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 朱 基 平* 1. 시작하며 4) 幻影과 幻聽의 차용 국 문 초 록 悼亡詩는 哀悼詩의 한 유형으로 아내를 애도의 대상으로 한 시이다. 중국의 경우 西晉代 潘岳의 <悼亡詩>가 가장 최초의 작품인데, 이후 애도시의 주된 제재로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지어져왔다. 오랜 한문화의 경험
다만 중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일관된 비탄의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칭양과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 우리와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아울러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와 幻影과 幻聽의 차용은 다른 哀悼詩들에 비해 悼亡詩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서, 韓中 도망시의 공통된 서술방식이었음을 알수 있었다.
주제어 *서울대 중문과 1. 시작하며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亡者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는 노래와 춤, 글과 그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시에 있어 동양에서는 ‘哀悼詩’나 ‘挽詩’
반면 애도의 대상이 부부나 자식 등과 같은 가족일 경우 亡者에 대한 진솔한 감성이 바탕이 되는 까닭에 전편에 걸쳐 비탄의 감정이 주된 정서를 이루며, 극한의 감정으로 인해 작자의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이 정지되어 작품에 대한 의식적인 조탁이나 문학적 장치의 추구 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등의 차이를 보인다. 1) 哀悼詩와 挽歌詩는 죽음을 대상으로 하며 亡者에 대한 애도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哀悼詩가 특정인의 실제적인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노래한 것인데 비해, 挽歌詩는 이러한 감정이 喪葬禮라고 하는 의식절차와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며, 시대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하나 때로는 따라서 挽歌詩는 哀悼詩의 한 유형이라 볼 수 있으며, 서양의 엘레지(Elegy)는 크게 보아 동양의 哀悼詩와 유사한 장르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拙稿, 「中國 挽歌詩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대한 一考察」(『中國文學』60집,2009.8) 참조. 그러나 哀悼詩와 挽歌詩의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논문들에서는 그 의미가 혼용되어 잘못 사용되고 있으며, 필자 또한 拙稿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中國語文學』45집, 2005.6)에서 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한 바 있다. 중국에서 시로써 죽음을 애도하는 전통은 일찍부터 있어왔다.3) 이미『詩經』의 <綠衣>나 <黃鳥>, <葛生> 등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으며, 屈原의 <九歌>나 宋玉의 <招魂>, 景差의 <大招> 또한 이것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4) 그 중 아내를 애도의 대상으로 한 것은 西晉代 潘岳(247∼300)의 <悼亡詩>가 가장 최초인데, 본래 哀悼詩의 한 유형으로서 자신과 절친한 이의 죽음을 의미하였던 悼亡詩가 潘岳 이후에는 주로 아내를 대상으로한 애도시로 그 의미가 한정되었으며,5) 애도시의 주된 제재로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지어지게 되었다.
필자 또한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에서 中國 悼亡詩의 구성과 표현상의 특징들에 대해 고찰한 바 있는데,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와『연구』에서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한자문화권인 한국과 중국의 도망시를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함으로써 상호간의 공통성과 차별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3) 필자는 拙稿, 「中國 悼亡詩의 서술방식과 상징체계」(『中國語文學』45집, 2005.6)에서 ‘중국에서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 중 현전하는 가장 최초의 작품은 漢代의 민가인 <瀣露>와 <蒿里>를 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哀悼詩와 挽歌詩와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잘못된 기술이었으며, <瀣露>와<蒿里>는 挽歌詩의 현전 最古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2. 