대중들이 분단 모순에서 비롯된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였지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 정권임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노동자를 탄압하였지요. 그럼에도 대다수 대중들은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를 개혁으로 착시하여 지지하였고, 세계 최고의 근면성을 가진 우리 국민은 자신이 성실하게 일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몰입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극단으로 밀고 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미국의 상황을 넘어섰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종합 소득은 상위 10%가 절반이 넘는 55.5%를 차지하고 있어요. 일종의 불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 소득의 격차는 더욱 커서, 상위 10%가 배당 소득의 93.5%, 이자 소득의 90.6%를 가져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자유주의 모순에 대해 별로 비판적이지도, 저항적이지도 않습니다. 언론의 조작과 잘못된 교육의 탓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대중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나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는 폭력 행위로 인식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자본-국가와 관료-대형 교회-보수 언론-어용학자로 이루어진 지배 블록의 권력은 극대화 되어 있어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은 채 국민들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와 시민 진영은 너무도 미약합니다.
맹문재 : 저도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분단 모순에서 시작된다고 봐요. 아직도 종북 논리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종북 논리는 8․15해방 뒤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방어 내지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권력자들은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왔지요.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국민의 창의력과 비판 정신을 저해하는 종북 논리는 하루 빨리 극복해야겠지요. 왜 우리 사회에서는 종북 논리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요?
이도흠 : 종북 논리는 분명히 허위 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인데 거기에 구체적인 경험이 더해지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과 주변국은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이를 통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지배 질서를 강화하였고, 이 ‘적대적 공존 체제’ 속에서 남한과 북한은 수시로 국지전을 단행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후에도 남한과 북한 사이에 국지전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거기서 비롯된 긴장감, 공포, 불안이 대중의 의식을 자극하고 마비시켜온 것이지요. 이 때문에 기득권층은 정당성의 위기를 겪을 때나 중요한 선거 때마나 이를 결집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해온 것입니다. 제3계 국가는 민족 모순이나 계급 모순이 사회 모순의 핵심을 형성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분단 모순이 사회 모순의 핵심입니다.
맹문재 : 그러면 분단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도흠 : 통일이 되기까지는 분단 모순이 완전히 극복되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운동을 전개해야겠지요.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선거 개혁을 하여 진보 정당이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노조 조직률을 20%대 이상으로 높여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참여민주주의란 국민이 직접 의사 및 정책 결정,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 기득권층의 독점을 깨는 것입니다. 언론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대중들도 각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수립해야 합니다. 남북한이 서로 침략하지 않은 채 공존공영하는 평화협정을 맺고 남북한 철도를 연결하고 개성공단을 활성화하고 남한의 21배에 달하는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맹문재 : 저는 분단 모순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갈브레이드가 『대중은 왜 빈곤한가』에서도 제시했듯이 교육을 들을까 해요. 지금까지의 교육은 정치 영역을 배제하고 순응형 인간을 키워왔지요. 좀 더 교육 분야에 있는 분들이 나서서 역사와 정치 현실을 교과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판결한 데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도흠 : 교육의 방향이 아주 중요하지요. 저는 페다고지식 교육에 공감과 협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다시 말해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더하여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주체로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 예수님의 박애, 맹자의 측은지심, 모두 타자의 고통을 내 아픔처럼 공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정의감이나 용기도 공감에서 나온다고 봐요. 인간은 생명체의 하나로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생존 기계’이지만, 사회를 형성하고 농경생활을 하면서 이타적 협력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타적 협력의 바탕이 바로 공감입니다.
