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그제서야'에 대해 그동안 국립국어원이 '이제야/그제야'가 옳으며, '이제서야/그제서야'는 '안됨'을 고수했었는데, 오늘 국어원 묻고답하기를 검색했더니 과거의 논지를 뭉개고 '가능하다'는 쪽으로 새로이 유권해석을 내렸군요. 반가운 현상입니다. 우선 국어원 새 답변을 옮기고, 그 아래에 제가 옛날에 국어원에 질의한 것과, 당시 국어원이 답변한 내용을 싣습니다.
1. 국어원의 새로운 해석(2004년 1월 작성)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에서야'라는 조사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연세한국어사전>에는 "-가 되어 비로소"의 뜻을 나타내는 조사로 '에서야'(예: 한참 뒤에서야 나는 겨우 물었다./서경은 그 무렵에서야 깊은 잠이 들었다./좋이 두 시간 너머나 지나지 않았을까 느껴진 때에서야 어머니는 괭이를 내려놓으면서 희준의 도움을 청했다.)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에서야'는 '에야로 바꾸어 쓸 수가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면 우선 "그때(에)서야/그때(에)야" 모두 가능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제, 이제"는 각각 역사적으로 "그+적+의(=오늘날의 에), 이+적+의"로 분석이 되는 말로서 그 자체에 '에'가 담겨 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제에야/*그제에서야, *이제에야/*이제에서야"의 꼴로 쓰이지 않고 언제나 '에'가 생략된 채로, 즉 "그제야/그제서야, 이제야/이제서야"의 꼴로만 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때'를 가리키는 '그제'를 옛말로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로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그제야'를 현대어로 인정하여 표제어로 올린 이상 '그제서야'도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정리하면, 조사 '에서야'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그제서야, 그때서야" 모두 가능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이 둘의 의미는 서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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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그리가 2000년 8월께 국어원에 질문했던 내용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십니다.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고 의견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전을 보니 '이제서야' '그제서야'는 방언이라 틀리고, '이제야' '그제야'로 해야 한다고 되어 있더군요.
표제어로 오른 '서'를 보아도 '이제서야'로 쓰이는 용례는 없으니 당연히 틀린 것이겠지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뿐이겠지만, 한가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제서야' '그제서야'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거든요. 그걸 '이제야' '그제야'라고 하면 뭔가 어색하기도 합니다.(물론 개인생각이겠지만)
<첫째 이유>
비슷한 용례로 '그때서야'도 있습니다. 이 단어도 웹에서 검색해보면 많거든요. 그런데 '서'를 빼고 '그때야'를 검색하면 안나옵니다.
<둘째 이유>
'이제야'의 사전 뜻풀이르를 보면 한결같이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르러서야'의 '서'는 왜 썼는지요. '이르러야'가 낫지 않은가요.
<논지>
1. 저는 '서'가 방언에 쓰이는 게 아니라 분명 표준 우리말에 첨가되는 보조사라고 봅니다. 시간을 뜻하는 부사어 뒤에 '서'나 '서야'의 꼴로 쓰인단 말이지요.
예를 들면 '그는 그제서 빙그레 웃었다'가 가능합니다. 이 문장을 '그는 그제 빙그레 웃었다'로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제야'로 해도 되겠지요.
2. '이르러서야' '돼서야' '가서야' 등의 '서야'는 "일정한 기간(시간, 시점)이 지나고 난 뒤에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서야'는 용언 뒤에 붙고 '이제야' 는 부사어 뒤에 붙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요. 아무튼 '서야'는 표제어로 올릴 만하다고 봅니다.
<첨언1> 사전 표제어에는 '야'도 위의 내용으로 된 용례를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야'의 용법도 표제어에 넣어야 할 것같습니다.
<첨언2> 우리 사전 표제어는 편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애매하면 '방언'으로 처리하거나 비슷한 단어로 가로고 합니다. 그 중 문제가 되는 예들을 몇가지 적어보죠. 이번 국어연구원 사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 '연신'은 '연방'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연신 눈물을 훔쳤다"는 "연방 눈물을 훔쳤다"로 써야 한다는 지침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글쟁이가 아닐 겁니다. '연신'에는 '쉬지않고 계속'이라는 속뜻이 담겨있는데 '연방'은 '잇따라 몇번 그렇게 하지만 조금 지나 그만둘수도 있음'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네 일상의 표현을 보면 '연신'과 '연방'은 1대 1로 교환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연신'이 사투리라면 차라리 '계속'이나 '쉴새없이'라는 말을 쓰지 '연방'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습니다.