韓・中 悼亡詩의 역대 作詩현황 아내의 죽음이 의미하는 커다란 충격과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中國의 경우 실제 작품에서 悼亡을 소재로 하는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제목을 통해 직접 ‘悼亡’이라 명명하고 있는 작품은 더욱 드물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唐代 이전시기까지의 悼亡詩 중 <悼亡>을 詩題로 사용하고 있는 작품은 潘岳(247∼300)의 <悼亡> 3수와 沈約(441∼513)의 <悼亡> 1수가 전부이며, 그 외 江淹(444∼505)의 <悼室人> 10수가 전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후 성당 때까지는 도망시를 남기고 있는 시인이 없으며, 중당 이후 李商隱, 孟郊, 白居易, 元稹 등 몇몇 시인들에게서만 한두 수에 걸쳐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悼亡’이라 언급하기보다는 우회적이거나 전혀 다른 제목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宋代와 元明淸代에 들어서 작가나 작품 수는 전시기보다 약간 늘기는 하였으나 전반적인 상황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8)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도망시가 그 감정의 강도와 깊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세계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하였으며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소재로만 한정되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9) 반면 역대 작시현황에 있어 우리의 경우는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悼亡詩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고려 때 명종이 아끼던 內嬖 明春의 죽음을 애도하여 <悼亡詩>를 짓고 종친으로 하여금 화답하게 하여 自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10)『연구』의 정리 결과에 따르면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문집에서 총65題 243수가 산견되고 있으며 <悼亡>이라는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 해도 총65제 중 35題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11)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경우 중국과는 달리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러한 문학양식이 하나의 관습적 양식이자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사회 또한 중국과 같은 남성 중심의 사회로서, 어느 면에 있어서는 유가적 대의명분에 보다 철저 7)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논문, 1992.8, 이하『연구』. 9) 이것의 원인으로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大男子主義’를 들 수 있는데, 중당 이후 사회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도망시의 창작이 크게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대해서는 拙稿, 앞의 논문, 442~443면 참조. 3.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 悼亡詩는 그 성격상 가장 극한적인 비탄의 감정을 표출하게 되는 까닭에 작자의 본능적인 감정이나 무의식적인 반응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차적으로 해당 작자의 개별 작품들이 형식이나 체제를 막론하고 동일한 다음에서 韓中 悼亡詩의 서술방식을 ‘悲嘆, 鎭魂,稱揚의 결합’,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 ‘幻影과 幻聽의 차용’으로 나누어 비교해보기로 한다. 1)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 『연구』에서는 한국 애도시의 구성요소로 悲嘆, 鎭魂, 稱揚의 세 층위를 설정하고 이 중 한국의 悼亡詩에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요소로 비탄을 꼽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 속에서 이 세 요소 중 전적으로 어느 하나만을 취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비탄과 진혼, 혹은 비탄과 칭양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비탄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2)
다음에서 潘岳의 <悼亡詩> 3수 중 제1수를 보도록 한다. <悼亡詩> 其一13) 潘岳의 <悼亡詩>는 총3수로서 전편에 걸쳐 아내에 대한 의례적인 칭양없이,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비통한 심정을 직서적인 언어로 나타내고 있다. 보통의 연작시가 각 편마다 배경이 되는 상황이나 시점 및 정서들을 조 아울러 첫 수의 경우에는 전반부에서 입성의 ‘陌’ 韻을 사용하고 후반부에서도 입성의 ‘錫’ 韻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작자의 숨이 막히고 목이 메이는 슬픔을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悼往> (一作悼亡) 14) 이외 孟郊의 <悼亡>이나15), 韋莊의 <悼亡姬>16)와 <獨吟>17), 元稹의 <夜閑此后幷悼亡>18), 李商隱의 <房中曲>과 <正月崇讓宅> 등 많은 中國 悼亡詩들에서 이와 같이 일관된 비탄의 표출을 확인할 수 있다. 12)『연구』, 28면. 13)『文選』권23, <哀傷> 14)『玉臺新詠』권5. 孟郊, <悼亡> 元稹, <夜閑此后幷悼亡> <悼亡> 19) 19) 姜溍,『朝野詩選』권2. 이하 인용된 한국 한시는『연구』에서 재인용 함.