맹문재 : 이왕에 교육 문제를 말씀해주셨으니 요즘 활동하고 계신 ‘지식순환협동 대안 대학’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지금 이 대학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신데, 설립된 배경이나 과정 등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도흠 : 제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교협(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과 문화개혁 연대의 김세균, 강내희, 심광현, 이명원, 강정석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어요. 지금의 대학은 진리 탐구의 실천 도량에서 기업 연수원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틀에서는 교육 개혁 운동이 한계가 있어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체제 바깥에 학교를 설립한 것입니다. 공감 협력교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협동조합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교육 양식입니다. 여러 지식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원활하게 순환하며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협력교육으로 협력사회를 구성하려는 것입니다. 교육 철학은 공감과 협력교육입니다. 학생들을 공감하고 협력하는 주체로 육성하는 것입니다.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통섭한 강좌 프로그램, 자기 탐구, 예술 창작, 문화 기획 등 워크숍 프로그램이 있는데, 2년 8학기제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강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처음 입학생 20여명을 받아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학기마다 신입생을 받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방식이어어서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강의를 하거나 들을 수 있어요. 따라서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없지요. 졸업하면 시민 활동가든 예술가든 각자의 영역에서 주인이 되어 활동하고 타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이 나라를 서로 협력하는 사회로 만드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맹문재 : 새로운 대안 대학이어서 기대가 큽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봐요. 저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생각해볼게요.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국민 모임 신당에 대한 말씀을 들어봐야 하겠네요. 공동위원장을 맡으시기도 했지요. 우리나라에 새로운 정당이 생기는 것인데, 신당을 만들게 된 계기와 현재의 추진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도흠 : 지금의 여당은 자본과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며, 야당은 분열과 무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정연(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봐요. 야당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정체성과 리더십을 상실한 채 여당의 2중대로 전락한 것이지요. 야당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에 국민들은 정리해고와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양극화, 실업 등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김세균, 송주명 교수, 양기환 대표, 권영국 변호사 등과 함께 종교계,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인사를 중심으로 567선언을 조직하여 세월호 투쟁을 하다가, 여당은 물론 야당에 분노하여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우리가 당을 만들어 진정으로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뜻으로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모임은 반신자유주의 가치를 분명히 하고 모두를 위한 빵과 복지, 이윤과 효율보다 생명과 자연, 노동과 인권을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평화롭고 안전한 대한민국, 곧 정의평화생태복지국가를 건설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무역량보다 이 땅의 강과 숲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GDP보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얼마나 미소를 짓고 있는지, 국부를 늘리기보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기업 이윤을 늘리기보다 얼마나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는지,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기보다 못난 놈들이 얼마나 자신의 숨은 능력을 드러내는지, 내기하고 겨루기보다 얼마나 함께 모여 신나게 마당에서 노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경영하고 정책을 구사하여야 합니다.
맹문재 : 역사적으로 제3당이 성공한 예가 없어 응원을 하면서도 걱정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정당 출현을 비롯해 정치 운동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통합진보당 문제를 얘기해보고 싶네요.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을 헌법재판소에서 해산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기본을 훼손한 것으로 정치적 보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이도흠 : 이 판결은 헌법재판소 스스로 자기부정을 한 것이자 박근혜 정권이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을 해산할 정도로 독재정권임을 공포한 것이지요. 헌재와 통합진보당이 모두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소산이기에 이 판결은 시민과 학생, 노동자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1987년 체제가 종언하였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당연히 시민사회가 연대하고 투쟁하여 민주주의를 되찾아야겠지요. 하지만 진보진영 또한 수십 년을 투쟁하여 얻은 민주주의를 왜 그리 쉽게 내주었는가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취한 것은 부르조아지만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였습니다. 민주화 정권은 노동자 및 진보진영에 반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고, 진보정당조차 노동자 조직과 유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진보정당은 노동자 조직과 지역 조직과 결합하고, 대의민주제에 참여민주제와 숙의민주제를 종합하여야 합니다.
맹문재 :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우수문학도서 선정 기준으로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문학을 제시해 논란이 되고 있지요. 우수문학도서 선정 과정에도 말이 많고요. 전태일청소년문학상에 수여되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도 취소되었어요. 20년이 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독립성이 훼손되어 시끄러웠지요.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당황스럽습니다. 문화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도흠 : 예술이 권력에 오염되면 선전 도구로 전락합니다. 예술은 상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떠나 근본적으로 ‘부정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 부정성을 정권이 권력의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평가하고 통제하는 것은 예술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정권은 지원은 하되 간섭과 통제를 하지 않아야 됩니다. 신명나는 마당을 열어주어야지요. 지금의 정권은 파시즘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항해서 극복해야 합니다.
맹문재 : 잘 들었습니다. 선배님께서 현재 평론 활동 내지 저서 활동하는 것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도흠 :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인데, 2000년에 조계종 기관지인 『법회와 설법』에 연재했던 것을 다듬고 있어요. 이것이 끝나면 그동안 ‘차이와 혼성성의 근대성’이라는 제 나름대로 세운 이론에 따라 18~19세기의 근대성에 대해 분석한 책, 『한국 문학, 차이와 혼성성의 근대성』을 엮어내려 합니다.
맹문재 : 이왕에 책 얘기가 나왔으니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전 작품을 한 권 추천해주세요.
