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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산책 스크랩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
해암 추천 0 조회 149 18.10.24 0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


朱 基 平*


1. 시작하며
2. 韓・中 悼亡詩의 역대 作詩현황
3.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
   1)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
   2) 長篇化와 連作化
   3) 遺品의 媒介化

   4) 幻影과 幻聽의 차용
4. 韓・中 悼亡詩의 상징체계
   1) 죽음의 形象
   2) 亡者와 作者의 形象
   3) 저승의 形象
5. 맺으며



국 문 초 록


悼亡詩는 哀悼詩의 한 유형으로 아내를 애도의 대상으로 한 시이다. 중국의 경우 西晉代 潘岳의 <悼亡詩>가 가장 최초의 작품인데, 이후 애도시의 주된 제재로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지어져왔다. 오랜 한문화의 경험
을 지니고 있는 우리 또한 역대 많은 시문집들 속에 悼亡詩가 산재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한국과 중국의 도망시를 作詩현황과 서술방식 및 상징체계를 중심으로 상호간의 공통성과 차별성
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悼亡詩의 역대 作詩현황에 있어, 중국의 경우 盛唐 이전까지 거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였고, 중당 이후 사회의 변화에 따른 문인들의 애정관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활발한 창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송대를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비록 지속적으로 쓰여지기는 하였으나 전시기적으로 보아 悼亡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나 창작 상황의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문집에서 많은 悼亡詩들이 산견되며 중국과는 달리 하나의 관습적 양식이자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悼亡詩의 서술방식은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과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 ‘幻影과 幻聽의 차용’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았는데, 이를 통해 韓中 悼亡詩들이 기본적으로 비탄의 정서를 위주로 하며 여기에 亡者에
대한 稱揚과 鎭魂을 결합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일관된 비탄의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칭양과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 우리와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아울러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와 幻影과 幻聽의 차용은 다른 哀悼詩들에 비해 悼亡詩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서, 韓中 도망시의 공통된 서술방식이었음을 알수 있었다.


悼亡詩의 상징체계는 ‘죽음의 形象’, ‘亡者와 作者의 形象’, ‘저승의 形象’ 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으며, 이를 통해 韓中 悼亡詩가 서술방식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 방법이나 차용된 이미지 등에서 많은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제어
悼亡詩, 韓中悼亡詩, 潘岳, 梅堯臣, 悲嘆, 鎭魂, 稱揚, 死後世界

*서울대 중문과



1. 시작하며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亡者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는 노래와 춤, 글과 그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시에 있어 동양에서는 ‘哀悼詩’나 ‘挽詩’
또는 ‘挽歌詩’라는 형식이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엘레지(Elegy)’라는 장르가 있어왔다.1)


哀悼詩는 그 대상에 따라 悼亡詩, 哭子詩, 哭兄弟詩, 悼朋詩, 悼王詩, 悼師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나 형제 등을 애도하는 悼亡詩, 哭子詩, 哭兄弟詩들과는 달리 다른 애도시들은 亡者의 사회적 지위나 자손들
의 청탁 등으로 인해 의례적으로 지어지고 헌사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특히 挽歌詩의 형식으로 쓰여진 시들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2)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亡者에 대한 진솔한 감정보다는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슬픔과 의례적인 칭송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상징과 비유 및 古典과 典故의 인용 등과 같은 문학적 장치들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애도의 대상이 부부나 자식 등과 같은 가족일 경우 亡者에 대한 진솔한 감성이 바탕이 되는 까닭에 전편에 걸쳐 비탄의 감정이 주된 정서를 이루며, 극한의 감정으로 인해 작자의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이 정지되어 작품에 대한 의식적인 조탁이나 문학적 장치의 추구 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등의 차이를 보인다.


1) 哀悼詩와 挽歌詩는 죽음을 대상으로 하며 亡者에 대한 애도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哀悼詩가 특정인의 실제적인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노래한 것인데 비해, 挽歌詩는 이러한 감정이 喪葬禮라고 하는 의식절차와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며, 시대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하나 때로는
반드시 실제적인 ‘죽음의 상황’을 그 필요조건으로 하지도 않는다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挽歌詩는 哀悼詩의 한 유형이라 볼 수 있으며, 서양의 엘레지(Elegy)는 크게 보아 동양의 哀悼詩와 유사한 장르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拙稿, 「中國 挽歌詩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대한 一考察」(『中國文學』60집,2009.8) 참조. 그러나 哀悼詩와 挽歌詩의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논문들에서는 그 의미가 혼용되어 잘못 사용되고 있으며, 필자 또한 拙稿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中國語文學』45집, 2005.6)에서 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한 바 있다.
2) 挽歌詩는 상장례 의식상의 필요에 의해 지어지는 본질적인 특성상 상투성과 의례성, 과장성을 벗어나기 어려웠으며, 이에 대해 안대회는 挽歌詩가 남의 요청에 의해 쓰여지는 應副文字로 전락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런 애도의 문학이 아닌 허위와 조작의 의례적 문자’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안대회, 「韓國漢詩와 죽음의  문제」,『韓國漢詩硏究 3』, 태학사, 1995, 51~53면.



중국에서 시로써 죽음을 애도하는 전통은 일찍부터 있어왔다.3) 이미『詩經』의 <綠衣>나 <黃鳥>, <葛生> 등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으며, 屈原의 <九歌>나 宋玉의 <招魂>, 景差의 <大招> 또한 이것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4) 그 중 아내를 애도의 대상으로 한 것은 西晉代 潘岳(247∼300)의 <悼亡詩>가 가장 최초인데, 본래 哀悼詩의 한 유형으로서 자신과 절친한 이의 죽음을 의미하였던 悼亡詩가 潘岳 이후에는 주로 아내를 대상으로한 애도시로 그 의미가 한정되었으며,5) 애도시의 주된 제재로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지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랜 한문화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公無渡河歌>와 <祭亡妹歌> 이래로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詩歌들이 지어졌으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悼亡詩 또한 많은 역대 시문집들
속에 산재되어 전해지고 있다.6) 일찍이 최재남은『韓國 哀悼詩의 구성과 표현에 대한 연구』7)에서 각종 시문집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의 애도시를 유형별로 수집 정리하고 각각의 구성요소와 관습적 표현들을 찾아내어 이들 간의 구별된 경향성을 정치하게 밝힌 바 있다.

필자 또한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에서 中國 悼亡詩의 구성과 표현상의 특징들에 대해 고찰한 바 있는데,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와『연구』에서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한자문화권인 한국과 중국의 도망시를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함으로써 상호간의 공통성과 차별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3) 필자는 拙稿,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中國語文學』45집, 2005.6)에서 ‘중국에서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 중 현전하는 가장 최초의 작품은 漢代의 민가인 <瀣露>와 <蒿里>를 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哀悼詩와 挽歌詩와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잘못된 기술이었으며, <瀣露>와<蒿里>는 挽歌詩의 현전 最古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4) <綠衣>는 아내가 만들어 준 옷을 보고 죽은 아내를 추모하는 시이며, <葛生>은 남편의 무덤을 다녀온 아내가 집에서 홀로 남편을 그리워하는 시이다. <黃鳥>는 秦穆公이 죽었을 때 함께 殉死한 子車氏의 세 아들을 애도한 시이다.
5) 물론 후대에도 唐代 溫庭筠은 <和友人悼亡>에서 친한 歌姬를 애도하였고 白居易는 <爲薛台悼亡>에서 知人을 애도하였으며, 明末 商景蘭 또한 <悼亡>에서 남편 祁彪를 애도하는 등 悼亡의 대상을 반드시 아내로만 한정하지는 않았다.
6) 우리의 경우 ‘悼亡’은 중국과는 달리 예외 없이 모두 아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2. 韓・中 悼亡詩의 역대 作詩현황