20) 徐慶昌,『學圃軒集』. 이처럼 중국의 도망시는 대부분의 시가 비탄으로 일관하지만 唐代 元稹(779∼831)과 宋代 梅堯臣(1002∼1060)의 시에서는 전체적으로 비탄의 정서가 주를 이루면서도『연구』에서의 지적과 같이 稱揚이나 鎭魂의 면들이 元稹의 <遣悲懷>는 총3수 중 前 2수에서, 梅堯臣의 <悼亡>은 총3수 중 제3수에서 비탄의 정서와 망자에 대한 稱揚이 결합되고 있다. <遣悲懷> 其一 21) 今日俸錢過十萬, 이제 비록 급료 십만 금이 넘으나 (그대는 이미 없으니) 21)『全唐詩』권404. 稱揚은 亡者의 지난 삶에 초점을 두고 그의 행적과 품성을 찬양하는 것으로, 悼亡詩에서는 鎭魂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칭양의 내용은 재능이나 인품 및 덕성 등과 관련한 개인적 칭양과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 등과 관련한 사회적 칭양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결합방식은 亡者와의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즉 지인이나 벗의 경우 개인적 칭양과 함께 사회적 칭양이 보다 우세하게 나타나는 반면, 가족 관계의 悼亡詩는 개인적 칭양 중에서도 특히 亡者의 糟糠之妻적인 측면, 즉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집안을 잘 꾸려나가고 원만하고 다정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용한 元稹의 첫 번째 시에서는 처녀 적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다 자신과 혼인한 이후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내조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아내의 품성을 칭양하고 있으며, 두 번째 시에서는 집안의 노복들에 대한 온정을 잃지 않았던 자애로운 성품을 높이고 있다. 한편 아내 또한 여성인 까닭에 외모적인 아름다움을 칭양의 내용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悼亡> 其三 22) 沉埋向九泉. 묻히어 구천을 향하는 것을. 22) 梅堯臣,『宛陵先生文集』권14. 梅堯臣의 시에서는 前 두 수에서 일관된 비탄의 정서를 나타내고, 마지막 수에서 아내에 대한 칭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아름답고 어진이[美且賢]’, ‘화씨의 구슬[連城寶]’ 과 같이 亡者의 외모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로 이루어져 있다.
<悼亡> 其一, 其二 23) 23) 李沂, 『海鶴遺書』권11.
24) 崔晛,『認齋集』拾遺. 이 시에 나타나는 아내들 또한 元稹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에 여느 남자 못지않은 역할을 해내며 게다가 바느질, 길쌈 또한 능하고 조상을 모시는 데도 소홀하지 않은 돈독한 내조의 덕을 지니고 있는 여인으로 묘사 이런 면에서 申光河의 다음 시는 아내를 다만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고생을 함께한 사람으로만 여기지 아니하고 좋은 벗으로, 나아가 ‘나의 아내임에 부끄럽지 않으리[不愧震澤婦]’라는 표현을 통해 아내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의 소유자로 격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故室輓> 25) 25) 申光河,『震澤文集』권9. 그러나 아내에 대한 위와 같은 칭양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또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은 아니다. 이는 같은 문화권 속에서 남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상호 유사한 인식들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무엇
<遣悲懷> 其三 鎭魂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대상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서 亡者의 넋을 위로함으로써 실제로는 애도자가 슬픔을 덜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시는 전체적으로 아내의 죽음에 대한 비탄이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尾聯에서 평생을 가난하게만 살다가 간 아내에 보답하고자 작자 또한 밤새 눈을 뜨고 있는 모습으로 망자를 위안하고 있다.
