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전국소월백일장 고등부 장원(운문)
나
수명고등학교 2학년 3반
홍 이정
꿈을 적으라는 선생님
친구들은 숫자에 맞춰
꿈을 꾼다
나는,
현실과 낭만 사이에 서 있다
곧, 저 밖으로 홀로 날아야한다
두려움이 날개를 조금씩
갉아 먹는다
어린 시절의 동화는 쉬웠는데
키가 커지면서
보이는 더 넓은 세상
들뜸만으로 뜨지 못한 뭇별
나는 날 수 있을까?
시간은 성장판을
자꾸만 자극하는데,
나는 꿈 한 줄이 어렵다
현실과 낭만 사이의 고뇌
그 끝자락에
결국,
나는 낭만을 적는다
한 번, 날아보자
‘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2012 전국소월백일장 고등부 장원 (산문)
스마트폰
안양예술고등학교
3-7반 정지수
엄마는 날지 못하는 새였다.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반쪽이 새처럼 옆에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의지했다.
엄마가 의지한 사람이 외할머니일 때도 아빠일 때도 , 나일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나 생각을 철저히 지운 채로 다른 이의 의견을 따르는 것에는 변함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리 남편한테 들어보고요.”였다. 엄마는 내 손톱에 가시가 박혀도 아빠부터 찾았다. 택배 아저씨가 와서 수취인 서명을 해달라고 해도, 동네 아줌마들이 같이 놀러 가자고 해도 엄마는 “우리 남편한테 물어봐야 해요.”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만큼 당연히 휴대폰 단축번호 1번도 아빠였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날마다 수십 번도 넘게 단축번호 1번을 눌러댔다.
지난해, 아빠가 부산 출장을 간 그날도 엄마는 수없이 단축번호 1번을 누르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시간 후,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번호였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경찰이었다. 그러고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빨리 병원을 와달라는 말에 엄마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안절부절 못했다.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가 이제 더 이상 엄마 곁에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왔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도 엄마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단축번호 1번을 꾹 눌렀을 때. 없는 번호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아무렇게나 귓속을 파고들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친척들은 자꾸만 가라앉는 엄마를 보며 시간이 약이라고 했지만, 그 말이 엄마의 경우에는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꼬박 두 계절을 보내고 나서 엄마는 이제 나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아빠 대신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했고, 날마다 현관문을 바라보며 나의 귀가를 기다렸다. 날마다 축 늘어진 엄마를 보며 처음에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더 아이 같아졌고 내 짜증은 차올랐다. 어쩌면 가장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나인 줄도 모르는데, 엄마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의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집에 가면 어린아이 같은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가기 싫었다.
엄마는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나를 보며 또 우는 소리를 했다. 지긋지긋했다.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자꾸만 더 밖으로 배돌았다.
그러던 엄마가 달라졌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산다는 숙희 이모가 다녀간 뒤였다. 밤마다 내가 들어올 대문을 바라보는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휴대폰을 보면서 가끔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빙긋빙긋 웃기도 했다. 스마트 폰으로 바꾼 후에 생긴 변화였다. 나는 기계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던 엄마가 뭘 하는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아빠가 보고 싶다며 눈물바람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고개를 드는 궁금증을 참을 수는 없었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엄마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싱글 맘을 위한 카페’ 창이 활짝 열려있었다. 엄마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수다 공간 같았다. 엄마의 닉네임이 비익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비익조. 암컷과 수컷이 각각 눈과 날개가 하나뿐이어서 혼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아빠를 붙잡아야 비로소 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쪽 날개를 잃은 엄마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방안에만 갇혀 안으로 파고들었다.
카페 게시판의 최신 글에는 엄마의 글이 있었다. 나는 엄마의 글 제목을 클릭했다. 고민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간지 반년이 훌쩍 지났어요. 앞으로 어떡해야할 지 막막합니다. 혼자 뭘 하고 싶어도 두려움이 앞섭니다. 아이도 저에게 실망을 많이 했겠죠? 자신 없는 제가 너무 싫습니다‘
여태까지 엄마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청승맞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습한 엄마의 눈을 보며 짜증을 내는 사이에도 엄마는 스스로 어떡하든 날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순간,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가 아직까지도 날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아무런 버팀목이 되지못한 나 때문일까, 생각도 해보았다. 조금이나마 엄마 날개에 실린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다.
그날 밤 엄마 몰래 카페에 가입했다. 엄마의 글을 클릭했다. 그러고는 엄마의 글에 댓글을 썼다.
‘힘내셔요. 아마 아이는 항상 비익조님을 응원하고 있을 거예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댓글을 쓰고 한참이나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내 댓글 아래에는 아직 아무런 답도 달리지 않았다.
한참 뒤 엄마가 나를 불렀다.
“이거 프로필 메시지 어떻게 바꿔?”
채팅 앱(application)의 프로필 메시지를 바꾸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엄마는 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더니 마지막으로 확인 버튼을 눌렀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 옆에는 ‘혼자 나는 법’이라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혼자 날 수 없는 새가 아니었다. 아빠라는 날개가 없어도 괜찮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좋고 김순화라는 이름으로도 굳건히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 양 날개를 꿈틀거리며 훨훨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중이다. 엄마의 힘찬 날갯짓을 이제는 내가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