아내의 죽음이 의미하는 커다란 충격과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中國의 경우 실제 작품에서 悼亡을 소재로 하는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제목을 통해 직접 ‘悼亡’이라 명명하고 있는 작품은 더욱 드물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唐代 이전시기까지의 悼亡詩 중 <悼亡>을 詩題로 사용하고 있는 작품은 潘岳(247∼300)의 <悼亡> 3수와 沈約(441∼513)의 <悼亡> 1수가 전부이며, 그 외 江淹(444∼505)의 <悼室人> 10수가 전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후 성당 때까지는 도망시를 남기고 있는 시인이 없으며, 중당 이후 李商隱, 孟郊, 白居易, 元稹 등 몇몇 시인들에게서만 한두 수에 걸쳐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悼亡’이라 언급하기보다는 우회적이거나 전혀 다른 제목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宋代와 元明淸代에 들어서 작가나 작품 수는 전시기보다 약간 늘기는 하였으나 전반적인 상황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8)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도망시가 그 감정의 강도와 깊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세계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하였으며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소재로만 한정되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9)


반면 역대 작시현황에 있어 우리의 경우는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悼亡詩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고려 때 명종이 아끼던 內嬖 明春의 죽음을 애도하여 <悼亡詩>를 짓고 종친으로 하여금 화답하게 하여 自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10)『연구』의 정리 결과에 따르면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문집에서 총65題 243수가 산견되고 있으며 <悼亡>이라는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 해도 총65제 중 35題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11)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경우 중국과는 달리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러한 문학양식이 하나의 관습적 양식이자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사회 또한 중국과 같은 남성 중심의 사회로서, 어느 면에 있어서는 유가적 대의명분에 보다 철저
했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며, 중국의 경우에서처럼 사회의 퇴폐화로 인한 자유롭고 솔직한 애정표현의 증가로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다만 필자는 일관된 비탄의 표출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
의 悼亡詩와는 달리 우리의 悼亡詩의 경우 ‘성리학적 死後觀에 기초한 亡者의 慰安’이나 ‘예교주의에 입각한 亡者의 稱揚’ 또한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상대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유가적 예교주의의 선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도망시의 서술방식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7)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논문, 1992.8, 이하『연구』.
8) 中國 悼亡詩의 역대 작시현황에 대해서는 拙稿, 앞의 논문, 441~442면 참조.

9) 이것의 원인으로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大男子主義’를 들 수 있는데, 중당 이후 사회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도망시의 창작이 크게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대해서는 拙稿, 앞의 논문, 442~443면 참조.
10)『高麗史』권20, 明宗 10년 6월 庚戌
11)『연구』, 14면.



3.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


悼亡詩는 그 성격상 가장 극한적인 비탄의 감정을 표출하게 되는 까닭에 작자의 본능적인 감정이나 무의식적인 반응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차적으로 해당 작자의 개별 작품들이 형식이나 체제를 막론하고 동일한
경계를 나타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나아가 작자별 성향이나 지역적인 차이를 뛰어 넘어 시상의 전개나 서술방식 등에 있어서의 공통된 표현양상을 이끌어내게 된다.

다음에서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을 ‘悲嘆, 鎭魂,稱揚의 결합’,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 ‘幻影과 幻聽의 차용’으로 나누어 비교해보기로 한다.


1)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


『연구』에서는 한국 애도시의 구성요소로 悲嘆, 鎭魂, 稱揚의 세 층위를 설정하고 이 중 한국의 悼亡詩에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요소로 비탄을 꼽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 속에서 이 세 요소 중 전적으로 어느 하나만을 취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비탄과 진혼, 혹은 비탄과 칭양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비탄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2)


이러한 경향성은 중국의 悼亡詩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몇몇 작품들에서는 悲嘆과 함께 亡者를 위안하고 달래는 鎭魂과 亡者의 생애와 인품을 높이는 稱揚의 요소가 혼재되어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들은 이와 같은 혼재보다는 ‘일관된 비분의 표출’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음에서 潘岳의 <悼亡詩> 3수 중 제1수를 보도록 한다.



<悼亡詩> 其一13)
荏苒冬春謝, 세월은 덧없이 흘러 한 해가 지나가고,
寒暑忽流易. 추위와 더위도 홀연히 변하였소.
之子歸窮泉, 당신은 황천으로 떠나버리고,
重壤永幽隔. 겹겹의 흙이 영원히 우리를 갈라놓는구려.
私懷誰剋從, 나의 생각을 이제 누가 들어줄 수 있으며,
淹留亦何益. 다 그만두고 집안에 머문들 또한 무슨 소용이 있으리.
僶俛恭朝命, 애써 조정의 명령을 받들고,
回心反初役. 마음을 돌려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리.
望廬思其人, 초막을 바라보니 그대가 생각나고,
入室想所歷. 방에 들어가니 함께 했던 일들이 떠오르는구려.
幃屛無髣髴, 휘장과 병풍에 당신과 비슷한 모습은 없지만,
翰墨有餘迹. 생전에 지었던 시문에 남은 흔적이 있다오.
流芳未及歇, 당신의 체취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遺挂猶在壁. 당신의 물건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구려.
(후략)


潘岳의 <悼亡詩>는 총3수로서 전편에 걸쳐 아내에 대한 의례적인 칭양없이,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비통한 심정을 직서적인 언어로 나타내고 있다. 보통의 연작시가 각 편마다 배경이 되는 상황이나 시점 및 정서들을 조
금씩 달리하며 쓰여지는 것에 비해, 潘岳의 이 시는 각 편이 유사한 내용 구조를 이루며 동일한 비탄의 정서를 반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만 각 편을 각각 26구, 28구, 32구로 점차 늘려감으로써 편이 거듭되어 갈수록 더욱 심화되는 작자의 감정을 나타내고 고 있다.

아울러 첫 수의 경우에는 전반부에서 입성의 ‘陌’ 韻을 사용하고 후반부에서도 입성의 ‘錫’ 韻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작자의 숨이 막히고 목이 메이는 슬픔을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梁代 沈約(441∼513)의 悼亡詩에서도 潘岳과 같은 일관된 비탄의 표출이 나타난다.


<悼往> (一作悼亡) 14)
去秋三五月, 작년 가을 8월의 보름달은
今秋還照梁. 올 가을에도 여전히 집을 비추고
今春蘭蕙草, 올 봄의 난초와 혜초는
來春復吐芳. 내년 봄에도 다시금 향기를 토해내리.
悲哉人道異, 서글프도다. 인간의 도의 이와 다름이여.
一謝永銷亡. 한 번 시들어지면 영원토록 녹아 없어져버리네.
簾屛旣毁撤, 주렴과 병풍은 이미 치워져버렸고
帷席更施張. 휘장과 자리가 다시금 펼쳐져 있네.
遊塵掩虛座, 떠다니는 먼지는 텅 빈 자리에 쌓여 있고
孤帳覆空床. 외로운 휘장은 텅 빈 침대를 가리고 있네.
萬事無不盡, 인간사 모든 일 다함이 없을 수 없으니
徒令存者傷. 그저 남아 있는 사람만 가슴 아프게 할 뿐.


이외 孟郊의 <悼亡>이나15), 韋莊의 <悼亡姬>16)와 <獨吟>17), 元稹의 <夜閑此后幷悼亡>18), 李商隱의 <房中曲>과 <正月崇讓宅> 등 많은 中國 悼亡詩들에서 이와 같이 일관된 비탄의 표출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한시 또한 기본적으로 비탄의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전편이 이것으로만 이루어진 것들도 있다.


12)『연구』, 28면.

