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터는 로마에 있는 그레고리 대학에서 칼 라너의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하고, 이어서 가톨릭 신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독일 마부르크
대학 개신교신학과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1985년에 쓴 <<다른 이름으로는?>>(No other Name?)이라는 책은 지금 이
방면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고 변선환 박사에 의해 한국 말로도 변역되어 출판되었다.
닛터는 최근 연거푸 두 권의 책을 내었는데, <<하나의 지구 여러가지 종교>>(One Earth Many Religious, 1995)와 <<예수와 다른
이름들>>(Jesus and Other Names, 1996)이라는 책이다. 이 두 책에 그의 '자전적 서문'이 들어 있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선교관이 어떻게 변해왔는가 한 번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닛터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1958년 '거룩한 말씀 수도회'(Societas Verbi Divini, SVD)에 들어간다. 선교사가 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염려와 사랑'
이라는 것이 친구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에게 베푸는 그런 형태였다는 것이다.
그 신학교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하는데, 그때마다 "죄악의 어둠과 이교주의의 밤이 말씀의 빛과 은혜의 성령 앞에서 사라지게
하소서."라는 말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만' 말씀과 성령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죄악과 이교주의의 어둠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이고 '그들'은 앓고 있는 환자였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닛터가 신학생으로 있을 당시 세계 각지에 나갔던 SVD 선교사들이 학교에 와서 보여주는 환등사진을
보면서 '이들이 신학교에서 매일 하던 기도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구나.'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이교도의 '어둠'이나 '죄악' 등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힌두교의 아름다움, 불교 예술의 신비스러움과 참선법의 심오함 등 좋은
면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조지 프록쉬 신부님이 지도한 인도 무용단의 무용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런 감명
때문에 심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신학생 모두가 선교 대상국 중 한 나라를 택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 등을 연구하여 보고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닛터는 일본을 택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일본 선불교(禪佛敎)의 가르침, 거기서 말하는 수련법이나 깨침의 경험 등은
자기가 지금껏 가지고 있던 종교라는 개념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정말 신기하고 신나는 것이었다.
1962년 닛터가 신학대학을 졸업할 당시 막연하나마 그는 기독교만 빛이고 다른 모든 종교는 어둠이라는 종래까지의 배타주의적
고정관념이 뭔가 잘못된 것이로구나 하는 심증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막연하던 생각이 로마로 가서 공부하게 되면서
하나의 확고부동한 사실로 바뀌게 된다.
닛터는 그 해 10월에 시작된 제2회 바티칸 공의회 시작과 거의 동시에 로마에 있는 교황 그레고리 대학에 도착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당시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 교회 내에 파격적인 대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특히 '타종교에 대한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이란 문서에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음을 천명했다. 이것은 닛터를 감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전환점을 바로 그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었던 셈이다.
바티칸 공의회가 계속하고 있을 때 닛터는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에 대해서도 배우고 또 직접 그에게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알려진 것처럼 라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기초를 놓은 사람이다. 이 독일 신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965년 그레고리 대학의 객원교수로 초빙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기독교인은 이웃 종교를 '적합한'
(legitimate) '구원의 길'로 여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여겨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닛터는 숨길이 탁 트이는
듯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자기가 지금껏 기독교 이외의 이웃 종교에서 보아오던 사실과도 일치하는 것이요,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고
주장하던 기독교의 억지와 교만을 털어 버리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