이도흠 : 『삼국유사』를 권하고 싶네요. 우리 민족의 원형을 담고 있는 책이지요. 중국 문화가 본격적으로 침투되기 전, 우리 민족 고유의 사고, 의식과 무의식, 세계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대응 양식 등이 잘 담긴 책이지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이의 정치’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적대자는 끝까지 적대자이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적대자가 조력자로 변하지요. 우리 민족은 화해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성이 강해요. 조선조나 일제 강점기에도 양반층의 권력이 미치는 향촌보다 더 하부에 두레공동체가 있었고, 여기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며 상부상조하였습니다. 조선조나 일제 때 두레공동체는 저항의 구심점 구실을 했습니다. 산업화가 극단적으로 추진된 서울 한복판에도 골목 문화가 남아 있을 정도로, 아이엠에프(IMF) 때 장롱 속의 금을 바칠 정도로 우리는 공동체 지향성이 강해요. 신자유주의 체제로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다고 봐요. 좋은 정치만 시행되면 이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을과 공장과 학교를 이런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좋은 정치겠지요.
맹문재 : 선배님의 글쓰기며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쟁’으로 보이는데 설명을 부탁드릴까요?
이도흠 : 여덟 가지의 패러다임 중에서 한 가지만 제시하면, 불일불이(不一不二)입니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에서 불일불이를 씨와 열매의 비유로 설명했어요. 씨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나 열매와의 ‘차이’를 통하여 의미를 갖지요. 그래서 씨는 씨이고, 열매는 열매이지요. 씨는 씨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고 씨로서 작용하고 있고, 열매 또한 열매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고 열매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씨와 열매는 하나가 아니지요. 즉 불일(不一)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씨로 말미암아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맺혀 씨를 내지요. 씨가 씨로서 작용하면 싹이 나고 꽃이 펴서 열매를 맺고, 열매가 열매로 작용하면 씨를 만들지요. 국광 씨에서는 국광사과를 맺고 홍옥 씨에서는 홍옥사과가 나오듯 씨의 유전자가 열매의 거의 모든 성질을 결정하지요. 열매는 또한 자신의 유전자를 씨에 남기고요. 그러니 씨와 열매는 둘이 아니지요. 즉 불이(不二)인 것이지요. 씨는 열매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공(空)하고, 열매 또한 씨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공하지요. 그렇지만 씨가 죽어 싹이 돋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자라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씨를 내지요. 씨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면 썩어 없어지지만, 씨가 자신을 공하다고 여기고 흙에 던지면 싹과 잎과 열매로 변하지요. 자신을 공하다고 하여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에요. 공(空)이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전제가 되는 것이지요.
화쟁의 패러다임으로 최치원이 홍수를 막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1,100여 년 전 신라 진성왕(887년~896년) 때 최치원은 함양의 태수로 부임하였는데, 함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이 자주 홍수가 났어요. 최치원은 홍수를 막기 위하여 둑을 쌓는 대신 숲을 조성하고 숲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게 하였어요. 일제 강점기 때 벌채를 하여 하림(下林)은 사라지고 상림(上林)만 남았으나 지금도 2만여 그루의 수목이 원시림과 같은 숲을 이루고 있어요. 서양의 이항대립 철학이 댐을 쌓아 물과 생명을 죽이는 원리를 이루었다면 화쟁의 불일불이는 그 반대이지요. 씨와 열매의 관계처럼 물은 자신을 소멸시켜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흙 속에 구멍을 뚫어 물을 품은 것이지요. 최치원은 이런 패러다임으로 1천여 년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흐르게 하였지요.
인간과 자연이 씨와 열매처럼 자신을 소멸시켜 상대방을 이루려 하는 원리에 따라 사회와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가치관을 혁신한다면, 인간은 함양의 상림처럼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겠지요. 이런 패러다임으로 산업화나 근대화를 추구했다면 환경 파괴가 없고 자연의 순환이 가능한 발전을 이루었겠지요. 지금 한국 사회는 남과 북, 보수와 진보, 호남과 영남, 산업사회 세대와 디지털 세대 등으로 갈등이 첨예합니다. 화쟁은 양자의 다툼[諍]과 그 원인을 직시하면서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양자의 상호의존성을 갈파하여 하나로 아우르는[和] 것입니다. 남북의 통일, 보수와 진보 및 호남과 영남이 화합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화쟁입니다.
맹문재 : 곧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됩니다.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 그동안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성도 성찰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 모든 원인과 책임 그리고 대책을 논의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선배님의 말씀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국민모임 신당 운동은 물론이고 저서 활동이 잘 되길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맑시즘의 종합』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신화/탈신화와 우리』, 번역서로 틱낫한 스님의 『엄마(A Rose For Your Mother)』(아름다운 인연, 2009)가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상임 의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국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이다.
맹문재 :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학교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