13)『文選』권23, <哀傷>

14)『玉臺新詠』권5.
15) ‘山頭明月夜增輝, 增輝不照重泉下. 泉下雙龍無再期, 金蚕玉燕空銷化. 朝雲暮雨成古墟, 蕭蕭野竹風吹亞’

  孟郊, <悼亡>
16) ‘鳳去鸞歸不可尋, 十洲仙路彩云深. 若無少女花應老, 爲有姮娥月易沈. 竹葉豈能消積恨, 丁香空解結同心. 湘江水闊蒼梧遠, 何處相思弄舜琴’   韋莊, <悼亡姬>
17) ‘黙黙無言惻惻悲, 閑吟獨傍菊花籬. 只今已作經年別, 此后如爲幾歲期. 開篋每尋遺念物, 倚樓空綴悼亡詩. 夜來孤枕空腸斷, 窗月斜輝夢覺時’   韋莊, <獨吟>
18) ‘感極都無夢, 魂銷轉易驚. 風簾半鉤落, 秋月滿床明. 悵望臨階坐, 沈吟繞樹行. 孤琴在幽匣, 時迸斷弦聲’

   元稹, <夜閑此后幷悼亡>



<悼亡> 19)
落木空山夜有霜, 잎 진 텅 빈 산에 밤에 서리 내리고
淡鴉殘月轉荒凉. 옅은 까마귀와 조각달은 인해 황량하도다.
寒衣尙着君裁剪, 얇은 옷 여전히 입고 있나니, 그대가 만든 옷이기에
欲說君寒更斷腸. 그대에게 춥다 말하려하니 더욱 애간장만 끊어질 뿐

19) 姜溍,『朝野詩選』권2. 이하 인용된 한국 한시는『연구』에서 재인용 함.


<夫人白氏挽> 20)
靑春結髮爲夫婦, 청춘에 머리 묶어 부부가 되어
四十九年甘苦同. 49년을 기쁨과 슬픔 같이 했었네.
今來欲問君先去, 오늘 그대 먼저 간 것을 묻고자 하나
泉下何由一語通. 저승에서 어찌 한 마디 말도 통할 수 있으리.

20) 徐慶昌,『學圃軒集』.


이처럼 중국의 도망시는 대부분의 시가 비탄으로 일관하지만 唐代 元稹(779∼831)과 宋代 梅堯臣(1002∼1060)의 시에서는 전체적으로 비탄의 정서가 주를 이루면서도『연구』에서의 지적과 같이 稱揚이나 鎭魂의 면들이
덧붙여지면서 비탄의 강도를 심화 확대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元稹의 <遣悲懷>는 총3수 중 前 2수에서, 梅堯臣의 <悼亡>은 총3수 중 제3수에서 비탄의 정서와 망자에 대한 稱揚이 결합되고 있다.



<遣悲懷> 其一 21)
謝公最小偏憐女, 謝安의 가장 어리고 사랑 받던 딸과 같았던 그대,
自嫁黔婁百事乖. 黔婁와 같은 내게 시집온 뒤론 모든 게 어긋나 버렸네.
顧我無衣搜藎篋, 내 입을 옷 없음을 보고선 궤에서 옷 꺼내 주었고
泥他沽酒拔金釵. 내게 술 사오라며 금비녀를 빼 주었네.
野蔬充膳甘長藿, 채소로 배 채우고 콩잎도 달게 여기고
落葉添薪仰古槐. 낙엽으로 땔감 삼고자 늙은 나무 올려보곤 했었네.

今日俸錢過十萬, 이제 비록 급료 십만 금이 넘으나 (그대는 이미 없으니)
與君營奠復營齋. 그대에게 음식 차리고 제사지내기만 한다네.

21)『全唐詩』권404.


稱揚은 亡者의 지난 삶에 초점을 두고 그의 행적과 품성을 찬양하는 것으로, 悼亡詩에서는 鎭魂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칭양의 내용은 재능이나 인품 및 덕성 등과 관련한 개인적 칭양과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 등과 관련한 사회적 칭양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결합방식은 亡者와의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즉 지인이나 벗의 경우 개인적 칭양과 함께 사회적 칭양이 보다 우세하게 나타나는 반면, 가족 관계의
경우 대부분 개인적 칭양에 한정되어 나타난다.

悼亡詩는 개인적 칭양 중에서도 특히 亡者의 糟糠之妻적인 측면, 즉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집안을 잘 꾸려나가고 원만하고 다정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용한 元稹의 첫 번째 시에서는 처녀 적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다 자신과 혼인한 이후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내조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아내의 품성을 칭양하고 있으며, 두 번째 시에서는 집안의 노복들에 대한 온정을 잃지 않았던 자애로운 성품을 높이고 있다. 한편 아내 또한 여성인 까닭에 외모적인 아름다움을 칭양의 내용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悼亡> 其三 22)
從來有修短, 어차피 삶이야 길고 짧음이 있는 것이니
豈敢問蒼天. 어찌 하늘에 따져 묻겠는가마는
見盡人間婦, 인간 세상의 여인네들 모두 돌아보아도
無如美且賢. 그대만큼 아름답고 어진 이는 없구려.
譬令愚者壽, 어리석은 이의 수명이었다 한다면
何不假其年. 어찌 그 생을 좀 더 얻을 수 없었으리.
忍此連城寶, 차마 견딜 수 없네. 和氏의 구슬과도 같은 그대

沉埋向九泉. 묻히어 구천을 향하는 것을.

22) 梅堯臣,『宛陵先生文集』권14.


梅堯臣의 시에서는 前 두 수에서 일관된 비탄의 정서를 나타내고, 마지막 수에서 아내에 대한 칭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아름답고 어진이[美且賢]’, ‘화씨의 구슬[連城寶]’ 과 같이 亡者의 외모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悼亡詩에 있어서도 칭양의 방식과 내용은 이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悼亡> 其一, 其二 23)
三十年行一孺人, 삼십 년의 세월을 벼슬 없는 사람의 아내로
不嫌郎賤不嫌貧. 남편이 천하다 가난하다 싫어하지 않았었네.
自從蘭蕙無香後, 고운 피부에 향기 사라지고 난 후
却減農家太半春. 농가 봄의 반을 덜었네.
自學操針十五時, 십오 세부터 스스로 바느질을 배워
郞衣長短慣曾知. 남편 옷 길고 짧음을 익숙히 알고 있었네.
韋帶布衫寬大樣, 가죽 혁대, 삼배 적삼의 크고 풍성한 모양을
更無人製入身宜. 몸에 딱 맞게 만들 사람 다신 없으리.

23) 李沂, 『海鶴遺書』권11.


<亡室李氏輓> 24)
結髮于今垂二紀, 부부의 연 맺은 지 오늘까지 스물 두 해
壺儀無失保家聲. 부녀자의 의법을 잃지 않고 집안의 명성을 지켰네.
不豊絲粟猶能繼, 넉넉지 못한 베와 곡식에도 오히려 능히 생계를 꾸렸으나
却恐蘋蘩未稱情. 변변치 못한 제사상이 정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네.
(후략)

24) 崔晛,『認齋集』拾遺.


이 시에 나타나는 아내들 또한 元稹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에 여느 남자 못지않은 역할을 해내며 게다가 바느질, 길쌈 또한 능하고 조상을 모시는 데도 소홀하지 않은 돈독한 내조의 덕을 지니고 있는 여인으로 묘사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申光河의 다음 시는 아내를 다만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고생을 함께한 사람으로만 여기지 아니하고 좋은 벗으로, 나아가 ‘나의 아내임에 부끄럽지 않으리[不愧震澤婦]’라는 표현을 통해 아내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의 소유자로 격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故室輓> 25)
知子不解文, 그대가 글을 알지 못함을 알기에
愛誦十九首. 십구 수만을 애송했었네.
謂言夫子詩, 夫子의 시라 일렀으니,
奈何得不朽. 어찌해야 썩지 않을 수 있으리.
豈猶有好逑, 어찌 좋은 짝으로만 생각하리,
樂此得良友. 좋은 벗을 얻음을 즐거워했었네.
尙論千載下, 천 년 뒤에 고인을 논하더라도
不愧震澤婦. 진택의 아내임에 부끄럽지 않으리.