<故室輓> 26) 本非金石鞏. 본래 금석의 굳음이 아닐세. 26) 申光河,『震澤文集』권9. 이 시에서는 비록 죽었으나 선영에 묻힌 까닭에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며, 생시와 마찬가지로 웃어른을 섬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망자를 위안하고 있다. 위의 두 시 모두 悲嘆의 정서가 기본 바탕이 되면서 鎭魂의 방식 그러나 진혼의 내용에 있어 우리의 도망시는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위에서처럼 좋은 묘자리를 사용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르거나 묘지 주위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는 행위들은 우리의 도망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혼의 내용들로, 혼백을 통한 망자와의 재회나 단절된 교류의 연결고리를 설정함이 목적이었다. 이는 魂魄의 분리를 믿고 생명의 復活을 설정하지 않으며 분명한 사후세계관이 없었던 性理學적 死後觀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의 도망시에서는 이와 같은 진혼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2) 長篇化와 連作化 悼亡詩에서 형식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많은 작품들이 長篇이나 連作의 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와 중국 모두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그 중 長篇은 중국에서, 連作은 우리에게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中國에서는 潘岳 <悼亡詩> 3수를 비롯하여 魚玄機 <和新及第悼亡詩> 2수, 元稹 <遣悲懷> 3수, 梅堯臣 <悼亡> 3수, 江淹 <悼室人> 10수, 陸游 <沈園> 2수, 王士禎 <悼亡詩> 6수, 陳祖范 <悼亡> 2수, 蒲松齡 <悼內> 3수, 顧炎武 <悼亡> 5수 등 많은 시들이 연작으로 쓰여지고 있다. 편폭 또한 潘岳 <悼亡詩> 3수가 각각 26구, 28구, 32구, 李商隱 <房中曲>이 16구, 沈約 <悼往>이 12구 등 長篇化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외의 시들 또한 대부분의 시들이 율시를, 그중에서도 7언 율시를 기본 형식으로 사용하고 絶句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연구의 부록 자료를 일람하면, 우리의 도망시도 대표적으로 南鵬海의 <悼亡詩> 100수를 비롯하여 兪好仁 <妻李氏挽詞> 7수, 李春英 <悼意> 7수, 吳始壽 <悼亡> 5수, 申光河 <故室輓> 8수, 吳昌烈 <傷秋吟> 10수 등 많은 연작시가 있으며, 편폭도 洪貴達 <悼亡> 46구, 李元翼<悼亡> 26구, 李沂 <哭內後自傷> 18구 등 長篇化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중국과는 달리 5언, 7언 절구도 널리 사용된 차이가 있다.
첫째는 이와 같은 형식들이 가져오는 시적 효과 때문이다. 장편의 형식은 작자의 심사를 편폭의 제한 없이 곡진하고 절절하게 나열할 수 있게 하고, 유사한 예시와 비유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시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연작의 형식 또한 각각의 작품들이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각기 다른 상황이나 시점 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동일한 의미지향으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 전체의 주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둘째는 이러한 시적 효과를 의도해서라기보다는 나타내고자 하는 절대적인 내용 자체가 많은 경우, 즉 이성적인 절제와 함축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이 우선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장편이나 연작의 형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27)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본질적으로 비탄의 정서가 바탕이 되고 무절제한 감정의 표출을 특징으로 하는 悼亡詩가 우리와 중국을 막론하고 많은 작품에서 장편이나 연작의 형식으로 쓰여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27) 박준호는 李用休 輓詩의 連作詩적인 특징을 지적하며, 전달하려는 내용은 많은데 비해 한 수의 絶句로는 곡진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점 등이 원인이 되었으리라 판단하였다. 박준호, 「輓詩에 대한 一考察」,『동방한문학회』19집, 2000, 244면. 3) 遺品의 媒介化 일반적인 哀悼詩들이 흔히 계절적인 요인이나 자연 사물의 변화를 통해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비해, 悼亡詩에서는 아내와 관련된 사물이나 유품들, 즉 휘장이나 병풍, 이불, 화장품, 비녀 등을 매개로 슬픔의 감정이 潘岳의 시에서는 全詩에 걸쳐 휘장[幃]과 병풍[屛], 필기구[翰墨], 여름이불[夏衾], 베개[枕席], 침대[牀], 이부자리와 옷가지[衾裳], 유물[遺] 등이 매개가 되어 작자의 슬픔이 촉발되고 있는데, 이는 다만 유형의 유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체취[流芳]라는 무형의 유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沈約의 시 또한 주렴[簾], 병풍[屛], 빈 자리[虛座], 빈 침대[空床]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원진 또한 옷가지[衣裳], 이불[針線]을 통해 아내의 부재를 확인하고 슬픔에 빠져들고 있다. 28) 아내의 유품들은 다만 비탄의 감정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게 하는 역할도 한다. 李商隱의 <悼傷後赴東蜀辟至散關遇>에서는 ‘劍外從軍遠, 無家與寄衣. 散關三尺雪, 迴夢舊鴛機(劍閣 밖, 종군길은 멀기만 한데 옷 부쳐줄 집사람이 없구나. 삼 척 눈 쌓인 대산관에서 꿈에 옛날 원앙베틀로 돌아간다네)’라
<房中曲> 29) 29) 劉學鍇, 余恕誠 편,『李商隱詩歌集解』, 中華書局, 1988, 1034면. 시에서는 첫 4구에서 이슬에 젖은 여리고 가녀린 장미의 모습으로 죽은 아내를 회상하며 상실감과 무기력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 8구에서는 베개[枕]와 대자리[玉簟], 푸른 비단이불[羅碧], 금슬[琴瑟]과 같은 유품에서 아내의 흔적을 떠올리며 存亡의 변화를 대비시킴으로써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마지막 4구에서는 외로운 존재로서 앞으로의 삶 또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형상적으로 나타내며,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재회의 기약에 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고 가등의 유품들이 슬픔의 주된 촉발체가 되고 있다.
