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이해의 넘어 있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될 때 이 문제가 우리에게 엄청난 난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논리적 해결을 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구원에 있어 특히 성령의 역사와 어떤 관계인지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는다는 걸 알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참된 신자라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은 예수께서 완전하게 이루신 것으로 우리가 더 덧붙여 행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공로도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께서 성취하신 이 객관적 구속을 우리가 믿을때 예수님이 이루신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절대 기계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 것이 되게 하고 동시에 그 의로 살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신자의 심령에 내주하시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일깨우시며 우리가 구원의 길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견고히 붙드시며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실천적으로 어떻게 나타날까요?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오로지 말씀 안에 역사하시며 그 말씀을 우리에게 일깨우시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에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신자가 되는 게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통해 점점 우리가 자라고 성숙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성령은 우리안에 자신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인격의 변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만약 이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그가 지닌 믿음은 성령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는 중생하지 않았으며 그의 회개는 참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복음의 은혜를 간절히 그리고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적절한 질문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무엇을해야 하는가? 라는질문이 결코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획득한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무엇을 행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구원의 적용도 인간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론적인 의미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륜적인 의미에서 성령을 그 저자로 삼기에 성령의 특별한사역이라고 불릴수있다. 구원의 길 전체는 성령의 적용하는은혜다" 개혁교의학, 헤르만 바빙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