25) 申光河,『震澤文集』권9.


그러나 아내에 대한 위와 같은 칭양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또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은 아니다. 이는 같은 문화권 속에서 남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상호 유사한 인식들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무엇
보다도 도망시의 작자들이 모두가 사회적 상층 계급으로서 유가사상의 신봉자들이었던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元稹의 <遣悲懷> 其三에서는 鎭魂의 요소가 첨가되어 있다.


<遣悲懷> 其三
閑坐悲君亦自悲, 한가로이 앉아 그대를 슬퍼하고 내 자신을 슬퍼하나니
百年多是幾多時. 백 년 세월 길긴 하다만 얼마나 긴 시간인고.
鄧攸無子尋知命, 鄧攸는 자식이 없음에 자신의 운명임을 알았고
潘岳悼亡猶費詞. 潘岳은 처가 죽으매 부질없이 말만 낭비하였네.
同穴窅冥何所望, 한 구덩이에 묻히는 것 이미 멀어졌으니 이제 무슨 바람이 있겠으며
他生緣會更難期. 다른 생에 다시 만나는 것조차 더욱 기약하기 어렵네.
惟將終夜長開眼, 다만 밤새도록 오래 눈 뜨고서
報答平生未展眉. 평생토록 얼굴 한 번 펴지 못했던 그대에 보답코자 하네.


鎭魂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대상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서 亡者의 넋을 위로함으로써 실제로는 애도자가 슬픔을 덜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시는 전체적으로 아내의 죽음에 대한 비탄이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尾聯에서 평생을 가난하게만 살다가 간 아내에 보답하고자 작자 또한 밤새 눈을 뜨고 있는 모습으로 망자를 위안하고 있다.


우리의 悼亡詩에서도 비탄과 진혼의 결합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故室輓> 26)
丘山非客土, 구산은 객지가 아니니
交河卽先壟. 교하는 곧 선영이라.
上有玄祖墓, 위에는 현조묘가 있고
傍有從孫塚. 곁에는 종손의 무덤이 있다.
亦知不落莫, 또한 쓸쓸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豈曰無承奉. 어찌 웃어른 섬김이 없다 이르리오.
壽命有大限, 타고난 목숨은 종말이 있는 것이니

本非金石鞏. 본래 금석의 굳음이 아닐세.

26) 申光河,『震澤文集』권9.


이 시에서는 비록 죽었으나 선영에 묻힌 까닭에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며, 생시와 마찬가지로 웃어른을 섬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망자를 위안하고 있다. 위의 두 시 모두 悲嘆의 정서가 기본 바탕이 되면서 鎭魂의 방식
을 결합하여 비탄의 여운을 보다 길게 이어가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진혼의 내용에 있어 우리의 도망시는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위에서처럼 좋은 묘자리를 사용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르거나 묘지 주위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는 행위들은 우리의 도망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혼의 내용들로, 혼백을 통한 망자와의 재회나 단절된 교류의 연결고리를 설정함이 목적이었다.

이는 魂魄의 분리를 믿고 생명의 復活을 설정하지 않으며 분명한 사후세계관이 없었던 性理學적 死後觀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의 도망시에서는 이와 같은 진혼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비록 韓中 悼亡詩 모두 비탄의 정서와 더불어 망자에 대한 稱揚과 鎭魂의 측면들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유사성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悼亡詩에는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관된 비탄의 정서가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원인으로는 죽음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이 우리보다 더욱 단절적이었으며, 우리에 비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이었던 사후세계관이 生者와 死者의 공간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였으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2) 長篇化와 連作化


悼亡詩에서 형식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많은 작품들이 長篇이나 連作의 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와 중국 모두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그 중 長篇은 중국에서, 連作은 우리에게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中國에서는 潘岳 <悼亡詩> 3수를 비롯하여 魚玄機 <和新及第悼亡詩> 2수, 元稹 <遣悲懷> 3수, 梅堯臣 <悼亡> 3수, 江淹 <悼室人> 10수, 陸游 <沈園> 2수, 王士禎 <悼亡詩> 6수, 陳祖范 <悼亡> 2수, 蒲松齡 <悼內> 3수, 顧炎武 <悼亡> 5수 등 많은 시들이 연작으로 쓰여지고 있다.

편폭 또한 潘岳 <悼亡詩> 3수가 각각 26구, 28구, 32구, 李商隱 <房中曲>이 16구, 沈約 <悼往>이 12구 등 長篇化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외의 시들 또한 대부분의 시들이 율시를, 그중에서도 7언 율시를 기본 형식으로 사용하고 絶句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연구의 부록 자료를 일람하면, 우리의 도망시도 대표적으로 南鵬海의 <悼亡詩> 100수를 비롯하여 兪好仁 <妻李氏挽詞> 7수, 李春英 <悼意> 7수, 吳始壽 <悼亡> 5수, 申光河 <故室輓> 8수, 吳昌烈 <傷秋吟> 10수 등 많은 연작시가 있으며, 편폭도 洪貴達 <悼亡> 46구, 李元翼<悼亡> 26구, 李沂 <哭內後自傷> 18구 등 長篇化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중국과는 달리 5언, 7언 절구도 널리 사용된 차이가 있다.


시가 장편이나 연작의 형식을 차용하게 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와 같은 형식들이 가져오는 시적 효과 때문이다. 장편의 형식은 작자의 심사를 편폭의 제한 없이 곡진하고 절절하게 나열할 수 있게 하고, 유사한 예시와 비유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시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연작의 형식 또한 각각의 작품들이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각기 다른 상황이나 시점 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동일한 의미지향으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 전체의 주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둘째는 이러한 시적 효과를 의도해서라기보다는 나타내고자 하는 절대적인 내용 자체가 많은 경우, 즉 이성적인 절제와 함축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이 우선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장편이나 연작의 형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27)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본질적으로 비탄의 정서가 바탕이 되고 무절제한 감정의 표출을 특징으로 하는 悼亡詩가 우리와 중국을 막론하고 많은 작품에서 장편이나 연작의 형식으로 쓰여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27) 박준호는 李用休 輓詩의 連作詩적인 특징을 지적하며, 전달하려는 내용은 많은데 비해 한 수의 絶句로는 곡진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원인이 되었으리라 판단하였다. 박준호, 「輓詩에 대한 一考察」,『동방한문학회』19집, 2000, 244면.



3) 遺品의 媒介化


일반적인 哀悼詩들이 흔히 계절적인 요인이나 자연 사물의 변화를 통해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비해, 悼亡詩에서는 아내와 관련된 사물이나 유품들, 즉 휘장이나 병풍, 이불, 화장품, 비녀 등을 매개로 슬픔의 감정이
촉발된다.28) 물론 悼亡詩에서도 계절이나 자연 환경적인 요인 등에 의한 슬픔의 촉발들이 없는 것은 아니며 도입 부분에서는 많은 부분 이것들로 인해 시작이 되곤 한다. 그러나 유품을 매개로 한 감정의 촉발은 도망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서술 방식으로, 이는 韓中 悼亡詩 모두 공통된 양상을 나타낸다.

潘岳의 시에서는 全詩에 걸쳐 휘장[幃]과 병풍[屛], 필기구[翰墨], 여름이불[夏衾], 베개[枕席], 침대[牀], 이부자리와 옷가지[衾裳], 유물[遺] 등이 매개가 되어 작자의 슬픔이 촉발되고 있는데, 이는 다만 유형의 유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체취[流芳]라는 무형의 유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沈約의 시 또한 주렴[簾], 병풍[屛], 빈 자리[虛座], 빈 침대[空床]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원진 또한 옷가지[衣裳], 이불[針線]을 통해 아내의 부재를 확인하고 슬픔에 빠져들고 있다.