<悼亡> 30) 30) 李達,『蓀谷詩集』권1.
31) 朴鳴朝,『朝野詩選』권3. 李達의 시에서는 화장함[粧奩]와 거울[鏡], 아내의 방[舊小樓], 주렴[簾] 등이 등장하며, 朴鳴朝의 시에서도 화장함[粧奩]와 수놓는 도구[繡具],아내의 빈 방[空房]과 화장 상자[舊篋] 등이 등장하며 아내에 대한 비통 4) 幻影과 幻聽의 차용 환영과 환청의 방식을 통해 가상적 재회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현실적인 悲痛을 극대화시키는 방법 또한 도망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서술방식이다. <悼亡詩> 其二 중 32) 32)『文選』권23, <哀傷> 潘岳의 <悼亡詩> 제2수에서는 아내의 환영과 환청을 통해 죽음에 초연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통함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元稹의 <遣悲懷> 其二 또한 ‘일찍이 꿈에 그댈 만나 재물 전해 주었었네[也曾因夢送錢財]’라 하며 <正月崇讓宅> 33) 33) 劉學鍇, 余恕誠 편, 앞의 책, 1354면. 이 시는 작자가 아내와의 사별 후 처가에 돌아와 지은 작품으로, 외로움에서 기인한 비탄의 정서가 나타나 있다. 경련에서 주렴과 사창을 흔드는 박쥐와 쥐의 소리를 아내의 인기척으로 착각하고 이어 미련에서는 아내의 남은 향기를 아내로 삼아 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는데, 작자는 이와 같은 환상과 환영의 방식을 통해서나마 아내와의 재회를 시도하고 있다.
<哭亡妻墳詩> 34) 34) 李希輔,『詩評補遺』上. 李希輔의 이 시에서는 밝은 달[明月]과 샘물 소리[鳴泉]에서 아내의 환영과 환청을 느끼고 비통해하고 있으며 尾聯에서는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부부로 연을 맺을 것이리라는 작자의 서약을 통해 亡者를 위안하고 있다.
