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발전하는 변형의 관계에서 人은 三이다.
六을 낳는 大는 五다.
이 五는 三에 하늘과 땅을 잇기 위한 사람의 결연한 의지로 인해 하늘과 당이 이어졌다는 뜻으로 상하상통의 뜻을 가진 丨을 가운데에 그려진 王자에 더하여 그 王자 중에서 사람의 의지인 가운데 一과 땅인 맨 아래 一을 다시 곤(丨)으로 연결하여 사람의 마음이 천신의 성품으로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王이 되어 성품이 광명으로 통하는 성통공완을 이루면 타인에게 드러나는 모양이 太인데 이는 타인에게 보이기를 그 변화받은 성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 타인에게 보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보인다는 뜻에서 그 모양을 타인들이 욕을 할까 칭찬을 할까?
그 王자 다음이 역시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칭찬이 있는 자신을 갈며 살아가는 빛날 玉자가 된다.
이는 근거도 없이 하잘것 없는 육신의 문제에 목숨 걸고 어깨에 마침표를 찍은 개(犬)로 사는 것과 비견된다.
그 玉 으로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타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듣길 원하는 사상적 주인이 된다.
主 자이다.
그 다음은 하늘 天위에 영혼을 위한 사상의 씨 생명의 씨를 나누는 지아비 夫가 생겨난다.
지아비의 의미와 결합되는 게 마음에 품고 타인을 새사람으로 낳게 되는 生자이다.
이런 한문구성의 이치나 역사를 알면 ~~
선비 사(士)자는 흙 토(土)자와 함께 왕(王)옥(玉)주(主)생(生)으로 발전하는 삼(三)의 또 다른 변형문자이다. 이 두 문자는 같은 뜻을 지니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목적이 있다.
흙 토(土)자는 땅 지(地)자의 뜻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천지대(天之對)~~~! ‘하늘을 대하고 하늘로 나아가는 땅’ 그 땅은 하늘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하늘이 없는 땅이었다.
이는 상지대(꼭대기를 대하고 대답하며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下의 모습이다.
그렇게 하늘 향해 두팔 벌리고 변화되어야 할 성품이라는 땅에 뿌리박고 하늘로 올라가는 중인 그 땅의 목적은 하늘이라 하늘과 연결된 다리는 있어야한다.
그래서 천지인(天地人) 이 셋(三)이 하나로 결합된 임금 왕(王)자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맨 위의 일(一)자만 빼면 하늘과 하나 되고 싶어 하는 땅이 될 수 있다.
천지인(天地人) 중 땅을 나타나내는 맨 아래의 일(一)자가 가장 긴 이 흙 토(土)자는 흙이 주어(主語)이다.
그러나 선비 사(士)자는 가운데 사람의 의지부분을 길게 늘여 그 목적이 하늘이 되고 싶지만 그 주어(主語)가 흙인 아닌 사람(人)이 되는 것이다. 흙이 성품이 중심이라면 선비는 사람의 의지가 뜻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땅인 성품변화를 목적하는 의지중심의 문자 선비 士
이는 중용의 중자나 겨우 알며 자기도 다모르는 중용을 외친 공자 추종의 소중화 중공파들 유학자가 주장하는 선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을~~
이제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버리고 유럽식의 자유주의를 넘는 인류의 눈에는 유토피아적 망상이라 생각했던 대한의 참 인문학에 귀와 눈을 두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