28) 아내의 유품들은 다만 비탄의 감정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게 하는 역할도 한다. 李商隱의 <悼傷後赴東蜀辟至散關遇>에서는 ‘劍外從軍遠, 無家與寄衣. 散關三尺雪, 迴夢舊鴛機(劍閣 밖, 종군길은 멀기만 한데 옷 부쳐줄 집사람이 없구나. 삼 척 눈 쌓인 대산관에서 꿈에 옛날 원앙베틀로 돌아간다네)’라
하며 원앙베틀[鴛機]을 매개로 아내를 떠올리고 있다.



唐代 李商隱(812∼858)의 작품 또한 이 같은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房中曲> 29)
薔薇泣幽素, 장미는 흰 이슬로 흐느끼고
翠帶花錢小. 푸른 띠처럼 가는 가지에 동전 같이 피었네.
嬌郞癡若雲, 그대의 님은 구름처럼 멍하여,
抱日西簾曉. 서편 주렴이 밝아오도록 해를 안고 있다네.
枕是龍宮石, 베개는 용궁의 보석처럼
割得秋波色. 가을 물빛을 자른 듯한데,
玉簟失柔膚, 대자리에 부드러운 살결은 없고
但見蒙羅碧. 펼쳐진 푸른 비단이불만 보이네.
憶得前年春, 지난 봄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니
未語含悲辛. 말없이 슬픔으로 아파하던 그대.
歸來已不見, 돌아왔으나 이미 보이지 않고
琴瑟長於人. 금슬만이 사람보다 오래 가는구려.
今日澗底松, 오늘은 계곡 아래 외로운 소나무였다가
明日山頭蘗. 내일은 산꼭대기의 누런 나무이리.
愁到天地翻, 천지가 뒤집힌다 한들,
相看不相識. 하여 다시 만난다 한들,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스럽소.

29) 劉學鍇, 余恕誠 편,『李商隱詩歌集解』, 中華書局, 1988, 1034면.


시에서는 첫 4구에서 이슬에 젖은 여리고 가녀린 장미의 모습으로 죽은 아내를 회상하며 상실감과 무기력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 8구에서는 베개[枕]와 대자리[玉簟], 푸른 비단이불[羅碧], 금슬[琴瑟]과 같은 유품에서 아내의 흔적을 떠올리며 存亡의 변화를 대비시킴으로써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마지막 4구에서는 외로운 존재로서 앞으로의 삶 또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형상적으로 나타내며,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재회의 기약에 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고 가등의 유품들이 슬픔의 주된 촉발체가 되고 있다.


우리의 한시에서도 유품을 매개로 슬픔이 촉발되는 특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悼亡> 30)
粧奩虫網鏡生塵 화장함에는 거미줄, 거울에는 먼지만 껴
門掩桃花寂寞春 문 닫힌 채 복사꽃만 쓸쓸히 봄을 맞네.
依舊小樓明月在 옛날처럼 다락위엔 달빛만 환한데
不知誰是捲簾人 모르겠네, 그 누가 주렴 걷을 사람인지.

30) 李達,『蓀谷詩集』권1.


<悼亡> 31)
冷雨凄風夜未央, 차가운 비 거센 바람에 밤은 다하지 않았는데
孤燈不滅耿空房. 외로운 등불은 꺼지지 않고 빈 방에서 깜박이네.
粧奩繡具埋藏盡, 화장함과 수놓는 도구를 땅 속에 다 묻었으나
舊篋時聞一縷香. 묵은 상자에서 때때로 한 가닥 향기를 맡네.

31) 朴鳴朝,『朝野詩選』권3.


李達의 시에서는 화장함[粧奩]와 거울[鏡], 아내의 방[舊小樓], 주렴[簾] 등이 등장하며, 朴鳴朝의 시에서도 화장함[粧奩]와 수놓는 도구[繡具],아내의 빈 방[空房]과 화장 상자[舊篋] 등이 등장하며 아내에 대한 비통
함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외 앞서 인용한 姜溍이나 李沂의 시에서도 ‘아내가 만든 옷[寒衣尙着君裁剪]’이나 ‘가죽혁대, 포의[韋帶布衫寬大樣]’ 등이 슬픔의 매개체가 되고 있으니, 이와 같은 서술방식은 韓中 悼亡詩에서 상호 공통적이면서도 하나의 전형적인 서술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幻影과 幻聽의 차용


환영과 환청의 방식을 통해 가상적 재회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현실적인 悲痛을 극대화시키는 방법 또한 도망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서술방식이다.


<悼亡詩> 其二 중 32)
寢興自存形, 자다가 깨어나서 혼자 생각하니 당신이 있는 듯하고,
遺音猶在耳. 생전에 나누었던 말들이 여전히 귓전에서 울린 다오.
上慙東門吳, 위로는 아들의 죽음에 초연했던 東門吳에 부끄럽고,
下愧蒙莊子. 아래로는 아내의 죽음에 초연했던 蒙人 莊子에게 부끄럽구려.

32)『文選』권23, <哀傷>


潘岳의 <悼亡詩> 제2수에서는 아내의 환영과 환청을 통해 죽음에 초연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통함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元稹의 <遣悲懷> 其二 또한 ‘일찍이 꿈에 그댈 만나 재물 전해 주었었네[也曾因夢送錢財]’라 하며
꿈을 통한 재회가 나타나고 있다. 李商隱의 시에서도 이와 같은 서술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正月崇讓宅> 33)
密鎖重關掩綠苔, 문은 굳게 잠기고 푸른 이끼 덮여있는데
廊深閣逈此徘徊. 회랑은 깊고 누각은 멀어 예서 배회하노라.
先知風起月含暈, 바람이 일 것을 먼저 알아 달은 무리를 머금고
尙自露寒花未開. 이슬 차가워진 후로 꽃은 피지 않는구나.
蝙拂簾旌終展轉, 주렴 끝 천 흔드는 박쥐 소리에 끝내 뒤척이고
鼠翻窓網小驚猜. 窓紗 들썩이는 쥐 소리에 자못 놀라 (그대인가) 의심하였네.
背燈獨共餘香語, 등불 등지고 홀로 그대의 향기와 이야기하다
不覺猶歌起夜來. 나도 모르게 <기야래>를 불렀다네.

33) 劉學鍇, 余恕誠 편, 앞의 책, 1354면.


이 시는 작자가 아내와의 사별 후 처가에 돌아와 지은 작품으로, 외로움에서 기인한 비탄의 정서가 나타나 있다. 경련에서 주렴과 사창을 흔드는 박쥐와 쥐의 소리를 아내의 인기척으로 착각하고 이어 미련에서는 아내의

남은 향기를 아내로 삼아 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는데, 작자는 이와 같은 환상과 환영의 방식을 통해서나마 아내와의 재회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의 한시에서도 이와 같은 서술방식은 자주 차용되고 있다.


<哭亡妻墳詩> 34)
老樹荒榛鎖九原, 오래된 황량한 개암나무가 구천을 가리고
玉人零落此爲墳. 옥인은 세상을 떠나니 여기가 무덤일세.
山頭明月顔猶見, 산꼭대기 밝은 달에 그대 얼굴 보이는 듯
石上鳴泉語更聞. 돌 위 솟는 샘물에 그대 목소리 들리는 듯.
喚畵不成眞面目, 화공을 불러도 그대 본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熱香難反舊精魂. 향을 태워도 옛날의 깨끗한 영혼 돌이키기 어려워라.
丁寧來世還夫婦, 정녕 내세에도 부부로 돌아올 것이니
地下無忘約誓言. 지하에서라도 이 약속의 말을 잊지 말기를.