다만 성리학적 세계관에 보다 철저했었던 우리에 비해, 중국의 경우는 비탄의 정서가 보다 일관되게 유지되며 칭양이나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양국 간의 이와 같은 유사성은 각각의 작품들의 세부적인 표현 방법, 즉 상징이나 비유 및 이미지와 소재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에서는 韓中 悼亡詩를 상징체계를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한다. 4. 韓・中 悼亡詩의 상징체계 현전 悼亡詩들을 일괄해보면, 시대나 지역의 차이를 막론하고 각각의 작품에 있어 상징이나 비유뿐 아니라 차용된 이미지나 소재 등에 있어서까지 천편일률적인 유사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悼亡詩에 있어 이미 어떠한 최재남은 연구에서 한국 애도시의 관습적 표현으로 ‘죽음의 심상’, ‘亡者의 형상’, ‘幽明의 언어’를 제시하며 이를 한국의 悼亡詩에 적용시켜 정형화된 상징과 이미지를 밝힌 바 있다.35) 의심할 나위 없이 중국의 경우 또한 이와 같은 정형화된 상징과 이미지가 분명 존재하며, 보다 특징적인 것으로는 中國 悼亡詩의 기원이면서 또한 그 최정점에 반악의 <悼亡詩> 3首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도망시의 이러한 특징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수용되어 우리 도망시의 전통으로도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에서 ‘죽음의 形象’과 ‘亡者와 作者의 形象’, ‘저승의 形象’을 중심으로 韓中 悼亡詩의 상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35)『연구』, 125면. 1) 죽음의 形象 일반적으로 애도시들은 죽음을 형상을 주로 ‘가을’이나 ‘저녁’ 등 시간과 계절의 원형적 상징이나 ‘시든 잎’, ‘마른 나무’, ‘서리’ 등과 같은 자연적 상징을 통해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悼亡詩 또한 애도 다만 悼亡詩에서는 죽음의 상황을 직접적인 언급하기보다는 亡者와 哀悼者 또는 亡者와 事物과의 ‘관계의 단절’을 통해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潘岳의 <悼亡詩> 3首에서 해당 부분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悼亡詩> 其一36)
36)『文選』권23, <哀傷> 潘岳은 3首 전반에 걸쳐 ‘당신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길 없다[無髣髴]’, ‘남은 흔적이 있다[有餘迹]’, ‘여전히 벽에 걸려 있다[遺挂猶在壁]’, ‘침상이 휑하다[牀空]’, ‘빈 잠자리에 먼지가 쌓인다[牀空委淸塵]’, ‘허전한 집[室虛]’ 등의 표현을 통해 아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관계의 단절을 통해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이 후 沈約이나 元稹, 李商隱,梅堯臣 등의 도망시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문화적 상징이나 비유적 이미지, 또는 자연적 이미지 등을 통해 단절의 의미를 드러내며 죽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37) 37) ‘遊塵掩虛座, 孤帳覆空床’(沈約, <悼往>), ‘衣裳已施行看盡, 針線猶存未忍開’(元稹,<遣悲懷> 其二), ‘孤琴在幽匣, 時迸斷弦聲’(元稹, <夜閑此后幷悼亡>), ‘密鎖重關掩綠苔’(李商隱, <正月崇讓宅>), ‘劍外從軍遠, 無家與寄衣’(李商隱, <悼傷後赴東蜀辟至散關遇雪>), ‘玉簟失柔膚, 但見蒙羅碧’(李商隱, <房中曲>) 등.
<輓室人千氏> 38) 38) 林得明,『松月漫錄』권1.
39) 趙緯韓,『玄谷集』권5. 앞서 인용한 李達과 朴鳴朝의 시에서 각각 ‘거미줄 낀 화장함[粧奩虫網]’ 과 ‘먼지 낀 거울[鏡生塵]’, ‘땅속에 다 묻었다[埋藏盡]’는 표현으로 관계의 단절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위의 林得明의 시에서도 ‘끊어진 줄[已斷絃]’, ‘깨진 거울[鏡破]’, ‘텅 빈 베개[虛枕]’라는 표현을 통해 이를 나타내고 있다. 2) 亡者와 作者의 形象 中國 悼亡詩에서 亡者인 아내는 주로 두 가지 유형으로 상징되고 있다. 애도자인 작자는 주로 홀로 살아남아 늙고 왜소해진 존재로서 그려지거나 혹은 짝을 잃거나 무리에서 벗어난 새와 물고기, 반딧불, 기러기 등과 같은 미물들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 또한 亡者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비탄과 칭양에 있어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다시 潘岳의 시에서 해당 부분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悼亡詩> 其一
儀容永潛翳. 아름다운 모습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네. <悼亡詩> 其三 潘岳은 아내를 ‘정숙한 짝[淑儷]’과 ‘아름다운 모습[儀容]’으로 표현하며 ‘떨어진 잎[落葉]’과 ‘마른 뿌리[枯荄]’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즉 망자의 생전과 사후 두 가지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의 비탄을 고조시키고 생전의 망자를 칭양하고 있는 것이다. 作者 자신 또한 ‘짝 잃은 새[一朝隻]’와 ‘헤어진 물고기[中路析]’에 비유하며 아내와의 사별 전후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비탄과 칭양의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元稹과 李商隱, 梅堯臣의 시에서 亡者에 대한 상징부분들을 예로 들어본다. <遣悲懷> 其三
<夜閑此后幷悼亡>
