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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 神の御国が来ますように。 ( 2023년 12월 17일 주일예배)
본문; 누가복음 17:20-30
눅 12: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계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 24 마치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26 노아의 시대에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이, 인자의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롯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에서 떠나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20.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ので、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神の国は、見える形では来ない。21. 『ここにある』『あそこにある』と言えるものでもない。実に、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間にあるのだ。」22. それから、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が、人の子の日を一日だけでも見たいと望む時が来る。しかし、見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23. 『見よ、あそこだ』『見よ、ここだ』と人々は言うだろうが、出て行ってはならない。また、その人々の後を追いかけてもいけない。24. 稲妻がひらめいて、大空の端から端へと輝くように、人の子もその日に現れるからである。25. しかし、人の子はまず必ず、多くの苦しみを受け、今の時代の者たちから排斥さ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26. ノアの時代にあったようなことが、人の子が現れるときにも起こるだろう。27. ノアが箱舟に入るその日まで、人々は食べたり飲んだり、めとったり嫁いだりしていたが、洪水が襲って来て、一人残らず滅ぼしてしまった。28. ロトの時代にも同じようなことが起こった。人々は食べたり飲んだり、買ったり売ったり、植えたり建てたりしていたが、29. ロトがソドムから出て行ったその日に、火と硫黄が天から降ってきて、一人残らず滅ぼしてしまった。30. 人の子が現れる日にも、同じことが起こる。
지난 주일에는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곧 복음으로 일상을 사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 배웠습니다. 천국을 소망할 때 이 땅의 일들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을 소망할 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삶의 지평이 확장됩니다. 천국을 소망할 때 주변의 유혹과 핍박에서 자유함으로 모든 인간관계가 친구로 변화되는 것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을 소망함으로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성경은 우리가 세속의 나라에 속하여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는데요. 복음을 믿는 우리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강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소위 우리의 상식 안에 있는 국가라는 존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위 국가의 3요소라는 것을 고등학교 때 배우는데요. 영토, 정부, 그리고 국민이 있어야 국가는 형성된다고 하는데요. 엄밀히 따지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라는 명칭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라고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 있는 곳, 혹은 그 다스리심을 받는 백성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바리새인들이예수님께 묻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느냐고 말이지요. 그러자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여 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원하는 사람은 이미 그 통치하심과 인도하심이 실재한다는 믿음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과 율법을 소망하는 사람은 그 율법과 가르침에 이미 순종하고 있고, 그 순종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에게 임하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은 현실에서 어떤 특정한 국가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로마 황제를 반역한 죄로 누명을 쓰고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죽음을 보는 눈이 열려서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으며,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일상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더욱 실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듯 이 땅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는 현실로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 나라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지요.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하시는 내용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내용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이들을 향하여서는 그 나라가 그들의 내면에 소망과 기대의 모습으로 실재하고 계심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에 드러나게 될 그 때에 대해서 다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소망으로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소망과 기대에 부응하여 언젠가 반드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현실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복음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기대할 유익한 삶인 것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이 땅에서 얻을 일상의 유익함과 성공, 그리고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위해서 인생을 흘려 보내듯이 소비하며 살고 있다고 성경은 진단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임박한 심판의 시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롯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하였는데,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이 모든 것이 이 땅에서 육신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일상의 유익을 위한 성공과 성취, 그리고 즐거움을 위해서 사람들이 인생의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여기고 소비하며 사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물론 인생이란 이렇게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집 짓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단지 그 일상과 육신적인 일과가 인생의 목적이라면 전도자가 말하는 허무함 그 자체인 것으로 삶을 소비하는 것과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전도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 2:11)
전도자의 말은 인생이 성공과 성취, 혹은 출세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곧 시간을 흘려보내며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게 살아야만 삶을 보람있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전 2:1)
다만 이 땅에서 육신의 눈에 보이는 인생과 일상생활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즐거움을 찾는 것도...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수고하며 노력하여 얻은 결과도 결국은 허무한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존재로서 인생을 보다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열매를 맺으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 땅에서의 인생을 하루에 하루만큼 주님 앞에 쌓으며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주의기도를 고백하며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나라가 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현실을 위해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지난 두 주간 말씀을 전하며 죽음과 천국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현실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에 대한 메시지를 나누는 과정에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생활을 하는 것을 단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또 단순한 종교적 교리를 잘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도 있지요. 그리고 종교생활하는 것을 그저 마음의 혼란을 정돈해 보려는 일종의 정신수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이란 이 땅에서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수단이 아닙니다. 복음 그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이며, 복음이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여건은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악한 세력과 그에 속한 이 땅이 심판을 받을 때 우리도 일상에 매여 살았던 죄로 인해 함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의 유익을 조금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인생을 인생답게 살지 못하고 허망하고 허무하게, 말 그대로 인생이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생을 이야기할 때... 그저 세월이 흘러갔다는 식으로만 여깁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언제 그렇게 인생이 휙 하고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며 탄식하듯 후회하며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단지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인생을 산다면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삶의 경험들과 체험들로 주님 앞에 쌓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마치 노련한 장인이나 예술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통해서 쌓은 내공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리 천재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삶을 통해 내공을 쌓아 온 스승의 작품을 쉽게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인생을 쌓아 가는 사람은 주님안에서 나이가 들수록, 연륜과 사명의 증거들이 쌓이며, 오히려 더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우리의 겉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고 점점 빛바랜 모습으로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복음 안에 있으면 오히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깊어짐으로 새로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서 자세히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기본적인 교리의 지식은 필요하겠지요. 다만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주님 앞에 하루에 하루만큼씩 쌓여가고 있음을 기억하기에 경거망동하며 제멋대로 살거나 허망하게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과 매일 하루에 하루만큼 동행하는 것이 곧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삶을 쌓아나가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삶의 경험들과 증거들을 짧게라도 기록하여 남겨 놓으면 삶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일상의 현실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먹고 마실 때 그 삶은 주님 앞에 쌓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며 갈망하는 것은 주님 앞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에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고 진단하고 있는가보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정하실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기도의 폭을 넓여야 합니다. 성도가 일하고 공부하고 돈을 벌며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한 사명과 사역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생활이 단지 자기 일상의 형통함과 즐거움을 위한 수단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상급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기도와 소망, 그리고 일상에서의 성과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5)
우리의 기도가 무엇인가 이 땅에서 성취한 것으로 인정을 받으려 하거나, 혹은 기도하는 모습을 과시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결국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와 소망은 이 땅에서의 성취와 성공, 그리고 확실한 결과와 열매는 거둔 보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구체적으로 임하시길 열망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로소 그 때 우리는 복음으로 사는 자의 풍족한 은혜와 결실을 누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과 천국에 대한 분명한 시선이 열리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올바른 소망을 내면에 부어줍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넘치는 복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체감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는 결코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현실에서 성취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지금의 일상을 헌신적으로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주님께서 상급으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느라 지금 손해를 보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놀라운 복으로 채우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복된 삶을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또한 과학적인 것을 확신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나와 동행하는 주님의 시선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루에 하루만큼 주님 앞에 삶을 쌓는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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