34) 李希輔,『詩評補遺』上.


李希輔의 이 시에서는 밝은 달[明月]과 샘물 소리[鳴泉]에서 아내의 환영과 환청을 느끼고 비통해하고 있으며 尾聯에서는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부부로 연을 맺을 것이리라는 작자의 서약을 통해 亡者를 위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韓中 悼亡詩의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서술 방법상의 특징들에 대해 간략하게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한중 도망시는 상호 동일한 문화권과 특히 작자의 사상적 신분적 동질성으로 인해 많은 부분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도망시가 감정의 극한적인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여느 哀悼詩보다 ‘비통의 극단적 표출’이 보다 두드러지며 비탄 이외의 진혼이나 칭양 등의 다른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나타나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다만 성리학적 세계관에 보다 철저했었던 우리에 비해, 중국의 경우는 비탄의 정서가 보다 일관되게 유지되며 칭양이나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양국 간의 이와 같은 유사성은 각각의 작품들의 세부적인 표현 방법, 즉 상징이나 비유 및 이미지와 소재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에서는 韓中 悼亡詩를 상징체계를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한다.



4. 韓・中 悼亡詩의 상징체계


현전 悼亡詩들을 일괄해보면, 시대나 지역의 차이를 막론하고 각각의 작품에 있어 상징이나 비유뿐 아니라 차용된 이미지나 소재 등에 있어서까지 천편일률적인 유사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悼亡詩에 있어 이미 어떠한
관습적이면서도 정형화된 이미지나 표현 방식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최재남은 연구에서 한국 애도시의 관습적 표현으로 ‘죽음의 심상’, ‘亡者의 형상’, ‘幽明의 언어’를 제시하며 이를 한국의 悼亡詩에 적용시켜 정형화된 상징과 이미지를 밝힌 바 있다.35)

의심할 나위 없이 중국의 경우 또한 이와 같은 정형화된 상징과 이미지가 분명 존재하며, 보다 특징적인 것으로는 中國 悼亡詩의 기원이면서 또한 그 최정점에 반악의 <悼亡詩> 3首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도망시의 이러한 특징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수용되어 우리 도망시의 전통으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에서 ‘죽음의 形象’과 ‘亡者와 作者의 形象’, ‘저승의 形象’을 중심으로 韓中 悼亡詩의 상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35)『연구』, 125면.



1) 죽음의 形象


일반적으로 애도시들은 죽음을 형상을 주로 ‘가을’이나 ‘저녁’ 등 시간과 계절의 원형적 상징이나 ‘시든 잎’, ‘마른 나무’, ‘서리’ 등과 같은 자연적 상징을 통해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悼亡詩 또한 애도
시의 일종인 까닭에 이러한 방식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재들은 황량하고 쓸쓸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어서 죽음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哀悼詩뿐만 아니라 유사한 감회를 표현하는
모든 유형의 시에서도 널리 차용되어 왔다.

다만 悼亡詩에서는 죽음의 상황을 직접적인 언급하기보다는 亡者와 哀悼者 또는 亡者와 事物과의 ‘관계의 단절’을 통해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潘岳의 <悼亡詩> 3首에서 해당 부분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悼亡詩> 其一36)
幃屛無髣髴, 휘장과 병풍에서도 당신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길이 없지만,
翰墨有餘迹. 살아생전에 지었던 시문에는 당신의 남은 흔적이 있다오.
流芳未及歇, 당신의 체취는 아직도 곳곳에 배어 사라지지 않았으며,
遺挂猶在壁. 즐겨 사용하였던 물건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구려.


<悼亡詩> 其二
輾轉眄枕席, 잠을 못 이루어 뒤척이다 당신의 잠자리를 바라보니,
長簟竟牀空. 긴 대자리 놓인 침상은 휑하기만 하구려.
牀空委淸塵, 비어 있는 당신의 잠자리에는 가벼운 먼지만 쌓이고,
室虛來悲風. 허전한 이 집에 늦은 가을바람이 불어오네.


<悼亡詩> 其三
衾裳一毁撤, 당신의 이불과 옷가지들을 일단 한 번 치워 없애 버리면
千戴不復引. 영원히 다시는 놓을 수 없을 텐데.

36)『文選』권23, <哀傷>



潘岳은 3首 전반에 걸쳐 ‘당신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길 없다[無髣髴]’, ‘남은 흔적이 있다[有餘迹]’, ‘여전히 벽에 걸려 있다[遺挂猶在壁]’, ‘침상이 휑하다[牀空]’, ‘빈 잠자리에 먼지가 쌓인다[牀空委淸塵]’, ‘허전한 집[室虛]’ 등의 표현을 통해 아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관계의 단절을 통해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이 후 沈約이나 元稹, 李商隱,梅堯臣 등의 도망시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문화적 상징이나 비유적 이미지, 또는 자연적 이미지 등을 통해 단절의 의미를 드러내며 죽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37)


37) ‘遊塵掩虛座, 孤帳覆空床’(沈約, <悼往>),

‘衣裳已施行看盡, 針線猶存未忍開’(元稹,<遣悲懷> 其二),

‘孤琴在幽匣, 時迸斷弦聲’(元稹, <夜閑此后幷悼亡>),

 ‘密鎖重關掩綠苔’(李商隱, <正月崇讓宅>),

‘劍外從軍遠, 無家與寄衣’(李商隱, <悼傷後赴東蜀辟至散關遇雪>),

 ‘玉簟失柔膚, 但見蒙羅碧’(李商隱, <房中曲>) 등.



이와 같은 특징은 우리의 한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輓室人千氏> 38)
欲撫床琴已斷絃, 침상 위의 거문고를 어루만지나 이미 줄을 끊어졌고
還嘆粧鏡破難圓. 화장 거울 깨어져 둥글게 할 수 없음을 한탄하네.
安排虛枕黃昏後, 텅 빈 베개를 적당히 치우고 해가 진 뒤에
忍見孤兒哭棺前. 외로운 아이가 관 앞에서 우는 것을 차마 보노라.

38) 林得明,『松月漫錄』권1.


<悼亡> 39)
人間花落尺波東, 인간 세상 꽃 떨어져 한 척 물결에 동쪽으로 흘러가고
偕老盟寒世事終. 해로 하자던 맹서 아직 차가운데 세상일은 끝나버렸네.
異鵲新歌哀趙澤, 기이한 까치 새로운 노래로 趙澤을 슬퍼하고
結腸遺操怨空同. 맺힌 창자에 남은 곡조 空同山을 원망하네.
玉琴絃絶秋塵積, 아름다운 거문고 줄은 끊어져 가을 먼지 쌓이고
金鴨香銷夜帳空. 향로에 향불 꺼져 밤 장막은 비었네.
一十三年如夢覺, 십삼 년의 세월 꿈에서 깬 것 같으니
共誰辛苦亂離中. 난리 중의 신고를 누구와 함께 하리.

39) 趙緯韓,『玄谷集』권5.


앞서 인용한 李達과 朴鳴朝의 시에서 각각 ‘거미줄 낀 화장함[粧奩虫網]’ 과 ‘먼지 낀 거울[鏡生塵]’, ‘땅속에 다 묻었다[埋藏盡]’는 표현으로 관계의 단절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위의 林得明의 시에서도 ‘끊어진 줄[已斷絃]’, ‘깨진 거울[鏡破]’, ‘텅 빈 베개[虛枕]’라는 표현을 통해 이를 나타내고 있다.
趙緯韓의 시 또한 ‘끊어진 거문고 줄[玉琴絃絶]’, ‘쌓인 먼지[塵積]’, ‘불 꺼진 향로[金鴨香銷]’ 등으로 단절을 나타냄으로써 아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 亡者와 作者의 形象


中國 悼亡詩에서 亡者인 아내는 주로 두 가지 유형으로 상징되고 있다.
하나는 살아 있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죽은 이후의 쇠락한 모습이다. 많은 경우 이 두 가지의 상징은 하나의 작품 속에서 어느 하나만 사용되기보다는 동시에 사용됨으로써 망자의 생전과 사후를 극명하
게 대비시키고, 이를 통해 비탄의 고조와 칭양의 목적을 동시에 이루는 효과를 나타낸다.