40)『宛陵先生文集』권14. 이들 시 또한 반악의 <悼亡詩>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거문고[孤琴]’ 나 ‘산꼭대기의 나무[山頭蘗]’, ‘피지 않는 꽃[花未開]’, ‘들 가 대나무[野竹]’, ‘외로운 반딧불[孤螢]’, ‘외기러기[一雁]’ 등과 같이 모두가 짝을 이루 亡者의 생전의 화려한 모습과 사후의 쇠락한 모습의 대비가 자신의 비탄을 심화시키고 생전의 망자를 칭양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처럼, 사별 후의 자신의 모습이 미천하고 왜소할수록 자신의 비통함은 더욱 통절해지고 아내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높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의 도망시에서는 관습적으로 이러한 상징의 방식을 널리 사용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통해 서술방식상 다소 소홀했던 망자에 대한 칭양과 진혼의 내용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인용한 李達과 申光河의 시에서 해당 부분을 다시 인용해본다. <悼亡>
두 시에서는 각각 ‘주렴 걷는 사람[捲簾人]’과 ‘좋은 짝[好逑]’, ‘좋은 친구[良友]’로 아내를 상징하고 있는데, 이외의 용어로는 ‘섬세한 사람[細君]’이나 ‘이불을 함께 덮는 친구[同衾友]’, ‘머리 묶은 사람[結髮人]’ 정도 3) 저승의 形象 마이클 로이는 고대 중국인들의 내세나 선향에 대한 관념을 크게 네 가지로 설정한 바 있다.41) 비록 여기에는 불교의 영향 하에 형성된 淨土觀念이나 각종의 민간 토속신앙에 근거한 다양한 내세관들에 대한 언급들이 빠져 있지만, 중국에서 동시대 내에서도 다양한 내세관이 혼재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세에 대한 우리의 관념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기에는 비록 분명한 내세관이 없었으나 삼국 시기 불교가 전해진 이후 극락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지고,42)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혼재하는 것으로 보는 巫俗的 사생관과 결합되어 우리 또한 다양한 내세관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우리와 중국 모두 이와 같이 다양한 내세관이 공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韓中 悼亡詩에서는 저승에 대한 개념으로 이 중 네 번째인 지하세계의 표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41) 첫째는 蓬來山같은 동해의 이상향이고 둘째는 우주의 근저를 이루는 전체적인 존재구조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 즉 성리학적 사생관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西王母가 지배하는 신비로운 서방세계이며 넷째는 막연한 개념으로 지하의 관리들이 지배하는 黃泉이다. 마이클 로이 著, 이성규 譯,『고대중국인의 생사관』, 지식산업사, 1989, 44면. 앞서 인용한 시에서 저승의 개념이 나타난 부분만을 다시 예로 들어 본다. <悼亡詩> 其一
<夫人白氏挽>
우리와 중국시 모두 ‘窮泉’, ‘重壤,’ ‘泉下’, ‘九泉’, ‘地下’ 등과 같이 지하세계의 이미지로 亡者가 있는 곳을 나타내고 있다. 망자가 떠나가는 저승이 지하에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사실 막연한 느낌에 불과한 것으로 확고하게 정립된 저승관념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또한 이와 같은 저승관념이 당시 사람들의 저승관념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民間輓歌에 나타난 민간의 저승관념은 비록 경계를 알 수 없으나 이승과 동일한 공간에 있으며 영원존재의 회귀처로서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43) 또한 민간만가에서 저승은 각각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때로는 희망적이
그렇다면 유가적 사유나 성리학적 사상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며 공개적으로 도가적 지향을 추구하기도 했었던 중국의 문인지배계층이 도망시에서 우리와 같은 저승관념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悼亡詩의 기본정서가 비탄인 까닭에 망자의 사후의 모습을 쇠락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상징하는 것과 같이, 망자가 떠나가는 곳을 현실보다 못한 암울하고 어두운 지하세계로 상정함으로써 비탄의 감정을 보다 심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필자의 견해에서는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문인지배계층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강자였던 까닭에 비록 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있다 할지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에 대한 만족이나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일반 백성들이나 또 다른 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의 저승관념이 문인계층들의 그것과 사뭇 달랐던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다.45) 43) 이영희, 「輓歌를 통해 본 죽음의 의미와 돌봄」,『關大論文集』27권, 1999, 235면. 45) 민간만가뿐 아니라 여성문인이 쓴 애도시에서도 남성문인들의 저승관과는 다른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이지운의 <沈宜修의 悼女詩 硏究>(『中國語文學』32집,2010.4)에 따르면, 명말 청초의 여성문인 沈宜修(1590∼1635)는 悼女詩에서 현실 세계는 무겁고 어둡게 묘사하는 반면, 죽은 딸이 있는 곳은 학을 타고 난새를 부리는 仙界로 묘사하는 등 긍정적인 저승관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필자로서는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한 까닭에 이것이 당시 여성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대표하는 것인지 확언할 수 없다. 5. 