나. '지리하다'는 '지루하다'로 가라고 했습니다. '지리하다'가 사투리일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이를 쓸 때는 '끊임없이 계속됨'이라는 뜻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지루하다'는 무슨 속뜻을 가집니까. 사전 풀이를 보면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계속되어 싫증이 나고 따분하다'입니다. '지리한 장마'를 '지루한 장마'라고 고쳐보세요. 장마가 싫증나는 대상인가요. 아니면 따분한 대상인가요. 자연현상에 대해 싫증나고 따분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을 보면 이런 예가 한두 군데 보이는 게 아닙니다. 한번쯤 관심을 기울여 보시고, 연구원(院)의 공식적인 답변이 아니면 연구원(員)의 사견이라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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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에 대한 국어원의 당시 답변
1. '그제서야, 이제서야'는 비표준어입니다. 자주 '그제서야, 이제서야'는 명사 '그제, 이제'에 조사 '에서'가 줄어든 '서'가 붙고, 여기에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야'가 붙은 것으로 생각하여 어법적으로 틀리지 않은 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제, 이제'에는 조사 '에서'가 준 '서'가 붙을 수 없습니다. 조사 '에서'가 '서'로 줄어드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한정됩니다.
에서: (1) 앞말이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처소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예) 우리는 아침에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 우리는 아침에 도서관서 만나기로 하였다. (○)
(2) 앞말이 출발점의 뜻을 갖는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예) 서울에서 몇 시에 출발할 예정이냐?
→ 서울서 몇 시에 출발할 예정이냐? (○)
(3) 앞말이 근거의 뜻을 갖는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예) 고마운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고마운 마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4) 앞말이 비교의 기준이 되는 점의 뜻을 갖는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예) 이에서 어찌 더 나쁠 수가 있는가?
→ 이서 어찌 더 나쁠 수가 있는가? (×)
(5) 앞말이 주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예) 학교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학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위에서 보는 것처럼 '에서'는 앞말이 처소의 부사어이거나 출발점의 뜻을 가질 경우에만 '서'로 줄어들 수 있고, 근거나 비교의 기준, 주어임을 나타낼 때는 '서'로 줄어들 수 없습니다. '그제서야, 이제서야'는 처소나 출발점을 나타내는 경우가 아니므로, '에서'가 준 '서'가 쓰일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그제서야, 이제서야'나 '그제서, 이제서'는 '서'의 올바른 쓰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그제'는 '그저께'의 준말로, '그제서야'에서 뜻하는 '바로 그때'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제, 이제'에 '서, 서야'가 결합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그제야, 이제야'의 방언형이나 잘못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연신'은 '연방'의 잘못입니다. '연신'은 '쉬지 않고 계속'을 뜻하고, '연방'은 '잇따라 몇 번 그렇게 하지만 조금 지나서 그만둘 수도 있음'을 뜻하는 차이가 있다고 느낄 수는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 차이를 인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많은 용례들에서도 '연방'과 '연신'이 뜻에 뚜렷한 차이가 없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지리하다'는 '지루하다'의 잘못입니다. 표준어 규정 제11항에서 '지루하다'를 표준어로 삼고, '지리하다'는 버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원래 '주책이다, 지루하다'의 '주책'이나 '지루'는 '주착(主着), 지리(支離)'라는 원어를 가진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주책'과 '지루'로 그 음이 변하여 널리 쓰이므로, '主着'과 '支離'의 어원을 버리고 이를 표준어로 삼도록 한 것입니다.
질의하신 내용 중에 자연 현상에 대해서는 '싫증나고 따분할 수 없다'라고 하셨는데, '밤은 무덥고 지루했다, 그해 여름은 무더위가 계속되어 지루했다'와 같은 쓰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용례들을 검토한 바로는 '지리하다'와 '지루하다'의 뜻과 쓰임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첫댓글국어원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것이 연세한국어사전을 근거로 하고 있군요.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이 한국어의 규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힌 거 아닌지요.국어원에 계신 분들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여러 가지 한국어 사전 가운데 하나라고 말이죠.
첫댓글 국어원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것이 연세한국어사전을 근거로 하고 있군요.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이 한국어의 규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힌 거 아닌지요.국어원에 계신 분들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여러 가지 한국어 사전 가운데 하나라고 말이죠.
한데 현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면 잘못된 것이거나 권위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정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그렇지 않아도 죽어가는 사전시장에 다양한 사전들이 나오게 하는 길도 결과적으로 막아버리고 만 꼴이 됐습니다.
다른 사전들의 풀이나 표제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같이 올라 있는 것이 아니면 인정하기를 매우 꺼리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만 자기네 홈페이지에서 서비스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전을 서비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어원은 국어발전을 위해 부단히 홍보하고 힘써야지요.표준국어대사전이 국어 어휘나 문법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면서 권위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말그리님의 2000년에 질문에 대한 국어원의 답은 그저 표준어규정만 읊조리고 있군요.
현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이(서울의 교양 있어 보이는) 쓰는 말을 규정만 가지고 다른 말을 하고 있네요.표준어 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표준어 규정.정부가 내놓은 표준어 규정에 있는 목록들을 신문이나
기타 출판물들이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는 각 출판물의 맘일 겁니다. 거기에 없거나 많이 벗어나 있다고 쓰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좀 있을 테니까요.'이제서야' '그제서야'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맘놓고 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