애도자인 작자는 주로 홀로 살아남아 늙고 왜소해진 존재로서 그려지거나 혹은 짝을 잃거나 무리에서 벗어난 새와 물고기, 반딧불, 기러기 등과 같은 미물들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 또한 亡者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비탄과 칭양에 있어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다시 潘岳의 시에서 해당 부분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悼亡詩> 其一
如彼翰林鳥, 저 숲에 깃들어 사는 새처럼
雙飛一朝隻. 함께 날아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되었으며,
如彼游川魚, 저 강에 노니는 물고기처럼
比目中路析. 항상 더불어 다녔는데 중도에서 헤어지다니.


<悼亡詩> 其三
奈何悼淑儷, 어떻게 당신을 애도할까?

儀容永潛翳. 아름다운 모습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네.


<悼亡詩> 其三
落葉委埏側. 낙엽은 당신 무덤의 墓道 가장자리에 쌓이고,
枯荄帶墳隅. 마른 나무뿌리는 무덤 귀퉁이에 걸쳐 있구려.


潘岳은 아내를 ‘정숙한 짝[淑儷]’과 ‘아름다운 모습[儀容]’으로 표현하며 ‘떨어진 잎[落葉]’과 ‘마른 뿌리[枯荄]’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즉 망자의 생전과 사후 두 가지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의 비탄을 고조시키고 생전의 망자를 칭양하고 있는 것이다.

作者 자신 또한 ‘짝 잃은 새[一朝隻]’와 ‘헤어진 물고기[中路析]’에 비유하며 아내와의 사별 전후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비탄과 칭양의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다른 도망시에서의 상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인용한 元稹과 李商隱, 梅堯臣의 시에서 亡者에 대한 상징부분들을 예로 들어본다.


<遣悲懷> 其三
惟將終夜長開眼, 다만 밤새도록 오래 눈 뜨고서
報答平生未展眉. 평생토록 얼굴 한 번 펴지 못했던 그대에 보답코자 하네.


<悼傷後赴東蜀辟至散關遇雪>
散關三尺雪, 삼 척 눈 쌓인 대산관에서
迴夢舊鴛機. 꿈에 옛날 원앙베틀로 돌아간다네.


<悼亡> 其三
忍此連城寶, 차마 견딜 수 없네. 和氏의 구슬과도 같은 그대
沉埋向九泉. 묻히어 구천을 향하는 것을.


元稹은 ‘펴지 못한 눈썹[未展眉]’으로, 李商隱은 ‘수를 놓던 도구[鴛機]’ 로, 梅堯臣은 ‘화씨의 구슬[連城寶]’로써 아내를 상징하며 각각 생전의 고생스러웠던 생활과 정숙한 품성, 아름다운 외모를 칭송하고 있다.
다른 도망시에서의 作者 자신에 대한 상징의 예는 다음과 같다.


<夜閑此后幷悼亡>
孤琴在幽匣, 외로운 거문고는 갑 속에 있고
時迸斷弦聲. 세월은 흘러 소리는 끊어져 버렸다네.


<房中曲>
今日澗底松, 오늘은 계곡 아래 외로운 소나무였다가
明日山頭蘗. 내일은 산꼭대기의 누런 나무이리.


<正月崇讓宅>
先知風起月含暈, 바람이 일 것을 먼저 알아 달은 무리를 머금고
尙自露寒花未開. 이슬 차가워진 후로 꽃은 피지 않는구나.


<悼亡>
朝雲暮雨成古墟, 아침 구름과 저녁 비는 옛 터에서 만나건만
蕭蕭野竹風吹亞. 쓸쓸한 들 가 대나무에는 바람만이 불어대네.


<悼亡> 其一
我鬢已多白, 내 귀밑머리 이미 백발이건만
此身寧久全  이 몸만은 편안히 오래도록 살아있네


<悼亡> 其二40)
窗冷孤螢入, 차가운 창에 외로운 반딧불 날아들고
宵長一雁過  기나긴 밤 외기러기 지나가네.

40)『宛陵先生文集』권14.


이들 시 또한 반악의 <悼亡詩>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거문고[孤琴]’ 나 ‘산꼭대기의 나무[山頭蘗]’, ‘피지 않는 꽃[花未開]’, ‘들 가 대나무[野竹]’, ‘외로운 반딧불[孤螢]’, ‘외기러기[一雁]’ 등과 같이 모두가 짝을 이루
지 못하거나 왜소하고 실의한 사물들로 자신을 상징하고 있다.

亡者의 생전의 화려한 모습과 사후의 쇠락한 모습의 대비가 자신의 비탄을 심화시키고 생전의 망자를 칭양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처럼, 사별 후의 자신의 모습이 미천하고 왜소할수록 자신의 비통함은 더욱 통절해지고 아내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높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의 도망시에서는 관습적으로 이러한 상징의 방식을 널리 사용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통해 서술방식상 다소 소홀했던 망자에 대한 칭양과 진혼의 내용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도망시에서는 중국에 비해 서술방식상의 칭양과 진혼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중국의 도망시에서와 같은 상징의 방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인용한 李達과 申光河의 시에서 해당 부분을 다시 인용해본다.


<悼亡>
依舊小樓明月在옛날처럼 다락위엔 달빛만 환한데
不知誰是捲簾人모르겠네, 그 누가 주렴 걷을 사람인지.


<故室輓>
豈猶有好逑, 어찌 좋은 짝으로만 생각하리,
樂此得良友. 좋은 벗을 얻음을 즐거워했었네.


두 시에서는 각각 ‘주렴 걷는 사람[捲簾人]’과 ‘좋은 짝[好逑]’, ‘좋은 친구[良友]’로 아내를 상징하고 있는데, 이외의 용어로는 ‘섬세한 사람[細君]’이나 ‘이불을 함께 덮는 친구[同衾友]’, ‘머리 묶은 사람[結髮人]’ 정도
가 있을 따름이다. 모두가 아내에 대한 관습적이거나 일반적인 용어들로서 특별한 상징성이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보다는 ‘君’, ‘子’ 같은 용어들이 더욱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3) 저승의 形象


마이클 로이는 고대 중국인들의 내세나 선향에 대한 관념을 크게 네 가지로 설정한 바 있다.41)

비록 여기에는 불교의 영향 하에 형성된 淨土觀念이나 각종의 민간 토속신앙에 근거한 다양한 내세관들에 대한 언급들이 빠져 있지만, 중국에서 동시대 내에서도 다양한 내세관이 혼재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세에 대한 우리의 관념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기에는 비록 분명한 내세관이 없었으나 삼국 시기 불교가 전해진 이후 극락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지고,42)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혼재하는 것으로 보는 巫俗的 사생관과 결합되어 우리 또한 다양한 내세관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우리와 중국 모두 이와 같이 다양한 내세관이 공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韓中 悼亡詩에서는 저승에 대한 개념으로 이 중 네 번째인 지하세계의 표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41) 첫째는 蓬來山같은 동해의 이상향이고 둘째는 우주의 근저를 이루는 전체적인 존재구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 즉 성리학적 사생관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西王母가 지배하는 신비로운 서방세계이며 넷째는 막연한 개념으로 지하의 관리들이 지배하는 黃泉이다. 마이클 로이 著, 이성규 譯,『고대중국인의 생사관』, 지식산업사, 1989, 44면.
42) 나희라, 「고대 한국의 저승관과 지옥관념의 이해」,『韓國文化』38집, 2006.12, 188면.