맺으며 이상에서 역대 작시현황 및 서술방식상의 특징과 상징체계 중심으로 韓中 悼亡詩를 비교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따라서 도망시는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소재로만 한정되었을 뿐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문집에서 많은 悼亡詩들이 산견되며 중국과는 달리 하나의 관습적 양식이자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悼亡詩의 서술방식은 ‘悲嘆, 鎭魂, 稱揚의 결합’과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 ‘幻影과 幻聽의 차용’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우리와 중국의 도망시 모두 비탄의 정서를 위주로 하며, 여기에 亡者에 대한 稱揚과 鎭魂의 측면들이 함께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들의 결합의 측면보다는 일관된 비탄의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칭양과 진혼의 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 우리와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長篇化와 連作化, 遺品의 媒介化와 幻影과 幻聽의 차용은 다른 哀悼詩들에 비해 悼亡詩에서 두드러진 悼亡詩의 상징체계는 ‘죽음의 形象’, ‘亡者와 作者의 形象’, ‘저승의 形象’ 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韓中 悼亡詩의 창작의 원형으로서 潘岳의 시가 존재하며 中國 悼亡詩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도망시들 또한 서술 방식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 방법이나 이미지 등에 있어서까지도 상호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亡者와 자신에 대한 상징에 있어 중국의 悼亡詩가 우리보다는 높은 성취를 나타내며, 비록 저승세계를 지하세계로 인식하였던 결과는 같으나 그 바탕에는 상이한 인식차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 이 논문은 2010년 4월 30일(금요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0년 5월 3일(월요일)부터 6월 4일(금요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0년 6월 7일(월요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참고문헌 劉學鍇・余恕誠,『李商隱詩歌集解』, 中華書局, 1988. 12. ABSTRACT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 about a ‘Condolatory poem(悼亡詩)’ of Korea and China Ju, Gi-pyoung In this essesy, I compared the Korean ‘Condolatory poem’ with the Chinese's in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s aspect. In a formula of description, classified into four groups which are ‘Combination of grief, console and praise’, ‘Trend of long and reiterated works’, ‘making a relics as Intermediation’, ‘use of a phantom and hallucination’. on the foundation of grief, many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were combined with console and praise for a dead person. but A trend of consistent grief is more strong in China than Korea relatively, and there are a little unlike in a contents of console and praise also. The remaining three groups are similar in the literal description In a literal symbols, classified into three groups which are ‘Symbol of Death’, ‘Symbol of dead person and writer’, ‘Symbol of after life’. In this three groups, most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represent similar trend and description. In conclusion, Condolatory poem of Korea and China have similar literary tradition in a formula of description and symbols, although they have a little difference in other asp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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