앞서 인용한 시에서 저승의 개념이 나타난 부분만을 다시 예로 들어 본다.


<悼亡詩> 其一
之子歸窮泉, 당신은 황천으로 떠나버리고,
重壤永幽隔. 겹겹의 흙은 영원히 우리를 갈라놓는구려.


<悼亡>
山頭明月夜增輝, 산꼭대기의 밝은 달, 밤이 되어 빛을 더하건만
增輝不照重泉下. 더해진 빛이라도 땅 속까지 비추지는 못하네.


<夫人白氏挽>
今來欲問君先去, 오늘 그대 먼저 간 것을 묻고자 하나
泉下何由一語通. 저승에서 어찌 한 마디 말도 통할 수 있으리.


<悼亡> 其三
忍此連城寶, 차마 견딜 수 없네. 和氏의 구슬과도 같은 그대
沉埋向九泉. 묻히어 구천을 향하는 것을.


<哭亡妻墳詩>
丁寧來世還夫婦, 정녕 내세에도 부부로 돌아올 것이니
地下無忘約誓言. 지하에서라도 이 약속의 말을 잊지 말기를.


우리와 중국시 모두 ‘窮泉’, ‘重壤,’ ‘泉下’, ‘九泉’, ‘地下’ 등과 같이 지하세계의 이미지로 亡者가 있는 곳을 나타내고 있다. 망자가 떠나가는 저승이 지하에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사실 막연한 느낌에 불과한 것으로 확고하게 정립된 저승관념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또한 이와 같은 저승관념이 당시 사람들의 저승관념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民間輓歌에 나타난 민간의 저승관념은 비록 경계를 알 수 없으나 이승과 동일한 공간에 있으며 영원존재의 회귀처로서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43) 또한 민간만가에서 저승은 각각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때로는 희망적이
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44)


결국 도망시에 나타난 저승관념은 당시의 문인지배계층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의 경우 성리학적 사후관에 근거하여 죽음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혼과 땅으로 스며드는 백의 분리를 믿었던 것에서 이와 같은 저
승관념을 가지게 된 가장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적 사유나 성리학적 사상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며 공개적으로 도가적 지향을 추구하기도 했었던 중국의 문인지배계층이 도망시에서 우리와 같은 저승관념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悼亡詩의 기본정서가 비탄인 까닭에 망자의 사후의 모습을 쇠락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상징하는 것과 같이, 망자가 떠나가는 곳을 현실보다 못한 암울하고 어두운 지하세계로 상정함으로써 비탄의 감정을 보다 심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필자의 견해에서는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문인지배계층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강자였던 까닭에 비록 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있다 할지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에 대한 만족이나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일반 백성들이나 또 다른 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의 저승관념이 문인계층들의 그것과 사뭇 달랐던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다.45)


43) 이영희, 「輓歌를 통해 본 죽음의 의미와 돌봄」,『關大論文集』27권, 1999, 235면.
44) 윤한대, <韓國輓歌의 내용적 특질>,『순천향대학논문집』6권, 1983, 90면.

45) 민간만가뿐 아니라 여성문인이 쓴 애도시에서도 남성문인들의 저승관과는 다른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이지운의 <沈宜修의 悼女詩 硏究>(『中國語文學』32집,2010.4)에 따르면, 명말 청초의 여성문인 沈宜修(1590∼1635)는 悼女詩에서 현실 세계는 무겁고 어둡게 묘사하는 반면, 죽은 딸이 있는 곳은 학을 타고 난새를 부리는 仙界로 묘사하는 등 긍정적인 저승관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필자로서는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한 까닭에 이것이 당시 여성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대표하는 것인지 확언할 수 없다.



5. 맺으며


이상에서 역대 작시현황 및 서술방식상의 특징과 상징체계 중심으로 韓中 悼亡詩를 비교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역대 悼亡詩 작시현황을 개괄하면, 중국의 경우 西晉의 潘岳으로부터 悼亡詩가 시작되었으나 盛唐 이전까지 거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였고, 중당 이후 사회의 변화에 따른 문인들의 애정관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활발한 창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송대를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비록 지속적으로 쓰여지기는 하였으나 전시기적으로 보아 悼亡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나 창작 상황의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따라서 도망시는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소재로만 한정되었을 뿐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문집에서 많은 悼亡詩들이 산견되며 중국과는 달리 하나의 관습적 양식이자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悼亡詩의 서술방식은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과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 ‘幻影과 幻聽의 차용’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우리와 중국의 도망시 모두 비탄의 정서를 위주로 하며, 여기에 亡者에 대한 稱揚과 鎭魂의 측면들이 함께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들의 결합의 측면보다는 일관된 비탄의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칭양과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 우리와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와 幻影과 幻聽의 차용은 다른 哀悼詩들에 비해 悼亡詩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서, 韓中 도망시의 공통된 서술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悼亡詩의 상징체계는 ‘죽음의 形象’, ‘亡者와 作者의 形象’, ‘저승의 形象’ 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韓中 悼亡詩의 창작의 원형으로서 潘岳의 시가 존재하며 中國 悼亡詩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도망시들 또한 서술 방식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 방법이나 이미지 등에 있어서까지도 상호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亡者와 자신에 대한 상징에 있어 중국의 悼亡詩가 우리보다는 높은 성취를 나타내며, 비록 저승세계를 지하세계로 인식하였던 결과는 같으나 그 바탕에는 상이한 인식차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 이 논문은 2010년 4월 30일(금요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0년 5월 3일(월요일)부터 6월 4일(금요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0년 6월 7일(월요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참고문헌


劉學鍇・余恕誠,『李商隱詩歌集解』, 中華書局, 1988. 12.
褚斌杰,『中國古代文體槪論』, 북경대학출판사, 1990. 10.
마이클 로이 著, 이성규 譯,『고대중국인의 생사관』, 지식산업사, 1989. 12.
이종찬・임기중 외,『朝鮮時代 漢詩作家論』, 이화문화사, 1996.
韓國漢詩學會,『韓國漢詩硏究3』, 태학사, 1995. 12.
六臣注,『文選』, 다운샘, 1996. 3.
최재남, 『한국 哀悼詩의 구성과 표현에 대한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2. 8.
拙稿, 「中國 挽歌詩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대한 一考察」,『中國文學』60집, 2009. 8,29∼50면.
拙稿,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中國語文學』45집, 2005. 6, 437∼466면.



ABSTRACT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 about a ‘Condolatory poem(悼亡詩)’ of Korea and China


Ju, Gi-pyoung


The ‘Condolatory poem(悼亡詩)’ is a poem which express husband’s deep sorrow over the death of his wife. This style of literature has its origin in China, the XiJin(西晉) dynasty, Pan-yue(潘岳). The similar literary tradition has been preserved in Korea. And there are more ‘Condolatory poem(悼亡詩)’ in a traditional anthology of Korea than in China. But it is similar to that of China in the many literal presentation.

In this essesy, I compared the Korean ‘Condolatory poem’ with the Chinese's in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s aspect. In a formula of description, classified into four groups which are ‘Combination of grief, console and praise’, ‘Trend of long and reiterated works’, ‘making a relics as Intermediation’, ‘use of a phantom and hallucination’. on the foundation of grief, many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were combined with console and praise for a dead person. but A trend of consistent grief is more strong in China than Korea relatively, and there are a little unlike in a contents of console and praise also. The remaining three groups are similar in the literal description

In a literal symbols, classified into three groups which are ‘Symbol of Death’, ‘Symbol of dead person and writer’, ‘Symbol of after life’. In this three groups, most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represent similar trend and description.

In conclusion,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have similar literary tradition in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 although they have a little difference in other aspect.



Key Words:Condolatory poem(悼亡詩), Symbols, Grief, Console, Praise, Death, Afte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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